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의무적으로 한 구단에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드래프트제의 경제학… 수요독점으로 가격 낮추는 전략, 공급업체를 독점한 월마트나 GM을 보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수요독점(monopsony)
독점(monopoly) 여러 장의 이력서를 써서 여러 회사에 보낸다. 여러 군데 동시에 합격하면 고민을 시작한다. 직장문화도 알아보고 연봉도 따져보고 회사 비전도 생각해본다. 누구나 직장을 구할 때 거치는 상식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거꾸로 회사 쪽이 그해 취업 희망자 전체 가운데 마음대로 자기 회사 취업자를 골라 먼저 연락한다면? 그리고 지명된 사람은 최소한 몇 년 동안 무조건 그 회사에 다녀야 한다면? 농담 같지만, 정말로 회사가 먼저 입사 대상자를 지명하는 산업이 있다. 스포츠산업이다. 팀 간 실력 격차 줄여 경기도 재밌게 프로축구, 프로야구 등 한국의 인기 프로스포츠는 대부분 신인선수 드래프트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과정은 이렇다. 학교 졸업 등으로 새로 프로선수 시장에 뛰어드는 신인들은 모두 하나의 목록으로 묶인다.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순서대로 한 명씩을 찍어 데려온다. 보통은 최하위 팀이 먼저 찍는다. 연봉 등 계약 조건은 특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표준화돼 있다. 드래프트제를 실시하는 것은 스포츠구단들이 특별히 포악하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다. 여기에는 명확한 경제학적 배경이 있다. 채용할 선수를 구단 쪽이 먼저 지명하는 드래프트제는 프로스포츠 선수 노동시장을 수요독점(monopsony) 상황으로 만든다. 수요독점은 판매자는 다수인데 구매자가 한 명 또는 아주 적은 수인 시장 상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독점(monopoly)은 판매자가 한 명 또는 아주 적은 수인 경우를 말하는데, 그 뒤집힌 형태인 셈이다. 드래프트로 지명된 선수는 구단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다른 곳에 갈 수 없게 되므로, 사실상 이 선수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구단은 수요독점기업이라는 얘기다. 독점기업이 소비자보다 우월적 지위에 서서 판매 가격을 비싸게 매길 수 있는 것처럼, 수요독점기업은 생산자보다 우월적 지위에서 구매 가격을 싸게 매길 수 있다. 당연히 신인선수 연봉은 수요독점이 없는 상황보다 떨어지게 된다. 유통업체가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수요독점 상황이 생겨난다. 미국에서 월마트 점유율이 올라가면서 공급업체가 단가 하락으로 고생한다느니, 중국 물건이 대규모로 들어오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월마트가 수요독점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구매 단가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산업 역시 수요독점 이야기가 나오는 대표적 업종이다. 자동차 부품은 보통 특정 회사, 특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GM 부품 생산 업체는 GM만을 위해 부품을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이 부품의 수요는 완전독점이다. 시장은 수요독점 상황이 되고, GM은 가격협상에서 우월적 지위에 서게 된다.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 역시 신인선수 드래프트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1975년 이전까지 메이저리그의 드래프트제는 종신제였다. 한 번 지명된 선수는 처음 지명한 구단이 그 권리를 다른 구단에 팔지 않는 한, 평생 그 구단과만 계약해야 했다. 1975년에 와서야 이 제한이 완화된다. 선수노조의 파업에 이어 메이저리그 노사협상의 결과로, 각 구단은 드래프트 뒤 6년 동안만 그 선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그 뒤에는 완전 자유계약시장이 됐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스쿨의 로버트 핀다익 교수는 이 합의로 수요독점이 완화하면서 프로야구 선수 연봉이 크게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실제로 1975년 이전 구단의 총지출 가운데 선수 임금은 25%를 차지했는데, 1980년 이 수치는 40%가 됐다. 1969년 평균 연봉은 4만2천달러였는데, 1992년 평균 연봉이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드래프트제와 연봉 사이에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얘기다. 선수 연봉을 줄이고 싶은 개별 구단에야 이익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포츠산업 전체로 보면 어떨까? 할인점인가 명품관인가 스포츠라는 상품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드래프트제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스포츠 상품은 경기다. 그리고 경기의 가치는 불확실성에서 나온다. 소비자는 누가 이길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확실한 경기 결과로 바뀌는 과정을 소비하며 돈을 지불한다. 그러니 1등이 계속 더 잘하게 되고 꼴찌는 점점 더 못하게 되면서 승부 불확실성이 줄면 산업 전체에 재앙이다. 그래서 스포츠산업에는 못하는 구단에 잘하는 선수를 배정할 경제적 유인이 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드래프트제나 지역연고제로 나오고, 이게 수요독점 시장으로 이어진다. 물론 문제도 생긴다. 월마트는 수요독점으로 납품 가격을 깎아 수익을 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월마트는 아예 고급품은 살아남을 수 없는 장터가 되어버렸다. 할인점이 아무리 커져도 백화점 명품관을 흡수하지는 못한다. 수요독점과 납품가격 깎기를 통한 경쟁력 높이기는 명품을 흡수하는 데는 별로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한국 프로야구, 프로축구는 할인점을 지향해야 하나 아니면 명품관을 지향해야 하나?
이주의 용어 수요독점(monopsony)
독점(monopoly) 여러 장의 이력서를 써서 여러 회사에 보낸다. 여러 군데 동시에 합격하면 고민을 시작한다. 직장문화도 알아보고 연봉도 따져보고 회사 비전도 생각해본다. 누구나 직장을 구할 때 거치는 상식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거꾸로 회사 쪽이 그해 취업 희망자 전체 가운데 마음대로 자기 회사 취업자를 골라 먼저 연락한다면? 그리고 지명된 사람은 최소한 몇 년 동안 무조건 그 회사에 다녀야 한다면? 농담 같지만, 정말로 회사가 먼저 입사 대상자를 지명하는 산업이 있다. 스포츠산업이다. 팀 간 실력 격차 줄여 경기도 재밌게 프로축구, 프로야구 등 한국의 인기 프로스포츠는 대부분 신인선수 드래프트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과정은 이렇다. 학교 졸업 등으로 새로 프로선수 시장에 뛰어드는 신인들은 모두 하나의 목록으로 묶인다. 프로스포츠 구단들은 순서대로 한 명씩을 찍어 데려온다. 보통은 최하위 팀이 먼저 찍는다. 연봉 등 계약 조건은 특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표준화돼 있다. 드래프트제를 실시하는 것은 스포츠구단들이 특별히 포악하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다. 여기에는 명확한 경제학적 배경이 있다. 채용할 선수를 구단 쪽이 먼저 지명하는 드래프트제는 프로스포츠 선수 노동시장을 수요독점(monopsony) 상황으로 만든다. 수요독점은 판매자는 다수인데 구매자가 한 명 또는 아주 적은 수인 시장 상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독점(monopoly)은 판매자가 한 명 또는 아주 적은 수인 경우를 말하는데, 그 뒤집힌 형태인 셈이다. 드래프트로 지명된 선수는 구단과의 협상이 결렬되면 다른 곳에 갈 수 없게 되므로, 사실상 이 선수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구단은 수요독점기업이라는 얘기다. 독점기업이 소비자보다 우월적 지위에 서서 판매 가격을 비싸게 매길 수 있는 것처럼, 수요독점기업은 생산자보다 우월적 지위에서 구매 가격을 싸게 매길 수 있다. 당연히 신인선수 연봉은 수요독점이 없는 상황보다 떨어지게 된다. 유통업체가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수요독점 상황이 생겨난다. 미국에서 월마트 점유율이 올라가면서 공급업체가 단가 하락으로 고생한다느니, 중국 물건이 대규모로 들어오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월마트가 수요독점력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구매 단가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산업 역시 수요독점 이야기가 나오는 대표적 업종이다. 자동차 부품은 보통 특정 회사, 특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GM 부품 생산 업체는 GM만을 위해 부품을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이 부품의 수요는 완전독점이다. 시장은 수요독점 상황이 되고, GM은 가격협상에서 우월적 지위에 서게 된다.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 역시 신인선수 드래프트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1975년 이전까지 메이저리그의 드래프트제는 종신제였다. 한 번 지명된 선수는 처음 지명한 구단이 그 권리를 다른 구단에 팔지 않는 한, 평생 그 구단과만 계약해야 했다. 1975년에 와서야 이 제한이 완화된다. 선수노조의 파업에 이어 메이저리그 노사협상의 결과로, 각 구단은 드래프트 뒤 6년 동안만 그 선수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다. 그 뒤에는 완전 자유계약시장이 됐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스쿨의 로버트 핀다익 교수는 이 합의로 수요독점이 완화하면서 프로야구 선수 연봉이 크게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실제로 1975년 이전 구단의 총지출 가운데 선수 임금은 25%를 차지했는데, 1980년 이 수치는 40%가 됐다. 1969년 평균 연봉은 4만2천달러였는데, 1992년 평균 연봉이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드래프트제와 연봉 사이에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얘기다. 선수 연봉을 줄이고 싶은 개별 구단에야 이익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포츠산업 전체로 보면 어떨까? 할인점인가 명품관인가 스포츠라는 상품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드래프트제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스포츠 상품은 경기다. 그리고 경기의 가치는 불확실성에서 나온다. 소비자는 누가 이길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확실한 경기 결과로 바뀌는 과정을 소비하며 돈을 지불한다. 그러니 1등이 계속 더 잘하게 되고 꼴찌는 점점 더 못하게 되면서 승부 불확실성이 줄면 산업 전체에 재앙이다. 그래서 스포츠산업에는 못하는 구단에 잘하는 선수를 배정할 경제적 유인이 있다. 그 고민의 결과가 드래프트제나 지역연고제로 나오고, 이게 수요독점 시장으로 이어진다. 물론 문제도 생긴다. 월마트는 수요독점으로 납품 가격을 깎아 수익을 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월마트는 아예 고급품은 살아남을 수 없는 장터가 되어버렸다. 할인점이 아무리 커져도 백화점 명품관을 흡수하지는 못한다. 수요독점과 납품가격 깎기를 통한 경쟁력 높이기는 명품을 흡수하는 데는 별로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라는 얘기다. 문득 떠오르는 궁금증. 한국 프로야구, 프로축구는 할인점을 지향해야 하나 아니면 명품관을 지향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