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을 흔드는 재벌 2·3세
등록 : 2007-01-23 00:00 수정 : 2010-02-02 11:20
LG가 3세 구본호씨가 액티패스 투자 밝히자 주가 수직 상승…홍석현 회장 2세들이 지분 일부 인수한 에이에스이도 급등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연초 주식시장에 때 아닌 ‘재벌 2·3세 효과’가 들끓고 있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액티패스 주가는 지난해 12월28일 이후 무려 12일 연속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 지구국 중계기 생산업체인 액티패스 주가는 2300원대에서 불과 보름 만에 1만8천원대(1월17일)까지 폭등했다.
액티패스 주식이 돌연 급등세를 탄 가장 큰 계기는 지난 1월2일에 낸 공시였다. 액티패스는 1월2일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각각 85억원씩 발행하고, 미디어솔루션(코스닥 등록기업)의 최대주주인 구본호씨가 80억원을 투자해 CB와 BW를 각각 40억원씩 인수했다고 밝혔다. 액티패스 주가의 수직 상승은 이른바 ‘구본호 효과’ 때문이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이 ‘구본호 효과’와 ‘홍석현 효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주가 현황판(사진/ 연합)
미디어솔루션 330억 차익 챙겨
구본호(32)씨는 미디어솔루션과 범한여행, 범한판토스의 대주주다. 이번 투자로 미디어솔루션은 액티패스의 최대주주가 됐고, 미디어솔루션과 구씨 등 특수관계인의 액티패스 총 지분은 42.8%에 달한다. 액티패스 관계자는 “회사와 구본호씨 간에 지금까지 전혀 거래도 투자도 없었고, 미디어솔루션과의 거래도 없었다”며 “미디어솔루션 법인이 121만 주를 취득해 경영권을 인수한 최대주주가 되었고, 구본호씨는 경영권 참여는 아니고 개인적인 단순 투자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대체 주식 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젊은 사업가 구씨는 누구인가? 구씨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구정회씨의 손자이자 구자헌씨의 아들로 LG가(家) 3세 중 한 명이다. 재벌 3세가 지분 투자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보고 주가가 이상 급등한 것이다. 구씨는 이미 지난해부터 주식 시장에서 구본호 붐을 일으키며 ‘미다스의 손’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10월 그가 미디어솔루션에 220억원을 출자했는데, 즉각 미디어솔루션 주가는 12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구씨는 미디어솔루션을 인수한 지 보름 만에 지분(BW 180만 주)의 절반을 전격 매각해 33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BW 180만 주를 주당 8390원에 인수한 뒤 이 중 90만 주를 주당 4만5천원에 판 것이다. 당연히 ‘먹튀’ 논란이 일어났다.
구씨가 이번에 인수한 액티패스의 BW와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행사가액은 각각 주당 3580원, 주식 수는 223만4천여 주다. 내년 1월24일부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액티패스의 1월17일 종가는 1만8550원으로 이미 행사가액을 넘어섰다. 17일 기준으로 구씨가 보유한 CB와 BW의 시가평가액은 413억원에 이른다. 물론 내년 1월의 권리행사 가능 시점에서 주가는 더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지만, 현재 투자원금 80억원을 제외하고도 333억원의 평가차익을 올린 셈이 된다. 업계에서는 BW 등이 아직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요 주주의 단기 매매차익 제한(내부자 보유 주식의 보호예수) 규정에 해당되지 않고, 따라서 미디어솔루션 때와 마찬가지로 단기에 재매각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구씨의 미디어솔루션 투자(지분 31.67%·145만 주)에 따른 평가차익만 500여억원(1월18일 현재 주당 3만1900원)에 달한다. 한 인터넷 언론매체가 2006년 12월에 1800여 개 상장사 대주주와 오너 일가족 3800명의 주식을 평가한 결과 구본호씨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870억원(전체 92위)으로 나타났는데, 미디어솔루션과 액티패스에서 터진 대박까지 포함하면 순위가 훨씬 뛰어오를 게 분명하다. 구씨는 현재 미디어솔루션에서 별다른 직책을 갖고 있지 않다.
시장에서는 구본호씨가 손을 댔다는 소문만 돌면 주가가 오르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16일 상장사 더존비즈온은 단지 구씨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만으로 이틀째 가격제한폭까지 주가가 올랐다. 구씨가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음에도 구씨의 투자설이 일각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코스닥 등록기업인 루미마이크로 역시 미디어솔루션, 액티패스에 이은 구씨의 새로운 투자처라는 소문이 돌면서 최근 급등세를 보였다. 루미마이크로 쪽은 “우리가 LG전자의 휴대전화 쪽에 납품을 하고 있지만 구본호씨와 접촉한 일이 전혀 없는데, 바깥에서 구씨와 우리를 연관시켜 여러 이야기가 돈다”며 “구본호라는 사람은 시장의 주가를 급변동시키는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미 ‘청년 재벌’ 반열에 오른 구씨는 ‘구본호 효과’를 활용해 주식에서 대박을 터뜨린 뒤, 이렇게 벌어들인 자금을 갖고 또 다른 벤처기업을 인수해 가지를 치는 식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물론 구본호 효과는 구씨 개인의 탁월한 사업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기보다는 ‘LG그룹 효과’임이 틀림없다. 시장은, 구본호씨가 투자한 기업은 사실상 LG그룹이 투자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본다. 재벌기업의 투자라는 생각과 이에 따른 향후 사업 전망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격이다.
그러나 구씨는 현 구본무 LG그룹 회장과 혈연 관계에 있다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관계는 없다. (주)LG 관계자는 “구씨는 구본무 회장의 먼 친척일 뿐 구씨의 활동은 LG그룹과 관련이 없다”면서 “지난해 구씨의 미디어솔루션 투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연락을 시도했으나 잘 닿지 않을 정도였다. LG그룹 일가 사람인 건 맞지만 개인 돈으로 투자하고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뿐이다”고 말했다. 지난해 미디어솔루션 주가가 연일 급등한 이유 역시 구씨가 LG그룹 3세라는 점이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또 “LG 창업주의 자손이 워낙 많아서 다 알기도 어렵다. 구씨는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안다”면서 “나중에 잘못되면 괜히 LG그룹에 투자자들의 불똥이 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이름만 공시 내용에 넣었을 뿐인데…
비즈니스 무대의 ‘무서운 아이’로 등장한 구씨 이외에 구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34살의 젊은 두 사람(김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도 최근 30억원씩 투자해 액티패스 지분 39만625주(7.50%)를 사들였다. 액티패스의 주식 대량 보유 보고서를 보면 이 두 사람의 직업 기재란은 빈칸으로 돼 있다. 짐작건대 구씨가 손대면 주가가 폭등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예상하고 투자에 나섰을 공산이 크다.
코스닥 기업에 잇따라 투자해 막대한 평가차익을 올리고 있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왼쪽)과 홍 회장의 아들 정도씨(사진/ 중앙일보 제공)
물론 구씨가 손대는 종목이 LG그룹과 전혀 무관한 건 아니다. 구씨가 최대주주인 미디어솔루션의 경우 사장·등기이사·사외이사·감사 모두 LG텔레콤, LG정보통신, LG증권, LG화학 출신들이다. 또 직원이 40명인 액티패스는 LG벤처투자가 투자를 맡아 2001년에 상장했던 기업이다. 액티패스의 2006년 매출액(98억원) 중에서 LG텔레콤·LG전자와의 거래에서 발생한 매출만 63억원에 이른다. 구씨가 액티패스에 80억원을 투자하기 이전에 이미 액티패스 사외이사로 있던 김아무개씨는 LG그룹 기획조정실 부장 출신이다. 구씨가 대주주로 있는 범한판토스는 LG그룹 물류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비상장 범한여행의 주요 주주이기도 한 구씨가 지난해 10월 미디어솔루션을 인수한 건 범한여행을 코스닥에 우회 상장하기 위해서였다. 기업공개를 통해 직접 상장하지 않고, 대신 등록기업인 미디어솔루션을 통해 단시간 안에 입성이 가능한 우회 상장을 택한 것이다. 한화증권 이영곤 책임연구원은 “2년 전부터 우회 상장을 통한 간접 상장 열풍이 코스닥 시장에서 불고 있는데, 재벌기업 3세들이 우회 상장을 통해 기업을 확장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구본호 붐’ 이후 또 다른 재벌 3세가 투자하고 있는 다른 종목을 찾아보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또 “구본호씨의 경우 LG그룹 쪽은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반면 시장에서는 LG 3세라는 점 때문에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데, 진정으로 사업을 통해 검증받고 승부하겠다면 본인이 스스로 ‘나를 LG그룹과 연결짓지 말아달라’고 짚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씨 외에도 코스닥 시장을 재벌 2·3세 효과로 들끓게 하는 이가 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일가다. 코스닥 등록기업인 에이에스이(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는 지난 1월11일 홍 회장의 2세인 홍정도·홍정인씨가 일부 지분을 인수했다는 소식에 4번이나 가격제한폭까지 급등했다. 물론 삼성그룹을 배경으로 한 ‘홍석현 효과’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에이에스이 관계자는 “회사 총 매출의 45% 정도를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있다”며 “회사는 ‘홍정도·홍정인’이란 이름만 공시 내용에 넣었을 뿐인데 몇 분 지나지 않아 시장에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2세들’이 투자했다는 소문이 확 퍼졌다”고 말했다.
에이에스이의 최대주주는 바이오 벤처기업인 MCTT(홍 회장 일가가 주요 주주)로 바뀌었는데, 이 과정에서 홍정도·홍정인씨는 에이에스이의 주식 10만5천 주와 10만3천 주를 각각 취득(총 5.6%)했다. 투자 금액은 홍정도씨가 9억8700만원, 홍정인씨가 9억6900만원이다. MCTT 관계자는 “홍 회장 일가는 지난해 11월22일 에이에스이와 지분 양·수도 계약을 맺기 ‘조금 전에’ MCTT에 투자해 주요 주주 지위가 되었다”며 “MCTT는 에이에스이를 통해 우회 상장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먼저 얘기가 돌았다”
홍 회장과 그 자녀들은 지난해 11월에도 코스닥 등록기업인 에스티씨라이프의 주식을 취득해 수백억원의 평가차익을 거뒀다. 불과 1500원대에 머무르던 주가가 지난해 10월 홍 회장 일가의 투자 소식에 8620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에스티씨라이프에 60억원을 출자해 전환사채를 인수했고, 정도·정인·정현씨 등 홍 회장의 세 자녀도 에스티씨라이프 지분 17.5%를 보유하고 있다. 에스티씨라이프의 공시 내용을 보면 주요 주주인 홍정도(지분 15.74%)씨의 직업은 ‘회사원’으로 돼 있다. 액티패스와 에이에스이·에스티씨라이프 쪽은 한결같이 “우리가 지분 투자한 사람(구본호 및 홍석현 일가)이 LG가문 3세라거나 중앙일보 회장의 자녀들이라고 바깥에 밝힌 적은 없다. 단지 시장에서 LG 3세니, 홍 회장 자녀들이니 하는 얘기들이 먼저 돌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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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바뀐 보유 주식 순위
지난해 증시 부침에 따라 재벌 3세 중 1위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지난해 증시 부침에 따라 재벌 2·3세의 상장사 보유 주식 평가액 순위도 크게 바뀌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2006년 12월28일을 기준으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1조1606억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1년 전에 비해 120.2% 증가한 규모다. 정 부회장은 재벌 3세 중 유일하게 주식평가액 1조원을 돌파했다. 신세계의 주가가 급등한 데다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에게서 보유 지분을 증여받았기 때문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부회장의 주식 평가액도 현대백화점의 주가 상승에 힘입어 전년에 비해 7.7% 늘어난 3308억원에 달했고, 박성용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박재영씨의 주식 평가액도 전년에 비해 53% 늘어난 1253억원이었다.
반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의 주식 평가액은 2005년에 한 때 약 1조원에 육박하기도 했으나 지난해 4286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지난해 기아차와 글로비스 등 계열사들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 사장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지난 1년 간 무려 52.44% 급락하며 재벌 3세 중 가장 큰 평가손을 입었다. 정 사장은 2005년 12월 말 그가 최대 주주로 있는 글로비스가 상장되면서 4년여 만에 투자금의 100배 가까운 기록적인 주식 평가이익을 내, 삼성전자 이재용 전무(2005년 말 보유주식 평가액 6288억원)를 제치고 재벌 3세 중 보유주식 평가액 1위에 오른 적도 있다.
이재용 전무의 주식 평가액도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으로 1년전에 비해 18.7% 줄어든 5152억원에 그쳤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 LG전자 대리의 주식평가액도 1546억원으로 7.18% 줄었다. 한편, <포브스코리아>에 따르면 2006년 10월 구본호씨와 함께 미디어솔루션 지분인수 때 투자했던 구본천(43·구자두 LG벤처투자회장의 아들) LG벤처투자 사장의 주식 평가액은 435억원(2006년 1월 20일 현재)으로 한국의 400대 주식 부자 중 368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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