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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세계 경제, 뭔가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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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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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 각국 금리 인상과 유동성 위기 예고…미국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 확산되면서 신흥 주식시장에서 자본 빠져나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잘나가던 인도 주식시장이 지난 5월22일 개장 두 시간 만에 10%나 떨어지는 등 단 며칠 사이에 20%나 대폭락했다. 한국 주식시장도 외국인의 대규모 팔자가 연일 지속되면서 6월1일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글로벌 증시의 동반 하락세 속에 5월24일까지 1주일간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머징마켓(신흥시장) 주식펀드에서 50억달러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주간 자금 유출 규모로는 2004년 5월 이후 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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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도·브라질의 급속한 성장세와 맞물려 지난 4년간 장밋빛 낙관론이 대세를 이뤘던 세계 경제에 몇 주 전부터 갑작스럽게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경제가 심각한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하는 형국으로 돌변한 이유는 뭘까?


미국과 중국에 치우친 불균형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미국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투자 심리가 급속히 위축됐고,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미국·유럽·일본·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불안이 겹치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퍼지고 있다고 본다. 최근 1∼2년 동안 국제 유가와 전기동·아연 등 원자재 상품 가격이 급등했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는 판국인데,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각국이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유동성 위축’ 사태가 닥치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주식과 주택의 자산가격 하락에 대비하라는 경고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된 초저금리에 따라 “아주 이례적인 현상”(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주식·주택 시장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상황이 돌변해, 이제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시장의 과잉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자산가격 붕괴가 임박했다는 우려가 강도 높게 제기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세계 상품시장은 현재 폭발을 기다리는 버블 상태”라고까지 규정하고, “세계 경제가 중국의 과잉 수출과 미국의 과잉 소비로 심각한 불균형 문제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두 축인 미국의 소비와 중국의 생산이 너무 한쪽에 치우친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서 과열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미국의 가계 소득이 정체 상태에 돌입하고 그동안 소비를 뒷받침했던 부동산 거품마저 꺼지면서 소비 확대가 한계에 봉착했고, 중국은 과잉 생산시설에 따라 점차 생산 규모를 줄이고 있다. 중국과 미국 시장에 기대어 수출을 늘려왔던 많은 국가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스티븐 로치가 말했듯, 경고 한복판에는 ‘전세계적 불균형’(Global imbalances) 심화가 있다. 2000년 초반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 불균형은 국내외에서 주요 논쟁거리가 되어왔다. 불균형은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지나칠 정도로 확대되고 있는 반면,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데서 초래된다. 미국 경상수지 적자는 2005년 사상 최고치인 8049억달러(GDP의 6.4%)에 달했고, 올해는 기록적인 1조달러(GDP의 7.5%)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이처럼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보이고 있음에도 그동안 버텨올 수 있었던 건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 중인 동아시아 국가로부터 막대한 양의 자본이 미 국채와 주식에 유입됐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달러화 약세, 자산 가격 급락…

미국은 또 모자란 돈은 달러화 채권을 발행해 충당해왔다. 물론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유지됐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둔화되고 달러화 약세가 더욱 심화되면 글로벌 자본마다 달러 표시 주식·채권을 앞다퉈 매각할 것이고, 여기에 금리 상승이 겹치면서 자산 가격 급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중국·일본·대만·한국 등 동아시아 4개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 재무성 국채는 2005년 말 전체 외국인 보유액의 53%(1조1500억달러)에 이른다. 그런데 한국을 제외한 일본·중국·대만·홍콩에서 미 국채 투자 포지션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벌써 뚜렷해지고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미 달러화의 장기적 약세와 미국 경제 둔화를 염두에 두고 사전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책임연구원은 “전세계적 불균형이 어떤 전환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화 약세에 따라 투자 패턴을 바꾸고,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적극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줄어들면 투자 자금이 아시아와 EU로 이동하면서 자금 흐름의 변동성과 불안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지속된 전세계 유동성 과잉이 종지부를 찍고 있다는 분석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이에 따른 금리 인상 우려에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 달 전에 견줘 0.6% 오른 것으로 나타나면서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위험성이 급속히 확산됐다. 유럽과 일본의 물가 지표 역시 예상보다 상승률이 높은 것으로 나오면서 금융시장은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고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사실 주식시장에서 인플레이션은 ‘독배’나 다름없는데, 이런 인플레이션 파장은 신흥시장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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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은 국제 유가·전기동·구리·아연 등 실물 상품가격 폭등이 진원지다. 전기동 가격은 2003년 t당 2천달러에서 현재 6700달러까지 올라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의 고성장에 따른 수요 증가로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미 국채와 주식에 몰렸던 글로벌 투기자금이 미국의 금리 인상이 끝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위험 회피 차원에서 원자재 실물 상품투자로 이동한 것도 상품가격 폭등의 한 요인이다. 사실 미국 경제는 1990년대 후반 (수확체감이 아니라) ‘수확체증의 법칙’이 작동하는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고성장-저물가’라는 ‘신경제’를 구가했다. 중국·인도 등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상품을 싼값에 공급해온 것도 전세계 물가 안정에 기여했다.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임금 증가가 완만했기 때문에 저물가가 유지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 수출기업의 인건비가 최근 3년간 25%나 뛰어 상품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FRB가 인플레이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때가 닥치면 실물경제에 파괴적인 충격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최근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과장됐다”며 사태를 낙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인플레이션 관리 능력이 과거 1970∼80년대에 비해 크게 향상됐고, 세계화에 따른 상품가격 인하 효과가 여전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몇 주 전부터 인플레이션 우려가 퍼지고 있지만, 사태에 비해 너무 과장된 것 같다. 지금 각국의 물가는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고 본다. 물가가 상승한다고 해도 1970∼80년대처럼 두 자릿수 폭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유럽 금리 인상 빨라져

금리를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FRB 의장인 버냉키가 미국 연방기금 금리(현재 5%) 상승세에 제동을 걸어 금리 인상이 올해 종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미국은 2000∼2002년에 걸친 IT 거품 붕괴 과정에서 소비가 위축되자 당시 6.5%에 달했던 정책금리를 2003년 6월까지 사상 최저 수준(1%)으로 낮췄으나, 그동안 가계 부채가 급증하면서 다시 16차례에 걸쳐 금리를 올렸다. 그런데 4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게 나오면서 금리를 추가 인상할 가능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와 달러화 가치 하락이 심화하면서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 금리가 급등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다 유럽이 이미 2차례 금리를 인상했고, 일본도 그동안의 제로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올 3분기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듯 유럽과 일본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축소되면 아시아·유럽 지역으로 자금이 흘러들고, 반대로 달러화 약세와 달러화 표시 자산 가격의 하락이 깊어질 우려가 크다.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더 이상 미 국채 매입을 꺼리게 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반대의 현상이 출현하는 것이다.

일본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금융·주택 시장에 투자한 엔화 대출자금(35조엔)을 회수할 경우 전세계 금융시장과 주택시장이 연쇄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신민영 연구위원은 “일본이 미국처럼 금리를 5%대로 올릴 가능성은 낮고, 신흥시장에서의 자본 이탈도 세계적 불균형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신흥시장 주식이 폭등한 데 따른 후유증에 불과한지 따져봐야 한다”고 위기론에 대한 신중론을 폈다. 그럼에도 세계 경제는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이에 따른 유동성 축소 위기감으로 패닉 상황에 빠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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