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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디지털 금융 ‘여성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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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7-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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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장 발탁 등 핵심요직 진출 활발… 섬세한 능력 돋보여 더욱 두드러질 양상

(사진/투신업계 사상 세번째로 여성 지점장에 오른 한국투신 박미경 마포지점장)
한국투신 마포지점은 홀리데이인서울호텔(옛 가든호텔) 안에 있는 ‘우아한’ 영업점이다. 금융계에선 이례적으로 호텔 안에 자리잡고 있는 이 점포는 지난 4월12일 ‘여성’을 지점장으로 맞았다. 홍보실 과장에서 전격 발탁된 박미경 지점장. 1974년 한투가 생겨난 뒤 여성이 지점장을 맡은 것은 처음이다. 전체 투신업계에선 세 번째 여성지점장으로 기록된다.

그가 지점장으로 올 당시 마포지점 수탁고(수신)는 340억원 수준이었는데 지금(7월18일 현재)은 500억원을 훨씬 웃돌고 있다. 투신사에 대한 고객들의 불신이 높아져 업계 전체의 수탁고가 뒷걸음질친 것과 비교해볼 때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전면 배치… 업무 영역 넓어져


산업은행 잠실지점장을 맡고 있는 김세진씨도 산은 사상 첫 여성 점포장이다. 지난해 1월 지점장으로 승진한 그는 섬세하고 치밀한 여성 특유의 강점을 발휘, 영업점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지점은 지난 한해 동안 수신이 100% 이상 늘어나는 등 영업 각 분야가 눈에 띄게 좋아져 ‘최우수점포’로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산업은행의 특성상 개인고객을 끌어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강남권의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차별화된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데 성공한 것으로 자평합니다. 직원들도 잘 따라줬구요. 지난 4월에는 석촌역 근처 송파1동에 있던 점포를 잠실역 근처로 옮기고 시중은행 점포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꾸며놨습니다. 고액의 장기고객을 타깃(목표)으로 삼기 위해서였죠.”(김 지점장)

신보금 신한은행 목동지점장도 행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홍성균 상무는 “여성 지점장이라서가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전체 점포장들 중 최상위급”이라고 말했다. 신 지점장이 부임하던 98년 6월 1073억원이었던 수신고가 지금은 1415억원(6월12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월 사업부제 실시에 따라 목동지점이 개인고객 전문 점포로 탈바꿈함에 따라 법인 예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와중에 기록한 실적이어서 더욱 뜻깊다.

금융계에 ‘우먼 파워’가 거세다. 지난해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여성이 은행 지점장이 됐다는 건 이젠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투신업계에서도 여성 점포장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에겐 굳게 닫혀 있던 업무 분야도 점점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비상임이긴 하나 은행권에 여성 임원도 탄생했다. 이젠 여성 은행장이 탄생해야 화젯거리가 될 정도로 웬만한 직급에는 여성들이 진출해 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은행당 여성 점포장은 1∼2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0명을 웃도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흥은행은 올해 정기인사에서 주귀자·정경희씨를 각각 해운대지점장과 문흥동지점장으로 발령했다. 이에 따라 조흥은행 내 여성 점포장은 13명으로 늘었다. 한빛은행도 전체 734개 지점·출장소 가운데 15개 영업점에 여성 지점장을 배치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올림픽공원과 신길 우성아파트 지점 등 영업점 및 출장소에 여성 간부를 책임자로 발령했다. 외국계 은행으로 변신한 제일은행도 지점장 336명 가운데 4명을 여성으로 두고 있다. 제일은행의 경우 윌프레드 호리에 행장이 취임 초부터 인사 때 여직원을 우대한다는 방침을 밝혀 여성 책임자의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나·한미은행에도 각각 8명의 여성 점포장이 활동중이다.

은행에 스카우트된 한빛은행 장정자 론리뷰팀장)
여성 점포장 탄생에 이어 여직원이 다양한 업무 분야로 확산되고 있는 현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빛은행 론리뷰(여신심사)팀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 미국 멜론뱅크 심사역으로 일하고 있던 장씨는 지난해 10월 억대 연봉을 조건으로 한빛은행에 전격 스카우트됐다. 그는 여신분석 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여신분석기법 개발 및 독립적인 여신재분석 업무를 수행한다. 국제적인 관행에 맞는 선진은행의 여신심사 기법을 전수하는 일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외환은행 비상임이사 김상경(국제금융연수원장)씨는 국내 여성 은행인 중 최고위직이다. 집행이사는 아니지만 여성으로서 은행 임원에 오른 것은 그가 처음이다. 지난해 주총 때 영입된 김씨는 한국 최초의 여성 딜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젠 외환은행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이사회의 당당한 멤버로 막중한 임무를 수행중이다.

파워우먼의 대두는 투신권에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투신은 지난 4월 회사 설립 뒤 첫 여성 점포장(박미경 마포지점장)을 탄생시켰다. 이보다 훨씬 앞서 현대투신은 지난 98년 7월 송미옥씨를 분당구미지점장으로 발령, 투신업계 1호 여성 지점장으로 기록됐다.

대한투신에도 여성 지점장이 활동중이다. 지난해 10월 승진한 민미숙 압구정역지점장. 대투 홍보실의 남명우 차장은 “임 지점장이 영업에 탁월한 수완을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창구를 섬세하고 여성스럽게 꾸며놓아 다른 금융기관에서 견학도 온다”고 귀띔했다.

금융권의 여성 인력 진출을 과대 평가하기엔 아직 이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이 여전한 현실을 간과할 수도 없다.

현대투신 송미옥 구미동지점장외환은행 김상경 비상임이사산업은행 김세진 잠실지점장대한투신 민미숙 압구정역지점장

아직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

증권업계의 경우 여성 점포장이 아직 한명도 없다. 굿모닝증권에 여성 점포장이 있었으나 얼마 전 퇴직한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업의 특성 때문이란 설명이지만 승진 인사에서 여성이 여전히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은행·투신의 경우도 여성 점포장은 아직 희귀한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금융권 내 여성 인력의 진출은 최근 들어 두드러진 것은 분명하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금녀의 영역으로 알려진 분야도 여성에게 점점 열리고 있으며 이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취임한 대한투신 이덕훈 사장은 여성 인력을 우대하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혀 여성 인력의 약진을 예고하고 있다.

신한은행 홍성균 상무(인사담당 임원)는 “금융업 자체가 남성보다 섬세하고 치밀한 여성에게 더 적합한데다 디지털 금융시대를 맞아 여성 은행원의 활약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며 “여성 파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이제는 증권업계만 남았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여성 인력이 대거 진출하기까지는 다양한 첫 기록을 세운 선구자들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성 은행원은 1920년 1월17일 조흥은행(당시 한성은행)이 채용한 조수자씨로 전해진다. 조씨는 곧바로 도쿄지점에 파견되는 바람에 바깥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듬해 12월 상업은행이 채용한 김생려씨가 여러 신문에 첫 여행원으로 대서특필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여성 대리가 탄생한 것은 1976년으로 조흥은행 장도송씨가 주인공이었다. 당시엔 여행원은 책임자급(대리)으로 승진하는 길이 막혀 있던 시절이어서 여성 은행원사에 귀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장씨는 78년부터 94년까지 금융기관 여성책임자회 1대 회장으로 활약하며 은행권의 성차별적인 제도를 없애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장도송씨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지점장에 오른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장씨에 이어 여성책임자회 2대 회장을 맡은 이필영(상업은행 지점장 출신)씨도 여행원에 대한 각종 차별 관행 및 제도를 개선하는 데 공헌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지난해에는 은행에 여성 임원도 탄생했다. 외환은행 비상임이사로 영입된 김상경(국제연수원장)씨. 집행이사가 아니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여성 금융인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감독당국인 금융감독원의 고위직에도 여성이 진출했다. 금감원 출범(지난해 1월) 때부터 검사총괄실장을 맡고 있는 이성남(전 씨티은행 한국지사 수석재무담당)씨가 주인공이다.

투신업계 최초의 여성 지점장은 98년 7월에 탄생했다. 현대투신 분당구미지점의 송미옥 지점장. 송 지점장에 이어 대한투신, 한국투신도 잇따라 여직원을 점포장으로 발탁했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여자 임원이나 최고 경영자가 탄생해 여성 금융인의 역사를 새로 쓸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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