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동산신탁 부도로 부푼 꿈 접을 위기… 그들의 한숨을 언제까지 강요할 건가
공기업 첫 부도로 기록된 ‘한국부동산신탁 사태’가 영세상인들을 울리고 있다. 일부 사업장의 경우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공사가 재개될 것이란 희망이 있지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을 쏟아부은 이들로선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공사가 중단되는 곳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적화의를 통해 그럭저럭 공사가 이어지더라도 앞으로 넘어야 할 걸림돌이 적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건축업자 최성운(65)씨. 최씨는 한국부동산신탁이 짓고 있던 분당 테마폴리스 상가 임차인으로 분양계약금과 중도금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8800만원을 납입했다. 잔금 1200만원만 내면 어엿한 가게를 장만해 취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들의 생활 터전으로 삼게 할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뜻밖에 한부신 부도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망연자실해 있다.
번듯한 상점 차리려 노점상했건만…
지난 2월7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앞 항의집회에서 만난 최씨는 “그래도 나는 벌이가 좋은 편이어서 좀 낫지”라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경기도 성남에서 김밥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정수자(56)씨도 분당 테마폴리스에 엮여 낭패를 겪고 있다. 정씨는 테마폴리스 지하에 조그마한 스넥바(분식점)를 차릴 꿈에 김밥 장사로 틈틈이 벌어모은 돈을 꼬박꼬박 내왔다. 지금까지 모두 7천만원을 납입해 잔금은 500만원뿐이다. 잔금 납입을 완료하고 등기만 하면 앞으로 20년간 ‘내 가게’를 갖고 장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부풀어 있던 그는 한부신 사태를 당해 넋이 반쯤 나가 있다. 지난 90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 쪽 팔다리가 온전치 못한 정씨는 “그게 어떤 돈인데…”라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옷가게를 차려 장기 실업상태에서 벗어나려다 쓴잔을 마신 청년도 있다. 임창균(29)씨는 테마폴리스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옷가게를 열어 어머니와 같이 꾸려갈 예정이었다. 전업주부인 어머니가 아버지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4400만원의 중도금을 이미 납입해 잔금 600만원을 치르는 일만 남겨두고 있던 터에 날벼락을 맞았다. “직장생활이라곤 몇년 전에 5개월 정도 일한 것밖에 없어요. 옷가게를 잘 꾸려 부모님 짐을 덜어드리려고 했는데….” 임씨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처럼 분당 테마폴리스에 연루돼 고통을 겪고 있는 임차인들은 1700명을 웃돌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물려 있는 돈만도 약 1500억원에 이른다. 부도 직전 한부신이 진행중이던 공사장은 전국적으로 모두 65개. 분당 테마폴리스도 이 가운데 하나다. 한부신 사태로 인한 파장의 범위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부신 공사장을 구체적으로 보면, 아파트의 경우 대한주택보증의 분양보증을 받은 곳은 12곳 1만2300여 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3353가구는 아직 완공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대한주택보증은 이들 사업장에 대해 실사를 벌여 채산성이 없는 사업장은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일부 분양권자의 경우 입주 자체가 불투명하다. 그렇지만 사업장이 정리되더라도 분양권자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을 수 있어 분야금 자체를 떼일 걱정은 없다. 문제는 주상복합이나 상가, 임대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업장은 주상복합 및 임대아파트가 17곳이며 상업시설 18곳, 업무용 등 기타 18곳. 분양권자들은 자칫 계약금과 분양금을 고스란히 떼일 수도 있는 실정이다. 현행 법률상 임대아파트는 임대인이 건설회사로 돼 있어 회사(한부신)가 파산절차를 밟을 경우 입주자 보호조항이 없어 임대보증금을 받을 수 없다. 한부신에서 진행하던 임대아파트는 곤지암 1152가구와 보령 임대아파트 1230가구 등 두곳이며 보령 임대아파트는 아직 분양을 하지 않은 상태다. 상가 계약자들도 권리를 보호받을 법률이 없다. 상가는 경매로 다른 투자자에게 낙찰되더라도 의무가 낙찰자에게 승계되지 않기 때문에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국가의 지원이나 낙찰자의 아량에 기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한부신 부도의 도화선이 됐던 분당 테마폴리스를 비롯해 마산 코오롱쇼핑, 창원 애플타운, 부산 시티코아, 구리 신명스포렉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호받지 못하는 주상복합·상가, 임대아파트
한부신에서 진행중이던 불광동 세광프라자 등 주상복합 아파트도 안전지대가 아니긴 마찬가지다. 주상복합의 경우 시공자가 공사를 중단키로 결정하면 분양금 회수가 불투명해진다.
분당 테마폴리스의 예를 들어 임차인들이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자. 테마폴리스는 연 면적 6만2천평에 지상 7층, 지하 4층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지난 98년 8월 공사가 시작돼 지난해 3월 완공됐다. 아직 준공검사는 나지 않았으며 오는 4월까지 임시사용 허가가 난 상태로 할인점을 비롯한 상가, 극장 등 일부 업체가 영업중이다.
이 건물은 지난 94년 (주)중일이 착공한 뒤 95년 부동산 신탁계약을 통해 한부신으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이후 시공을 맡았던 건설업체가 부도에 이르자 98년 6월 삼성중공업이 시공을 이어맡아 완공했다. 삼성중공업은 99년 10월 한부신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자 공사를 중단하려 했으나 채권단쪽이 공사비 지급을 약속, 공사를 마무리했다.
한부신 부도는 이 건물 공사 대금 1694억원 가운데 아직 지급되지 않은 1276억원을 받기 위해 삼성중공업이 만기어음을 돌린 데서 비롯됐다. 시공업자인 삼성중공업은 받지 못한 공사대금에 대해 저당권 가등기를 했으며 이와 별도로 기술신용보증기금도 960억원의 근저당 설정을 해놓은 상태다. 이들이 담보물 경매를 통해 채권회수에 나설 경우 입주 예정자들로선 꼼짝없이 돈을 떼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부신이 파산처리돼 빚잔치에 들어갈 경우 삼성중공업,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뒷자리에 서게 되고 이 경우 받게 될 돈은 거의 남지 않을 게 뻔하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분당 테마폴리스를 비롯한 상가는 주택과 달리 법 보호망 바깥에 있다. 주상복합건물, 임대주택도 마찬가지이다. 한부신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이들은 주식투자에 나선 투자자들과 똑같은 처지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다.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나 주식에 투자한 것이나 자기책임에 따른 투자행위일 뿐이란 논리에서다. 한부신 공사장 중에서도 주택의 경우 대한주택보증의 보증을 받아 대부분 안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분당 테마폴리스 등 사업이 계속 진행될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장의 경우 그나마 희망이 남아 있지만 공사가 중단되는 사업장의 임대계약자들은 커다란 손실을 입는 일이 불가피해보인다.
이런 문제 때문에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제정해 영세상인들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민주노동당 등을 중심으로 높다. 국내 임차상인들이 대략 4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다 상가임대차와 관련한 피해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실정에 비춰 영세상인들의 피해가 한부신 사태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물론 이런 중장기적인 대책에 앞서 당장 급한 일로 각 공사장에 대한 사업성 분석을 벌여 진행 여부를 결정하고 정부, 채권자, 임차인 등 이해당사자들이 일정하게 짐을 나눠지는 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제2의 한부신 사태가 다가오고 있다
한부신 사태는 낙하산 인사 등 공기업 전반의 문제점, 부동산신탁업의 부실화라는 고질병과 함께 ‘선분양 후완공’이란 국내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의 문제점을 또 한번 보여준 생생한 사례이기도 하다. 분당 테마폴리스에서 보듯 완공 이전에 분양이 이뤄지는 관행에서는 계약자들이 계약금 및 중도금을 납부한 상태에서도 등기를 마치기 전에는 어떠한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해 늘 불안한 처지다. 제2의 한부신 사태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건설산업연구원 백성준 책임연구원은 “자금조달 통로가 한정돼 있는 건설업체들의 처지로 보아 ‘선분양 후완공’ 관행이 금방 고쳐질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부동산투자회사(리츠)법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돼 예정대로 오는 7월쯤 시행되면 다소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백 연구원은 일부 건설업체가 선도적으로 ‘선완공 후분양’ 방식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그게 어떤 돈인데…” 한국부동산신탁의 사태로 전 재산을 날릴 위기에 처한 영세상인들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지난 2월7일 서울 중구 외환은행 본점 앞 항의집회에서 만난 최씨는 “그래도 나는 벌이가 좋은 편이어서 좀 낫지”라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경기도 성남에서 김밥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정수자(56)씨도 분당 테마폴리스에 엮여 낭패를 겪고 있다. 정씨는 테마폴리스 지하에 조그마한 스넥바(분식점)를 차릴 꿈에 김밥 장사로 틈틈이 벌어모은 돈을 꼬박꼬박 내왔다. 지금까지 모두 7천만원을 납입해 잔금은 500만원뿐이다. 잔금 납입을 완료하고 등기만 하면 앞으로 20년간 ‘내 가게’를 갖고 장사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부풀어 있던 그는 한부신 사태를 당해 넋이 반쯤 나가 있다. 지난 90년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 쪽 팔다리가 온전치 못한 정씨는 “그게 어떤 돈인데…”라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옷가게를 차려 장기 실업상태에서 벗어나려다 쓴잔을 마신 청년도 있다. 임창균(29)씨는 테마폴리스 한 귀퉁이에 조그마한 옷가게를 열어 어머니와 같이 꾸려갈 예정이었다. 전업주부인 어머니가 아버지 월급에서 조금씩 떼어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4400만원의 중도금을 이미 납입해 잔금 600만원을 치르는 일만 남겨두고 있던 터에 날벼락을 맞았다. “직장생활이라곤 몇년 전에 5개월 정도 일한 것밖에 없어요. 옷가게를 잘 꾸려 부모님 짐을 덜어드리려고 했는데….” 임씨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처럼 분당 테마폴리스에 연루돼 고통을 겪고 있는 임차인들은 1700명을 웃돌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물려 있는 돈만도 약 1500억원에 이른다. 부도 직전 한부신이 진행중이던 공사장은 전국적으로 모두 65개. 분당 테마폴리스도 이 가운데 하나다. 한부신 사태로 인한 파장의 범위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부신 공사장을 구체적으로 보면, 아파트의 경우 대한주택보증의 분양보증을 받은 곳은 12곳 1만2300여 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3353가구는 아직 완공에 이르지 못한 상태다. 대한주택보증은 이들 사업장에 대해 실사를 벌여 채산성이 없는 사업장은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일부 분양권자의 경우 입주 자체가 불투명하다. 그렇지만 사업장이 정리되더라도 분양권자들은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받을 수 있어 분야금 자체를 떼일 걱정은 없다. 문제는 주상복합이나 상가, 임대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업장은 주상복합 및 임대아파트가 17곳이며 상업시설 18곳, 업무용 등 기타 18곳. 분양권자들은 자칫 계약금과 분양금을 고스란히 떼일 수도 있는 실정이다. 현행 법률상 임대아파트는 임대인이 건설회사로 돼 있어 회사(한부신)가 파산절차를 밟을 경우 입주자 보호조항이 없어 임대보증금을 받을 수 없다. 한부신에서 진행하던 임대아파트는 곤지암 1152가구와 보령 임대아파트 1230가구 등 두곳이며 보령 임대아파트는 아직 분양을 하지 않은 상태다. 상가 계약자들도 권리를 보호받을 법률이 없다. 상가는 경매로 다른 투자자에게 낙찰되더라도 의무가 낙찰자에게 승계되지 않기 때문에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국가의 지원이나 낙찰자의 아량에 기대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한부신 부도의 도화선이 됐던 분당 테마폴리스를 비롯해 마산 코오롱쇼핑, 창원 애플타운, 부산 시티코아, 구리 신명스포렉스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보호받지 못하는 주상복합·상가, 임대아파트

사진/한부신이 파산처리되면 영세상인은 돈을 떼일 수밖에 없다. 사진은 한부신 채권단의 회의 모습.(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