‘100일 천하.’
‘승부사’ 김승연 한화 회장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다. 1월22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 매각 협상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한화가 포스코·GS·현대중공업을 제치고 단독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지난해 10월24일 뒤 100여 일 만이다. 이날 한화그룹 분위기는 침울했지만, 주식시장은 밝았다. 코스피 시장에서 (주)한화 주가는 전날보다 2800원(10.87%) 뛰어오른 2만8550원에 거래를 마쳤다. 한화석유화학도 33원(4.44%) 오른 7770원을 기록했다.
비판적 시각 의식 김 회장 일본으로
김 회장은 지난 1월13일 일본으로 떠났다. 대우조선 인수 실패로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출국했다는 말이 나돈다. 자신을 포함한 경영진에 대한 비판에서 벗어나 그룹의 새 비전을 찾는 작업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 한화 쪽은 “김 회장이 한화 도쿄법인 등지를 방문할 계획으로 출국했다. 현지에서 사업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보통 1월에는 김 회장이 해외 사업장을 찾는 경우가 많다. 대우조선 인수 문제와는 상관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회장이 출국할 때는 한화가 대우조선을 분할 매입하는 방안을 산업은행에 제안했을 무렵이다. 한화는 산은에 보유 자산을 팔아 마련할 수 있는 3조원으로 우선 매각 대상 지분의 60%를 사고, 나머지 40%는 5년 뒤에 사겠다는 분할 매입 방식을 제안했다.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가는 6조3천억원이었다. 한화는 이를 위해 대한생명 지분 21%(약 1조7천억원), 서울 장교동 및 소공동 사옥(약 6천억원), 한화갤러리아(약 1조2천억원) 등을 팔고 여기에 보유 현금 1조원을 더해 4조5천억원의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전달했다.
하지만 산은은 “현실성이 부족하고 여전히 미흡하다”며 자금 마련 방안을 수정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벼랑 끝 전술’을 선택한 한화는 물러서지 않았고 1월15일 지분 분할 매입 계획을 수정 없이 확정해 산은에 냈다.
산은도 배수의 진을 쳤다. 인수 대금 분할 납부, 지분 분할 매입 등 한화의 요구조건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화의 자금 조달 계획안을 받은 산은은 공동매각추진위원회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우선협상대상자인 한화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최종 입장을 결정해버린다. 국책은행으로서 특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은 쪽은 “한화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특혜 시비가 불거진다. 포스코나 현대중공업이 가만히 있겠나. 탈락한 기업들한테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애초 업계 안팎에선 분할 매입 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됐다. 김 회장 역시 대우조선 인수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김 회장은 일본에 있으면서 조선업을 대신해 그룹의 신성장 동력이 될 만한 사업 분야를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론이지만, 대우조선 인수 실패로 여러 최고경영자(CEO)들이 책임론에 휩싸였다. 처음엔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었다. 포스코 단독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어도 가장 경쟁력이 있었는데, GS와 컨소시엄을 꾸린 것이 패착이었다는 이유에서다. 허창수 GS 회장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포스코와의 계약 파기라는 악수를 뒀다는 비판이다. 계속 이어지는 인수 실패에 대한 지적도 부담이었다. GS는 2005년엔 인천정유 인수전에 나섰으나 SK에너지에 무릎을 꿇었다. 하이마트 인수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대한통운 인수를 검토하다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김승연 회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승부사적 기질로 밀어붙인 뚝심의 승리라며 언론들은 노래했다. 폭행사건으로 은둔의 시절을 보낸 그가 ‘돌아온 승부사’로 화려하게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대우조선이 강력한 성장 프로펠러가 될 것”이라며 강한 인수 의지를 보인 그였다. 김 회장은 지난해 4월 사장단 회의에서 “제2창업이라는 각오로 인수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그동안 한화는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을 키웠다. 한화석유화학(옛 한양화학), 한화리조트(옛 정아그룹), 한화갤러리아(옛 한양유통), 대한생명 등은 M&A의 산물이었다. 한화는 조선업을 그룹의 핵심축으로 만들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그렸다. 대우조선을 2017년 그룹 매출 목표 100조원 중 35%인 35조원 규모의 주력사로 성장시킨다는 중장기 비전을 세웠다.
하지만 축배를 들 시간은 너무 짧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실탄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나라 안팎에서 돈줄이 말라갔다. 하나은행·농협 등 대출 의사를 밝혀온 은행들은 냉정했다. 신용 경색을 이유로 자금 지원 규모를 애초 예정보다 줄인다는 방침을 한화에 통보했다.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중동 자금 유치도 무산됐다. 부동산·증권시장 급랭으로 계열사 지분 및 사옥 매각도 제값을 받지 못하게 됐다. 그사이 이구택 회장과 허창수 회장은 대우조선 인수에 관심 없다며 비판을 툴툴 털어버렸다.
김 회장은 이행보증금 3천억원을 떼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막판까지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그는 수건을 던졌다.
이행보증금 놓고 산은과 2라운드
곧바로 비판의 화살이 김승연 회장을 겨누기 시작했다. 한화그룹 안팎에선 인수 금액을 너무 높게 써낸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화가 무리하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인수의향서 제출 시점인 10월에는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꼼꼼히 자금 조달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는 얘기다. 대우조선의 가치를 잘못 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화의 미래 전략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대우조선을 그룹 제조 부문의 핵심 사업으로 키운다는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한화는 당분간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석유화학과 금융 부문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화는 산은과 3천억원의 이행보증금을 놓고 다시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 주력 계열사인 한화석유화학의 지난 2007년 당기순이익이 약 2천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이행보증금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처지다. (주)한화·한화석유화학·한화건설 등 대우조선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3사는 각각 이사회를 열고 반환 소송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한화는 대우조선 본계약이 무산된 것이 산은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산은이 대우조선 노조와의 사전 협의를 요구하며 기업실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은은 한화가 이행보증금 반환 근거로 제시한 기업실사 문제에 대해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양해각서(MOU) 체결 이전부터 대우조선 노조가 실사 저지를 밝힌데다 체결 뒤에도 한화가 법적 지위를 문제 삼으며 노조와의 대화를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강조한다.
대우조선 인수를 놓고 그동안 줄다리기를 벌였던 한화와 산은의 제2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07년 12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초청 경제인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산은도 배수의 진을 쳤다. 인수 대금 분할 납부, 지분 분할 매입 등 한화의 요구조건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화의 자금 조달 계획안을 받은 산은은 공동매각추진위원회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우선협상대상자인 한화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최종 입장을 결정해버린다. 국책은행으로서 특혜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산은 쪽은 “한화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특혜 시비가 불거진다. 포스코나 현대중공업이 가만히 있겠나. 탈락한 기업들한테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애초 업계 안팎에선 분할 매입 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전망됐다. 김 회장 역시 대우조선 인수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김 회장은 일본에 있으면서 조선업을 대신해 그룹의 신성장 동력이 될 만한 사업 분야를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론이지만, 대우조선 인수 실패로 여러 최고경영자(CEO)들이 책임론에 휩싸였다. 처음엔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었다. 포스코 단독으로 인수전에 뛰어들어도 가장 경쟁력이 있었는데, GS와 컨소시엄을 꾸린 것이 패착이었다는 이유에서다. 허창수 GS 회장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포스코와의 계약 파기라는 악수를 뒀다는 비판이다. 계속 이어지는 인수 실패에 대한 지적도 부담이었다. GS는 2005년엔 인천정유 인수전에 나섰으나 SK에너지에 무릎을 꿇었다. 하이마트 인수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대한통운 인수를 검토하다 중도에 그만두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경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