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화 우려에도 주식투자 비중 확대 움직임… 가입자 외면하는 정부의 월권 운용실태 공개해야  
     
  다달이 받는 월급명세서의 공제 항목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국민연금’. 
  해마다 큰 폭으로 오르는 것에도 한숨이 나오지만, 정년퇴직한 뒤 약속한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는 게 일반인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잊혀질 만하면 한번씩 불거지는 연기금 부실화 실태에 익숙해져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에 붓는 돈은 돌려받지 못할 세금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반 국민들의 이런 불안함과 허탈감을 한층 부채질하는 것은 연기금을 주식시장 살리기에 동원하는 정부의 방침이다. 정부당국은 주식시장이 시들시들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연기금 주식투자한도확대 방안을 들고나와 가입자들의 ‘혈압’을 올려놓곤 한다. 올해 들어서도 이런 행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들의 불안감 부채질하는 정부 방침
  정부는 지난 2월8일 청와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증권시장 관계자들의 오찬간담회에서 국민연금 등 4대 연기금의 주식투자액을 크게 늘리는 내용을 포함한 증권시장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시가총액 대비 연기금 주식투자 비중이 미국은 24%, 영국은 33%인 반면, 한국은 10%에 그치고 있다”며 “증시의 장기 안정적인 수요기반 확충을 위해 기관투자가, 특히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우체국보험기금 등 4대 연기금의 주식투자비중을 현재 총자산의 11% 정도에서 2∼3년 안에 자산의 20%, 금액 기준으로는 25조원 정도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현재 4대 연기금의 총자산 75조원 가운데 직·간접 주식투자액은 8조원가량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에도 연기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조처를 한 차례 취한 바 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우체국보험기금 등이 참여하는 1조5천억원 규모의 연기금 전용펀드를 투신사에 조성한 것. 당시 발표에서 정부는 연기금의 운용담당자가 법령 등에 따라 주식투자를 한 경우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이른바 ‘면책 방침’까지 들먹이면서 주식투자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 주식시장을 살리는 불씨로 연기금을 동원한 숱한 사례들과 만나게 된다. 예외없이 증시가 맥을 추지 못하는 시점에서 내려졌음은 물론이다. 
  정부의 이러한 조처는 침체에 빠진 증시를 살리려는 고육책이라는 점에서 일면 수긍할 점이 있긴 하다. 원리원칙대로야 주가는 증권시장의 수급논리에 따라 움직여야겠지만, 금융당국으로선 주가폭락 사태에서 뒷짐만 지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주가가 오르고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원활해져 다시 주가가 오르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같은 선순환 구조 아래에선 연기금의 자산 수익률도 높아질 것이란 기대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기금의 기본속성과 운영원칙을 깨뜨리는 면도 다분하다. 
  정부가 연기금의 주식투자 한도를 확대하는 조처를 내릴 때마다 들이대는 근거는 외국의 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영국, 미국은 60∼70%에 이르고 캐나다도 30% 안팎에 이르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10%(국민연금 등 4대 연기금)를 갓 넘는 수준에 불과해 확대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주식투자 비중 외국보다 낮다는 왜곡 
   
  정부의 이런 설명은 그러나 잘못된 정보에 바탕을 두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정보를 왜곡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예로 든 선진 외국의 경우 사적연금 비중이 크며 이를 포함한 주식투자 비중은 비교대상으로 적절치 않다. 공적연금인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성격이 비슷한 미국의 노령유족장애연금(OASDI)은 위험자산이라는 이유로 주식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연방특별채권만 인수한다는 건 연기금 전문가들에게 상식으로 통한다. 
  외국의 공적연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우리나라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게 현실인데 사적연금과 비교함으로써 엉뚱한 결론을 유도하고 있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지한 탓에서 비롯된 것일까, 일부러 사실을 왜곡한 것일까. 
  공적연금, 사적연금이란 구별을 차치하더라도 국내 주식시장의 속성으로 보아 연기금을 증시로 유도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금융 선진국과 달리 국내 증시는 역사도 짧을뿐더러 이른바 ‘작전’이 횡행하는 등 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 위험성이 크다. 더욱이 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률도 높아야 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이다. 조성일 중앙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장기적으로 볼 때 주식이 채권보다 5%포인트가량 수익률이 높았던 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그간 줄곧 14∼15%에 달했던 채권수익률에 비해 주식수익률은 턱없이 낮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각종 연기금의 그간 운용성과에서 잘 드러난다. 국민연금을 예로 들어보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9월까지 국민연금의 주식부문 수익률은 마이너스 46.70%였다. 그야말로 반토막이 난 것이며 손실액으로 따지면 1조원 안팎에 이른다. 
  물론 전체 주식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은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금만 유독 잘못 운용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주식시장이 활황세였던 98, 99년에는 각각 60.80%, 137.28%의 수익을 올리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고수익을 올렸을 때의 실적은 제쳐두고 지난해 입은 손실만을 부각해 매도하는 것은 공정치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장기 수익률이다. 국민연금은 사회보험 성격으로 장기적인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점에서 지난 1988년 1월부터 2000년 9월까지 국민연금 주식부문의 연평균 수익률 4.93%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물론 이 또한 국민연금만의 실패라기보다 전체 주식시장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같은 기간 채권부문에선 연평균 12.95%의 수익률을 기록한 사실은 주식투자를 늘려야 할 정당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올해 들어 채권수익률이 한 자리수 아래로 뚝 떨어져 과거와 사정이 달라졌다는 반박이 나올 수 있겠는데,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채권수익률 하락으로 주식의 상대적인 수익률이 올라가는 개연성이 고수익 보장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며 고위험이란 주식의 기본 속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주식시장에서 거두는 수익은 국민경제 전체로 보아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국민연금이 거두는 고수익은 국민경제 다른 분야의 손실(결국은 국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지는)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 현실 외면한 장밋빛 기대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박사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적연금의 목적은 높은 이익을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연기금을 주식으로 굴려서 큰 이익을 낼 가능성도 낮을뿐더러 이는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공적연금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경제발전과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수차례 지적된 바 있듯이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기금의 재정실태는 극히 취약한 실정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가입자 수 증가와 연금요율 인상에 힘입어 기금 적립(2000년 말 현재 55조원 수준으로 추정)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반면, 급여지출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아 당장 고갈 상태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 이는 그러나 연금 도입(1988년) 초기 현상일 뿐, 장기적 건실도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 연구위원은 “연금재정의 장기적인 건실도는 연금지급을 충당하기 위한 ‘필요준비금’과 실제 기금적립액의 차이(잠재적 순연금부채)를 잣대로 가늠해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연금부채는 계산 방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998년 기준으로 대략 120조원을 웃돌고 있다고 문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현재 시점으로 따지면 부채규모는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회계를 빗대 설명하면 현재 기금 적립규모가 최소한 120조원은 넘어야 ‘균형’ 상태로 볼 수 있는 셈인데, 현실은 절반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보다 더욱 열악한 특수직 연기금 
   
  국민연금 제도는 40년간 가입한 평균소득자를 기준으로 할 때 노령연금의 급여수준을 생애평균소득의 60%로 책정하고 있다. 이런 수준의 급여지급을 위해선 연금요율을 20% 안팎으로 올려야 할 것으로 추정돼 현행 9% 수준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추정에 따르면 현행 요율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40년께에는 기금이 완전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을 대상으로 하는 연기금의 재정실태는 더욱 취약해 기금 고갈이 현실로 다가와 있다. 
  공무원연금은 수지적자에서 지난 96년 요율인상(11%에서 13%로)으로 흑자로 전환됐다가 98년부터 공무원 정년단축,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에 따른 퇴직자 증가로 다시 적자로 반전됐다. 지난 98년 기금규모가 4조8천억원으7로 떨어지면서 1조4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99년에도 2조1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심각한 재정위기에 맞닥뜨려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그때그때 요율(정부 기여율 및 가입자 보험료율) 인상으로 대처해가고 있으나 연기금의 고갈 사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KDI 문형표 박사팀의 추정에 따르면 올해 중 공무원연금기금은 완전 소진돼 정부지원으로 버텨나가야 할 상황이다. 
  속사정은 약간씩 다르지만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다른 연기금의 재정상태도 극히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재정건실도가 낮아 여력이 없는 연기금을 주식시장에 동원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일 뿐 아니라 주식시장을 살리는 데 얼마나 힘이 될지도 회의적이다. 한도확대 조처는 ‘투자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데 불과해 실제 그만큼의 자금이 투입된다는 보장은 아니다. 현재 연기금이 처해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투자여력이 별로 없다는 분석은 대단히 현실적이다.  
  정부의 연기금 주식투자한도 확대 조처는 절차상으로도 커다란 결함을 안고 있다. 관련법 규정에 따라 각종 연기금의 자산운용에 관한 주요 결정은 별도 독립된 위원회에서 내리도록 돼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계획의 경우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하고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뒤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확정된다. 이렇게 확정된 운용계획은 국회에 제출하고, 연금관리공단은 확정된 기금운용계획에 따라 기금을 운영하도록 돼 있다. 
   
 심의 거치지 않은 절차상 결함투성이  
   
  이런 소정의 절차에 비춰볼 때 기금운영위는 아랑곳없이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돼 장관이 받고, 실무자들이 허겁지겁 따라가는 지금 같은 일처리 방식은 법규 위반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부처 장관이 전반적인 가이드라인 제시도 아닌 투자한도확대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기금운용위의 권한을 침해하는 명백한 월권행위이다. 
  이와 관련, 정부의 주식투자한도 확대조처 방안이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위원 21명 가운데 과반수인 12명이 시민단체를 비롯한 가입자 대표로 돼 있어 정부 방침이 그대로 통과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종전에는 정부쪽 인사 8명, 가입자 대표 7명으로 돼 있었다가 시민·노동단체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지난 98년부터 위원 수를 15명에서 21인으로 늘리면서 가입자 대표 수를 확대한 것이다. 국민연금 외 다른 연기금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 추천에 따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실무평가 위원으로 뽑혀 활동하고 있는 중앙대 김연명 교수는 “국민연금기금의 경우 올해 운영계획은 이미 지난해 확정한 바 있어 정부 방침이 현실화되려면 기금운영위에서 계획을 바꿔야 하는데, 시민단체 대표들이 통과시켜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2월 발표된 정부 방침은 연기금 운용 절차에 명백히 어긋나며 이런 식의 일처리로 인해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추락한다”고 덧붙였다. 
  연기금 운용실태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문제점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언론매체들의 닦달에 못이겨 그때그때 자료요청에 응하고 있을 뿐 각종 연기금관리공단 및 관할부처는 운용성과를 가입자들에 제때 공개하지 않고 있다.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연기금의 전체 규모나 가입자 수 등 일부 총량지표만 볼 수 있을 뿐 운용성과는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공개한 통계는 대부분 1999년까지의 낡은 자료이다. 투신사 수익증권의 경우 펀드별로 주식편입 비율이 다름에도 따로 분류하지 않아 기금의 얼마가 주식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은 실정이다.  
   
  ‘12·12조처’의 악몽을 재연하려는가 
   
  정부는 지난 1989년 12월 증시부양을 위해 한국, 대한 등 투자신탁회사들을 동원하는 이른바 ‘12·12조처’를 취했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증시부양에 동원된 거대 투신사들은 주가폭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입었으며 조단위의 공적자금을 수혈받는 딱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럼에도 정부 관계자들이 이로 인해 책임을 진 일은 없었다.  
  연기금 주식투자 확대 방침에서 ‘12·12조처’의 악몽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의 주인은 말할 것도 없이 일반 가입자들이다. 기금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부당국의 월권행위는 중단돼야 마땅하다. 
 	
  
	
  
  글/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진/각종 연기금의 불투명한 자금 운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국민연금관리공단 건물.
국민들의 불안감 부채질하는 정부 방침

사진/“연기금 주인은 간섭하지 말라?”진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대폭 올리겠다고 밝혔다.

사진/주식시장에서 대박 터트려 연기금의 구멍을 메우려는 것인가. 국민연금관리공단 사무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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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 연도별 수익률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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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 1999년 | 2000년 9월 |  	
       연평균 누적수익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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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 계 | 14.41 | 12.80 | 4.16 | 10.46 | ||||||||||||||||||||||||||||||||||||||||||
| 금융부분 | 18.37 | 24.49 | -4.28 | 11.16 | ||||||||||||||||||||||||||||||||||||||||||
| 채 권 | 15.01 | 12.45 | 11.29 | 12.95 | ||||||||||||||||||||||||||||||||||||||||||
| 금전신탁 | 15.43 | 17.06 | 12.51 | 14.34 | ||||||||||||||||||||||||||||||||||||||||||
| 정기예금 | 15.17 | 15.95 | 13.45 | 14.26 | ||||||||||||||||||||||||||||||||||||||||||
| 주 식 | 60.80 | 137.28 | -46.70 | 4.93 | ||||||||||||||||||||||||||||||||||||||||||
| 수익증권 | 10.89 | 14.16 | -42.26 | 6.63 | ||||||||||||||||||||||||||||||||||||||||||
| 위탁증권 | - | - | -37.06 | -37.06 | ||||||||||||||||||||||||||||||||||||||||||
| 단기상품 | 12.95 | 5.94 | 6.45 | 10.01 |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