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시장·카드 연체 수수료 등 고금리 여전… 이자제한법 부활 둘러싼 논란 가열
6%와 360%의 공존.
수신금리의 대표격인 1년만기 은행정기예금 금리가 연 6%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초저금리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반대편에는, 하루 1%에 이를 정도의 살인적인 고금리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고금리 횡포는 사채시장뿐 아니라 카드회사를 비롯한 제도 금융권에서도 저질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 문턱에서 밀려난 서민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자제한법을 부활시켜서라도 터무니없는 고리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저금리 시대에 300%대 이자 챙겨
경기도 하남시에 살고 있는 백아무개씨.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긴 지난해 여름, 부인을 보증인으로 세워 한 사채업자로부터 300만원(선이자로 36만원을 냈기 때문에 실제론 264만원)을 얻어 썼다. 한달 이자로 꼬박꼬박 36만원(월 12%, 연 144%)을 내오다 최근 들어 사정이 어려워져 2주일가량 연체를 하고 말았다. 사채업자는 즉각 연체이자로 44만5천원을 더 요구했고, 결국 지난 2월에는 이자만 80만5천원(연체이자율 월 26.8%, 연 322%)을 지불했다. 부산시 범일동에 조그마한 가게를 갖고 있는 오아무개씨(여·30대)도 사채이자 때문에 허리가 휘고 있다. 지난해 말 알고 지내던 사채업자한테서 선이자 100만원을 떼고 3개월 뒤 갚는다는 조건으로 1천만원(실제론 900만원)을 월리 10%로 빌렸다. 현재 원금 700만원을 갚고 300만원이 남은 상태인데, 그동안 이자로만 600만원을 지불했다. 나머지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면 직장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을 차압하겠다는 엄포에 입맛을 잃고 있다. 고금리 횡포 및 이에 따른 이용자들의 고통은 제도 금융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의 수수료율은 연 24%를 넘고 있으며 자칫 연체라도 하면 무려 30%에 육박하는 이자를 물어야 한다. 지난 한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공급량이 무려 134조원으로 전체 신용카드 사용량의 60%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고율의 수수료에 따른 고통은 대단히 광범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채를 얻어 썼다가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몇몇 극단적인 일로 치부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 실태조사 결과 전국에 1400여 대금업자(사설 여신금융기관)가 간판을 내걸고 연 70∼80%에 이르는 고금리로 영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3천개를 웃돌 것이란 추정이 나올 정도로 성업중이다.
이런 실태가 좀처럼 수그러들 낌새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이미 폐지된 이자제한법을 되살려내 정도가 지나친 고리대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이자제한법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온 데 이어 지난 3월22일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주례 당무보고 자리에서 “저소득층과 경제적 약자를 사채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자를 제한하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렇지만 민주당과 재정경제부 안에서조차 찬반양론이 일어 이자제한법 부활은 흐지부지되는 분위기였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 등 여야 의원 47명이 3월27일 이자제한법안을 공동 발의, 국회에 제출해 이자제한법 논란에 불을 지폈다. 또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등으로 짜여진 ‘이자제한법 공동입법 추진단’도 이날 이자제한법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냈다. 이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은 자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이율의 상한을 연 40%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채권자가 돈을 꿔줄 때 받는 수수료와 사례금, 공제금 등은 이자로 간주토록 했으며 선이자를 미리 공제했을 경우 채무자가 실제 받은 금액을 원금으로 보고 이자를 계산하도록 했다. ‘이자제한법 공동입법 추진단’이 제출한 이자제한법 입법청원서는 대출이자 상한선을 연리 25%로 정하고 채무자가 그 이상의 이자를 지불했을 경우 되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법 취지로 보아 반대할 명분이 별로 없을 듯한데, 민주당과 재경부 안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많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민주노동당 등에서 주장하듯이 ‘금융자산가당’이어서일까.
이자제한법 부활을 반대하는 쪽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효과가 의심스러우며 오히려 부작용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든다. 고금리를 법으로 금지할 경우 자금순환에 왜곡이 생겨 신용불량자나 담보능력이 없는 이들은 아예 돈을 빌릴 수조차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전셋값 제한조처 등 예전에 시행된 바 있는 가격통제 장치도 좋은 취지와 달리 엉뚱한 역효과를 냈다는 설명도 덧붙는다.
학계쪽의 반대 목소리도 있다. 성균관대 김경수 교수는 “이자 상한선을 둘 경우 사채업자들은 이자 외 다른 비용(수수료 등)을 올리는 등 다양한 변칙 수법을 동원할 것이기 때문에 고객의 부담은 결국 마찬가지”라며 “오히려 신용공급을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마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자본금 요건 완화를 통해 신용카드를 비롯한 제도 금융권의 독과점 구조를 깨뜨려 서민 금융을 활성화하는 방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폐지된 이자제한법을 부활시키는 것은 구조적인 접근법이 아니며 문제의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법부활 찬성쪽인 백태승 연세대 교수는 “이자제한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주지는 못하지만, 고리대에 따른 고통을 상당부분 완화하는 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자제한을 둘 경우 자금시장에 왜곡이 생길 것이라고 하는데, 무조건 이자를 못 받게 하자는 것도 아니고 상한을 두더라도 공금리의 서너배를 웃도는 이자가 보장되기 때문에 사채시장이 죽거나 자금흐름이 막힌다는 주장은 기우”라고 설명했다.
상한선 실효성 의심도… 고리대 방치 곤란
이자제한법을 찬성하는 쪽에선 98년 초 이뤄진 이자제한법 폐지 조처가 실효성 여부를 따진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고금리 정책이 필요해진 시점에서, IMF쪽의 강권에 따라 실효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없이 황급히 폐지된 사정을 감안할 때 ‘빛바랜 낡은 장치’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자제한법안을 마련한 데 이어 시민단체들도 나서고 있지만, 민주당과 재경부쪽에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어서 법이 당장 현실화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또 법이 시행되고 난 뒤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실효성 여부를 단정지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다만, 현재 사채시장을 중심으로 한 고리대 횡포가 자금시장의 수급논리에만 맡겨놓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사정이 다급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공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임에도 사채금리는 사상 최고점으로 치솟아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법부활 반대쪽에서 제기하는 대안(제도 금융시장 활성화 조처 등)과 이자제한법 부활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면 법 부활을 통해 고리대의 상한을 긋는 방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당신도 고금리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고리채 횡포 근절 대책 마련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김진수 기자)
수신금리의 대표격인 1년만기 은행정기예금 금리가 연 6%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초저금리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반대편에는, 하루 1%에 이를 정도의 살인적인 고금리의 그늘이 드리우고 있다. 고금리 횡포는 사채시장뿐 아니라 카드회사를 비롯한 제도 금융권에서도 저질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 문턱에서 밀려난 서민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자제한법을 부활시켜서라도 터무니없는 고리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저금리 시대에 300%대 이자 챙겨
경기도 하남시에 살고 있는 백아무개씨.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긴 지난해 여름, 부인을 보증인으로 세워 한 사채업자로부터 300만원(선이자로 36만원을 냈기 때문에 실제론 264만원)을 얻어 썼다. 한달 이자로 꼬박꼬박 36만원(월 12%, 연 144%)을 내오다 최근 들어 사정이 어려워져 2주일가량 연체를 하고 말았다. 사채업자는 즉각 연체이자로 44만5천원을 더 요구했고, 결국 지난 2월에는 이자만 80만5천원(연체이자율 월 26.8%, 연 322%)을 지불했다. 부산시 범일동에 조그마한 가게를 갖고 있는 오아무개씨(여·30대)도 사채이자 때문에 허리가 휘고 있다. 지난해 말 알고 지내던 사채업자한테서 선이자 100만원을 떼고 3개월 뒤 갚는다는 조건으로 1천만원(실제론 900만원)을 월리 10%로 빌렸다. 현재 원금 700만원을 갚고 300만원이 남은 상태인데, 그동안 이자로만 600만원을 지불했다. 나머지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면 직장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을 차압하겠다는 엄포에 입맛을 잃고 있다. 고금리 횡포 및 이에 따른 이용자들의 고통은 제도 금융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의 수수료율은 연 24%를 넘고 있으며 자칫 연체라도 하면 무려 30%에 육박하는 이자를 물어야 한다. 지난 한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공급량이 무려 134조원으로 전체 신용카드 사용량의 60%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고율의 수수료에 따른 고통은 대단히 광범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진/이자제한법 폐지로 사채시장의 금리가 치솟았다. 서민 생활 안정을 위해 이자제한법 부활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김경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