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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국민연금, 갑자기 맞춰진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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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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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연금 개혁안 논의 불붙고 연석회의는 ‘사회적 대타협’ 모색… 여야가 공방 벌여온 기초연금도 도입으로 가닥 잡히며 정치적 계산만 남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2003년 정부가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출한 뒤 3년간 지지부진하게 끌어온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국민연금 개정안은 무려 30여 개에 이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1월6일 국회 법안심사소위를 구성해 국민연금 개정안을 본격 논의한다. 이어 11월 중순에 1차 의견 접근을 시도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2차 개혁안 합의에 탄력이 붙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장기운용전략 기획단 출범식에 참석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11월에 연금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12월 중순까지 국민연금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 아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내년 대선이 닥치면 연금 개혁 방향이 틀어져버릴 수 있다고 보고 가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유시민안’ 세일즈 대장정

이처럼 국회에서 연금 개혁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는데, 한쪽에서는 연금 개혁 ‘사회적 대타협’이 시도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공동의장 한명숙 국무총리)가 국민연금 개혁을 공식 의제로 채택해 9월 중순부터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각계각층의 이해 당사자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사회협약’ 방식의 연금 개혁안이 나온다면 국회 논의는 한층 탄력을 받게 된다. 연금 개혁안을 둘러싼 각 정당의 견해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연석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실무협의회를 중심으로 연금 개혁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용범 연석회의 부단장은 “연석회의의 사회협약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보수와 진보, 자본과 노동 할 것 없이 다 참여하고 있는 연석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국회가 합의 내용을 대부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석회의에는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급, 경제계·노동·농민·여성·종교·시민사회 대표 등 37명의 민관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쪽은 “연석회의에서의 사회적 합의 일정과 상관없이 국회에서 일단 연금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그 내용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재정 안정화 △사각지대 해소 △기금운용체계 개편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형평성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전개돼왔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사각지대 해소와 재정 안정화 문제다. 크게 보면, 그동안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보험요율과 급여율만 조정하자는 정부의 ‘부분적 개혁안’과 이번 기회에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기초연금’을 도입하자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구조적 개혁안’이 대립해왔다. 물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기초연금 도입이 미래의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유시민 장관이 ‘기초노령연금’ 도입을 전격적으로 내놓았고, 이에 따라 이제 한나라당과 절충하는 문제만 남은 것으로 여겨졌다. 한나라당의 기초연금이나 보건복지부의 기초노령연금이나 이름만 약간 다를 뿐 사실상 기초연금 성격의 제도를 도입한다는 점에서는 같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유 장관은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를 두루 찾아다니며 자신의 방안을 세일즈하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국민연금의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국회의 연금 개혁 논의도 가속도가 붙게 된다. 지난 6월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의 사회협약 체결식.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유시민 장관이 내놓은 안을 곧바로 받지 않고 머뭇거렸고, 그래서 자신의 안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자 유 장관은 “여당이 나를 뒤에서 도와주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 하지만 10월3일 결국 열린우리당 강기정 의원 등이 중심이 돼 유시민 장관안을 약간 수정(기초노령연금 수급 대상자를 45%에서 60%로 확대)한 연금 개혁안을 전격 제출하면서 연금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연말 타결을 놓고 고심 중인 한나라당

사실 국민연금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는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있다. 연금이 꼭 필요한 저소득층 노인 대부분이 보험료를 낼 형편이 못 돼 가입도 못한 채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전국민 연금시대라고 하지만 현재 납부 예외자가 42%에 이르고, 미래에 전체 노인 인구의 57%가 잠재적 사각지대에 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각지대 해소 방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기초(노령)연금’이다. 그런데 명칭이야 어쨌든 기초연금을 도입한다는데는 여야와 정부 사이에 사실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표 참조). 바꿔말해 지난 3년간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성과는 사각지대 문제와 관련해 선언적 의미를 넘어 구체적인 안(기초연금)이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조세를 기반으로 정부 재정지출에 의해 지급되는 것이고,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나라 모든 65살 이상 노인들한테 지급된다. 따라서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면 국민연금은 크게 사회보험 방식의 기존 국민연금과 조세를 기반으로 하는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양대 축으로 설계된다. 이제 남은 쟁점은 기초연금의 수급 대상자 범위와 급여율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또 기초연금 도입과 맞물려 국민연금 급여율을 어느 정도로 낮출 것인지가 핵심이다.

지난해 11월 열린 국회 연금특위. 현재 국회에 제출된 국민연금 관련 법안은 30여 개에 이른다.(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적립금이 아니라 조세 방식의 기초연금을 도입하면 후세대의 부담을 그만큼 줄일 수 있다. 정부 일반회계 재원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하면, 대신 국민연금 급여율을 40∼50%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없이 현행 국민연금 급여율 60%를 유지하려면 보험요율을 20%로 대폭 올려야 하고, 급여율을 40%로 낮춘다면 보험요율을 13%(현행 수정적립 방식 기준)로 더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연말 국회에서 연금 개혁안 타협은 이뤄질 수 있을까? 한나라당의 경우 연말까지 연금 개혁안을 타결지을 것인지 아니면 연금 개혁 문제를 내년 대선까지 끌고 가는 것이 유리한지를 놓고 내부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은 2005년 초에 자신들이 가장 먼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기초연금 도입을 제안했고, 그래서 노년 인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연금기금 고갈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보험료율도 현행 9%에서 오히려 7%로 내렸다. 아무튼 한나라당은 기초연금 브랜드는 자신들이 최대 지분을 쥐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쪽은 “우리가 먼저 기초연금을 주장했는데, 열린우리당과 정부가 이를 덥석 받을 수도 없고 그래서 내놓은 것이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새로운 이름”이라며 “그럼에도 열린우리당이 방향을 많이 튼 것(기초연금 도입)은 환영한다”고 말했다.

결정적 아킬레스건, 재원 마련

그러나 한나라당에도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처음에 한나라당의 기초연금 제안은 국민연금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노인들한테 평균소득의 20%까지 기초연금을 준다는 획기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기초연금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취약한 상태다. 애초에 한나라당은 부가세 인상을 통해 기초연금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공청회에서 기업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뒤 재원 문제는 쑥 들어가고 말았다. 사실상 기초연금 도입 선언만 해놓은 채 지난 2년간 실질적인 논의를 못해온 셈이다. 특히 기초연금 재원을 충당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한데도 한나라당은 그동안 감세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모순이 빚어지고 있다. 이른바 ‘연금 정치’를 하면서 대선까지 계속 기초연금을 카드로 써먹다가는 허구적인 성격이 드러나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한켠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번에 정부·여당과 절충을 통해 연금 개혁을 타결짓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 떠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기초연금을 일찌감치 꺼내 대국민 선전효과를 이미 충분히 거뒀다고 보는 쪽도 있다. 한편, 열린우리당에서는 기초(노령)연금 도입으로 연금 개혁안이 타결되고, 합의안을 국민들이 지지한다면 최대 수혜자는 한나라당이 될 것이라는 계산도 복잡하게 굴리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연석회의 쪽의 경우 사회적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국회에서 연금 개혁 논의를 중단하고 기다려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정치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들고 있지만, 연말로 가면서 바짝 속도를 내고 있다.


[인터뷰]“이달 안에 합의서 초안 나올 수도”

사회적 합의 도출되면 국회 논의의 획기적 돌파구 될 것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연석회의도 연금 개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빨리 내놓아야 할 것 같은데?

=국회는 법을 다루고 의결하는 기구로서 연금 개혁의 주체다. 반면 연석회의는 사회적 대화 기구다.

고령화·저출산 시대가 너무 빨리 닥치면서 연금 개혁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연금 개혁 법안이 제출된 지 3년이 지나도록 실질적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그래서 국민연금과 관련된 모든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다. 물론 국회에서 속도를 내 논의한다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연석회의의 연금 개혁 사회적 논의는 1차 목표가 국회의 입법 논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재정 안정성은 결국 보험요율 증가와 급여율 인하를 수반하게 된다. 그래서 정치권이 국민들의 눈치를 보면서 개혁 논의를 제대로 못해왔다. 연석회의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노동, 경제 5단체, 참여연대, 여성, 종교단체, 대한노인회 등 연금 논의의 부담자와 수혜자들이 다 참여하고 있다. 뜨거운 감자이지만 국민적 반발 때문에 국회가 손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는데, 여기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면 국회 논의의 획기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

현재 연석회의에서는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9월 중순부터 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37개 단체의 연금 관련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국민연금 개혁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각 단체가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자체 의견을 제출했다. 물론 사회적 합의 도출은 국회 입법을 겨냥하고 있다. 그래서 연석회의 논의에 각 정당의 정책 전문가들이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연석회의에 참가하는 각 단체의 실무자들을 모두 모아 오는 11월12일부터 열흘간 유럽에 가서 연금 개혁 현장을 둘러볼 예정이다. 사회적 합의의 주체들이 한데 모이므로 현지에서 수시로 토론이 이뤄지고 쟁점이 압축될 수 있다. 잘되면 합의서 초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연금 개혁 사회적 타협안이 나온다면 어느 정도 수준이 될 수 있는가?

=국민연금 급여율과 보험요율 조정안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까지 내놓자는 주장도 있고, 큰 방향의 개혁 틀과 원칙 정도만 합의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개혁에 특별한 왕도가 있는 건 아니다. 큰 원칙과 방향에 합의하고 연금제도에 관한 구체적인 수준의 합의도 시도할 것이다. 연석회의 참여 단체들도 그런 수준의 구체적 합의를 원하고 있다. 각 단체들이 재원 마련과 부담까지 고려해서 책임 있게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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