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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당신의 은행 수수료, 누가 먹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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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17 00:00 수정 : 2008-12-1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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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 기준 일관적이지 않고 담합까지 드러나… 은행들은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을 외국인 주주에게 배당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당신이 내는 은행 수수료 적절한가?’

청와대가 은행들에 송금 수수료를 내리라고 요구했다. 4월2일 은행연합회를 통해 ‘은행 송금 수수료 관련 사항 전달’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총선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적절치 못한 요구였다. 그래서 관치 논란이 불거졌다. 그 탓에 ‘은행 수수료가 합리적으로 책정됐는가’라는 또 다른 쟁점은 가려졌다. 그래서 여전히 ‘은행 수수료는 합리적으로 책정됐는가’라는 의문은 진행형이다.

수수료가 원가에도 못 미친다?


한 은행 고객이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있다. ATM 인출 수수료는 건당 500~1200원이다. 시중은행들은 은행 수수료가 원가에 못 미친다고 밝히고 있지만, 원가 책정이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용호 기자)

은행에서 금융거래를 할 때 보통 사람들이 많이 내는 수수료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은행 창구에서 이체나 송금을 할 때 수수료를 낸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CD)를 쓸 때에도 그렇다. 온라인뱅크나 폰뱅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한결같이 수수료가 원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수수료가 비싸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은행들은 ‘신줏단지’처럼 내보이는 게 있다. 2005년 9월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은행 수수료 원가산정 표준안’이 그것이다. 서울대 경영연구소 안태식 교수팀이 금감원의 용역을 받아 만들었다. 보고서의 결론은, ‘은행 수수료가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창구 수수료는 표준원가에 견줘 매우 낮은 수준이고, ATM이나 인터넷뱅킹 수수료는 원가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다는 게 뼈대였다. 예를 들어, 은행 창구에서 수표를 발행할 때 드는 원가는 3780원이었으나 수수료는 50~100원이었다. 공과금 수납 원가는 2148원이었으나 수수료는 210원이었다. ATM에서 돈을 뽑거나 이체를 할 때 원가는 1598원이었으나 수수료는 600~1800원이었다.

이 보고서는 적절한 원가를 반영하고 있을까? 보고서는 인건비와 물건비를 표준 조업도(단순인원수×1인당 근무처리시간)로 나눠 초당 단가를 뽑은 뒤, 초당 단가와 표준업무처리시간을 곱해 개별 업무단가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좀더 단순하게 풀면, ‘인건·물건비/거래건수’로 나타낼 수 있다. 분자인 인건·물건비가 높으면 원가가 높아지게 된다. 이 보고서를 비판하는 쪽은 “인건비에 스톡옵션과 퇴직금까지 포함했다”고 지적한다. 분모 비중을 높게 잡았다는 얘기다. 물론 창구 직원을 관리하기 위한 임원들이 필요하고 이 임원들이 받게 되는 스톡옵션을 원가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긴 하다.

이 자료가 나오자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국감에서 “보고서가 결과적으로 철저히 은행의 입장만을 대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은행들이 2000년 1조3122억원에서 2004년에는 3조1504억원, 2005년 6월에는 2000년 한 해 수준인 1조1928억원의 수수료 순익을 벌어들였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원가가 적자라면 이렇게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느냐는 얘기다.

어떨 때는 서비스 전략, 어떨 때는 원가

은행들이 수수료를 내리는 방식도 ‘과연 원가가 합리적으로 책정됐는가’라는 의문을 낳게 한다. 지난해 3월부터 국민은행을 시작으로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수수료를 내렸다.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이 서민들을 상대로 수수료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내보낸 뒤부터다. 당시 은행들은 수표를 발행할 때 받아왔던 수수료를 대부분 없앴다. 건당 원가가 3780원이다. 서민들을 위한 조처였을까? 오히려 수수료 인하가 ‘생색내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고객이 자주 쓰는 ATM 수수료나 인터넷·폰뱅킹 이체 수수료는 거의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꼼수’를 쓴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4월 초 국내 대부분의 은행들이 서로 짜고 지로 수수료를 올려 받은 사실을 적발했다. 은행 17곳이 걸렸다. 은행들이 금융결제원과 짜고 수수료를 인상해 300억~400억원에 달하는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시정 명령과 함께 4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은행 수수료가 원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담합으로 형성된 가격이라는 얘기다. 공정위는 은행들이 지로 수수료뿐 아니라 ATM 인출 수수료를 담합한 정황도 포착했지만 증거가 불충분해 혐의를 밝히지 못했다. 공정위의 한 실무 담당자는 “원가를 산정하지 않는 은행도 많고, 원가 계산도 주먹구구식인 은행이 많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인터넷뱅킹과 텔레뱅킹에서는 이체 금액에 차이를 두지 않고 500∼60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창구나 ATM에선 금액에 따라 이체 수수료가 달라진다. 이에 대해 은행들이 내놓은 설명은 ‘전략적 차원의 접근’이다. ㄱ은행 수수료 담당 팀장은 “10만원이나 100만원이나 이체 원가는 같다”며 “다만 원가가 2천원일 경우, 적은 금액에는 1천원을 받고 많은 금액에는 3천원을 받아 평균을 2천원에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담당 팀장은 “10만원을 이체하는 사람은 3천원이 비싸 보이고, 100만원을 이체하는 사람은 3천원을 상대적으로 싸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가가 아닌 서비스 전략 차원에서 수수료를 차등적으로 매긴다는 것이다.

안태식 교수는 “수수료는 은행의 여러 서비스 가격의 하나다. 그래서 은행이 전략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수수료 산정 근거로 원가만을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안 교수는 “은행들이 일종의 담합처럼 수수료를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오히려 수수료를 (인하하며) 치고 나가는 은행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천억 되는 외국인 주주 배당

은행들은 지난해 펀드와 방카슈랑스를 팔아 3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송금·ATM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4조7천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은행들이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으로 배를 불리는 건 외국인들이다. 국내 은행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1조원 이상의 외국인 주주 배당을 결정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순이익 2조7453억원 가운데 8241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민은행의 지분 81%를 갖고 있어 6702억원의 배당금을 받게 된다. 국민은행의 외국인 배당액은 0원(2003년) →1283억원(2004년) →1581억원(2005년) →1조152억원(2006년)으로 급증했다. 외환은행도 순이익 9471억원 가운데 4514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대주주인 론스타를 포함한 외국인 주주들은 지분 80.72%를 갖고 있어 3644억원을 배당으로 챙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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