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간 대립 갈수록 태산… 공멸의 게임 벌이며 국부손실 방치 
   
  포항제철과 현대·기아자동차그룹간 철강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1월 말부터 산업자원부의 중재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더니 포철쪽에서 ‘정부개입 불가론’을 들고 나왔다. 유상부 포철 회장은 지난 2월7일 기자간담회에서 “민간기업 경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통상마찰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유 회장이 말한 정부 개입이란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하나는 산자부가 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간 철강분쟁에 조정자로 나서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포철에 대한 조사이다. 공정위는 포철이 현대하이스코(현대강관이 2월1일부터 바꾼 회사이름)에 자동차 강판용 원료 핫코일 공급을 거부하는 것이 공정거래법 위반인지 여부를 지난 5일부터 조사하고 있다. 
   
  독점 공급업체와 최대 수요업체의 힘겨루기 
   
 
포철은 이 조사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다. 현대하이스코에 문제가 되는 원료를 공급하지 않은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이때 조사하느냐, 즉 산자부 중재안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포철은 이에 앞서 산자부가 중재에 나선 자리에서도 미국 고문변호사의 편지를 보여주며 “정부가 나서서 핫코일 공급을 조절하는 것은 미국 정부로부터 담합 지적을 받아 통상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통상마찰 우려를 빌미로 정부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이런 논리를 유상부 회장이 직접 나서서 천명했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포철은 지난해 10월 정부 보유지분 27%를 모두 해외에 매각해 완전 민간기업이 됐다. 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간 싸움의 성격은 독점 공급업체와 최대 수요업체의 힘겨루기이다. 싸움은 먼저 현대차쪽에서 걸었다. 포철이 현대·기아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에 원료공급을 계속 거부하자, 현대차와 기아차가 올해 포철로부터 구입할 자동차 강판 물량을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현대·기아차는 포철이 제시한 올해 자동차강판 공급물량 135만t 가운데 49만5천t만 사기로 했다. 대신 현대하이스코로부터 필요한 강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간 거래사슬은 복잡하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구매하는 자동차 강판은 포철과 함께 현대하이스코도 지난 99년부터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하이스코는 중간가공업체여서 원료인 핫코일을 국내 유일의 고로업체인 포철로부터 얻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 포철로서는 자동차 강판 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처지에서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특히 국내 최대 구매자인 현대·기아차의 선택에 경쟁의 원리가 통할 수 없다는 게 포철에는 불만이다. 포철은 처음에는 “핫코일 공급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준다”라고 하다가 지금은 “내부 공정용 소재인데 어떻게 줄 수 있느냐”며 ‘못 주겠다’에서 ‘안 주겠다’로 태도를 바꿨다. 유상부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자동차용 핫코일은 고부가가치이면서 포철이 자체적으로 20여년 동안 땀흘려 이룩한 기술집약적 제품으로서 지적재산권과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하이스코쪽에서는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해 일본의 가와사키제철을 비롯해 5개 고로업체들로부터 수입한 핫코일은 뭐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판매용이 아니라며 핫코일 공급을 거부하는 포철이나, 그렇다고 해서 포철이 수년간 투자를 해 생산하는 강판 구매를 한꺼번에 대폭 줄이는 현대·기아차 모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 조사에 대해서도 양쪽의 시각이 정반대이다. 현대하이스코는 공정거래법 3조2항(원재료를 생산하는 사업자가 정상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면서 다른 사업자에 대해 원재료를 주지 않으면 불공정행위로 봄)을 들어 포철의 핫코일 공급거부는 독점공급자의 횡포로 단정짓는 반면에, 포철쪽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처사야말로 ‘구매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전형적인 불공정거래’라고 주장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번 분쟁은 독점의 특권을 잃지 않으려는 포철과 재벌식 사업운영논리를 따르는 현대차와의 힘겨루기”라며 둘다 비경쟁적 우위에 안주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철강산업 전체가 골병 들 수 있어
  만약 양쪽이 ‘갈 데까지 한번 가보자’는 식으로 계속 벼르게 되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만 곤란을 겪는 게 아니다. 국내 철강산업, 특히 공급과잉상태에 빠져 있는 냉연철강업계 전체가 골병이 들 수 있다. 현재 냉연제품은 포철, 현대하이스코, 동부제강, 연합철강 등 4개사가 연간 1400만t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 반면에 국내 자동차, 가전업계 등의 수요는 800만t 수준이다. 나머지 600만t은 수출로 해결해야 하는데 만만치가 않다. 우선 철강제품은 물류비가 많이 들어 수출을 하면 채산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만약 지금 설비를 그대로 가동하기 위해 각사가 경쟁적으로 밀어내기 저가수출을 한다면 곧바로 무역보복을 당한다. 산업연구원의 김준환 박사는 “국내외 냉연제품시장의 수급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설비확장경쟁을 하다보니까 원료인 핫코일은 모자라고 최종가공품은 공급이 남아도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런 상태를 방치하면 원료는 외국에서 비싸게 들여오고 제품은 헐값에 팔다가 통상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장 국내 냉연제품의 공급과잉은 철강 부문의 대일 무역역조를 심화시키고 있다. 일본산 핫코일 수입은 98년 12만t에서 99년 185만t, 지난해 320만t으로 2년 사이에 27배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99년 3억6천달러였던 대일 철강무역적자가 99년 10억3천만달러, 지난해에는 15억달러선으로 늘었다. 이는 지난해 전체 대일 무역적자의 13.4%를 차지한다. 이런 경제적 손실에 대해서도 포철과 현대쪽이 서로 ‘네 탓’이라며 치열한 공방전을 펴고 있다. 
  현대하이스코는 “포철이 강관용 핫코일 등을 냉연제품용 핫코일로 전환하거나 동남아시장 등지에 헐값으로 팔고 있는 핫코일을 국내 수요자들에게 공급하면 국부손실을 막을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반면에, 포철쪽에서는 “현대가 무리하게 냉연강판산업에 뛰어들어 냉연시장의 공급과잉과 이에 따른 핫코일 부족사태를 초래하는 바람에 대일 역조가 심화된 것”이라며 원인제공자를 현대로 몰고 있다. 포철 고위관계자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에게 “결자해지 차원에서 현대하이스코와 연합철강을 합병하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몽구 회장이 발끈해 “포철로부터 구매물량을 대폭 줄여라”라는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현대하이스코에 일본 종합상사들의 외자를 유치하려는 데 포철이 방해를 했다”는 등 비난까지 쏟아냈다. 
   
  산자부 중재안 무용지물… 관계 재정립이 관건 
   
  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도 이런 식으로 대립의 골이 깊어지면 ‘공멸의 게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포철로서는 최대 수요처를 일본의 경쟁업체들에 뺏기는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현대·기아차그룹으로서도 안정적 소재공급의 통로를 잃을 수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지난해 포철이 신일본제철과 전략적제휴를 맺고 현대하이스코는 가와사키제철과 자본제휴한 사실을 거론하며 “외국기업들과는 ‘윈-윈전략’을 잘도 구사하면서 국내 기업과는 왜 모두에게 상처만 주는 싸움을 하느냐”면서 자율적인 분쟁해결을 촉구했다. 산자부는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전제로 포철이 현대하이스코에 핫코일을 공급해주도록 하는 중재안을 내놓고 있다. 
  이 중재안이야 당자들끼리 만나서 조금씩 양보하며 조정하면 되는데, 우선 급한 과제는 그동안 쌓인 갈등의 골의 메우는 일이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포철의 산하연구소인 포스코경영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그대로 나와 있다. 바로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는 지난해 11월 ‘가와사키와 현대하이스코와의 자본제휴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현대하이스코가 가와사키로부터 자동차용 강판 부문의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앞으로 이 분야 전문업체로 부상해 포철의 냉영강판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포철로서는 원가 및 품질 경쟁력을 강화를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동시에 경쟁자이면서도 동시에 수요자인 현대하이스코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사진/포철과 현대·기아차간 핫코일 관련 힘겨루기가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포항제철 핫코일 공장 창고 모습.
포철은 이 조사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다. 현대하이스코에 문제가 되는 원료를 공급하지 않은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왜 이때 조사하느냐, 즉 산자부 중재안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포철은 이에 앞서 산자부가 중재에 나선 자리에서도 미국 고문변호사의 편지를 보여주며 “정부가 나서서 핫코일 공급을 조절하는 것은 미국 정부로부터 담합 지적을 받아 통상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라고 밝혔다. 쉽게 말하면 통상마찰 우려를 빌미로 정부에 반기를 든 셈이다. 이런 논리를 유상부 회장이 직접 나서서 천명했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포철은 지난해 10월 정부 보유지분 27%를 모두 해외에 매각해 완전 민간기업이 됐다. 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간 싸움의 성격은 독점 공급업체와 최대 수요업체의 힘겨루기이다. 싸움은 먼저 현대차쪽에서 걸었다. 포철이 현대·기아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하이스코에 원료공급을 계속 거부하자, 현대차와 기아차가 올해 포철로부터 구입할 자동차 강판 물량을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현대·기아차는 포철이 제시한 올해 자동차강판 공급물량 135만t 가운데 49만5천t만 사기로 했다. 대신 현대하이스코로부터 필요한 강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포철과 현대·기아차그룹간 거래사슬은 복잡하다. 현대차와 기아차가 구매하는 자동차 강판은 포철과 함께 현대하이스코도 지난 99년부터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하이스코는 중간가공업체여서 원료인 핫코일을 국내 유일의 고로업체인 포철로부터 얻거나 아니면 외국에서 사와야 한다. 포철로서는 자동차 강판 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처지에서 별로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특히 국내 최대 구매자인 현대·기아차의 선택에 경쟁의 원리가 통할 수 없다는 게 포철에는 불만이다. 포철은 처음에는 “핫코일 공급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준다”라고 하다가 지금은 “내부 공정용 소재인데 어떻게 줄 수 있느냐”며 ‘못 주겠다’에서 ‘안 주겠다’로 태도를 바꿨다. 유상부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자동차용 핫코일은 고부가가치이면서 포철이 자체적으로 20여년 동안 땀흘려 이룩한 기술집약적 제품으로서 지적재산권과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현대하이스코쪽에서는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해 일본의 가와사키제철을 비롯해 5개 고로업체들로부터 수입한 핫코일은 뭐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판매용이 아니라며 핫코일 공급을 거부하는 포철이나, 그렇다고 해서 포철이 수년간 투자를 해 생산하는 강판 구매를 한꺼번에 대폭 줄이는 현대·기아차 모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 조사에 대해서도 양쪽의 시각이 정반대이다. 현대하이스코는 공정거래법 3조2항(원재료를 생산하는 사업자가 정상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면서 다른 사업자에 대해 원재료를 주지 않으면 불공정행위로 봄)을 들어 포철의 핫코일 공급거부는 독점공급자의 횡포로 단정짓는 반면에, 포철쪽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처사야말로 ‘구매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전형적인 불공정거래’라고 주장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번 분쟁은 독점의 특권을 잃지 않으려는 포철과 재벌식 사업운영논리를 따르는 현대차와의 힘겨루기”라며 둘다 비경쟁적 우위에 안주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철강산업 전체가 골병 들 수 있어

사진/“자동차용 핫코일은 포철의 지적 재산권이다.” 포철의 광양제철소와 유상부 회장.(이정용 기자)

사진/“최대 수요업체로서 구매불량을 대폭 줄여라.” 현대하이스코전경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