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증권 시장이다. 하물며 1년은 영겁의 세월일 터다. 지난 10월9일, 미 뉴욕 증시는 시간의 허망함을 새삼 일깨워줬다. 이날 다우존스 지수는 전날보다 678.91포인트(약 7%) 떨어진 8579.19로 장을 마쳤다. 〈AP통신〉은 “이날 하루에만 시가총액으로 약 8720억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졌다”고 전했다.
꼭 1년 전엔 샴페인 터뜨렸는데…
“지금 시장은 공황 상태다.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들 그저 빨리 돈을 빼내 이부자리 밑에 넣어두고 싶은 심정일 게다.”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수석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이스는 〈A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 시장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다우 지수가 9천 포인트 이하로 내려간 것은 이날이 5년 만에 처음이다. 이날을 포함해 세 자릿수 폭락세가 6일째 계속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꼭 1년 전인 2007년 10월9일, 월스트리트는 다우 지수가 사상 최고치인 1만4164포인트를 기록한 것을 축하해 샴페인을 터뜨렸다. <마켓워치>는 “불과 1년 만에 다우 지수는 약 5585포인트(39.4%) 폭락한 셈”이라고 전했다.
어지럼증을 수습하고 조금 더 따져보자. 지난 9월15일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날 뉴욕 증시는 505포인트 폭락했다. 이어 미 하원이 구제금융 법안을 부결시킨 9월29일 다우 지수는 777.68포인트 자유 낙하를 시도했다. 이어 10월9일 폭락장세는 684.81포인트가 빠졌던 2001년 9월17일 이후 사상 세 번째 큰 낙폭으로 기록됐다. 리먼 파산 이후 4주 동안에만 다우 지수는 2338포인트(약 21%)나 빠졌다. 지난 19차례 거래일 동안 미 주가가 세 자릿수 추락을 한 게 모두 11차례에 이른다. 현재 다우 지수는 9·11 동시 테러로 최악의 상황을 겪었던 때보다 고작 1300포인트가량 높다. 최근의 폭락세가 유지될 경우, 조만간 그 이하로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현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에 극도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개발도상국에선 대규모 기근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퍼져가는 사이 ‘기이한 침묵’을 지켜온 국제통화기금(IMF)도 10월13일 세계은행과의 연차 총회를 앞두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IMF가 내놓은 10월치 ‘국제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 4월 9450억달러로 추정했던 ‘미국발’ 자산손실 규모가 1조4천억달러로 상향 조정됐다.
10월치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도 침울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7월 4.1%로 추정됐던 세계 경제성장률은 3.9%로 낮춰졌고, 2009년 성장률 추정치도 3.9%에서 3%로 0.9%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이는 2002년 이후 최저치다. IMF는 또 미국 경제가 내년 하반기에나 주택 시장 침체가 바닥을 치면서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엔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유럽의 올 경제성장률 추정치도 지난 7월 1.7%에서 1.3%로 깎였고, 역시 2009년 하반기에나 점진적 회복기로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 경제의 앞날을 가장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바로 ‘시장’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0.5~0.25%포인트 인하한 10월8일(한국시각) 미국과 유럽의 증시는 ‘흔들림 없는 하락세’를 유지했다. 은행끼리도 대출을 꺼리고 있을 정도로 신용 시장은 경색돼 있다. 게다가 경기침체의 징후는 갈수록 뚜렷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진다고 막힌 돈줄이 뚫리리라는 확신이 없었던 게다. 뒤늦게 해법을 쏟아내는 각국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과 시장에 만연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자기 증식을 해가며 위기를 키우고 있다. ‘불신의 악순환’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니,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좀더 급진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지난 2006년부터 미 금융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경고해 ‘종말론자’로 불렸던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경제학)는 10월6일 미 외교관계위원회(CFR)의 웹진과 한 인터뷰에서 “7천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으로 미 금융시장이 겪고 있는 신용경색을 풀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세계 주요 국가 모두가 이자율을 조직적으로 낮추는 것도 해법의 일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파국’을 예견했던 그는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루비니 교수 “긴급 권한 발동하라” “이자율 인하로 유동성이 원할하게 공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일정한 기간 동안 아예 은행의 모든 예금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을 막는 유일한 방안일 게다. 둘째, 비은행권 금융기관에도 단기 유동성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제2금융권에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이런 조처로도 자금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연방은행(FRB)이 기업어음을 사들이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 기업에 현금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다. 이 모든 조처는 구제금융법에 포함된 ‘긴급 권한’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루비니 교수는 특히 “상하 양원에서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되던 날 미 증시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제금융법 자체가 결함투성이인데다,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시장이 ‘확신’을 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란 게다. 그는 “은행 간 대출은 물론 최상위 신용등급(AAA)을 갖춘 기업조차 대출금 상환 기한 연장을 못하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하더라도 금리가 대폭 올라 금융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 돈줄 막힌 기업의 숨통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위기 국면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용경색은 은행들이 대출을 중단하면서 찾아왔다. 은행의 대출 능력은 보유한 자산에 비례해 커진다.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선 결국 은행의 보유자산을 최대한 키우는 수밖에 없다. 7천억달러 구제금융으로 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것으론 은행의 자산을 늘일 수 없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시로타는 10월9일 진보적 인터넷 매체 <톰페인>에 기고한 글에서 “(미 재무부가 구제금융 법안을 내놓으며 제안했던) 부실채권 매입 방식은, 채권 부실화의 위험은 사회화하는 반면 이를 부추긴 금융기업에만 이득이 되는 ‘연고 공산주의’에 불과하다”며 “은행에 현금을 직접 수혈하는 지분투자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기관 직접 자본 투입에 쏠린 눈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10월8일 기자들과 만나 “금융기관에 직접 자본을 투입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10월9일치에서 “재무부가 구제금융 법안이 부여한 ‘긴급 권한’을 이용해 은행 지분투자를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은 재무부 관계자의 말을 따 “은행의 자산을 늘려 대출을 재개할 수 있도록 자본 투입을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른 시일 안에 결정이 나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잇따른 정책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일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아~, 언제까지…’ 10월9일 미 뉴욕 증시가 678.91포인트 급락하면서 장을 마감하자 한 중개인이 두 손으로 뒷머리를 쥐어싸고 있다. 연합/ AP PHOTO/RICHARD DREW
세계 경제의 앞날을 가장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바로 ‘시장’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0.5~0.25%포인트 인하한 10월8일(한국시각) 미국과 유럽의 증시는 ‘흔들림 없는 하락세’를 유지했다. 은행끼리도 대출을 꺼리고 있을 정도로 신용 시장은 경색돼 있다. 게다가 경기침체의 징후는 갈수록 뚜렷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낮아진다고 막힌 돈줄이 뚫리리라는 확신이 없었던 게다. 뒤늦게 해법을 쏟아내는 각국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과 시장에 만연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이 자기 증식을 해가며 위기를 키우고 있다. ‘불신의 악순환’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니,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좀더 급진적인 조처가 필요하다!” 지난 2006년부터 미 금융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를 경고해 ‘종말론자’로 불렸던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경제학)는 10월6일 미 외교관계위원회(CFR)의 웹진과 한 인터뷰에서 “7천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으로 미 금융시장이 겪고 있는 신용경색을 풀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세계 주요 국가 모두가 이자율을 조직적으로 낮추는 것도 해법의 일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파국’을 예견했던 그는 세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루비니 교수 “긴급 권한 발동하라” “이자율 인하로 유동성이 원할하게 공급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일정한 기간 동안 아예 은행의 모든 예금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사태)을 막는 유일한 방안일 게다. 둘째, 비은행권 금융기관에도 단기 유동성 제공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제2금융권에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이런 조처로도 자금경색이 풀리지 않으면 연방은행(FRB)이 기업어음을 사들이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 기업에 현금 유동성을 지원해주는 방안도 강구해볼 수 있다. 이 모든 조처는 구제금융법에 포함된 ‘긴급 권한’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는 일이다.” 루비니 교수는 특히 “상하 양원에서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되던 날 미 증시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제금융법 자체가 결함투성이인데다,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시장이 ‘확신’을 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란 게다. 그는 “은행 간 대출은 물론 최상위 신용등급(AAA)을 갖춘 기업조차 대출금 상환 기한 연장을 못하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하더라도 금리가 대폭 올라 금융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 돈줄 막힌 기업의 숨통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위기 국면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용경색은 은행들이 대출을 중단하면서 찾아왔다. 은행의 대출 능력은 보유한 자산에 비례해 커진다. 신용경색을 풀기 위해선 결국 은행의 보유자산을 최대한 키우는 수밖에 없다. 7천억달러 구제금융으로 은행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사들이는 것으론 은행의 자산을 늘일 수 없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시로타는 10월9일 진보적 인터넷 매체 <톰페인>에 기고한 글에서 “(미 재무부가 구제금융 법안을 내놓으며 제안했던) 부실채권 매입 방식은, 채권 부실화의 위험은 사회화하는 반면 이를 부추긴 금융기업에만 이득이 되는 ‘연고 공산주의’에 불과하다”며 “은행에 현금을 직접 수혈하는 지분투자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기관 직접 자본 투입에 쏠린 눈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10월8일 기자들과 만나 “금융기관에 직접 자본을 투입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10월9일치에서 “재무부가 구제금융 법안이 부여한 ‘긴급 권한’을 이용해 은행 지분투자를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같은 날 <월스트리트저널>은 재무부 관계자의 말을 따 “은행의 자산을 늘려 대출을 재개할 수 있도록 자본 투입을 어떻게 할지 방법을 찾고 있지만, 이른 시일 안에 결정이 나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잇따른 정책 실패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일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