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대비 5%대 넘어선 물가관리 비상… 상승 요인 많고, 널뛰는 환율도 불안 부추겨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야단이다. 물가상승률이 98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5%대(전년동월비)를 넘어섰다. 게다가 앞으로 내릴 가능성보다는 더 오를 요인들이 줄줄이 잠복해 있어 물가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경기침체 국면에서도 물가는 치솟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4월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5.3%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월에 비교해서는 0.6%, 지난해 말에 비해선 2.5%, 지난해 1∼4월에 비해선 4.6% 올랐다. 이 가운데 전년동월대비 5%대 상승은 98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겨우 5%대를 갖고 호들갑을 떠느냐는 시각도 있다. 하긴 두 자릿수 물가상승을 경험한 일이 그리 오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5.3%란 수치는 시시하게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 불황국면이고 올해 경제성장률이 3∼5%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임을 감안하면 5% 이상의 물가상승은 우리 경제에 심각한 적신호이다.
경제 적신호에도 재경원은 “걱정 말라”
올해 정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억제 목표는 3%대로 잡혀 있고, 한국은행이 설정한 물가억제 목표도 3±1%이다. 물론 정책목표라는 게 늘 그대로 지켜질 수는 없으며, 3%대나 3±1%라는 잣대 또한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 3%대 같은 목표가 지켜지고 않고에 따라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더욱이 지금 나와 있는 물가통계는 기껏 4월까지만이다. 올해가 다 가려면 아직 8개월이나 남아 있다. 정책목표가 달성되기 어렵다느니, 뭐니 하는 식으로 섣불리 단정할 시점은 아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는 물가통계의 특성도 감안돼야 한다. 지난해 4월에는 농축수산물 값이 뚝 떨어져 소비자물가가 0.3% 하락한 반면, 올해 4월에는 이들 품목의 값이 크게 올랐다. 토마토, 딸기, 풋고추 등 신규 출하품목의 가격이 오르면서 농축수산물은 전월에 비해 1.5%나 상승했던 것이다. 겨울철의 폭설, 한파로 출하가 늦어진 게 주원인이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지난해 4월과 비교한 올해 4월은 통계의 ‘반사효과’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공공요금을 꽁꽁 묶어뒀던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지난해가 낮았던 만큼 올해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튀어오른 것으로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정경제부도 지금의 물가 움직임에서 크게 걱정할 대목은 없다고 강조한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산물(곡물제외)과 석유류를 제외하면 전월대비 0.3% 상승에 그쳐 안정세를 보였다. 또 4월중 생산자물가는 석유제품을 중심으로 공업제품 가격이 상승했지만, 전월에 비해 0.2%,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3% 상승에 그쳤다는 사실도 부각시킨다.
전망도 마찬가지이다. 재경부는 올해 1∼4월에 소비자물가 상승요인으로 작용했던 농축수산물과 교육비 등이 더이상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5월부터는 물가가 안정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농축수산물의 경우 본격 출하시기를 맞아 값이 내려갈 것으로 보이며, 등유·경유를 비롯해 값 인하를 앞둔 공산품도 많다. 무엇보다 경기침체로 주요 소비재 제조 및 판매회사들이 할인판매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공산품이 시장원리에 따라 물가고삐를 잡아가고 있다는 게 낙관론의 근거이다.
그렇다면 최근 물가 움직임에 대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지난 4월 말까지 물가 오름세를 주도한 두 요인(농축수산물과 공공요금) 가운데 공공요금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상승세를 이어가며 물가를 불안하게 할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 연구위원은 “공공요금은 지난해 상반기에 총선일정을 감안해 인상이 억제돼오다가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해 올해 1분기에 13.3%나 올랐다”면서 “그러나 전력이나 도시가스 요금 등 환율급등에 따른 원가상승 및 환차손으로 비용확대로 추가인상이 불가피한 공공요금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경부 오갑원 국민생활국장도 “지난 98년 2월 한 차례 오른 뒤 지금까지 묶여 있는 택시요금을 비롯해 상하수도료·쓰레기봉투 값 등 앞으로 인상될 공공요금이 꽤 남아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또 하나, 더욱 근본적인 불안 요인으로 환율 변수가 남아 있다. 사실 올해 물가에 대한 걱정의 초점은 환율로 집중돼 있다. 물가에 미치는 ‘위력’이 워낙 큰데다 정책 당국이 제대로 통제하기 어려운 ‘고삐풀린 망아지’이기 때문이다. 환율상승(원화가치 하락)이 물가를 올리는 과정을 잠깐 살펴보자. 예를 들어 국제가격이 20달러인 석유 1배럴을 수입한다고 가정하면, 1달러에 1200원이던 원화환율이 1300원으로 올라간 경우 달러당 1200원일 때는 2만4천원이 들지만, 1300원으로 오른 상황에선 2만6천원이 필요하다.
경기 살린다고 물가 흔들 건가
이처럼 환율상승은 원자재의 수입원가를 밀어올리기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되는 상품이나 서비스 원가를 덩달아 상승시키고 결국 물가불안으로 이어진다. 이런 교과서적 논리는 지난 3월부터 나타난 실제상황이기도 하다. 수입품을 국내로 들여올 때 외상거래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당시 환율폭등에 따른 물가압박 요인은 앞으로도 계속 현실화할 것으로 봐야 한다. 더욱이 환율 움직임 자체에 대해서도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다. 원화환율은 5월 초에 1300원 아래로 떨어져 당국의 시름을 덜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앞날을 낙관할 수 없다.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유승선 책임연구원은 “5월 들어 원화환율이 예상 밖으로 빨리 떨어지긴 했지만, 하락기조로 돌아섰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유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엔화 움직임에 밀접히 연결돼 움직이는데, 일본경제의 침체가 이어지고 이에 따른 엔화약세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말했다.
조동철 연구위원은 “물가안정 목표를 웃도는 물가상승은 통화정책 및 거시경제 안정기조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린다”며 “가능한 한 상한선인 4%선의 물가상승률을 유지해 시장의 신뢰를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통제불능의 외생변수 탓에 물가가 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자칫 침체에 빠진 경기를 살리기 위해 물가를 희생하는 정책선택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장바구니 물가도 지속적으로 올랐다. 소비자들이 남대문시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강창광 기자)
올해 정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억제 목표는 3%대로 잡혀 있고, 한국은행이 설정한 물가억제 목표도 3±1%이다. 물론 정책목표라는 게 늘 그대로 지켜질 수는 없으며, 3%대나 3±1%라는 잣대 또한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또 3%대 같은 목표가 지켜지고 않고에 따라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더욱이 지금 나와 있는 물가통계는 기껏 4월까지만이다. 올해가 다 가려면 아직 8개월이나 남아 있다. 정책목표가 달성되기 어렵다느니, 뭐니 하는 식으로 섣불리 단정할 시점은 아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는 물가통계의 특성도 감안돼야 한다. 지난해 4월에는 농축수산물 값이 뚝 떨어져 소비자물가가 0.3% 하락한 반면, 올해 4월에는 이들 품목의 값이 크게 올랐다. 토마토, 딸기, 풋고추 등 신규 출하품목의 가격이 오르면서 농축수산물은 전월에 비해 1.5%나 상승했던 것이다. 겨울철의 폭설, 한파로 출하가 늦어진 게 주원인이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따라서 지난해 4월과 비교한 올해 4월은 통계의 ‘반사효과’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공공요금을 꽁꽁 묶어뒀던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지난해가 낮았던 만큼 올해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튀어오른 것으로 보이는 ‘착시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진/ 고삐풀린 물가를 잡아라! 농축수산물 가격은 올해 1/4분기 물가 오름세를 주도했다.(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