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재원 조달과 수급 대상 둘러싼 정부·여·야 간의 시각차…기존 노인복지법 벗어나지 못한 구상에 차라리 국민연기금 활용 주장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여·야·정부가 기초(노령)연금 도입에 사실상 합의했으나, 결국 관건은 ‘돈’이다. 물론 기초연금의 재원 마련 방안을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넣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초연금 도입에 합의하려면 그 이전에 노인한테 기초연금을 줄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기초노령연금은 노인 인구의 60%(2006년 7월 현재 289만 명)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수급·차상위계층 노인은 매달 10만원, 그 밖의 노인은 매달 7만원을 지급하고, 국민연금 급여율 수준을 2008년부터 50%로 낮추는 방안이다.
기초연금은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소멸하고 말 것인가? 지난 6월 국회에서 김호식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맨왼쪽)이 답변하고 있다.(사진/ 연합 이상학 기자)
이 안에 따라 기초노령연금을 주려면 내년에 당장 2조2천억원이 필요하다. 반면 한나라당 방안은 기초연금 급여율을 내년에 평균소득의 9%부터 시작해 20%(2028년)까지 올리는데, 당장 9조3천억원이 든다. 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은 급여율을 내년 5%부터 시작해서 매년 0.5%포인트씩 올려 2028년에 15%까지 도달하는 안이다.
정부 45%와 한나라 100%의 차이
물론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들한테 주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전체 노인 인구의 45%, 열린우리당은 60%, 민주노동당은 80%(상위소득 20% 노인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 한나라당은 100%에게 기초(노령)연금을 주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한나라당도 일부 상위소득 노인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금은 누구나 다 내는 것인데, 고소득층이란 이유만으로 기초연금 수급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나라당 쪽은 “수혜 대상자과 급여율 수준 등 숫자는 예산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다”며 “무조건 밀어붙인다면 타협도 안 되고 깽판 놓는 것에 그칠 뿐이다”고 말했다. 사실 한나라당이 우리나라 65살 이상 모든 노인들한테 기초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고집하다가 타협이 무산될 경우 열린우리당과 정부안에 의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중하위층 45∼60%의 노인들까지 기초연금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비판의 불똥이 한나라당에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초연금 급여율을 보면, 정부·여당은 평균소득의 5%, 한나라당은 20%, 민주노동당은 15%를 목표치로 제안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조기원 연금정책팀장은 “한나라당안처럼 한 달에 평균소득의 20%나 노인들한테 기초연금으로 준다면 모두 좋아하겠지만 수십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1인 최저생계비 이하 노인들(전체 노인 인구의 45%)에게 한 달 8만원씩 주는 방안을 내놓았다. 조 팀장은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보험료를 내서 운영하는 방식이므로 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각지대 노인들을 위한 대책은 연금기금이 아닌 별도의 시스템으로 국가가 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연금은 경로연금 확장판?
그러나 복지부의 기초노령연금은 연금이 아니라 기존의 공적부조를 확대한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정부 예산 책정에 휘둘려 수시로 바뀔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의 기초노령연금 역시 국민연금 시스템 내에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2005년에 (국민연금법이 아닌) 노인복지법상 ‘경로연금’으로 약 60만 명(전체 노인의 14%)이 3만∼5만원을 받고 있는데, 이 대상자를 4배로 늘리고 금액도 2조원대로 확충하는 방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건호 민주노동당 정책전문위원은 “민주노동당의 기초연금안이 강력한 조세 개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면서 점차 싹이 ‘성장하는’ 기초연금 줄기세포라고 한다면, 한나라당안은 재원 마련 비전이 없는데다 오히려 감세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허구적인’ 줄기세포이고, 열린우리당안은 처음에는 급여율이 5%이지만 30년 뒤에는 그 절반인 2.5%로 떨어지게 되는 ‘소멸하는’ 줄기세포”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안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 자연히 기초노령연금을 받는 노인이 줄어들게 될 것이란 예상을 배경에 깔고 있다.
현행 국민연금은 가입자 개인의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전체 가입자의 3년간 평균소득을 기초로 하는 ‘균등부분’과 개인의 평균소득을 기초로 하는 ‘소득비례부분’을 혼합해 급여액을 산정한다. 균등부분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통해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가입자 간의 급여 수준 격차를 줄여준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기초연금을 도입하는 대신 이 균등부분을 아예 없애버리고 소득비례만으로 국민연금을 주는 방식이다. 앞으로 연금 개혁 논의에서 큰 쟁점으로 등장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건호 전문위원은 “국민들이 잘못 알고 국민연금을 불신하지만 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통해 저소득층일수록 낮은 보험요율와 높은 급여율을 누리는 유리한 사회연대 임금이다.
국민연금은 공공의 적이 아니라 사회연대 임금이다. 지난 2004년 5월 광화문에서 열린 국민연금 반대 촛불시위.(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사업장 가입자의 경우 민간 생명보험의 수익비(받을 총연금액/낸 총보험료액)가 0.8인 데 반해 국민연금은 4배를 넘고, 지역 가입자의 경우도 2.5배의 수익비를 얻는다”며 “국민연금의 장기 지속은 기초연금 재원 조달을 위한 조세 개혁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세금탈루 방지, 조세감면특례 축소, 소득세·법인세 강화 등 조세 개혁으로 세수를 확대해야 기초연금을 정착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기초연금에 국민연금기금 쓰자?”
그런데 기초연금을 도입하더라도 재정 부담이 큰 조세 기반이 아니라 국민연금 보험 적립금을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중앙대 김연명 교수(사회복지학)는 “국민연금을 그대로 두면 국내총생산(GDP)의 최고 50%에 가까운 연금 기금이 적립된다. 현재 160조원 이상 쌓여 있는 국민연금기금이 우량 주식과 우량채권 상당 부분을 독식하게 되고, 나중에 적립금을 가입자들한테 지급하기 위해 현금화할 때 수조원대의 주식·채권·부동산을 대거 팔아야 하는데 그러면 경제에 큰 충격이 발생한다”며 “정부가 기금 고갈의 무서움을 홍보하고 있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서 기금 고갈이란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한 해 적립되는 국민연금 15조원 중에서 약 5조원을 기초연금 재원으로 쓰면 과도하게 쌓이는 적립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국민연금은 노후 빈곤을 막기 위한 것이지 재정 안정화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연금보험료를 낸 사람은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나중에 후세대의 누군가가 내는 보험료를 통해서든 조세를 통해서든 부양받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말 국민연금 적립금은 192조원으로 GDP의 20%에 달하고, 2025년이면 GDP의 40∼50%까지 늘어난다. 기금 고갈이 오기 전에 우선 ‘과대 기금’ 문제에 부닥치게 된는 셈이다. 물론 김 교수의 주장은 “지금 적립금 고갈이 걱정인데, 그나마 쌓인 적립금까지 까먹자는 얘기냐”는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
 | |
민노당 ‘노동의 약속’ 선언한다노동자 연대로 재원 마련해 저소득자 지원하는 프로젝트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민주노동당이 조만간 국민들에게 ‘노동의 약속’을 선언할 예정이다. 월 91만원 이하 저소득 노동자 423만 명과 이들이 다니는 기업 그리고 지역 가입자 221만 명(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농어민)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노동자가 지원해주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재원은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 노동자들이 3년간 3조705억원(연간 12만8천원×795만 명=1조235억원)을 모아 마련하기로 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향후 가입기간 3년간의 급여율 중에서 미래에 받을 연금 급여를 1.5%포인트 인하해 재원 마련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 돈으로 저소득 노동자·차상위계층·농어민에게는 본인부담 보험료(4.5%)를 5년간 전액 지원하고, 해당 기업에는 보험료 4.5% 중 3분의 1을 지원하기로 했다. 5년간 소요되는 총 재정은 12조2천억원인데, 나머지는 고소득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누진율 적용, 정부 일반회계 등으로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민주노동당은 또 소득연대 전략으로 조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근로소득세 추가 부담을 결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미래 사회의 복지 확대와 일자리 창출 재원 마련을 위한 노동운동 프로젝트인데, 이 방안은 대선 전략으로 기획될 예정이다. 민주노동당 오건호 정책전문위원은 “노동자들이 국가와 자본에 요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책임·연대를 결의하고, 당이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를 설득하고 노동조합은 내부 토론을 거쳐 사회 전체로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구상”이라며 “그러면 자본과 부유층에도 전반적 증세를 요구하고 자영업자에게도 공평과세를 설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