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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담배회사 사장님, 금연을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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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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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금연 캠페인 등 흡연방지 운동 펼치는 한국필립모리스 뮤파리지 사장…“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영을 통해 신뢰를 얻는 것이 장기적 이익 추구”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자기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물건’에 대해, 그것도 사장이 나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그 속내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하긴 그 물건이 몸에 절대 해로운 ‘담배’이니 ‘그럴 수 있겠구나’ 하면서도 영 미덥지 않다는 생각은 쉬이 떨쳐낼 수 없다. 담배회사든 뭐든 기업의 최종 목표는 이윤 추구이고, 이윤을 얻으려면 물건을 많이 팔아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레바논 출신의 뮤파리지 사장은 “청소년 흡연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게 회사의 장기적인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레바논 출신의 루트피 뮤파리지(46) 한국필립모리스 사장은 이런 의구심에 대해 “사업적으로 오히려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뮤파리지 사장의 한국필립모리스는 편의점 업체인 ‘미니스톱’과 함께 벌이는 청소년 금연 캠페인을 비롯해 다양한 흡연방지 운동을 하고 있다. 담뱃갑 안에 담배의 유해성을 알리는 기다란 설명문을 집어넣는 ‘쟁점 대화’(Issues Communications) 캠페인도 필립모리스 금연 활동의 하나다. 말보로 라이트 등 필립모리스 제품에 삽입돼 있는 설명문에는 흡연의 중독성, 금연의 이점, 저타르 담배에 대한 오해, 담배에 들어 있는 성분의 정보가 꽤 상세하게 적혀 있다.

청소년에 담배 팔면 공급 끊겠다

청소년 흡연 방지 노력이 왜 필립모리스의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회사 쪽에서 볼 때 청소년은 미래 고객 아닌가?

“직원, 주주, 규제 당국, 소비자들이 우리 회사에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기대를 외면하고선 비즈니스(사업)를 할 수 없다. 극단적인 경우 그 사회에서 기업 경영을 할 자유마저 잃을 수 있다.” 청소년 흡연 방지 노력이 단기적으론 판매 감소로 이어지더라도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경영을 통해 장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게 결과적으로 득이라는 얘기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짐으로써 신뢰를 쌓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신뢰 없이 지속적인 성공을 얻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행법(청소년보호법 51조)은 19살 미만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렇지만 이 법규가 판매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진다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담배회사들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먹고사는 문제에 내몰린 소매점 상인들을 일일이 감시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필립모리스의 흡연 방지 노력이 한편으론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9살 미만 청소년에게 담배를 파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스티커를 뿌리고 교육 자료를 소매상에게 배포하는 노력의 가상함은 인정하더라도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청소년 흡연 방지 캠페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또 법규를 어긴 소매상들을 적발하면 어떤 불이익을 주는가?

“담배를 구매하는 ‘최소 연령 제한’(minimum age)에 대한 법적 이해를 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판매상들에게 19살 미만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담배를 팔 때는 반드시 나이를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받도록 교육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소매업자와 유통 담당자들이 사회적 책임감과 법적 의무의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해당 소매상이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 것으로 드러나면 어떤 조처를 내리는가?

“담배 소매상은 필립모리스뿐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들을 같이 팔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 사실이 드러난다면 거기에 우리 회사 담배는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뮤파리지 사장은 그러면서도 “필립모리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업계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필립모리스의 한국 내 시장점유율이 8~9%에 지나지 않아 담배 공급 중단이 소매상에게 전혀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국내 담배시장 점유율 구조를 보면, 국내 업체인 KT&G가 70~80%를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20~30% 시장을 놓고 영국계 BAT코리아, 미국계 한국필립모리스, 일본계 JT코리아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한국 담배시장은 대단히 역동적

담배가 해롭다면,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의 금연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하지 않나?

“미성년자들은 종종 어떤 일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데, 흡연이 그런 예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은 또래 집단의 압박과 영향 속에서 흡연을 매력적이고 멋진 행위로 여기게 된다. 법적인 제재 조처가 있어도 청소년의 흡연을 막기엔 부족하다. 따라서 사회적 차원에서 미숙한 청소년의 흡연을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인들의 흡연은 이와 다르다는 게 뮤파리지 사장의 주장이다. 청소년과 달리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에 상응하는 담배 정보를 충분히 제공받고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담배가 몸에 좋지 않다는 정보도 많이 제공한다. 그걸 보고 흡연할지, 금연할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 담배는 중독성이 강하다. 많은 성인들이 금연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외부 도움 없이 금연에 성공하기도 한다. 담배회사로서는 흡연 때문에 건강을 염려하고 있는 성인이라면 무엇보다 금연을 선택하라고 권고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담배회사들이 자주 소송에 휘말리고 담배에 대한 규제는 날로 강해진다. 담배 사업의 전망이 어둡지 않나?

한국필립모리스는 편의점 업체인 미니스톱과 청소년 흡연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교육을 통해 소매업자들이 사회적 책임감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국에서 우리 회사의 시장점유율은 8~9%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1~92%만큼 늘어날 여지가 있다고 낙관한다. 필립모리스의 점유율은 오름세를 타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의 시장점유율은 2002년 6% 수준에서 그해 10월 경남 양산에 담배 공장을 준공한 뒤 사업 규모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뮤파리지 사장은 “한국의 경우 담배 시장에서도 대단히 ‘역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20~30대 젊은 층과 40대 이상 연령대의 흡연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 20~30대는 40대 이상과 달리 유행에 따라 금방 선호 브랜드를 바꾼다. 이렇게 두 개의 시장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현상을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필립모리스가 청소년 흡연 방지 노력을 비롯한 금연 운동에 나서면서 내거는 명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회사 이미지 개선을 통해 결과적으로 담배에 대한 우호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풀이가 있고, 흡연 피해와 관련된 소송에 미리 대비해 충분히 노력했다는 증거 남기기라는 폄하도 있다. 어쩌면 시장점유율 10% 아래에 머무는 처지에서 선두권 업체들을 견제하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담배의 신체적, 사회적 유해성을 알려 자신을 옭아맨 회사 쪽의 노력을 담배에 대한 사회적 감시 강화로 이어간다면 무익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모든 담배는 해롭다” 담배 피우지 않아

‘모든 담배는 해롭다’며 저타르 담배 논란을 일축하는 뮤파리지 사장은 담배회사 사장이면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단다. 레바논 아메리칸대학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이수한 뒤 광고회사인 레오버넷 인터내셔널을 거쳐 1995년 스위스에 있는 필립모리스 본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 2002년 한국필립모리스 상무로 발탁된 데 이어 2004년 9월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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