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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금감원을 쪼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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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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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예산처의 ‘금감위 확대’ 시나리오 파문… 감독체제 개편 과정서 금융소비자는 뒷전

사진/금융감독체계 개편작업이 논란에 휩싸였다. 금감원 국·실장급 간부들까지 참여해 인원·조직 축소 방침을 규탄하고 있다.
지난 2월27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청사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실장급 간부들까지 포함한 700여 금감원 직원들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리고 대대적인 궐기대회를 연 것. 노조를 중심으로 한 일선 실무직원들의 정부성토대회는 간혹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국장급 간부들이 비대위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행사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이날 궐기대회는 금감원 윗선에서 적극적으로 뜯어말리는 와중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이채로웠다.

금감원 국장급 간부들도 궐기대회에 참여

일반회사로 치면 경영진에 가까운 국장들까지 노조원들과 나란히 집회장에 나오도록 한 직접적인 ‘불씨’는 기획예산처에서 생산된 15쪽짜리 문건이었다. 금감원 노동조합은 관계요로를 통해 이 문건을 빼내 공개함으로써 금감원을 ‘쑤신 벌집’으로 만들어놓았다. ‘금융감독체제 효율화 방안’이란 제목이 붙은 이 문건은 금감원의 감독기능을 금감위로 대거 옮기는 것을 중심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 결과 금감원의 인원·조직은 대폭 축소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금감원 직원들의 반발은 단지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집단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일까?

금융감독체제 개편작업의 출발은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감원은 ‘정현준 사건’, ‘진승현 사건’ 등 각종 금융사고로 코너에 몰려있던 터였다. 이를 계기로 금융감독조직을 전면적으로 뜯어 고쳐야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재정경제부 주도로 감독체제 개편작업이 시작됐다.

재경부는 지난해 10월말 국무회의 보고를 통해 기획예산처 주관으로 금융감독체제에 관한 근본적인 쇄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한림대 윤석헌 교수를 팀장으로 태스크포스팀(실무팀)이 꾸려져 시안이 작성됐으며 한 차례 공청회도 거쳤다. 또 12월27일에는 민관합동의 금융감독조직혁신위원회(위원장 이재웅 성균관대 부총장)가 짜여져 지금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분야별 쟁점사항에 대한 논의를 벌였다. 기획예산처의 문건은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담아 정리한 것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획예산처의 정리작업이 종합 차원을 넘어 공무원 조직인 금감위에게 유리하게 변질됐다는 의혹이 짙다는 점이다. 이는 재경부의 주문에 따라 기획예산처가 개편 실무작업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미 어느정도 예상됐던 일이기도 하다. 재경부, 기획예산처, 금감위 모두 공무원조직으로 ‘가재는 게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 문건에서 핵심을 이루는 금감위·금감원조직 개편방안에서 이런 예상은 현실로 드러났다. 기획예산처는 개편안에서 금감원의 상위직급 및 감독정책관련 조직·인력(11개국 411명)을 축소하도록 했다. 반면, 금감위에 대해선 감독·조사 정책기능강화를 위해 기구를 증설하고 인력을 증원토록 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금감원에 대해선 대략 3분의 1에 가까운 조직·인력을 감축하고, 공무원조직인 금감위의 경우 거꾸로 조직·인원을 늘리도록 한 것이다.

물론, 금감원에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따라 조직개편안의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다. 개편안에 대한 평가의 잣대는 금감위도, 금감원도 아닌 ‘금융소비자의 편익’이어야 한다. 금감위 또는 금감원에 유리한지, 아닌지는 감독체제의 바람직한 방향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밥그릇 싸움의 차원일 뿐이다.

금융감독체제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똑 떨어지는 ‘정답’은 사실 없다. 각계의 의견을 모으는 공청회를 열고 민간합동의 추진위원회를 띄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따라서 기획예산처의 방안에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제시된 다양한 의견이 충실하게 반영돼야 마땅했다. 기획예산처쪽은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 등을 충분히 반영해 이번 방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각계 의견 무시한 밥그릇 싸움 양상

사진/"누구를 위한 금융감독조직 개편인가?" 금감원 직원들이 기획 예산처 문건에 반발해 자율복장 차림으로 일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지난해 10월 발족한 태스크포스팀은 금감위·원의 통합·분리여부, 민·관 혼합여부 등 2가지 기준을 축으로 삼아 4가지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서 제시된 방안은 △금감위·원을 통합, 민간합동조직화하는 제1안 △금감위원장과 금감원장의 겸직을 분리하는 제2안 △현행 체제를 유지하되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제3안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 정부조직화한다는 제4안 등이다.

태스크포스팀에서 마련한 이런 시안을 놓고 기획예산처 주관으로 공청회를 연 결과, 제1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학계 대표를 비롯한 토론 참가자들은 중장기적으로 금융감독업무는 순수 민간기관이 맡는 것이 낫다는 견해를 표시했다. 일상적인 금융감독업무를 공무원조직으로 이관하는 것은 금융감독기능의 전문성과 시장성을 크게 해치는 것으로 시대역행적이란 점에서였다.

민간합동의 10명으로 꾸려진 금융감독혁신위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감독조직혁신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태스크포스팀에서 제시한 4가지 방안 중 1안, 3안으로 좁혀졌는데, 민간위원들은 1안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는 “위원회에선 1안이냐, 3안이냐에 대한 결론도 못냈는데, 기획예산처안에 따른다면 3안 중심으로 세부내용이 짜여진 셈”이라고 허탈해했다.

학계대표로 감독조직혁신위에 참여한 또다른 위원도 “금융감독에 종사하는 이들이 민간 금융기관의 배경 및 금융 노하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1안을 수정한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정부 개편안은 이와 전혀 다른 것같다”며 의아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청회, 위원회는 구색맞추기나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각의 비판이 헛말이 아님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공청회나 위원회에도 어차피 이해당사자들이 포함돼 있어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고 한다면, 다른 근거가 있다. 지난 2월6일 국제통화기금(IMF) 서울사무소의 데이비드 T.코 소장이 금융감독조직개편과 관련, 진념 재경부장관의 요청에 따라 IMF쪽의 의견을 담아 보낸 편지가 그것이다. 코 소장은 이 편지에서 “태스크포스팀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한다”며 “금감위와 금감원은 단일기관으로 합치는 것이 적절하고 통합기관의 기관장은 정책수행상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책실행에서 독립성을 갖기 위해선 기관장과 임원이 정부관료로 임명되지 않아야 하며 한국은행 총재와 비슷한 지위가 보장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느모로 보나 기획예산처의 문건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금감위 급속 팽창 뒤에는 뭐가 있다

금감위 출범 당시 ‘금융감독기구 설치법’은 ‘금감위의 예산·회계 및 의사관리 기능수행을 위해 최소한의 공무원을 둘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국내 금융산업이 정부의 간섭과 규제라는 관치금융으로 인해 경쟁력을 잃었고 결국 IMF 금융위기를 불러들인 단초로 작용했다는 여론을 반영한 조처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지난 99년 5월 금감위 공무원 조직의 인원과 기능을 제한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정부조직법 부칙 조항에 ‘금감위의 조직 및 정원에 관해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내용을 슬그머니 끼워넣었다.

이후 금감위 조직은 급속히 팽창했다. 출범 초 금감위 공무원조직은 19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무려 61명(1실 2국 9과 1담당관)에 이르고 있다. 3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몸뚱이가 3배이상 불어난 것이다. 이번에 노출된 기획예산처 개편안에 따르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늘어나는 것으로 돼 있다. 꼭 금감원이 아니라고 해도 관료들의 ‘밥그릇 키우기’라는 비난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사실 금융감독조직 개편작업은 출발 때부터 말이 많았다. 각종 금융사고를 빌미삼아 공무원들을 위한 일자리를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진작부터 제기됐던 것이다. 이후 진행된 모양새는 이런 의혹이 터무니없는 게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정부 설명대로 기획예산처 문건은 확정된 방안이 아니다. 감독조직혁신위 논의 등 앞으로 거쳐야할 여러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금융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진행되는 감독체제 개편작업을 눈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이유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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