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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보험사는 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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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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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사기 급증해 국가적 범죄로 대두… 금감원 조사권 확보 놓고 의견분분

사진/보험사기 건수가 늘어나고 규모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보험사기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영화<하면 된다>.
지난해 11월 경기경찰청은 희대의 보험사기단 50명을 검거했다. 대리 운전기사, 보험설계사, 공익근무 요원 등으로 조직된 이 사기단은 수원지역 일대에서 음주차량 등을 상대로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거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는데도 상해진단서를 발부받는 수법으로 보험금을 대거 타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보험회사로부터 사기로 받아낸 보험금은 확인된 것만 무려 3억2300만원(총 95회)이었다. 이 사건은 보험범죄 단일조직으로는 사상최다 기소(구속 5명, 불구속 45명)라는 기록을 남겼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지검은 산재 및 교통사고를 꾸며낸 보험사기범 33명에 대한 수사를 벌여 이 가운데 20명을 구속하고, 1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10월 하순부터 건설업체에 위장 취업한 뒤 곧바로 고의적인 산재사고를 일으킨 다음, 우발사고인 것처럼 속여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보상보험금을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또 산재사고 조작 전에 여러 건의 보장성 보험에 가입, 보험회사들로부터 보험금을 받아 챙긴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해 4700여건에 314억원은 빙산의 일각


보험금 2천만원 때문에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비정(非情)의 아버지, 보험금을 타내려 스스로 다리를 절단한 사건…. 이것은 외환위기 직후 잇따라 터져나왔던 이른바 생계형 보험범죄들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최근 들어선 이런 엽기적인 생계형 보험범죄 사례가 불거지지 않아 보험사기가 잠잠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론 보험사기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으며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사기수법도 더욱 다양해지고 조직화하는 특징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집계 결과, 지난 한해 동안 적발된 보험사기사건은 4726건, 금액으로는 314억원이었다. 지난 97년 1951건, 253억원에 비해 특히 건수면에서 크게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99년(3876건, 443억원)에 비해 금액은 줄었으나 건수는 역시 적잖이 늘었다.

더욱 문제는 이런 숫자가 보험사기의 전모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글자 그대로 이는 ‘적발된’ 사기사건일 뿐으로 ‘빙산의 한 모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보험사기 규모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보험사기 규모는 외국의 손실률 사례를 준용해 어렴풋이 추정만 할 뿐이다. 여기서 손실률이란 총보험금 지급액 가운데 지급되지 말았어야 함에도 사기로 인해 잘못 빠져나간 금액의 비중을 일컫는다. 금감원에 따르면 보험사기로 인한 손실률은 미국이 10%로 가장 높고 프랑스 6%, 영국 3.3%, 독일 3%, 일본 1% 등이다. 이를 감안해 손실률을 비교적 낮게 5%로 잡아도 지난 한해 국내에선 5300억원에 이르는 보험사기가 이뤄졌을 것이란 게 금감원의 추정이다. 더욱이 이는 손해보험만 셈법에 넣은 것이어서 손실률을 현실화하고 생명보험까지 포함하면 사기 규모는 눈덩이처럼 늘어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기 건수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는 것과 함께 주목할 점은 조직화하는 낌새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몇몇이 짜고 보험금을 타내는 전통적 수법에서 한걸음 나아가 근래 들어선 의사를 비롯한 병원 관계자가 끼어드는 것도 예사이며, 보험설계사까지 사기단에 가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이춘근 제도개선팀장은 “최근의 보험사기에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은 조직화하고 수법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보험설계사가 사기단에 걸려들거나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대학생이 끼어드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보험업계나 금융감독 당국에선 보험범죄를 비롯한 보험사기를 흔히 ‘고요한 대재해’(The Quiet Catastrophe)라고 부른다. 이 말에는 보험사기의 독특한 특성이 배어 있다. 일반적인 사기사건의 경우 피해 범위가 특정인에 한정되는 데 비해 보험사기는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 선의의 불특정한 보험가입자들로 피해가 넓게 퍼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보험회사의 건전 경영을 위협하고 사회 전반의 도덕 불감증(모럴 해저드)을 유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보험설계사 가담하는 지능적 수법 늘어나

사진/보험사기 수법이 다양해져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손해보험협회 보험범죄대책반의 활동 모습.(강창광 기자)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금융 선진국에선 보험사기를 탈세 다음으로 중대한 사회·국가적 경제 범죄로 여겨 이를 막기 위한 별도의 독립기구를 두고 있을 정도라는 게 금감원쪽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보험사기를 일반사기와 별 다름없이 취급하고 있으며 금융당국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보험사기에 따른 ‘예상 비용’(법적 처벌 강도X들킬 확률)보다 사기로 얻을 수 있는 ‘기대 이득’을 높여 보험사기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금감원은 이런 실정을 감안,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조사권을 확보·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으며 최근 들어 이를 공식화했다.

사실, 보험사기에 대한 금감원의 조사권은 이미 현행법에도 명시돼 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사기혐의가 포착된 경우 금감원이 병원, 자동차정비공장 등 보험사고 이해 기관의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과태료나 과징금 부과 등 법적 제재를 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없어 있으나마나한 조항이다. 금감원이 이번에 조사권을 갖겠다고 나선 것도 정확히 말하면 처벌조항을 두어 조사권의 실효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금감원 주장대로 조사권이 확보되면 보험사기를 눈에 띄게 줄일 수 있을까. 보험사기는 의도성 유무나 범죄성의 강약에 따라 경성(硬性)과 연성(軟性) 보험사기로 나뉜다. 경성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범죄성이 강한 그야말로 보험범죄를 일컫는다. 이에 반해 연성은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사고를 당한 뒤 사기적인 수법으로 보험금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타내는 것을 말한다.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했으면서도 입원 기간을 최대한 늘려잡고, 증상을 과장하는 예가 대표적인 연성 보험사기로 통한다.

금감원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연성 사기이다. 경성 보험사기는 범죄행위로 검찰·경찰의 수사권을 동원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며, 금감원의 몫은 연성에 한정된다는 판단인 것이다. 물론 경성 사기사건에 대해서도 검찰·경찰과 협조해 조사활동을 벌일 것 또한 배제하지는 않는다.

연성 사기 엄정한 대처 촉구 목소리

사진/보험사기는 보험료 인상요인으로 작용해 다수 보험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는 수법으로 보험금을 타내려는 사람들도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금감원 이춘근 팀장은 “현재 경성과 연성 보험사기의 비율은 대략 1 대 5로 연성 보험사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보험회사에서 돈 조금 더 타먹는 게 무슨 대수냐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며 “이런 환경 아래에선 그다지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되며 결과적으로 사기가 끊이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연성은 경성 사기보다 덮이기 쉽다는 측면도 있다. 해당 보험회사로선 사소한 개별건을 일일이 조사하는 데 따른 비용(인건비, 시간)을 감안해 중도에 포기하는 수가 많다. 연성의 줄기를 따라올라가다보면 경성 사기와 만나게 되는 일도 있고 두 가지 성격이 섞여 있는 경우도 적지않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겉보기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연성 사기에 대한 엄정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게 금감원쪽의 시각이다.

조사권이 확보된다고 해서 금감원이 장막에 가려진 사기사건을 속속 밝혀내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열 포졸이 한 도둑 못 잡는다’는 옛말처럼 하루에도 몇건씩 벌어지는 사기를 일일이 가려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렇지만 금감원에 조사권이 주어질 경우 보험사기의 적발 확률을 높이는 데서 나아가 보험사기에 대한 죄의식을 제고함으로써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지금도 일선 보험회사나 금융당국이 (조사권이 없다고 해서) 손놓고 있지는 않다. 각 보험사들은 별도 심사팀을 두어 사기 혐의가 있는 보험금지급 청구건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규모가 큰 보험사를 중심으로 특별조사팀(SIU)을 설치, 입원(입원 원인 및 과거병력 조사) 및 상해 조사(상해 사실확인 및 상해 정도 확인)를 실시하고 있다. 삼성생명의 경우 아예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팀을 별도 회사로 독립시켰다. SIS금융정보가 바로 그것. 이 회사는 삼성생명의 보험심사부에서 자회사로 분리된 뒤 지난해 2월 임직원 지주회사 방식으로 분사됐다. 삼성생명의 경우 보험금 심사 청구 등에 관한 조사 업무는 모두 SIS에 맡겨 처리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유도에 따라 업계 공동으로 보험사기에 대처하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7월 손해보험협회에 설치돼 가동중인 보험범죄 특별조사반 및 보험범죄 신고센터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만 조사권이 없는 상황에서 개별 회사 또는 업계 공동의 대처는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병원, 자동차 정비공장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기관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금감원 조사권, 검·경 수사권 침해 논란

금감원이 보험사기에 대한 조사권을 확보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재경부와 국회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게 우선적인 과제이다. 현재 재경부 실무진에는 금감원의 의사가 전달돼 있으며 법 개정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회 또한 보험사기를 줄이기 위한 것이란 명분을 감안할 때 그다지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금감원은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법무부와 검찰·경찰의 태도이다. 금감원의 조사권 확보를 검·경의 수사권 침해로 받아들여 반대하고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이 조사권을 갖는 것이 전적으로 옳은지를 판단할 명백한 잣대는 없다. 조사권 확보가 보험사기 감소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른 나라의 예로 보아 금융감독 당국이 보험사기에 대한 조사권을 갖는 게 전반적인 추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보험사기 적발 현황

구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적발건수
(증가율%)

1,951

2,684
(37.6)

3,876
(44.4)

4,726
(21.9)

관련금액
(증가율%)

25,336

29,587
(16.8)

44,273
(49.6)

31,421
(-29.0)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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