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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외환은행 매각 범죄’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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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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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값’에서 ‘불법’으로 의혹 확산되는 가운데 뒤늦게 수사에 착수한 검찰 … 경제관료들과 론스타의 공모에 관심 집중, 인수가 원인무효되기는 어려울 듯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1조3834억원을 투자해 3년 만에 4조5천억원의 매각차익을 먹고, 세금 한 푼 안 내고 튄다? 3년 전에 발생한, 외환은행 불법 매각 의혹을 둘러싼 사태 전개가 점입가경이다. 숱한 ‘의혹들’이 날마다 숨가쁘게 제기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조작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고위층 윗선이 개입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 짜놓은 각본에 따른 것이다”…. 당사자들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일 뿐이다” “정책적 판단에 따른 매각이었다”며 일축하고 있지만, ‘조작과 개입’의 흔적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근거와 새로운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제기되는 형국이다.

불법 매각 의혹은 2003년부터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떠나는 지금에 와서 뒤늦게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지만, 외환은행 불법 매각 의혹은 2003년 9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입한 직후부터 이미 외환은행 노동조합과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시중은행을 어떻게 ‘투기펀드’에 팔아넘길 수가 있느냐” “BIS 비율이 조작됐다”는 등 여러 의혹들이 터져나왔지만 정부가 전혀 손대지 않고 있다가, ‘4조5천억원 먹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들끓자 이제야 나선 것이다. 국세청이 먼저 론스타에 대한 ‘과세 의지’를 꺼냈고 이어 감사원과 검찰이 여론 분위기에 떠밀려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4월 19일 존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63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가운데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에 대한 조사는 감사원과 검찰 두 축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조사는 애초에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이었는데, 이제 “왜 무리하게 팔아 헐값에 넘겼느냐”는 정도를 넘어 ‘불법’ 매각 의혹으로 단숨에 선회했다. 당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넘겨주기 위해 BIS 비율을 조작하는 등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의혹이 초점인데, 온갖 소문과 음모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불법’ 또는 ‘범죄’를 판단하는 두 가지 핵심은 △2003년 7월21일 외환은행이 금융감독원에 보낸 ‘의문의 팩스 5장’과 여기에 제시된 연말 외환은행 BIS 비율 전망치(6.16%)의 진실 △외환은행 BIS 비율 전망치 산정에 론스타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다.

당시 외환은행·금융감독위원회·재정경제부 등의 각종 회의록, 외자유치 검토 보고서, 이사회 의사록 등 문건이 공개되면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입할 수 있도록 ‘경제관료들이 밀어줬다’는 정황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의문의 팩스와 BIS 비율 6.16%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개입으로 인위적으로 조작됐거나 중간에 바꿔치기됐다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못한 상태다. 자기자본비율 6.16%는 당시 외환은행 매각 결정의 근거가 된 것으로, 론스타는 투기펀드라서 예외적인 경우(잠재적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된 은행)에만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데, 부실 금융기관 지정 여부는 BIS 비율이 8%를 넘어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당시 금융감독원이 갖고 있던 외환은행 BIS 비율 전망치는 9.14%였는데, 이 전망치가 한두 달 사이에 6.16%로 떨어진 건 론스타에 매각하려고 ‘억지로 맞춘 수치’이고, 결국 외환은행이 ‘인위적으로’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되는 과정을 거쳐 론스타에 넘어갔다는 주장이다.

감사원, BIS 비율 발표 계속 미뤄

특히 감사원이 최근, 외환은행의 당시 BIS 비율을 자체적으로 재산정한 결과 ‘8%대 중반’으로 나왔다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외환은행 ‘불법’ 매각 의혹은 다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은 원인 무효다”라는 또 다른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감사원이 자체적으로 BIS 비율을 8%대 중반으로 재산정해 확정한 건 아직 아니다”고 말했다. BIS 비율 전망치가 조직적으로 조작됐음을 시사하는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외환은행·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 등은 “우리는 ‘단순 전달자’에 불과하다”며 상대편에 공을 넘기고 BIS 비율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 감사원은 BIS 비율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판단하는 데 미칠 엄청난 파장을 감안해 자체적으로 재산정한 BIS 비율 공식 발표를 계속 늦추고 있는 중이다. 한편, 검찰 쪽이 지금까지 밝혀낸 건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엘리어트홀딩스를 매각 자문사로 선정해준 대가로 외환은행 간부가 돈을 받았다는 사실뿐이고, 의혹의 핵심에는 아직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감사원 감사가 종결되는 5월 초부터 외환은행 매각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예정이다.

또 다른 쟁점은 론스타가 BIS 비율 산정에 개입했느냐 여부다. 개입이 드러난다면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이 박탈될 뿐만 아니라 2003년 매각 자체가 원인무효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와 관련해 수출입은행의 당시 보고서를 보면, 외환은행이 자본금 확충 방안을 다각적으로 강구하던 중 2003년 상반기에 론스타로부터 구주 매입과 연계한 신규 투자 제안을 받고 정부와 협의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4월19일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 당시 BIS 비율 산정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노동조합 김보헌 전문위원은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법적 책임을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각 자체가 불법이었음을 명백히 밝히고 론스타가 시세차익을 실현할 근거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은 정책적 판단이었나, 조직적 범죄였나? 론스타 의혹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

그러나 여러 기관과 경제 관료들이 얽힌 ‘공모·조작·개입’의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정책적 판단’의 실수 문제로 귀착될 가능성도 높다. 공적자금 투입 없이 급박하게 외자를 유치해 외환은행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낮은 BIS 비율 전망치’를 선택한 것이 정책 판단이었다면, 결국 ‘정책적 무혐의’로 끝날 공산이 크다. 검찰 쪽도 “단순한 정책 판단의 실수인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할 사건”이라고 말했다. 정부 쪽도 이번 사태를 정책적 판단의 문제로 몰아가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재정경제부는 애초에 “눈 내릴 때는 빗자루질을 하지 말자”며 말을 아껴왔으나 의혹이 갈수록 커지자 조금씩 입을 열고 있다. 재경부 쪽은 “당시 외환은행은 사실상 부실 금융기관이었다. 가만히 두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였다”며 “왜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팔았냐고 하는데, 당시 판단은 위암 환자에게 위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 의사의 진단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과연 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매입계약 자체를 원인무효화하는 데까지 치달을 수 있을까?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종남 국장은 “감사원에서 BIS 비율이 8% 이상으로 나오는 순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입은 원인무효가 된다. 부실 금융기관이 아니었다면 론스타에 팔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실무자 몇 명한테 책임을 씌우고 사태를 끝내려 할 가능성도 있지만, 행정법원을 통해 원인무효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매각 자체가 원인무효로 판정되면 론스타는 납입했던 지분 1조4천억원과 정기예금 이자만 받고 나가야 한다. 그러나 BIS 비율 산정의 적정성을 빌미로 소송제기를 통해 매각 자체를 원천무효화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도 많다. 3년 전에 매각 거래가 이미 일어났는데 이제 와서 없던 일로 되돌리기도 어려운 노릇이고 국제거래 관행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원인무효 확인은 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재판을 한다면 관할권이 한국인지, 외환은행에 투자한 론스타 펀드(LSF-KEB홀딩스)가 있는 벨기에인지, 아니면 론스타 본사가 있는 미국인지도 헷갈린다. 론스타는 펀드라서 매각 대금을 받은 뒤 배당 수익 투자자들끼리 나눠먹고 펀드가 청산돼버리면 누구한테 반환소송을 청구할 것인지도 골칫거리가 된다.

화제를 바꿔서, 론스타의 매각차익에 대한 ‘과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과세는 국세청과 재경부 두 쪽이 맡고 있는데, 국세청은 현행 ‘국제조세 조정에 관한 법률’의 ‘고정사업장’ 개념을 적용해 충분히 과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론스타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벨기에에 회사를 차렸지만 론스타코리아를 한국에서의 고정사업장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세청은 “고정사업장 개념을 실제로 적용하면 외국 자본이 등을 돌리고 한국을 떠날 것”이라며 반대했으나, 여론이 악화되자 “과세가 가능하다”고 돌아섰다. 반면 재경부 쪽을 보면, 국제조세조정법 개정안이 4월 국회를 통과하면 7월1일부터 외국계 펀드가 조세 회피 목적으로 국내 투자에 나서 양도차익을 낼 경우 원천징수할 수 있게 된다. 벨기에를 조세회피지역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법인세와 양도차익 과세가 가능한 것이다.

외환은행 불법 매각 의혹으로 재매각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국민은행은 실사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과세는 ‘의지’의 문제로 바뀌었다. 특히 론스타가 1천억원을 한국에 사회공헌기금으로 기부하고, 매각 차익에 대한 과세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최대 7250억원을 국내 은행에 예치해놓겠다고 발표하면서 과세는 더욱 쉬워졌다. 한국 정부가 과세를 통해 가져갈 테면 가져가라는 식으로 돌아선 것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종남 국장은 “사태가 돌아가는 판이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애초 세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던 론스타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세금이나 내고 이쯤에서 끝내고 적당히 빠져나갈 생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은 이와 관련해 “(론스타) 성공의 일부는 한국의 경제 회복 때문이었고, 이는 한국 국민의 노고, 한국 정부의 앞을 내다보는 정책 덕분이었기 때문에 한국 국민한테 드리는 것”이라고 립서비스를 날렸다.

국민은행 재매각 협상도 꼬여

이 와중에서 지난 3월 외환은행 재매각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국민은행은 외환은행 노조의 실력 저지에 따라 본계약 체결을 위한 실사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고, 자칫 ‘먹튀’를 돕는다는 비난이 쏟아질까봐 걱정하고 있다. 특히 금융감독원이 ‘만일의 사태(론스타의 2003년 외환은행 매입 원인무효 및 대주주 자격박탈)에 대비해서’라고 전제를 붙였지만, “국민은행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을 무효화할 수 있는지도 법률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말하면서 이번 사태는 더욱 꼬이고 있다. 본계약이 5월에 체결되더라도,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가 독과점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가 최대 120일을 다 채운다고 가정할 때 외환은행 매각은 9월 초에나 마무리될 수 있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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