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핵심, 자기자본에 대한 장래 추정치가 엇갈려… 은행 쪽보다 훨씬 낮게 산출된 금감위 수치 검증하려면 세부 항목 공개해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핵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누고 여기에 100을 곱해 산출한 값이다. 자기자본은 남에게 꾼 돈이 아니라 주식 등을 발행해 모은 ‘내 돈’을 말하며 ‘타인자본’과 상대되는 말이다. BIS 비율의 분모를 이루는 위험가중자산은 거래 상대방의 신용위험도에 따라 은행자산을 구분한 것을 말한다.
6.2% 평가로 론스타 인수 길 열어줘
자산 100조원 규모 은행의 예를 들어보자. 여기서 자산은 기업이나 개인에게 돈을 꿔준 대출 자산도 있을 수 있고, 주식이나 채권 같은 유가증권의 형태를 띤 것도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에 5조원, 공공기관인 주택금융공사에 1조원을 대출해줬다고 하면 위험가중자산은 어떻게 될까? BIS 비율 산출 기준에 따라 삼성전자 같은 일반기업 대출은 기업의 신용도(위험도)와 무관하게 100%(5조원)를 반영한다. 주택금융공사 같은 공공기관에 꿔준 돈(자산)의 위험가중치는 20%(2천억원)다. 따라서 삼성전자와 주택금융공사에 꿔준 돈의 합계는 6조원이지만, 이에 따른 위험가중자산은 5조2천억원(5조원+2천억원)으로 계산된다. 거래상대방에 따라 위험가중치는 각각 달라 국내외 정부에 꿔준 돈은 0%, 주택담보대출은 50%로 돼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은 외환위기 직후 금융기관들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 잣대였다. 지난 1998년 8월 퇴출 은행 명단을 발표하고 있는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100조원에 이르는 은행의 자산 중에는 이런 대출 자산 외에 유가증권도 있기 때문에 BIS 비율의 위험가중치(0%, 20%, 50%, 100%)에 따라 분류되는 자산의 형태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이런 기준에 따라 위험가중자산을 산출해내고, 이것으로 자기자본을 나눠 BIS 비율을 구하게 된다.
지난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팔린 외환은행의 예로 돌아가보자. 매각되던 그해 말 외환은행의 총자산은 66조8462억원(신탁계정 포함)이었다. 여기에 BIS 기준 위험가중치를 감안해 산출한 위험가중자산은 42조789억원으로 산출됐다. 이에 따라 자기자본 3조9223억원을 이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눠 100을 곱한 BIS 자기자본 비율은 9.32%였다. 이런 수치는 외환은행이 금융감독원에 보고해 검증을 거친 것으로, 금감원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BIS 비율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것은 은행의 건강성을 재는 대표적인 잣대로 여겨져 때론 특정 은행의 생사를 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에 바탕을 둔 ‘적기시정조치’ 제도에 따라 BIS 비율이 8% 아래로 떨어지는 은행에 대해선 다양한 제재가 가해진다. 6~8%이면 ‘경영개선 권고’가, 2~6%이면 ‘경영개선 요구’가, 2% 아래로 떨어지면 ‘경영개선 명령’(계약이전, 인수·합병)을 받는다. 외환위기 직후 경기은행을 비롯한 5개 부실 은행에 대해 자산을 우량은행들에 넘겨주고 문을 닫도록 한 결정의 근거 또한 이 BIS 비율이었다.
외환은행과 BIS 비율이 얽혀 있는 논란의 내용은 은행 매각을 앞둔 2003년 7월에 추정한 그해 말 BIS 비율이 8%를 넘는지 여부다. 당시 은행 경영위원회에서 작성한 경영계획 수정안에는 10%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반면, 금감위는 이 BIS 비율을 시나리오별로 6.2~9.3%로 봤으며 최종적으로는 가장 낮은 6.2%로 평가했다. 금감위는 이를 근거로 (원칙적으로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이 때문에 투기자본감시센터를 중심으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팔아넘기기 위해 정책 당국의 누군가가 BIS 비율을 조작했다는 주장을 펴왔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국제 결제은행(BIS)본부. 각국 은행들에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한다.
금감원 쪽은 2003년 7월 당시 외환은행 경영위원회의 경영계획 수정안에서 제시된 것과 금감위에서 평가한 수준의 차이는 BIS 비율의 속성에서 비롯됐을 뿐 조작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금감원 은행감독국의 장현기 경영지도팀장은 “당시 외환은행의 BIS 비율은 12월 말이라는 미래 시점을 놓고 추정한 ‘판단’의 문제여서 (평가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BIS 비율, 특히 미래 시점의 비율이 평가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분모보다는 분자 쪽인 자기자본 항목에서 주로 비롯된다.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은 BIS 기준에 따른 위험가중치에 따라 다분히 기계적으로 정해지는 반면, 분자인 자기자본은 평가자에 따라 들쑥날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손충당금(꿔준 돈이 떼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쌓는 준비금)을 얼마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순이익이 달라지고 이는 자기자본의 한 구성 요소인 이익잉여금을 변하게 만든다. 실제 외환은행의 경우 2003년 당시 은행 경영위 쪽은 2003년 하반기 추가로 쌓아야 할 대손충당금을 최대 1100억원으로 잡은 반면, 금감위 쪽 평가에선 9600억원으로 돼 있었다.
“멋대로 한 판단은 조작이다”
이렇게 평가자의 ‘판단’이란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게 BIS 비율이라면 숫자를 조작했다는 의혹은 사실과 먼 과장된 억측에 지나지 않는 걸까?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을 주도적으로 제기한 투기자본감시센터의 이대순 변호사(법무법인 정민)는 “판단의 문제가 개입되는 장래 추정치라고 해도 그 판단은 상식선에서 이뤄져 모두가 동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멋대로 한 판단은 판단이 아니라 조작이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하이닉스반도체 출자전환 주식 평가손(2364억원)의 경우 6월 경영평가에 이미 반영해 털어냈는데, (연말 BIS 비율을 추정할 때 다시 반영해 중복해서) 또 털어냈고, 그런 게 두세 건 더 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좀더 명확히 검증하려면 BIS 비율을 산출한 세부 항목을 공개해서 그에 따라 확인을 해봐야 한다. 뭉뚱그려 총액만 내놓지 말고 세부 항목을 공개해 검증해보면 ‘판단’인지 ‘조작’인지 명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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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들의 저승사자
스위스에 본부 둔 BIS, 자기자본 비율 8% 기준으로 각국 은행 압박
우리 말로 ‘국제결제은행’으로 번역되는 BIS는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두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뒤 독일의 전쟁 배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요국 중앙은행들을 중심으로 1930년에 설립됐다.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을 통해 0.5%(3211주)의 지분을 갖고 있다. 미국은 한 푼의 지분도 없이 BIS 정관에 따라 당연직 이사 6개 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설립 당시 BIS는 국제적인 청산 결제 구실을 하다가 유럽 각국 중앙은행 간 외환거래 업무를 담당했고 지금은 경제·금융 조사와 자문으로 영역을 넓혔다. BIS의 은행규제감독위원회(바젤위원회)는 은행의 건전성과 안전성 확보를 목적으로 1988년 ‘자기자본 측정과 기준에 관한 국제적 합의’를 제정해 발표했고, 1992년 말부터 은행들에 자기자본 비율을 8%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비율이 8%를 넘지 못하면 외화를 빌리는 데 애로를 겪기 때문에 각국 은행들을 압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의 생사를 가름하는 잣대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은행 대주주가 될 수 없는 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팔아넘긴 근거도 이 비율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BIS가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운영되는데다 일본 자본이 미국 현지 자산을 대거 사들이던 시기에 BIS 비율이 설정됐다는 점 때문에 미국이 일본 쪽을 견제하기 위해 이 비율을 마련했다는 해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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