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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소주 전쟁 제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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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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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가 ‘참이슬 프레쉬’ 출시하며 ‘처음처럼’에 잠식당한 영토 회복 선언… 영업이익보다 점유율 노린 출혈경쟁 와중에 약주·청주 시장은 된서리 맞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진로가 지난 8월26일 알코올 20도의 벽을 무너뜨린 19.8도의 신제품 ‘참이슬 프레쉬(fresh)’를 내놓았다. 진로는 2005년에 서울·수도권 소주시장 점유율 93%, 전국시장 점유율 55%로 ‘난공불락’의 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2월 초 출시된 두산주류BG의 ‘처음처럼’이 강력한 돌풍을 일으키면서 시장지배력이 흔들리는 비상 상황까지 몰리고 있다. 진로의 전국 점유율은 6월 말 50.2%로 떨어져 절대강자 자리가 위협받고 있고, 서울·수도권 점유율은 6월 말 83.1%까지 크게 떨어졌다.

‘처음처럼’의 25% 점유율이 분수령


반면 두산의 서울·수도권 소주시장 점유율은 2005년 6.1%에서 올 6월 15.1%까지 치고 올라섰다. 두산주류BG 쪽은 처음처럼이 7월에 전국시장 점유율 10.1%를 돌파했고 수도권에서는 15.6%의 점유율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소주시장에서 순한 저도주 경쟁이 독하게 펼쳐지고 있다. 진로의 ‘참이슬’ 이벤트 장면.

진로 쪽은 “이번 신제품에 ‘소주 황제’ 진로의 자존심을 걸었다”며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서 소주의 맛을 유지한다는 건 꽤 어려운 기술이다. 참이슬 프레쉬는 소주 알코올 도수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20도까지 과감히 허물었다”고 말했다. 사실 진로는 강원도에 근거지를 둔 두산을 비롯한 지방 소주사들과 1 대 9로 싸우고 있는 격이다. 진로가 지난 2월 참이슬을 20.1도로 내린 ‘리뉴얼’ 제품을 내놓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또다시 참이슬 프레쉬를 내놓은 건 수직 상승 중인 처음처럼에 그만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처음처럼의 돌풍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진로가 ‘실지 회복’을 내걸고 반격의 칼을 빼든 셈이다.

진로는 기존 20.1도짜리 참이슬과 19도대의 참이슬 프레쉬 브랜드를 동시에 판매해 처음처럼을 양쪽에서 포위하는 작전을 펼 계획이다. 라이트한 맛을 선호하는 신세대층을 위한 참이슬 프레쉬와 중장년층을 위한 참이슬이라는 ‘투톱’ 전략인 셈이다. 처음처럼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애초에 진로는 “시장에서 항상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처음에는 반짝하지만, 처음처럼에 별다른 강점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다시 참이슬로 돌아올 것”이라며 “처음처럼이 알칼리 소주라고 광고하고 있지만 맛이 소주같지 않고 밍밍한 편이다. 술맛을 알고 소주를 많이 마시는 핵심 고객층은 여전히 참이슬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소주를 적게 마시는 라이트층이 처음처럼의 핵심 고객으로 형성되고, 많이 마시는 헤비 유저층까지 처음처럼이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단지 “신제품이기 때문에 마신다”는 것을 넘어 충성도 높은 처음처럼 고객들이 형성되는 등 처음처럼의 기세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과연 처음처럼이 진로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두산의 소주 역사상 최대 히트작인 ‘그린’이 90년대 중반 출시 4년 만에 시장점유율 20%에 이르는 등 큰 돌풍을 일으켰으나 참이슬 출시로 그린의 인기는 순식간에 꺾였다. 당시 사례가 이번에 되풀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산은 시장점유율 25%를 최대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2∼3년 안에 25%를 달성하면 참이슬과 진검 승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90년대 초 맥주시장의 2위이던 하이트가 천연 암반수를 들고 나와 OB를 누를 때도 점유율 25%가 분수령이었다. 사실 소주시장에서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동원해 단 한 번의 열풍으로 시장점유율 5%, 10%까지 올라설 수는 있지만 20% 이상은 마케팅 비용 투입만으로는 올라서기 어렵다고 한다.

처음처럼이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파격적인 출고 가격’이 가장 먼저 꼽힌다. 두산은 처음처럼의 출고가를 800원에서 730원(360㎖ 기준)으로 대폭 내렸다. 전국 각지에서 10개 소주회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360㎖ 기준으로 가장 싼 소주는 처음처럼이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에서 소비자 판매가격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특히 일반 음식점에서는 소주 360㎖ 한병을 시킬 때 참이슬이든 처음처럼이든 똑같이 3천원을 받기 때문에 손님이 소주를 주문하면 업소 쪽에서는 마진 극대화를 위해 될수록 처음처럼을 내놓게 된다. 식당에 소주를 공급하는 중간 도매상들도 똑같은 이유에서 업소 쪽에 처음처럼 구입을 권장하고 있다.

두산주류BG, 출고가 낮추며 가격차별화

두산주류BG 이정태 부장은 “후발주자가 공룡을 공격할 때 쓰는 전략이 주로 가격 차별화다. 우리는 판매량이 많지 않으므로 70원 낮춰도 손실이 크지 않지만, 진로 같은 시장 지배적인 사업자는 매출 규모가 크기 때문에 가격을 같이 내릴 경우 그만큼 엄청난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따라서 진로 쪽이 가격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진로는 참이슬 론칭 이후 줄곧 매출액 대비 5∼6% 정도를 마케팅 비용으로 썼으나 하이트맥주에 매각되면서 2005년에는 2.8%로 마케팅 비용을 크게 줄여야 했다. 특히 진로가 내년 하반기에 증권선물거래소 재상장을 앞두고 있는 터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펴기도 쉽지 않다.

두산 ‘처음처럼’의 돌품이 주류업계의 판도 변화를 낳고 있다. 처음처럼 이벤트 장면.

올해 영업이익 실적이 좋아야 상장 때 주가가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수익성 관리를 위해 제품 판매가격을 떨어뜨리기 힘든 상태인데, 실제로 진로는 이번에 참이슬 프레쉬를 내놓으면서도 출고가 800원(360㎖)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출고가 파격 인하 같은 강력한 마케팅 비용 투입 때문에 시장점유율의 대폭 증가에도 불구하고 두산의 영업실적은 오히려 적자로 전환했다. 주류BG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2006년 상반기에는 오히려 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두산주류BG는 올 초에 소주부문 마케팅비 예산을 260억원으로 책정했으나 처음처럼을 출시한 1분기에 이미 100억원가량을 집행한 상태다. 굿모닝신한증권 송지현 애널리스트는 “진로와 두산의 소주 전쟁은 ‘영업 수익’보다는 ‘점유율’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며 “이런 출혈 경쟁 속에서도 소주 시장은 2003년 9900억원에서 2005년 1조1300억원, 올해 1조2천억원(추정)으로 해마다 4~5%씩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진로가 이번에 참이슬 프레쉬를 내놓으면서 “천연 알칼리 소주”라고 표방했다는 점이다. 사실 소주는 19%가 알코올이고 80%가 물, 1%가 첨가물로 가장 중요한 건 물맛이다. 알코올 주정은 어차피 다른 곳에서 공급받는 것이고 첨가물도 규제를 받기 때문에 결국 물을 건드려 맛을 차별화할 수밖에 없다. 진로 쪽은 “대부분의 소주 제품은 정도의 차이일 뿐 근본적으로 태생이 모두 알칼리다. 처음처럼만이 세계 최초의 알칼리 소주라고 하는 (두산 쪽의) 광고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소주에서 알코올 도수 1∼2% 차이든 알칼리 수든 과연 대단한 차이가 있을까? 업계 관계자는 “주류업계에서 신공법 경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가격이 낮은 소주 시장에서 특이해봤자 거기서 거기다. 실제로 알칼리수에 대한 기대가치가 높은 고객도 있겠지만, 사실 알칼리는 (고객) 유인책이다. 알칼리수라서 처음처럼을 마신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로는 ‘소주는 25도’라는 상식을 깨고 지난 98년 참이슬을 내놓으면서 저도화를 주도했다.

그 뒤 “소주가 21도 밑에까지 내려가면 특유의 쓴맛이 사라져 시장에서 외면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음에도 저도화 경향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특히 소주시장은 저도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전통주 쪽에선 고도화 경향이 뚜렷하다. 국순당은 1992년 13도 백세주를 출시한 뒤 12년간 유지하다가 지난해 백세주를 14도로 올렸고, 올 2월에는 16.5도짜리 ‘별’을 출시했다. 업계는 알코올 17~18도에서 소주와 전통주의 수렴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알코올 17~18도는 마시기 편하고 흡수가 잘돼 취기가 빨리 찾아온다는 통설이 있다.

국순당도 점유율 회복에 나서다

진로와 두산 간 ‘소주 전쟁’ 불똥이 전통주 쪽으로 튀면서 약주·청주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올 1∼5월 소주 출고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3.4% 늘었지만 약주는 19.8%, 청주는 7.9% 줄었다. 소주가 20도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13~16도인 약주나 청주 등이 알코올 도수 측면에서 차별화될 수 있는 여지가 줄었기 때문이다. 국순당의 백세주 매출은 올해 1분기에 22.5%, 2분기에 35.0% 급감했다. 배상면주가의 산사춘 역시 2분기에 30%대의 매출 감소를 보였다. 국순당 쪽은 “와인이 14∼15도 술이지만 약주와 같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도수가 비슷해도 약주와 소주는 별개의 시장”이라며 “약주에서도 기술력으로 충분히 더 알코올 도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매출력 복원을 위해 국순당은 ‘별’을, 배상면주가는 ‘대포’ 등 소수 시장의 경쟁을 피해 틈새시장을 만들 수 있는 신제품들을 잇달아 론칭하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에 따르면, 국순당은 이미 수익성 훼손을 감수하고서라도 외형(시장점유율)을 회복시키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고, 이에 따라 올해 마케팅 비용이 지난해 1600억원(매출액 대비 16.2%)에서 올해 231억원(매출액 대비 27.6%)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진로와 두산이 수도권에서 집중적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에 지방 소주사들은 상대적으로 소주 전쟁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실제로 전남 보해, 부산 대선, 경남 무학, 경북 금복주, 제주 한라산 등은 자기 지역에서 80∼90%의 시장점유율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사실 주류는 도매상 등 유통조직이 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데, 지방의 경우 지역별 자도주의 배타적인 유통망이 견고하다. 또 지역별 소주판매 제한이 이미 사라졌어도 자기 지역 소주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로열티가 여전히 강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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