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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현대건설, 재시공 나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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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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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전환 통한 경영 정상화 여부 불투명… 오락가락 해법에 신뢰 잃어 산 넘어 산

사진/현대건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출자전환 방안이 결정돼 퇴진하게 된 정몽헌 회장.(김종수 기자)
마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타계를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장례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현대호’가 또다시 격랑에 휘말렸다. 그동안 현대 스스로는 물론, 정부나 채권단조차 쉬쉬 숨겨온 현대건설의 ‘상처투성이 속내’가 공식적인 회계자료를 통해 햇빛 아래 드러남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정부와 현대건설 채권단은 대출금 출자전환이란 카드로 돌파를 시도하고 나섰지만, 채권 금융기관들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을 비롯해 넘어야 할 걸림돌이 첩첩이 쌓여 있어 앞날을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존 경영진도 퇴진쪽으로 가닥 잡혀


물론 현대건설 문제의 생생한 실태를 물 위로 드러냈다는 점만 해도 한 단계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기 주주총회라는 피할 수 없는 ‘골목’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드러난 것이긴 했지만…. 또 출자전환 방안이 대두되면서 그동안 줄기차게 시비대상에 올랐던 정몽헌 회장과 기존 경영진의 거취문제도 자연스럽게 퇴진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그렇지만 ‘출자전환=문제해결’은 아니다. 현대건설에 앞서 출자전환을 거친 다른 많은 기업들의 사례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다 현대건설의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 시장성 부채가 전체 금융권 차입금 4조4천억원의 40%가 넘는다는 것도 정부와 채권단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건설 부실의 실상이 드러난 데 이어 출자전환 방침이 선 것은 ‘문제의 매듭’이 아니라 해결로 가는 ‘불안한 출발’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현대건설 처리 과정에서 잦은 말바꾸기로 땅에 떨어진 정부정책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지도 의문이다. 또 대우자동차, 동아건설, 고려산업개발 등 여타 부실기업들에 대한 처리에서와 다른 잣대가 적용된 데 따른 형평성 시비도 정부로서는 큰 짐이다.

현대건설 처리 방향이 ‘대출금 출자전환 및 신규출자’로 가닥잡히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부와 채권단은 최종 선택된 카드 외에 ‘부도처리 뒤 청산’, ‘법정관리’, ‘감자 뒤 출자전환’도 검토 대상에 올렸다. 그렇지만 출자전환 및 신규출자 외에는 현실적으로 단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구조조정의 원칙을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깨끗하게 부도처리한 뒤 청산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채권금융기관이 입을 손실만 해도 지급보증까지 포함해 모두 5조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등 부작용이 너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수많은 협력업체 및 아파트 분양자 등에 끼칠 손실까지 더하면 손실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모두 13조원을 웃돌 것으로 채권단은 추산했다. 금전적 손실말고도 3600개를 웃도는 하청 및 협력업체가 동반부실해지면 이로 인해 4만2천여명에 이르는 실업자가 발생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법정관리에 집어넣는 것 역시 부도처리 뒤 청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효과가 만만치 않다. 건설업의 특성상 법정관리로 갈 경우 신뢰도 추락으로 신규 수주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미 건설중인 경우도 중도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회생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감자 뒤 1조4천억원만 출자전환하는 방안 역시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 추가로 1조5천억원을 더 출자하는 방안이 채권단 회의에서 확정됐다.

출자전환 기업 많아도 성공은 드물어

사진/정부와 채권단은 현대건설의 미래를 분홍빛으로 그리고 있다. 채권단은 전체회의를 통해 출자전환을 확정했다.(박승화 기자)
이런 결정 뒤에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건설 앞날을 분홍빛으로 그리고 있다. 또 지난 3월28일 현대건설 부실이 공개된 다음 바로 다음날 채권단 전체회의를 구체적인 출자전환방안을 확정하는 등 신속하게 채권단의 합의를 이끌어낸 점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채권단은 모두 2조9천억원에 이르는 자본금 증자가 이뤄지면 현대건설은 △자산 7조2천억원 △자기자본 2조원 △부채 5조2천억원으로 부채비율 260%의 건실한 회사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추세로 가면 올해 말 부채비율이 259%, 내년 말에는 238%, 2003년에는 198%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너무 지나친 낙관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출자전환이 성공하려면 출자전환 대상 부채가 전체 부채 규모의 70∼80%는 돼야 한다”며 “현대건설의 재무구조 특성으로 보아 이와 다소 거리가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관계자는 “다수의 건설업체들이 워크아웃 테두리로 들어와 출자전환 조처를 받은 경우가 많았지만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경우는 벽산건설 한 군데뿐이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비교적 성공적’이라는 것은 해당기업이 금융비용을 부담하고도 수지를 맞출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동아건설을 비롯한 나머지 건설업체들은 출자전환 혜택을 받고도 적자에 허덕이면서 기업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기존의 워크아웃 틀에서 이뤄진 출자전환의 경우 ‘무담보대출 채권’만 대상이었다. 담보채권의 경우 회사가 청산되더라도 받을 수 있는 금액이어서 출자전환의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의 경우 무담보대출 채권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현재 제시돼 있는 출자전환 규모 2조9천억원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출자전환 규모의 많고 적음을 떠나 통상적으로 볼 때 출자전환과는 관련없어보이는 채권 금융기관까지 대상으로 올라 있다는 점에서다. 가령 고객이 낸 돈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는 것을 단순히 대행해주는 투신운용사가 현대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결정되지 않았다. 투신사 부담으로 출자전환에 따른 손실을 안을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그 무수한 고객에게 손실을 전가하거나 일일이 출자전환 동의여부를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특혜 시비 속에 출자전환 비율 진통 클 듯

덩치 큰 은행들에 가려져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3월29일 열린 채권단협의회에는 3개 투신(운용)사 대표들도 참석했다. 이는 현대건설 회사채 보유자들도 출자전환 대열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투신운용사 고유계정으로 보유하고 있는 회사채라면 그다지 문제될 게 없지만, 신탁계정에 편입돼 있는 회사채는 고객재산이기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높다. 대우채(투신 수익증권에 포함된 무담보 대우계열 회사채) 환매를 둘러싼 논란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바탕 소동을 겪을 수도 있다.

이는 담보채권을 출자전환 대상에 넣을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과 맞물려 출자전환 비율을 최종 결정하기까지 겪어내야 할 진통이 적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하다. 자칫 출자전환 규모가 채권단의 애초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하나 영화회계법인에서 진행중인 현대건설에 대한 정밀실사 작업도 변수로 남아 있다. 4월 말 또는 5월 초쯤 드러날 것으로 보이는 영화회계법인의 실사결과 해외부문의 부실 규모에 따라 현대건설은 다시 회오리에 휩싸일 수 있다. 이는 실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서둘러 출자전환 방침이 정해졌다는 사실과 함께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현대건설 출자전환은 특혜 조처라는 시비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벌써부터 현대건설 소액주주나 비금융권 채권자들은 “그동안 정부 관계자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쪽에서 자구노력만 제대로 하면 괜찮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법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전반적인 기업구조조정 정책의 원칙과 형평성이 무너진 문제도 정부가 하루빨리 수습해야 할 과제이다.

연세대 이두원 교수(경제학)는 “현대건설 문제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불거진 것인데, 너무 오래 끌었다”며 “시일이 지나면서 문제가 커졌으며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특히 정부는 현대건설 처리와 관련해 그동안 수차례 추가 부실이 있으면 곧바로 법정관리로 간다고 발표해놓고 이를 어김으로써 신뢰를 저버렸다. 앞으로 정부 정책을 추진할 때 많은 곤란을 겪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우선 형평성(특혜) 시비를 들어보자.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을 비롯한 정부당국자들이 현대건설을 살려야 한다는 근거로 든 것은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기가 돌아온 부채상환이나 부채의 이자지급 문제만 풀어주면 그대로 굴러간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이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긴 하다. 지난해 현대건설은 6조38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24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과도한 금융비용만 덜어주면 건실한 회사로 다시 설 수 있다는 정부나 채권단의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릴 법도 하다. 문제는 이미 부도처리된 동아건설이나 고려산업개발 역시 현대건설 못지않게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아건설은 지난해 9월까지만 30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며 고려산업개발 역시 지난해 동안 28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특히 고려산업개발의 경우 매출(9078억원)에 견줘 영업이익 규모를 볼 때 현대건설보다 훨씬 돋보인다.

물론 이를 근거로 동아건설 고려산업개발에 대한 기업가치를 온전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영업이익 실적을 들어 현대건설을 살려야 한다는 당위론을 펴는 것은 적절치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형평성 시비로 이어진다.

귀따갑게 들어온 정부 당국자들의 말바꾸기 행태도 도마에 올라 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현대건설의 자구계획을 놓고 논란이 일던 와중에 “자구계획만 제대로 이행되면 현대건설의 부채비율은 200% 이하로 낮아져 (정상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위원장은 또 출자전환 조처가 나오기 불과 한달 전인 지난 2월27일에도 “자본잠식이 있어도 유동성 문제만 해결되면 출자전환이 필요없다”며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헛말임이 입증됐다.

지금은 정상화가 최우선… 책임자는 문책해야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또한 그동안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이 만족할 만한 자구책을 내놓지 않으면 절대로 신규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다. 특혜 아니냐는 시비가 일어도 할말이 없는 대목이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현대건설이 그동안 여섯 차례에 걸친 구조조정계획을 낼 때마다 ‘이것이 마지막… 이것만 되면…’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번번이 거짓으로 입증됐으며 정부 체면은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말았다.

사실, 이런 신뢰성 문제나 특혜시비보다 당장 급한 건 현대건설이 빨리 정상화하는 일이다. ‘기업주’는 망해도 ‘기업’은 사는 게 여러 면에서 바람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근거없는 낙관론 못지않게 막연한 비관론도 결코 이롭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부당국자들이 과거의 잘못을 은근슬쩍 덮어 책임에서 빠져나가려는 행태만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대건설 파문 일지

2000년 3월14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경질, 정몽구(MK)·정몽헌(MH) 회장

 

  형제간 경영권 다툼 촉발

3월27일

  정주영 명예회장, 현대경영자협의회 MH그룹회장 단독체제 승인

5월31일

  현대 3부자 동반퇴진 및 5조9천억원 유동서 확보 자구계획 발표

 

  현대·기아차 반발, MK체제 유지 발표

6월1일

  MH 사직서 제출, 현대아산 이사직만 유지

6월28일

  현대, 자동차 소그룹 제외한 역계열 분리 추진 발표, 공정위,

 

  역계열 분리 불가 방침 천명

6월30일

  공정위, 현대 역계열 분리안 반려

7월24일

  한기평, 현대 8개 계열사 회사에 신용등급 하향조정

8월6일

  정부, 현대건설에 위크아웃·법정관리 경고

8월13일

  현대 자구·계열분리안 발표

10월18일

  현대건설 추가자구계획 총 5810억원 발표

10월30일

  현대건설 1차부도

11월3일

  채권단, 퇴출기업 명단 발표서 현대건설 ‘기타’분류

11월8일

  전체 채권단회의, 제2금융권도 현대건설 채무만기연장 결의.

 

  서산간척지 매각신청서 접수

11월10일

  이계안 현대차 사장 기자회견 “현대건설 지원거부” 의사 밝힘

11월16일

  MK·MH 전격 회동. MK, 현대건설 지원방안 발표

11월17일

  계동 사옥문제로 현대 자구안 발표 연기

11월20일

  현대건설 정몽헌 회장 출자 등 1조2974억원 자구안 발표

2001년 1월16일

  현대건설, 회사채 신속 인수 대상기업으로 선정

2월27일

  채권단, 출자전환 동의 전제로 금융지원 추진

3월5일

  현대건설 출자전환 동의서 제출

3월10일

  채권단, 현대계열 3사 지원방안 마련.

 

  현대건설 앞으로 4억달러 해외지급보증

3월29일

  채권단, 현대건설 2조9천억원 출자전환 추진 결정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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