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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부자들에게 봄날이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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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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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에 초점 맞춘 거액 자산가들의 재테크… 금융기관서 우대받고 세금 회피책 늘어

사진/ 거액 예금자들은 금융기관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금융기관이 재테크 상담을 위해 마련한 PB센터.
ㅎ은행 주요고객(VIP)인 최아무개(65)씨. 현금자산이 30억원을 훨씬 웃도는 최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로 은행 정기예금에만 돈을 넣어두는 신중한 투자자세를 지켜오다 올 들어선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씨는 지난 3월 만기에 이른 정기예금 25억원을 찾아 20억원은 양도성예금증서(CD)에, 5억원은 자기앞수표로 바꿔뒀다. 양도성예금증서는 정기예금에 비해 이자수익은 낮지만, 무기명으로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피할 수 있고 3개월짜리 단기 상품이어서 금융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금과 마찬가지로 이자수익이 전혀 없는 자기앞수표로 5억원이나 갖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임대업자인 최씨는 다달이 2천만∼3천만원에 이르는 월세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이 또한 은행 정기예금보다는 은행신탁을 비롯한 3개월짜리 단기 상품으로 굴리고 있다. 최씨의 재무상담을 맡고 있는 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선보일 리츠(부동산투자회사) 상품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저금리시대의 달라진 재테크 풍속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상태에 이를 정도로 저금리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 따라 돈많은 자산가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경기침체기를 맞은 서민들의 ‘고통’에 비하면 ‘배부른 걱정’(?)에 불과하겠지만….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고객유치 차원에서 거액 예금자들엔 금리를 약간씩 높게 쳐주고 있으나, 5∼6%의 정기예금 금리는 이들을 만족시키기에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이는 자금운용의 초단기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아예 이런 기회에 재산상속을 매듭지으려는 움직임도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예금부분보장제, 금융소득종합과세제도 시행에 대비한 준비는 이미 지난해 말 마무리지어놓아 지금이 상속을 위한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은행 VIP고객인 이혜숙(56·가명)씨. 거래 예금이 15억원에 이르는 이씨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는 일이었다. 그는 덩치 큰 예금을 이리 쪼개고 저리 굴리면서 그럭저럭 종합과세를 피해오다가 예금금리가 자꾸 떨어지자 아예 예금액을 대폭 줄이고 있다. 대신, 통장에서 꺼낸 돈으로 직장생활 5년째를 맞은 아들(31)에게 아파트를 한채 사줄 요량이다. 소형아파트값이 오른다는 전망이 많은 데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증여를 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거래 은행 전담 직원의 귀띔으로는 세금 한푼 안 물고도 증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은행 김성엽 차장은 “요즘 부자들의 투자패턴(행태)을 보면, 집 평수를 넓히거나 자녀 명의로 집을 구입하는 실수요 위주의 부동산 투자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이는 주로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물론 세금을 피해가는 증여가 그리 간단치는 않다. 이 때문에 갖가지 기발한 방법이 동원된다. 앞에 예를 든 이혜숙씨의 경우를 보자.

이씨가 아들에게 사주려고 하는 아파트는 시가 3억원에 이르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재산취득금지 등의 증여추정 배제기준’에 따르면 30살 이상 세대주가 주택을 구입하는 경우 자금출처 조사를 받지 않는 규모가 2억원(독립 세대주가 아닌 경우 1억원)까지로 돼 있다. 이씨가 사려는 아파트는 기준금액보다 1억원가량 높아 자금출처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고, 자칫 무거운 증여세를 물게 된다. 이에 따라 이씨는 집을 파는 쪽의 협조를 받아 매도인 명의로 1억원을 대출받도록 하고, 이를 떠안는 방식으로 집을 구입해 자금출처 조사를 피해나갔으며 증여문제도 말끔하게 마무리지었다. 이런 정도의 세테크(세금절약 재테크) 전략은 은행의 전담창구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증여·상속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자금운용의 단기화도 ‘부자 재테크’의 뚜렷한 특징으로 거론되는데, 이는 대략 두 가지 노림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리츠 등 높은 수익성이 기대되는 상품을 기다리는 대기성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비실명 장기채권의 발행이 허용될 날을 손꼽고 있다는 것이다. 운용자산 규모가 큰 이들에게는 당장의 이자수익보다는 자금출처를 숨기는 게 최대 과제이다. 만기에 이른 정기예금 목돈을 CD 등 단기상품으로 갖고 있는 경우 대부분 이와 관련이 깊을 것으로 풀이된다.

눈속임식 증여·상속에 자금운용 단기화

사진/ PB센터는 VIP고객의 세무법률무료상담도 실시하고 있다. 한고객이 PB센터에서 상담하고 있다.
증여, 자금출처 은닉 등 커다란 관심사를 빼고보면, 정작 부자들이야말로 금리에 대단히 민감하다. 서민들의 소액예금은 몇% 금리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으나 부자들의 거액예금은 약간의 금리 변동에도 붙는 ‘떡고물’에 커다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약간의 금리 움직임만 보이면 신속하게 다른 은행으로 옮아가거나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는 모습을 보인다.

부동산 임대업자인 이아무개(70)씨. 현금자산을 35억원가량 보유하고 있는 이씨는 지난해 말 종합과세 회피용으로 나온 연 8%짜리 신표지어음에 10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특정금전신탁(연 6.5%)으로 굴려 3개월마다 이자를 받고 있다. 지난해 신탁상품으로 운용하다 적지 않은 손해를 입기도 했지만, 정기예금 금리는 성에 차지 않아 다시 신탁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이다. 1억원을 3개월 동안 정기예금(5.6%)으로 운용할 경우 세후 116만8천원에 지나지 않지만, 특정금전신탁에 넣으면 135만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김우영(62·가명)씨도 정기예금만 하다가 신탁으로 돌아서고 있는 경우. 젊어서 회사를 운영하기도 한 김씨는 20억원의 현금자산을 주로 은행 정기예금으로 운용하다가 근래 들어 특정금전신탁으로 10억원을 운용하고 있다. 또 5억원은 채권에 투자했으며 3억원을 달러 외화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외화예금 가입은 국내 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하다는 전망을 반영하고 있다.

김씨는 자산운용 기간을 대부분 3개월로 맞춰놓고서 비실명 장기채권이 발행되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 공무원인 아들, 해외유학중인 둘째아들, 시집간 딸에게 금융자산을 안전하게 물려주기 위한 목적에서라고 한다.

부자들의 재테크가 모두 성공적인 것은 물론 아니다.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혼쭐이 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안정적인 투자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는 수도 많다. 그렇지만, 주요고객을 ‘모시는’ 금융기관 프라이빗 뱅킹(PB)센터의 전담직원으로부터 ‘따끈따끈한’ 정보를 늘 제공받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에 비해 대응이 빠르고 성공률이 높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빛은행 김인응 재테크팀장은 “거액 자산가들의 자산운용 패턴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앞뒤로 시기별로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전에는 금리 수준이 최우선 잣대였다.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통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맞고 은행이 문을 닫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는 수익성은 뒷전이고 안정성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은 수익성쪽으로도 관심이 크게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깊어만 가는데…

김인응 팀장은 “지금은 수익성, 안정성에 각각 절반 정도의 비중이 맞춰지고 있다면 앞으로는 수익성의 비중이 70% 정도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맞는 투자상품은 은행 신탁상품을 비롯한 간접투자 상품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이며, 오는 7월에 본격 시판될 리츠에 대한 높은 관심도 이런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은행, 증권사 등 각 금융기관들은 너도나도 PB센터를 개설, 거액예금을 각별하게 우대하고 있다. 소액예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품이 적게 들어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액예금자들이 우대받는 풍토는 오래된 관행이지만, 은행 또한 일반기업처럼 공공성보다 수익성에 치중하는 요즘 들어선 이런 풍토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부가 부를 낳고, 부의 불평등이 깊어지는 또다른 현장이다.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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