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금융지원에도 회생 가능성 불투명… 자구계획에 불신 여전해 수렁만 깊어가
이번엔 정말 마지막?
현대그룹에 대한 지원 방안이 나올 때마다 정부와 채권단, 지원을 받는 당사자 현대쪽에선 한결같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번번이 지켜지지 않는 헛 약속이 되고 말았다. 3월 들어서는 또다른 지원책이 발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이번에도 ‘마지막’이란 약속이 덧붙고 있지만 그다지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현대의 신뢰 상실은 그동안의 헛말이 쌓인 데 따른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채권단의 금융지원 대상인 현대계열사들이 처한 객관적인 정황으로 보아도 이번 지원으로 끝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들어 미국, 일본 등 세계 금융시장마저 혼미한 상태로 빠져들고 이에 따른 국내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현대 지원을 둘러싼 전망은 한층 음울하다. 현대건설보다 부채규모가 훨씬 큰 현대전자 문제가 집중 부각되고 있다는 점도 불안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우량기업도 넘볼 수 없는 지원 내용
현대그룹 채권단이 지난 3월10일 긴급회의를 열어 마련한 현대건설 등 현대계열 3사에 대한 지원 내용은 대략 이렇다. ‘현대전자에 대해 14억5천만달의 수출환어음(DA)과 5억3천만달러의 수입신용장(L/C) 한도 사용을 연말까지 보장해준다. 또 현대전자의 일반성 여신(일반자금대출, 당좌대출, 수출입금융) 3천여억원도 만기도래 때 1년 연장한다. 현대건설에 대해선 건설업 특성상 동절기중 발생한 자금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은행에서 해외지급보증 4억달러를 지원한다. 또 현대석유화학에는 올해 6월까지 만기도래하는 시설자금 대출 등의 여신을 6개월간 연장하고 부동산을 담보로 1150억원의 신규자금을 6개월간 지원한다.’ 정부당국이나 채권단은 현대전자·건설에 신규자금 지원이 이뤄진 게 아니며, 특혜성은 더구나 아니라고 강조한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금융기관들이 기존의 신용한도를 유지시켜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을 메워주는 게 향후 채권회수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경제적인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 신용감독국의 문종진 신용지도팀장은 “동아건설과 현대전자를 예로 들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현대에 대한 금융지원이) 특혜라는 주장이 있는데, 적절치 않은 비교”라고 말했다. 문 팀장은 “동아건설의 경우 신용평가에서 청산가치가 큰 것으로 드러난 반면, 현대전자는 (신디케이트론 주간사인) 씨티은행과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단기 유동자금 부족만 해결되면 회생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려 채권단 공동의 지원이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아건설과 현대전자의 실태가 다른데, 지원이 이뤄지고 아니고를 따져 형평성 시비를 걸어 특혜 운운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금융당국의 이런 해명이 시장에선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긴급 채권단회의에 금감위 관계자가 참석한 데서 엿볼 수 있듯 현대전자 등 현대계열사에 대한 지원에는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채권단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지원이란 해명은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또 비교적 우량한 기업들도 금융지원을 못 받을 정도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유독 현대에만 내려진 각종 지원책은 특혜성이란 비난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사실, 현대문제를 둘러싼 이런 식의 ‘진실게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특혜다, 아니다’는 식의 논란은 끝도 없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성격인데다 그러기에는 당장 닥친 현대문제가 급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현대문제를 이끌고, 나아가 기업구조조정의 원칙을 세워나가는 일이다. 정부 깊숙이 개입해 특혜성 시비 일어
현대건설이나 현대전자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아 정부당국이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선 현대건설을 보자. 이미 몇 차례 지적된 바 있듯이 현대건설의 협력업체는 대략 하도급 1천개, 자재납품 2천개 등 모두 3천개사 안팎에 이르고 있다. 고용효과로 따지면 모두 4만명을 웃돈다. 파산처리할 경우 일어날 파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전자의 비중은 이보다 더욱 크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부채규모가 11조원대인 사실에서 어렵지 않게 덩치를 짐작할 수 있다. 현대전자가 부도처리될 경우 은행권만 하더라도 3조원 안팎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지급보증으로 엮인 현대중공업·상선·종합상사 등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하청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하는 지경에 빠질 게 뻔하다. ‘대마이면 불사냐’는 빈축을 들으면서도 정부당국이 방치할 수 없는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보다 개입의 방식이다. 나아가 정부나 채권단의 주장대로 이같은 지원을 통해 현대가 회생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현대문제를 다루는 정부와 채권단의 자세에서 가장 문제점으로 꼽혀온 게 ‘손실분담의 대원칙’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적인 기업구조조정의 방향을 흔들어놓을 뿐 아니라 현대문제 자체를 꼬이게 하는 요인으로도 꼽힌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비롯해 지금까지 이뤄진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선, ‘대주주 및 기존경영진의 손실분담’과 ‘부실화에 대한 책임묻기’가 필수적인 전제조건이었다.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이뤄지기에 앞서 해당 기업의 경영진이 물러나고 대주주의 자격은 박탈되는 게 상례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에 대한 지원에선 이런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3부자의 동시 퇴진 발표가 나왔던 지난해 상반기부터 지금까지 현대 경영에 책임있는 이들에 대한 책임묻기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퇴진 발표와는 달리 정씨 일가가 현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하고 이른바 가신그룹도 모두 제자리를 지키거나 애초 예상됐던 사법처리를 벗어나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회생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돼 출자전환이 이뤄졌다면 모르되 지금 현대전자·건설이 처한 상황은 그렇지 않다”며 “대주주 자격 박탈이나 경영진 교체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대쪽이 나름대로 자구노력을 펴고 있지 않느냐는 설명도 덧붙였다.
물론 정부나 채권단의 설명처럼 현대쪽의 자구노력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현대전자에 대한 채권단의 금융지원은 이 회사 보유의 유가증권 및 부동산 매각 등 1조374억원에 이르는 자구계획(올해 1월 초 발표)의 철저한 이행을 전제로 한 것이고 올해 2월 말까지 자구이행 실적은 191억원에 이르고 있다.
“현대전자 회사구조 유지한 회생 회의적”
또 현대건설의 경우 채권단의 압박에 따라 지난해 말 1조2892억원의 자구실적을 기록해 당초 계획(1조5455억원)의 83.4%의 이행률을 보이고 있다. 올해 자구계획은 지난해 이행하지 못한 부분을 합쳐 7485억원 수준이며 올해 2월 말까지 거둔 실적도 384억원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있고 증시가 하락세를 면치 못한 가운데 거둔 성과임도 감안돼야 한다.
그렇지만 현대쪽의 이런 노력이 금융시장에선 그다지 높은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다. 현대전자의 자구계획은 그야말로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현대건설의 실적 가운데는 매듭되지 않은 진행형이 적잖이 섞여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대쪽이 자구계획을 모두 이행하고 채권단의 지원이 원활히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현대문제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란 보장이 없다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아 있다.
현대건설을 제치고 현대문제의 핵으로 떠오른 현대전자를 보자. 이 회사 박종섭 사장은 지난 3월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살로먼스미스바니를 통해 주식예탁증서(DR) 발행 등으로 10억달러 정도를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조달할 계획”이라며 “신주발행을 통해 신규자본을 끌어들여 부채를 갚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차입금 만기가 올 하반기에 몰려 있어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 것이며 2002년으로 넘어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증권가를 비롯한 금융계 안팎의 반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ㅅ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현대전자는 지난해 낮게 잡아도 최소 1조8천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내다봤는데, 실제 까보니 영업이익이 마이너스(-) 상태였다”며 “이로 인해 금융지원 필요 규모가 당초 2조원 수준에서 4조원 정도로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신규지원 규모가 1조∼2조원 수준에 그친다면 몰라도 3조원 이상으로 책정될 경우 현재의 회사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의 회생은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ㄷ증권의 김 아무개 연구원은 “유가증권을 매각하고 부실 사업부를 정리한 뒤 출자전환을 한다고 해도 회생한다는 뚜렷한 전망이 보이지 않는 마당에 출자전환은 아예 검토대상으로도 올라 있지 않은 답답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이나 현대석유화학도 지속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펴고는 있으나 시장의 불신은 여전한 실정이다.
증권가의 이런 반응에 대해 금감원 당국자는 “현대문제는 기본적으로 채권단과 현대그룹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사안인데 제3자가 자꾸 거들어 일을 꼬이게 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사를 감추지 않았다. 이 당국자는 현대의 실정을 가장 잘 아는 쪽은 채권단이고 그런 채권단이 채권회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일처리가 돼야 하며 증권가에서 루머에 가까운 무책임한 분석을 내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런 견해는 일견 수긍할 만한 점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한 것일까. 채권단의 자율성에 대한 의구심은 제쳐두고라도 현대문제가 잘못 꼬여 채권회수가 원활치 않을 경우 결국 공적자금 부담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채권단만이 현대문제의 당사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분명한 처리방안 나와야 억측 잠재워
요즘 증권가에서 웃지 못할 풍경 하나가 있다. 각 증권사들이 현대에 대한 분석자료는 전혀 내지 않고 있다. 분석자료는커녕 실명 멘트(의견 표명)까지 극구 꺼리고 있다. 지난해 동양증권이 현대그룹에 대한 분석보고서를 냈다가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당한 뒤부터이다. 이런 가운데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극단적 조처까지 포함된 현대전자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떠돌고 있는 등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
더욱 분명하고 현실성 있는 현대 처리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갖가지 소문은 꼬리를 물 게 뻔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현대는 밑빠진 독인가. 현대계열 3사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한 현대그룹 채권단 긴급회의 모습.(연합)
현대그룹 채권단이 지난 3월10일 긴급회의를 열어 마련한 현대건설 등 현대계열 3사에 대한 지원 내용은 대략 이렇다. ‘현대전자에 대해 14억5천만달의 수출환어음(DA)과 5억3천만달러의 수입신용장(L/C) 한도 사용을 연말까지 보장해준다. 또 현대전자의 일반성 여신(일반자금대출, 당좌대출, 수출입금융) 3천여억원도 만기도래 때 1년 연장한다. 현대건설에 대해선 건설업 특성상 동절기중 발생한 자금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은행에서 해외지급보증 4억달러를 지원한다. 또 현대석유화학에는 올해 6월까지 만기도래하는 시설자금 대출 등의 여신을 6개월간 연장하고 부동산을 담보로 1150억원의 신규자금을 6개월간 지원한다.’ 정부당국이나 채권단은 현대전자·건설에 신규자금 지원이 이뤄진 게 아니며, 특혜성은 더구나 아니라고 강조한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금융기관들이 기존의 신용한도를 유지시켜 단기적인 유동성 부족을 메워주는 게 향후 채권회수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경제적인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 신용감독국의 문종진 신용지도팀장은 “동아건설과 현대전자를 예로 들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현대에 대한 금융지원이) 특혜라는 주장이 있는데, 적절치 않은 비교”라고 말했다. 문 팀장은 “동아건설의 경우 신용평가에서 청산가치가 큰 것으로 드러난 반면, 현대전자는 (신디케이트론 주간사인) 씨티은행과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단기 유동자금 부족만 해결되면 회생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려 채권단 공동의 지원이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아건설과 현대전자의 실태가 다른데, 지원이 이뤄지고 아니고를 따져 형평성 시비를 걸어 특혜 운운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금융당국의 이런 해명이 시장에선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긴급 채권단회의에 금감위 관계자가 참석한 데서 엿볼 수 있듯 현대전자 등 현대계열사에 대한 지원에는 정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채권단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지원이란 해명은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또 비교적 우량한 기업들도 금융지원을 못 받을 정도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유독 현대에만 내려진 각종 지원책은 특혜성이란 비난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다. 사실, 현대문제를 둘러싼 이런 식의 ‘진실게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특혜다, 아니다’는 식의 논란은 끝도 없는 평행선을 그을 수밖에 없는 성격인데다 그러기에는 당장 닥친 현대문제가 급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현대문제를 이끌고, 나아가 기업구조조정의 원칙을 세워나가는 일이다. 정부 깊숙이 개입해 특혜성 시비 일어

사진/현대계열사에 대한 지원에는 정부가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근영 금감원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정용 기자)
현대계열 3사 요약 재무정보 |
|||
2000년 9월 단위:억원, % |
|||
|
전자 |
건설 |
석유화학 |
자산총계 |
197,080.27 |
95,873.70 |
36,841.02 |
부채총계 |
114,689.96 |
75,246.72 |
26,082.90 |
당기순이익 |
-3,083.9 |
-2,502.36 |
-117.30 |
부채비율 |
139.20 |
364.80 |
-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