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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한항공이 도박도시로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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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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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수입 줄어들고 컨벤션과 관광도시로 거듭나는 라스베이거스… 비즈니스센터로서의 중요성 커지자 대한항공이 9월부터 직항 개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 10시간 반 걸려야 닿는 로스앤젤레스(LA). 여기서 미국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1시간을 날아서야 미국 네바다주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이를 수 있었다.

라이베이거스는 컨벤션센터 확충을 통해 도박도시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시내 전경.(사진/ 김형석 기자)


라스베이거스 매캐란 국제공항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기실 곳곳에 설치된 카지노 기계들이었다. 블랙잭, 바카라, 슬롯머신, 잭팟…. 공공장소인 공항 대기실에 도박장이라니! 도박장은 출입을 일정하게 통제하는 폐쇄 공간에 설치된다는 통념은 여지없이 깨졌다.

“도박도시 직항” 비판에 망설여

‘도박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면모는 호텔에서 잘 드러난다. 라스베이거스 남북을 가르는 중심 도로 ‘스트립’ 주변에 늘어선 맨덜레이베이, 베네시안, 윈, MGM미라지, MGM그랜드, 시저스팰리스 등 특급호텔의 로비층은 카지노 기계들로 꽉 들어차 있다. 숙소에 드나들다 잠깐씩 짬을 내 언제든 도박을 즐길 수 있도록 한 공간 배치인 듯했다.

국제공항 대기실과 호텔 로비층에 설치된 갖가지 카지노 기계들로 상징되는 라스베이거스의 이미지가 근래 들어선 많이 바뀌고 있다.

컨벤션(대규모 전시회, 국제회의 등) 개최, 관광산업에서 생기는 돈이 갬블링(도박)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추월한 상태다. 라스베이거스관광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의 카지노 수입은 7조4천억원으로, 카지노 외 컨벤션 개최, 관광 등에서 벌어들인 7조6천억원보다 적었다. 라스베이거스관광청의 제러미 핸들(Jeremy Handel) 홍보 전문가는 “이미 1998년부터 카지노 수입의 비중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카지노 산업의 규모에서 마카오에 1위 자리를 내줬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것은 미국의 48개 주가 잇따라 도박산업을 합법화함에 따라 카지노를 하려고 굳이 라스베이거스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한항공(KAL)이 오는 9월 인천공항에서 LA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는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한 것은 이런 이미지 변화에 기대하고 있는 바 크다. 대한항공의 라스베이거스 노선 첫 취항은 9월22일로 예정돼 있으며, 총 301석 규모의 B777-200기종으로 주 3회 운항하게 된다.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오래전부터 라스베이거스 직항로 개설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KAL이 ‘도박 도시’로 직항하는 노선을 만든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망설였다”며 “(라스베이거스 직항로 개설은) 늦은 감이 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선 1년 내내 각종 국제회의가 열리고 컴퓨터, 정보기술(IT), 자동차, 전자쇼(전시회)가 이어진다. (동부 버지니아에서 LA까지 이어지는) ‘선벨트’ 지역의 일환이기도 하다. 1년에 수십 번씩 전자쇼가 열릴 때마다 LA에서 가는 비행기 자리를 얻기 힘들어 난리가 난다.” 라스베이거스가 도박 도시에서 비즈니스센터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고 있어 직항로 수요가 많다는 설명이다.

실제 라스베이거스 현지에서 컨벤션 산업에 대한 열기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급호텔의 하나에 드는 맨덜레이베이호텔의 경우 전시회와 회의 공간으로 쓸 수 있는, 축구장만 한 컨벤션센터를 4개나 갖추고 있다. 맨덜레이베이호텔의 컨벤션센터 규모는 180만제곱ft(1제곱ft=1/35~36평)에 이른다. 이 공간은 잘게 나뉘어 소규모 행사를 치를 수 있게 설계돼 있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투숙비가 들쑥날쑥한 것 또한 컨벤션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규모 국제회의나 전시회가 열리는 철에는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치솟기 일쑤라고 한다. 특급호텔을 기준으로 할 때 평소 200달러(한화 20만원) 정도에서 컨벤션 기간에는 500~700달러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날로 커지는 컨벤션센터의 규모

라스베이거스관광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방문객은 3857만 명이었으며, 이 중 617만 명은 컨벤션 참가자였다. 크고 작은 대회 개최는 2만2천 건에 이르렀다. 라스베이거스 전체적으로 13만에 이르는 호텔 객실의 점유율이 90%를 웃도는(지난해 기준 91.8%) 것 또한 컨벤션 산업의 활성화에서 힘입은 바 컸다.

컨벤션센터의 규모가 날로 커지는 데서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지난 1994년만 해도 라스베이거스의 컨벤션센터 규모는 전체적으로 400만제곱ft 수준이었다가 1998년 600만제곱ft, 2002년 900만제곱ft로 커진 뒤 지난해 1천만제곱ft로 불어났다.

라스베이거스의 최대 호텔 그룹인 MGM미라지그룹의 민형진 아시아담당 부사장은 MGM그랜드호텔을 안내하는 자리에서 “(컨벤션 산업의 비중 확대에 맞춰) 호텔을 지으려고 마련해둔 터에 컨벤션센터를 짓고 있다”며 호텔 밖 공터를 가리켰다. 수익원이 카지노에서 컨벤션 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MGM미라지그룹이 벨라지오호텔과 몬테카를로호텔 사이에 40억~50억달러를 들여 거대한 ‘시티센터’를 개설 중인 것도 컨벤션 산업의 부각을 보여준다. MGM그랜드호텔을 방문한 6월8일 호텔 내 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선 직원들이 갖가지 집기들을 치우느라 부산했다. 민 부사장은 “다음 행사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객실, 컨벤션센터 모두 1년에 1주일가량을 빼고는 꽉 들어찬다”고 말했다.

컨벤션 산업은 각종 공연을 비롯한 오락거리, 인근 지역의 관광상품과 결합해 라스베이거스를 종합휴양 도시로 바꿔놓는다. 종합휴양 도시의 면모는 개별 호텔에서 쉽게 엿볼 수 있다.

예컨대 맨덜레이베이호텔의 경우 거대한 수족관 ‘샤크리프’를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악어를 비롯한 100여 종의 물고기 2천 마리가 살고 있다. 호텔 투숙객에게도 15달러라는 비용을 별도로 물림에도 샤크리프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1년에 100만 명을 헤아린다. 네바다주에선 유일하게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공인을 받은 곳이어서 주변 학교에서 교육 목적으로 관람을 오기도 한다. 맨덜레이베이호텔에는 또 파도풀 1개를 포함해 7개의 야외 수영장을 갖춰 호텔이라기보다 ‘작은 도시’ 같았다.

라이베이거스 지역의 호텔은 규모나 시설에서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한다. 한 호텔 로비층에 설치된 카지노장(왼쪽)과 벨라지오 호텔의 로비.(사진/ 김형석 기자)

MGM그랜드호텔은 쌍둥이의 모험담을 그린 카(KA) 쇼를, 시저스팰리스호텔은 캐나다의 국민가수 ‘셀린 디온’의 공연을 준비해 방문객들의 흥취를 돋우고 있었다. 벨라지오호텔의 오(O) 쇼도 인기 종목이다. 윈호텔은 바로 옆에 18홀짜리 정규 골프장을 마련해둔 것으로 유명하다. 호텔과 호텔을 옮겨다니면서 웬만한 관광·레저 수요는 모두 충족되는 셈이다. 국내선 비행기로 1시간을 달리면 미국 내 최고의 인기 관광지역인 그랜드캐니언에 닿는다는 점도 라스베이거스의 강점으로 꼽힌다.

일본항공은 채산성 이유로 운행 중단

함철호 대한항공 상무(여객노선 운영담당)는 “호텔 투숙비를 보더라도 라스베이거스는 갬블링(도박) 도시 이미지를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만 해도 라스베이거스의 호텔비는 1박에 30~40달러 수준으로 굉장히 쌌다. 카지노에서 수입을 내기 때문에 호텔 투숙비를 비싸게 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호텔비가 100달러를 웃돌고, 특급호텔은 300달러를 넘기도 한다. 도박을 위한 수요가 아니고, 가족 단위로 구경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라스베이거스=도박 도시’라는 등식은 옛날 생각에서 비롯된 것뿐이라고 함 상무는 덧붙였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대한항공이 라스베이거스 직항로를 개설하는 즈음 일본항공(JAL)은 라스베이거스 직항을 중단한다는 점이다. 1998년 10월 나리타공항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직접 연결되는 항로를 개설한 일본항공은 오는 10월 이 노선의 운항을 중단할 예정이다. 일본항공의 라스베이거스 직항로는 아시아 지역과 라스베이거스를 직접 연결하는 유일한 항로다. 일본항공 서울지점의 홍미연 차장은 라스베이거스 노선의 단항 배경에 대해 “취항 초기보다 탑승률이 좋지 않아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똑같은 라스베이거스를 두고 일본항공과 대한항공이 채산성을 달리 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종희 대한항공 사장은 “일본항공의 (라스베이거스 노선) 중단은 회사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 노선 자체의 채산성보다는 일본항공의 수익성 하락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일본항공의 경우 한·일 노선을 운항하는 편수도 줄고 있다. 일본항공이 2004년 일본에어시스템(JAS)과 통합한 뒤 전체 노선의 재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일본항공 쪽 설명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이 사장은 “각종 국제회의나 전자쇼 등에 비춰 (라스베이거스 노선에 대한) 기본적인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고객들을 많이 유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내년 하반기 정도에 수익 낸다”

대한항공 쪽은 그러면서도 북미 노선의 요금 구조로 보아 큰 규모의 흑자를 기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일본 도쿄를 오가는 비행기삯이 50만원(이코노미클래스 기준)인 데 견줘 LA 왕복 항공료는 150만원 수준이다. 이렇게 항공료는 3배인 반면, LA 왕복 비행시간은 22~23시간으로 도쿄 왕복 시간(4시간)의 5배를 넘는다. 북미를 오가는 비행편의 수익성이 그리 높지 않아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라는 얘기다. 함철호 상무는 그래도 “내년 하반기 정도엔 수익을 내는 곳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곤 해도 여전히 도박 도시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라스베이거스. 이곳에 직항로를 개설하는 게 국내엔 어떻게 비쳐질까? 일본항공이 접은 노선에 새로이 안착해야 할 대한항공엔 이 점이 가장 큰 관심사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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