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 유동성 위기 해결책 난망… 정부 압력에 따른 투신권 지원은 부실 키워
이름은 바뀌어도 위기는 그대로?
현대건설과 함께 이른바 ‘현대문제’의 핵심인 현대전자는 지난 3월 회사 이름을 하이닉스반도체로 바꿨다. 이름만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새 이름에 걸맞게 내부 구조조정도 활발하다. 반도체 이외 사업부문은 떼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대칭디지털가입자망(ADSL)과 단말기 사업부문은 이미 분리작업을 끝냈다. 뿐만 아니라 올해 1분기에 자산 매각과 영업활동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지난해 말 7조8천억원 수준이던 금융권 차입금을 올해 3월 말 현재 7조3천억원으로 5천억원가량 줄였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이런 분위기 쇄신 노력에도 아랑곳없다는 듯 하이닉스를 둘러싼 먹구름은 여전히 두텁다. 투자신탁회사를 중심으로 한 금융기관들이 신규자금 지원은 물론, 기존 차입금의 만기연장도 꺼리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인 신용보증기금까지도 지원에 난색을 보여 하이닉스의 유동성 위기 극복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금융기관은 차입금 만기연장도 꺼려
덩치 큰 기업들이 으레 그렇듯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는 해당 회사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빚 규모가 워낙 커 회사가 잘못될 경우 돈을 꿔준 금융기관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일까. 회사쪽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금융권 차입금을 포함해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11조6천억원을 웃돈다. 올해 1분기에 차입금을 5천억원 줄였다고 한 점을 감안해도 여전히 11조원을 넘는 수준이다. 만약 회사가 법정관리로 갈 경우 금융권이 입을 피해만 3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심지어 6조원에 이를 것이란 엄포성(?) 추정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이닉스반도체의 대주주이자 지급보증 등으로 얽혀 있는 현대상선, 현대중공업에도 연쇄적으로 불똥이 튈 것이며 여기에 엮여 있는 금융기관들이 덩달아 휘청하는 ‘그림’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이 때문에 하이닉스반도체의 운명은 늘 금융권 안팎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빚이 11조원이든, 110조원이든 갚을 능력만 된다면 괜찮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쪽은 지난 4월19일 발표한 1분기 경영실적 자료에서, 반도체시장의 침체에 따른 매출감소에도 불구하고 기술향상을 통해 원가절감 등에 힘입어 수익성이 안정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매출이 직전 분기 및 지난해 1분기보다 각각 14%, 13% 줄어든데다 4600억원에 이르는 경상손실이 발생한 대목에 이르면 수익성 안정이란 자평은 무색해진다.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총부채 규모가 11조570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에 비해 5830억원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2조원 넘는 대규모 적자로 자기자본을 많이 까먹는 바람에 부채비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하이닉스를 둘러싼 바깥 형편도 그리 녹록지 않다. 하이닉스 같은 회사의 업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 반도체경기가 영 시들시들하다. 미국 반도체산업협의회(SIA)는 지난 3월 전세계 반도체 매출이 전월보다 7% 줄어든 144억달러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시작된 세계 반도체경기 하강세가 5개월째 이어진 것. 국내외 관련업계에선 올해 가을까지 이런 내림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이닉스의 부채상환 일정은 꼬박꼬박 돌아오고 있다. 하이닉스는 모든 부채의 만기를 2003∼2004년까지 연장해주면,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1조8천억원의 외자를 조달해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는 계획을 공식화해놓고 있다. 하이닉스의 재무자문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SSB)는 해외주식예탁증서(DR)와 고수익채권을 발행, 1조8천억원의 외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채권단이 △전환사채(CB) 1조원을 인수하고 △기존 대출금의 만기를 최장 2004년까지 연장해달라고 지난 4월 말 요청했다. 그런데 CB 1조원 부분에서 일이 꼬였다. 채권단은 애초 전환사채의 70%를 신용보증기금에서 지급보증을 선다는 전제 아래 SSB의 요구를 일괄 수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신보가 보증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정부 산하기관인 신보가 하이닉스의 CB에 보증을 서는 것은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아 통상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정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하이닉스는 5월 말까지 현대그룹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20%)을 팔고 외자유치를 끝낼 계획이었으나 자금지원이 불투명해지면서 정상화 일정이 배배 꼬였다. 제2금융권 닥달하면 고객 피해 양산
채권단과 SSB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에서 차질이 빚어지자, 제2금융권을 닦달하는 방법을 들고 나왔다. 주요 채권금융기관들이 CB 인수를 나눠 맡되 투신권이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7600억원을 분담토록 압박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5월 초의 일이다. 채권단의 압력 뒤에는 금융당국이 버티고 서 있음은 물론이다. 지난 5월3일 투신업협회에서 개최된, 하이닉스 관련 투신 담당자들의 모임에 금감원 당국자가 참석해 ‘정부 뜻’을 전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물론 정부나 금감원쪽은 압력설을 부인하고 있다.
하이닉스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으니 정부당국이 나서 금융지원을 요청한 것 아니겠느냐고 간단히 넘겨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신권에 대한 지원 요청은 은행권과 달리 대단히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은행권의 지원은 고유계정(은행재산)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어서 고객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은행부실에 따른 공적자금 부담 증가라는 간접적인 피해의 개연성은 있지만.
반면 투신권의 지원은 은행과 차원이 다르다. 투신는 말 그대로 고객이 맡긴 돈을 대신 투자하고 관리하는 회사이다. 따라서 투신사가 하이닉스 지원에 나서려면 고객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하이닉스 지원에 선뜻 동의해줄 투신고객이 없을뿐더러 엄격한 동의절차를 밟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하이닉스의 회사채는 현재 ‘투기등급’이다. 만약 이런 회사채를 고객이 가입한 펀드에 편법으로 편입시키면 나중에 소송사태가 잇따를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정부의 닦달에 못 이겨 대우그룹 계열사 회사채를 편입했던 투신사들이 이미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형편에서 투신사들이 지원에 난색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투신권의 지원을 하이닉스의 외자유치와 연결시켜보면 더욱 황당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이닉스가 외자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DR은 당연히 외국 투자자들이 인수하게 될 것이다. 이 DR의 구체적인 조건은 나와 있지 않지만, 수익성은 높은 반면 리스크(위험)가 거의 없는 구조로 짜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고는 인수자를 찾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금융상품은 수익성이 높으면 그에 맞물려 위험도 높게 마련이다. 하이닉스 DR을 인수하는 외국투자자들의 리스크는 누구가엔가가 전가될 수밖에 없다. 그게 누구일까. 말할 것도 없이 국내 금융기관들이다. 투신권의 경우 고객이 이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쉽게 말해 외국인 투자에 국내 투신사 고객이 지급보증을 서는 꼴이다. 그게 한두푼도 아니다. 무려 8천억원에 가까운 거금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구도의 지원 방안이 정부 당국의 압력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이닉스 문제에서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현대건설 경영자문을 맡고 있는 미국계 컨설팅회사 아더D리틀(ADL)의 행적. ADL은 지난 98년 현대전자와 LG반도체 빅딜(대규모 사업맞교환) 당시 평가작업을 맡아 △첨단 공정기술의 사용여부 △최신생산 설비 사용 △사업예측과 이를 통한 실행능력 △인재확보 △제품의 다양성 등 모든 항목에서 현대전자쪽이 우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현대전자는 조단위 지원을 받지 않고는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없다며 채권단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당시 ADL의 평가에 따라 이뤄진 빅딜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 셈이며 현대전자의 ‘과잉·과오’ 투자를 부추긴 꼴이 됐다. 반드시 진상을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할 대목이다.
과도한 부채 줄여 신규자금 지원받아야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하이닉스의 경우 드러나 있는 부채도 많지만, 감춰진 부외부채가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며 “금융기관들이 지원을 주저하는 배경에는 이런 요인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부외부채가 없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하이닉스쪽에서 모든 문제를 투명하게 밝히는 데서 문제해결의 가닥을 새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이닉스의 가장 큰 문제는 부채가 11조원을 웃돌아 매출(8조9천억원)과 영업이익(1조5천억원)를 감안할 때 너무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이자비용만 1조1421억원에 이르러 신규설비 투자는 물론, 회사채 및 대출금 상환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투신권의 팔을 비틀어 부작용을 키우기보다 현대건설처럼 대주주지분 감자(자본금 감소) 및 출자전환을 통해 과도한 부채를 적정수준으로 줄이고 신규자금을 지원받는 방법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은 금융당국을 등에 업고 투신권에 압력을 넣고 있다. 사진은 채권단회의 모습.(강창광 기자)
덩치 큰 기업들이 으레 그렇듯 하이닉스반도체 문제는 해당 회사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빚 규모가 워낙 커 회사가 잘못될 경우 돈을 꿔준 금융기관들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우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일까. 회사쪽의 공식자료에 따르면, 금융권 차입금을 포함해 총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11조6천억원을 웃돈다. 올해 1분기에 차입금을 5천억원 줄였다고 한 점을 감안해도 여전히 11조원을 넘는 수준이다. 만약 회사가 법정관리로 갈 경우 금융권이 입을 피해만 3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심지어 6조원에 이를 것이란 엄포성(?) 추정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하이닉스반도체의 대주주이자 지급보증 등으로 얽혀 있는 현대상선, 현대중공업에도 연쇄적으로 불똥이 튈 것이며 여기에 엮여 있는 금융기관들이 덩달아 휘청하는 ‘그림’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이 때문에 하이닉스반도체의 운명은 늘 금융권 안팎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빚이 11조원이든, 110조원이든 갚을 능력만 된다면 괜찮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회사쪽은 지난 4월19일 발표한 1분기 경영실적 자료에서, 반도체시장의 침체에 따른 매출감소에도 불구하고 기술향상을 통해 원가절감 등에 힘입어 수익성이 안정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매출이 직전 분기 및 지난해 1분기보다 각각 14%, 13% 줄어든데다 4600억원에 이르는 경상손실이 발생한 대목에 이르면 수익성 안정이란 자평은 무색해진다.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총부채 규모가 11조570억원으로 지난해 4분기에 비해 5830억원 줄었다고 발표했지만, 지난해 2조원 넘는 대규모 적자로 자기자본을 많이 까먹는 바람에 부채비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하이닉스를 둘러싼 바깥 형편도 그리 녹록지 않다. 하이닉스 같은 회사의 업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세계 반도체경기가 영 시들시들하다. 미국 반도체산업협의회(SIA)는 지난 3월 전세계 반도체 매출이 전월보다 7% 줄어든 144억달러에 그쳤다고 밝혔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시작된 세계 반도체경기 하강세가 5개월째 이어진 것. 국내외 관련업계에선 올해 가을까지 이런 내림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이닉스의 부채상환 일정은 꼬박꼬박 돌아오고 있다. 하이닉스는 모든 부채의 만기를 2003∼2004년까지 연장해주면,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1조8천억원의 외자를 조달해 경영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는 계획을 공식화해놓고 있다. 하이닉스의 재무자문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SSB)는 해외주식예탁증서(DR)와 고수익채권을 발행, 1조8천억원의 외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채권단이 △전환사채(CB) 1조원을 인수하고 △기존 대출금의 만기를 최장 2004년까지 연장해달라고 지난 4월 말 요청했다. 그런데 CB 1조원 부분에서 일이 꼬였다. 채권단은 애초 전환사채의 70%를 신용보증기금에서 지급보증을 선다는 전제 아래 SSB의 요구를 일괄 수용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신보가 보증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정부 산하기관인 신보가 하이닉스의 CB에 보증을 서는 것은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아 통상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정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하이닉스는 5월 말까지 현대그룹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20%)을 팔고 외자유치를 끝낼 계획이었으나 자금지원이 불투명해지면서 정상화 일정이 배배 꼬였다. 제2금융권 닥달하면 고객 피해 양산

사진/ 얼어붙은 반도체경기가 하이닉스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올 가을까지 반도체경기 하락세가 이어질 전망이다.(강창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