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형 사채시장 형성해 고금리 챙겨… 전국에 간판 달고 투자액 갈수록 늘려
서울 서초동 강남역 네거리에 있는 대각빌딩. 강남지역에 있는 여느 건물처럼 말끔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건물 3층에는 (주)에이앤오(A&O)인터내셔날이란 회사가 자리잡고 있다.
회사 이름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금방 짐작하기 어려운데, 실상 사채업(私債業)을 하는 회사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사채업자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외부로 활짝 개방돼 있는 사무실은 은행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기관들의 주요고객(VIP)전용 창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쾌적하고 아늑한 모습이다. 명동 골목의 음습한 곳에서 몰래몰래 영업을 하는 사채업자의 전형과는 많이 다르다.
명동 골목의 음습한 사채업 풍경 바꿔
사무실 분위기만 다른 게 아니다. 영업 규모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서초동 본점뿐 아니라 송파·신설·은평지점을 두고 있다. 또 경기, 강원, 충청, 호남, 영남, 제주 등 전국 요소요소에도 점포를 갖춰 영업점 수가 약 30개에 이른다.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책상 하나, 직원 1명이면 족한 전통적인 사채업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셈이다. 이처럼 기존의 사채업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에이앤오는 일본계 자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계 자금에 바탕을 두고 양성화된 사채업(대금업)을 하고 있는 업체는 이 밖에도 여럿이다. 프로그레스, 캐쉬웰자산관리, 센츄리서울, 청남파이낸스 등이 드러난 곳의 대표적인 예이다. 전국 곳곳에 촘촘한 점포를 두고 비교적 큰 규모로 공개적인 영업활동에 나서고 있는 곳은 대개 일본계 대금(貸金)업체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담보대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틈새를 파고든 일본계 자금이 어느새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일본계 자금이 국내 사채시장으로 진출한 시기는 대략 98∼99년. ‘외환위기’의 파장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당시 원화·주식값은 날로 폭락한 반면, 시중 금리는 연일 폭등세를 기록함에 따라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일반 서민이나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까지 돈을 꾸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상황이었다. 사실상 ‘제로(0)금리’인 일본의 자금을 국내로 들여다가 대금업에 나선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 법하다. 당시, 일본 자금이 국내에 들어와 대금업을 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요즘도 두 나라간 금리 차이가 상당한데 일본의 싼 자금을 국내로 싸들고 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일본계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는 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큰 걸림돌이 없다. 외환위기로 홍역을 치른 경험 때문에 외자는 적극적으로 유치해야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감시가 허술했고, 따라서 국내 유입도 비교적 수월했다. 일본계 자금을 비롯한 외자가 국내로 들어올 때는 ‘외자도입촉진법’에 따라 외국환은행 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신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때 산업자원부가 고시한 ‘외국인투자제외 업종’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는 네거티브(명시한 것말고는 할 수 있는) 방식인데, 대금업(금융업)에 대한 명시적인 제한규정은 없다. 따라서 투자신고를 거쳐 곧바로 대금업에 나설 수도 있다. 에이앤오인터내셔날을 비롯한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대부분 한국 진출 당시엔 무역업으로 투자신고한 뒤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할 때 금융업(대금업)으로 갈아타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무역업으로 투자신고 한 뒤 대금업 진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일본계 사채업체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인 적이 있다. 일본계 대금업체를 비롯한 사채업자들이 초고금리대출 횡포를 일삼고 일부는 대출금 회수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민원이 여기저기서 제기되던 때였다. 에이앤오, 프로그레스 등 사채시장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자금의 실체가 공식 확인된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물론 이들이 자금회수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른다는 증거는 포착되지 않았으며, 다만 뿌리가 일본계 자금이며 고금리를 적용하는 데는 예외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당시 금감원의 조사작업이 대단히 피상적이고 원시적인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금감원의 잘못이라기보다 대금업을 비롯한 유사금융업이 감독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지금의 허술한 금융감독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금감원이 기초자료로 삼은 것은 지난해 8월 산자부 무역투자실에서 발간한 <2000년 6월 말 현재 외국인투자기업 현황>이었다. 금감원은 두툼한 이 책자에서 국내 금융업에 투자한 곳을 추리고 몇몇 일간지에 연일 광고를 게재하고 있는 사채업체들을 크로스체크(교차 점검)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 5개에 이르는 일본계 대금업체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을 뿐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일본계 대금업체들이 사채시장에서 활동중일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대략 20∼30곳에 이르는 일본계 대금업체들이 약 1조원 정도의 자금을 굴리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이는 합법적인 유입·등록절차를 거친 경우이다. 합법적인 통로를 거치지 않고 국내에서 사채업에 나서고 있는 일본계 자금도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추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몇몇 일간지와 생활정보지에, 피라미 사채업자의 쪼가리 광고와 달리 가로로 기다란 광고문을 내걸고 있는 곳은 대부분 일본계 자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사채시장에서 고리대출 횡포를 일삼으며 각종 물의를 빚는 곳은 대부분 지하에 숨어서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경우일 것으로 판단된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국내에서 대금업에 나서고 있는 업체들은 제도 금융기관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메워주는 순기능을 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업체도 현재의 저금리 수준에서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는 문제는 있다.
고리대출 횡포 편승해 짭짤한 장사
몇몇 사례를 들어 사채시장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자금의 영업실태를 자세히 살펴보자.
서울·경기 지역을 비롯 전국에 18개 안팎의 영업점을 갖추고 있는 프로그레스. 서울 역삼동에 본점을 두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 99년 10월 일본계 자금 1300만달러(170여억원)로 설립됐으며 지난 3월 말 현재 대출잔고가 무려 735억원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말 597억원에 비해 석달새 23.1%나 늘어난 수준이다. 올해 말에는 이 규모가 9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등 영업 실적이 성큼성큼 증가하고 있다. 이자율은 월 3.6∼8.1%이다. 학자금대출(3.6%), 출산대출(4.5%), 결혼자금 대출(5.4%) 등 ‘목적대출’은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으며 ‘자유대출’은 융자기간을 길게하는 대신 월 8.1%의 높은 금리를 물리고 있다.
프로그레스는 지난해 14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법인세 10억원을 납부하고도 2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투자금액과 직원 수(160명)를 감안할 때 비교적 짭짤한 장사를 한 셈이다.
에이앤오인터내셔날은 프로그레스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지난 3월 말 현재 대출금 규모가 1017억원 수준이며 올해 말에는 1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이앤오는 지난 한해 동안 470억원에 이르는 이자수입을 거둬 세금을 무려 81억원이나 냈으며 13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직원(230명) 1인당 6천만원을 웃도는 순이익을 거둔 셈이다. 에이앤오 또한 적용금리는 다른 대금업체들과 비슷해 월 2.95∼7.20%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일본계 대금업체 사장은 “대출금리가 너무 높다는 비판은 이해한다”면서도 “리스크(위험)가 높기 때문에 금리도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제도권 금융기관들과는 달리 담보나 보증인 없이 순전히 신용으로 대출을 해주기 때문에 떼일 위험이 높은데 제도 금융권의 공금리와 비교해 높다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채를 이용하는 이들은 급전이 필요한 상태에서 제도 금융권의 벽을 넘지 못해 찾아온 경우”라며 “며칠 동안 돈을 빌려 급한 데 메우고 빨리 갚으면 실제 부담하는 이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도 했다.
사채의 속성을 감안할 때 이런 말이 어느 면에선 일리가 있다. 신용으로, 신속하게 돈을 내주는 사채 나름의 잇점도 있다. 특히 일본계 자금은 대금업의 본고장 일본에서 들여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용평가를 빠르게 진행, 대출신청 1시간 만에 대출여부를 결정해 대출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 급전을 꿔쓸 수밖에 없는 이들로선 요긴하게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통로로 여겨진다. 일본계 대금업체들의 영업규모가 급신장하고 있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일본계 자금이 사채시장에서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돈을 긁어모은다고 볼 수도 없다. 일본의 금리가 제로 수준이라고 하나, 실제 조달금리는 10% 안팎에 이르기 때문에 국내에서 받는 이자가 고스란히 수익으로 잡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또 국경을 넘나들며 투자하는 데 따른 비용이나 리스크, 한국 자체의 투자위험성도 감안해야할 것이다.
빚독촉 위한 야쿠자 동원설 나돌아
그렇지만, 이들 업체가 현재 적용하고 있는 금리가 너무 높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아무리 사금융기관이라고 하지만,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서 연 100%에 가까운 금리는 정도를 넘어선 고리 대출로밖에 볼 수 없다. 한 대금업체 사장조차 “사실, 외환위기 직후 금리 폭등기에 적용했던 금리보다 지금의 대출금리가 더 높다”고 실토하고 있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이자제한법을 설정, 지나치게 높은 고리대출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불러왔다.
대출금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등 각종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민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에이앤오나 프로그레스 등 정식 등록절차를 거친 업체들보다 지하에 숨어든 자금에서 두드러진 양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음성적인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채권추심(빚독촉)을 위해 야쿠자까지 동원한다는 소문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제도권에 편입된 대금업체의 경우도 대손율(꿔준 돈을 떼이는 비율)이 5∼7%에 이를 정도로 비교적 낮은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고리대출이나 무리한 회수 방법 등은 사채시장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대규모 자금을 발판삼아 전국을 상대로 영업을 펴는 일본계 자금에서 특히 두드러진 양상이란 분석도 있다. 어느덧 국내 사채시장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제구실을 못하는 국내 제도권 금융회사들에 대한 씁쓸함과 함께 고리대출 철폐 등 여러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일본계 자금은 기존의 국내 사채시장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서울 에이앤오인터내셔날은 강남지역 요지의 빌딩에 자리잡고 있다.(박승화/차승미 기자)
사무실 분위기만 다른 게 아니다. 영업 규모에서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서초동 본점뿐 아니라 송파·신설·은평지점을 두고 있다. 또 경기, 강원, 충청, 호남, 영남, 제주 등 전국 요소요소에도 점포를 갖춰 영업점 수가 약 30개에 이른다.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책상 하나, 직원 1명이면 족한 전통적인 사채업과는 달라도 한참 다른 셈이다. 이처럼 기존의 사채업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에이앤오는 일본계 자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계 자금에 바탕을 두고 양성화된 사채업(대금업)을 하고 있는 업체는 이 밖에도 여럿이다. 프로그레스, 캐쉬웰자산관리, 센츄리서울, 청남파이낸스 등이 드러난 곳의 대표적인 예이다. 전국 곳곳에 촘촘한 점포를 두고 비교적 큰 규모로 공개적인 영업활동에 나서고 있는 곳은 대개 일본계 대금(貸金)업체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담보대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틈새를 파고든 일본계 자금이 어느새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일본계 자금이 국내 사채시장으로 진출한 시기는 대략 98∼99년. ‘외환위기’의 파장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던 때였다. 당시 원화·주식값은 날로 폭락한 반면, 시중 금리는 연일 폭등세를 기록함에 따라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었다. 일반 서민이나 중소기업뿐 아니라 대기업까지 돈을 꾸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상황이었다. 사실상 ‘제로(0)금리’인 일본의 자금을 국내로 들여다가 대금업에 나선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을 법하다. 당시, 일본 자금이 국내에 들어와 대금업을 하는 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요즘도 두 나라간 금리 차이가 상당한데 일본의 싼 자금을 국내로 싸들고 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일본계 자금이 국내로 들어오는 데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큰 걸림돌이 없다. 외환위기로 홍역을 치른 경험 때문에 외자는 적극적으로 유치해야할 대상이었기 때문에 정부의 감시가 허술했고, 따라서 국내 유입도 비교적 수월했다. 일본계 자금을 비롯한 외자가 국내로 들어올 때는 ‘외자도입촉진법’에 따라 외국환은행 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신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때 산업자원부가 고시한 ‘외국인투자제외 업종’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는 네거티브(명시한 것말고는 할 수 있는) 방식인데, 대금업(금융업)에 대한 명시적인 제한규정은 없다. 따라서 투자신고를 거쳐 곧바로 대금업에 나설 수도 있다. 에이앤오인터내셔날을 비롯한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대부분 한국 진출 당시엔 무역업으로 투자신고한 뒤 세무서에 사업자등록을 할 때 금융업(대금업)으로 갈아타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무역업으로 투자신고 한 뒤 대금업 진출

사진/일본계 자금을 운용하는 대금업체는 제도권 금융기관처럼 쾌적한 환경이다. 이들은 기존의 주먹구구식 사업방식에서 벗어나 인터넷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한다.

사진/전국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일본계 자금의 고리대출·무리한 회수 등에 따른 피해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금감원 사금융피해신고센터 모습.(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