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나 낚시로 고객관리나 하던 라파즈가 차별화 전략으로 거듭 나다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허연 분말이다. 땅에서 캐내 종이 포대에 담아 파는 게 보통이다. 예쁜 포장도 광고도 없다. 심지어 제품 이름조차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측면을 봐도 마케팅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시멘트 얘기다. 제품을 차별화하고, 고객을 군집화해 분석하고, 고객 군집에 맞춰 브랜드를 정하고, 광고를 집행하고, 가격을 책정하는 선진적 마케팅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시멘트 고객도 여섯 가지로 세분화 프랑수아 자크가 세계 최대 시멘트 생산회사인 프랑스 라파즈의 마케팅 책임자로 처음 부임한 2001년, 그 동료들이 그에 대해 보인 반응도 비슷했다. “마케팅이라니? 고객은 그저 두 종류가 있을 뿐이야. 골프를 좋아하는 고객과 낚시를 좋아하는 고객이지.” 그 회사는 여전히 영업과 마케팅을 구분하지 못했다. 고객과 골프를 치거나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마케팅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회사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시장 상황도 마케팅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시멘트 시장은 잘게 쪼개어져 있었다. 라파즈는 세계 최대 시장점유율을 자랑했지만, 점유율은 6%밖에 되지 않았다. 차별화가 불가능한 ‘상품’(commodity)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파즈 마케팅의 암묵적 목표는 ‘가격 경쟁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시장점유율 지키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차별화가 어려운 제품 시장에서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이 바로 가격 경쟁이다. 고객이 제품의 질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가격을 낮춰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한번 시작되면, 모두가 공멸의 길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모든 제품이 비슷하다고 여기는 한, 모두가 가격을 따라 낮추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격은 가격대로 다 낮아지면서 시장점유율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 산업 전체 수익성이 떨어지는 게임이 되어버리는 게 가격 경쟁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교과서대로라면, 마케팅 원론은 사실 시멘트 같은 제품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로레알의 전 최고경영자(CEO) 린제이 오언 존스는 “시장 세분화로도 성과가 향상되지 않는 제품 따위는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에서 마케팅을 배운 자크는, 그저 그가 배운 마케팅 원론을 시멘트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시장 세분화 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고객만족도를 조사했다. 그러고 나서야 회사 마케팅 부서 간부들은 낚시질이나 골프 이야기 대신 고객 니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좀더 밀어붙여,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구축해 시스템으로 정보를 관리하고 분석했다. 막상 분석해보니, 시멘트 고객도 커피나 영화 고객처럼 얼마든지 세분화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고객은 구매 행태에 따라 세 부류로 명료하게 분화됐다. 가격중시형, 관계중시형, 품질중시형이 그 세 부류였다. 사업의 정밀성에 따라서도 두 부류로 분류됐다. 품질관리 부서가 따로 있는 큰 사업자들과, 집 수리를 주로 하는 작은 사업자들이었다. 결국 모두 여섯 가지 부류로 세분화가 가능했다. 세분화가 되고 나면, 전략적 가격 책정으로 매출을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격중시형 고객에게는 최소한의 품질을 제공하면서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 품질중시형 고객을 위해서는 프리미엄 시멘트를 만들어 더 비싼 값에 제공할 수 있다. 관계중시형 고객에게는 기존에 하던 골프와 낚시 모임을 이어가면 될 것이다. 라파즈는 마케팅 책임자를 영입한 지 1년 만에 매출이 600만달러(약 57억원)나 늘어났고, 현재까지 6년간 누적 매출 증가액은 1억5천만달러(약 1425억원)가 된다. 재미없는 인생, 재밌게 살 수 있을지도 멕시코의 시멘트 기업 세멕스도 시멘트 회사에는 생소하던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다. 세멕스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저소득층 시장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펼쳐 성공했다. 세멕스는 멕시코의 저소득층이 시멘트를 직접 구입해서 집을 증축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들을 타깃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우선 세멕스는 전형적 기능 제품인 시멘트를 감성 제품으로 새롭게 포지셔닝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을 선물하세요”라는 광고를 앞세우고, 선물용 시멘트를 개발했다.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시멘트를 사서 서로 선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돈 몇 달러에 집을 선물하다니, 그 광고 카피에 매료된 소비자들이 시멘트를 사러 슈퍼마켓으로 몰려들었다. 세멕스는 저소득층들이 ‘시멘트계’를 조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계원들에게 저축 수단과 신용을 제공했다. 욕실·부엌 같은 곳을 증축할 돈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고 지원해주면서 제품 매출 증가를 꾀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92년 세계 10위이던 세멕스는 매출을 늘리면서 인수·합병을 곁들여, 2004년 세계 3위 시멘트 업체로 올라섰다. 마케팅은 재미있는 제품을 재미있게 파는 것이라는 통념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시멘트처럼 재미없는 제품에도 마케팅 이론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사업이 뭔가 난관에 부닥쳤다면, 다시 한 번 마케팅 원론으로 돌아가보라. 혹시 아는가. 재미없는 제품을 재미있게 팔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과정에서, 재미없는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능력도 배우게 될지.

예쁜 포장도 광고도, 심지어 제품 이름조차 전혀 중요하지 않은 시멘트. 그러나 라파즈는 고객별로 제품을 차별화해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국내 한 회사의 시멘트 제품.(사진/ 한겨레 이종근 기자)
시멘트 고객도 여섯 가지로 세분화 프랑수아 자크가 세계 최대 시멘트 생산회사인 프랑스 라파즈의 마케팅 책임자로 처음 부임한 2001년, 그 동료들이 그에 대해 보인 반응도 비슷했다. “마케팅이라니? 고객은 그저 두 종류가 있을 뿐이야. 골프를 좋아하는 고객과 낚시를 좋아하는 고객이지.” 그 회사는 여전히 영업과 마케팅을 구분하지 못했다. 고객과 골프를 치거나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마케팅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회사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시장 상황도 마케팅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다. 시멘트 시장은 잘게 쪼개어져 있었다. 라파즈는 세계 최대 시장점유율을 자랑했지만, 점유율은 6%밖에 되지 않았다. 차별화가 불가능한 ‘상품’(commodity)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파즈 마케팅의 암묵적 목표는 ‘가격 경쟁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시장점유율 지키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차별화가 어려운 제품 시장에서 가장 쉽게 빠질 수 있는 유혹이 바로 가격 경쟁이다. 고객이 제품의 질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가격을 낮춰 순식간에 시장을 장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한번 시작되면, 모두가 공멸의 길로 들어서기 마련이다. 모든 제품이 비슷하다고 여기는 한, 모두가 가격을 따라 낮추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격은 가격대로 다 낮아지면서 시장점유율은 그다지 변하지 않아, 산업 전체 수익성이 떨어지는 게임이 되어버리는 게 가격 경쟁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교과서대로라면, 마케팅 원론은 사실 시멘트 같은 제품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하다. 로레알의 전 최고경영자(CEO) 린제이 오언 존스는 “시장 세분화로도 성과가 향상되지 않는 제품 따위는 없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컨설팅 회사 매킨지에서 마케팅을 배운 자크는, 그저 그가 배운 마케팅 원론을 시멘트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우선 시장 세분화 전략을 채택했다. 그리고 고객만족도를 조사했다. 그러고 나서야 회사 마케팅 부서 간부들은 낚시질이나 골프 이야기 대신 고객 니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를 좀더 밀어붙여,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구축해 시스템으로 정보를 관리하고 분석했다. 막상 분석해보니, 시멘트 고객도 커피나 영화 고객처럼 얼마든지 세분화되고 분석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고객은 구매 행태에 따라 세 부류로 명료하게 분화됐다. 가격중시형, 관계중시형, 품질중시형이 그 세 부류였다. 사업의 정밀성에 따라서도 두 부류로 분류됐다. 품질관리 부서가 따로 있는 큰 사업자들과, 집 수리를 주로 하는 작은 사업자들이었다. 결국 모두 여섯 가지 부류로 세분화가 가능했다. 세분화가 되고 나면, 전략적 가격 책정으로 매출을 늘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격중시형 고객에게는 최소한의 품질을 제공하면서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 품질중시형 고객을 위해서는 프리미엄 시멘트를 만들어 더 비싼 값에 제공할 수 있다. 관계중시형 고객에게는 기존에 하던 골프와 낚시 모임을 이어가면 될 것이다. 라파즈는 마케팅 책임자를 영입한 지 1년 만에 매출이 600만달러(약 57억원)나 늘어났고, 현재까지 6년간 누적 매출 증가액은 1억5천만달러(약 1425억원)가 된다. 재미없는 인생, 재밌게 살 수 있을지도 멕시코의 시멘트 기업 세멕스도 시멘트 회사에는 생소하던 마케팅 기법을 도입해 성공한 사례다. 세멕스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저소득층 시장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펼쳐 성공했다. 세멕스는 멕시코의 저소득층이 시멘트를 직접 구입해서 집을 증축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들을 타깃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우선 세멕스는 전형적 기능 제품인 시멘트를 감성 제품으로 새롭게 포지셔닝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을 선물하세요”라는 광고를 앞세우고, 선물용 시멘트를 개발했다. 슈퍼마켓에서도 쉽게 시멘트를 사서 서로 선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단돈 몇 달러에 집을 선물하다니, 그 광고 카피에 매료된 소비자들이 시멘트를 사러 슈퍼마켓으로 몰려들었다. 세멕스는 저소득층들이 ‘시멘트계’를 조성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계원들에게 저축 수단과 신용을 제공했다. 욕실·부엌 같은 곳을 증축할 돈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고 지원해주면서 제품 매출 증가를 꾀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92년 세계 10위이던 세멕스는 매출을 늘리면서 인수·합병을 곁들여, 2004년 세계 3위 시멘트 업체로 올라섰다. 마케팅은 재미있는 제품을 재미있게 파는 것이라는 통념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시멘트처럼 재미없는 제품에도 마케팅 이론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사업이 뭔가 난관에 부닥쳤다면, 다시 한 번 마케팅 원론으로 돌아가보라. 혹시 아는가. 재미없는 제품을 재미있게 팔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과정에서, 재미없는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능력도 배우게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