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기업사냥에 나서는 소액주주들… 경영부실로 주가 낮은 기업들 노심초사
아주 희한한 주주총회였다. 대립하는 양쪽이 제각각 총회를 열고 임원을 뽑고. 서로 상대방의 주총은 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고 맞서다 급기야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예전에도 가끔 볼 수 있었던 형제간 싸움이나 1·2대 주주간의 다툼과는 또다른 모습이었다. 기존 대주주와 ‘소액주주 연합’간 경영권을 둘러싼 격돌이란 점에서다. 그것도 연이틀 두 군데 회사 주총에서 잇따라 터져나와 유행병처럼 번질 하나의 흐름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낳으며 올해 주총의 최대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첫 번째 사단이 벌어진 건 3월16일 조광페인트 주총에서였다. 이 회사 소액주주연합은 단독으로 주주총회를 열어 신임 이사진을 선출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부산 본사 앞 이른바 ‘길거리 주총’을 통해서였다. 이에 대해 기존 대주주쪽은 “주총을 30일로 연기했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의 단독 주총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개인주주연합은 즉각 되받아 “주총 하루 전에 연기를 결정한데다 주주들에게 통보되지 않아 주총 연기 자체가 무효”라고 맞섰다. 급기야 둘 사이의 싸움은 법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법정 공방으로 이어진 희한한 주주총회
바로 이튿날 대한방직 주총에서도 이와 비슷한 다툼이 벌어졌다. 대한방직은 이날 오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었으나 40여명의 소액주주들과 심한 몸싸움이 일어났고, 의장이 정회를 선포한 상태에서 소액주주들끼리 이사회 임원을 뽑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회사쪽은 “소액주주들의 일방적인 임원 선임은 무효”라며 “정회 뒤 회의를 속개해 설범 회장 등 3명의 이사를 연임키로 가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소액주주쪽은 “한스종금 불법대출 사건 뒤 해외에 나가 있는 설범 회장의 지분은 위임장에 인감증명이 첨부되지 않았다”며 “대주주쪽의 이사 선임은 무효”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이 역시 법적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대한방직 경영권 다툼에는 ‘작전세력 개입설’까지 덧붙으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다툼은 사실 별로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우호적이 아닌, 적대적인 방법으로 경영권을 뺏으려는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난 바 있다.
이번 ‘대한방직·조광페인트 사태’가 관심을 집중시킨 점은 ‘소액주주들의 반란’에 따라 경영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규제 장치가 차츰 풀려가는 추세와 맞물려 상장·코스닥 등록 업체들의 경영권 방어에 비상벨을 울리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적대적 M&A에 따라 경영권이 넘어간 이렇다할 사례가 없다. 지난 97년에 있었던 미도파와 한화종금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신동방그룹이 주도한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추진은 우여곡절 끝에 기존 대주주인 대농그룹쪽의 경영권 방어로 끝났지만 공격자와 방어자 모두 깊은 상처만 입고 말았다. 박의송 옛 우풍상호신용금고 회장에 의한 한화종금 인수 시도 역시 미도파 때와 마찬가지로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양쪽 모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들 사례는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욱 깊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형편에서 소액주주들에 의한 경영권 확보 움직임은 아예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돼왔다. 지난 97년 대림통상에서 이번 일과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 자체가 저지당해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대적 인수·합병 활성화 분위기
그렇지만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주식 대량매수 제한 규정(옛 증권거래법 200조)이 97년 폐지된 데 이어 98년에는 공개매수 때 사전신고토록 한 규정도 없어지는 등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법적 제한규정은 사실상 이미 없어졌다. 물론 적대적 방법에 의한 경영권 탈취에 대한 국민 정서상 거부감, 그리고 이에 바탕을 둔 정부당국의 개입 등 ‘실질적인 걸림돌’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이 이뤄질 터전이 넓어지는 추세는 뚜렷하다. 이와 함께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소액주주운동에 힘입어 소액주주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져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크게 희석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올해 4월중 적대적 인수·합병을 촉진할 또 하나의 획기적인 장치가 마련된다. ‘M&A 전용 사모 뮤추얼펀드’를 허용토록 하는 내용의 개정 증권투자회사법(뮤추얼펀드)이 곧 시행될 예정인 것이다. ‘사모’, ‘뮤추얼펀드’ 등 낯선 용어의 조합이어서 얼른 이해하기 힘들 법도 한데, 쉽게 말하자면 몇몇(50인 미만)이 돈을 모아 M&A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사모펀드는 일간지 공고 등 공개적인 모집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모펀드’와 다르고, 금감원에 등록하는 절차를 거쳐 세제 혜택 등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설펀드’와 차이를 보인다.
사모펀드가 어떻게 적대적 인수·합병을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일까. 또 적대적 인수·합병을 촉진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일까.
공모펀드는 같은 종목(주식)에 펀드 자산의 10% 이상을 투자할 수 없으며 또 같은 회사 발행주식의 10% 이상을 편입할 수도 없다. 반면, 사모펀드는 이런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 맘만 먹으면 목표로 삼은 기업의 경영권을 어렵지 않게 인수할 수 있다.
이런 성격의 사모펀드는 이미 지난해 7월 판매가 허용돼 일부 투신사, 뮤추얼펀드 회사가 몇몇 사모펀드를 취급하고 있다. 그런데 섀도보팅(shadow voting) 의무규정에 따른 의결권 제한으로 인수·합병 무기로 쓰이는 길이 차단돼 있는 실정이다. 섀도보팅은 다른 주주들이 투표한 비율대로 의결권을 분산시키는 방식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만큼 경영권을 가질 수도 없다. 이번에 바뀌어 시행되는 증권투자회사법에선 이같은 의무 규정을 없앴다. 뮤추얼펀드의 ‘설립 목적이 M&A란 점을 명시적으로 내세울 경우’ 섀도보팅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모펀드를 통한 기업 인수·합병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기업사냥에 담겨있는 두 가지 노림수
정부가 이처럼 기업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맞추고 있는 것은 M&A를 통해 무능한 경영진을 퇴출시키고 결과적으로 시장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이 일어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또 M&A시장이 활성화하면 경영자나 대주주는 주가관리에 적극 나서게 되는 만큼 증시안정에도 이바지할 뿐 아니라 소액주주의 이익이 중시되는 주주 중심의 경영이 이뤄지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정부쪽 시각이다.
적대적 M&A의 속성으로 보아 정부의 이런 기대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도되면 기업을 뺏거나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기업을 사려는 쪽은 막대한 자금을 동원, 증시에서 주식을 빨아들여야 한다. 반대로 기업을 지키려는 쪽은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지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 와중에서 해당 기업의 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적대적 인수·합병의 목표물은 주로 경영부실로 주가가 제값보다 훨씬 낮게 형성돼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적대적 인수·합병은 주가 상승과 함께 기업 구조조정 촉진이란 효과도 아울러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적대적 인수·합병에 따른 부정적인 효과를 마냥 무시할 수 없다. 적대적 M&A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돼 있는 미도파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성원그룹과 신동방그룹이 미도파 주식매집에 나서고 미도파의 대주주인 대농그룹이 이를 방어하기 위해 1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출혈경쟁이 벌어졌다. 결국 성원그룹의 지원을 받은 대농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M&A에 관련됐던 3개 그룹 모두 시들시들 기력을 잃는 결과를 불러왔다.
적대적 인수·합병 촉진제로 작용할 M&A전용 사모 뮤추얼펀드와 관련해서도 적지 않은 걱정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 펀드가 주식을 매집한 뒤 인수대상 기업이나 제3자에게 높은 프리미엄을 받고 단기간에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이른바 ‘그린 메일’(green mail) 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기업그룹이 M&A펀드에 투자한 뒤 이 펀드를 통해 계열사 확장에 나서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적대적 인수·합병이 이곳 저곳서 터져나오기는 어렵다. 투신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의 주식보유한도 규정이 엄연히 살아 있고, 특히 특정기업 주식을 5% 이상 취득할 경우 감독당국에 보고하고 공시해야 하는 이른바 ‘5%룰’이 있어 적대적 인수·합병이 성공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욱이 M&A전용 사모 뮤추얼펀드도 5%룰을 적용받게 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어 적대적 인수·합병이 일상화될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만,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적은 돈으로 인수·합병을 시도할 수 있는 기업은 점차 적대적 경영권 탈취의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또 회사 내용은 비교적 건실함에도 경영을 잘못해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주가가 형편없이 낮은 기업도 인수·합병의 우선 대상으로 떠오른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기업의 순자산가치에 비해 시가총액이 낮은 기업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대한방직·조광페인트의 경우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는 게 증권가의 해석이다.
“소액주주 무시하면 경영권 빼앗긴다”
김훈식 인터바인M&A 사장은 “상장기업 대주주의 평균 지분율은 30∼40% 수준이고 나머지 60∼70%는 소액주주 몫인데 지금까지는 결집된 30∼40%가 독단적으로 경영을 주도한 상황이었다”며 “이제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소액주주 운동에 힘입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60∼70%가 힘을 모으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대한방직··조광페인트 사태도 이런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방직, 조광페인트 두 회사의 파행 주총을 둘러싼 대주주와 소액주주연합 사이의 주장이 팽팽해 지금으로선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들다. 다만, 60∼70%를 무시한 경영을 하다가는 언제든 경영권을 뺏길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는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관련 용어 설명> ●사모펀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 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를 일컫는다. 투자신탁업법(일반 투신사)에는 100인 미만의 투자자, 증권투자회사법(뮤추얼펀드)에서는 50인 미만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 펀드를 가리킨다. 이 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대상에 제한이 없다. 공개모집 절차를 거치는 공모펀드는 펀드 규모의 10% 이상을 한 주식에 투자할 수 없고, 주식 외 채권 등 유가증권에도 한 종목에 10% 이상 투자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이러한 제한이 없어 이익이 발생할 만한 어떠한 투자대상에도 제한없이 투자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재벌들의 계열지원, 내부자금 이동 수단으로 활용되고 검은 자금의 이동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뮤추얼펀드 =개별 투자자들이 돈을 모아서 펀드를 만들고 펀드매니저에게 주식 투자를 맡기는 간접투자상품이다. 우리말로는 ‘상호회사형 기금’으로 번역된다. 투자신탁의 한 형태로 투신사들이 판매하는 금융상품인 계약형펀드(수익증권)와 비슷하지만, 펀드 하나하나가 주식회사 형태로 투자자들이 주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명 회사형 투자신탁으로도 불린다. 투자자들의 펀드 가입·탈퇴가 자유로운 개방형과, 투자자들이 증권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회사형으로 나뉜다. 올해 4월중 시행될 개정 증권투자회사법에 따라 M&A전용 사모 뮤추얼펀드가 허용되면,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기존 대주주와 소액주주 연합이 경영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부산 조광페인트 본사 앞에서 주총을 열소 있는 소액주주연합.

사진/주주연합이 담장에 설치한 현수막.

사진/경영권을 흔들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반란. 대한방직 소액주주 대표 송기범씨.(김정효 기자)

사진/대한방직 대주주쪽인 안봉걸 상무.
<관련 용어 설명> ●사모펀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 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를 일컫는다. 투자신탁업법(일반 투신사)에는 100인 미만의 투자자, 증권투자회사법(뮤추얼펀드)에서는 50인 미만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 펀드를 가리킨다. 이 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운용대상에 제한이 없다. 공개모집 절차를 거치는 공모펀드는 펀드 규모의 10% 이상을 한 주식에 투자할 수 없고, 주식 외 채권 등 유가증권에도 한 종목에 10% 이상 투자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이러한 제한이 없어 이익이 발생할 만한 어떠한 투자대상에도 제한없이 투자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재벌들의 계열지원, 내부자금 이동 수단으로 활용되고 검은 자금의 이동 통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뮤추얼펀드 =개별 투자자들이 돈을 모아서 펀드를 만들고 펀드매니저에게 주식 투자를 맡기는 간접투자상품이다. 우리말로는 ‘상호회사형 기금’으로 번역된다. 투자신탁의 한 형태로 투신사들이 판매하는 금융상품인 계약형펀드(수익증권)와 비슷하지만, 펀드 하나하나가 주식회사 형태로 투자자들이 주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명 회사형 투자신탁으로도 불린다. 투자자들의 펀드 가입·탈퇴가 자유로운 개방형과, 투자자들이 증권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는 회사형으로 나뉜다. 올해 4월중 시행될 개정 증권투자회사법에 따라 M&A전용 사모 뮤추얼펀드가 허용되면,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