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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까르푸의 대한민국 탈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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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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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더드’만 내세우다 신선식품 등 현지화 실패해 수익성 악화… 매각 과정을 비밀에 붙이며 국내 할인점 진흙탕 인수전으로 몸값 불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김봉규,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월마트에 이어 할인점 분야에서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는 까르푸가 한국 시장에서의 ‘실패’를 공식 인정하고 완전 철수한다. 국내에 할인점이라고는 이마트 서너 곳에 불과했던 1996년부터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던 까르푸가 한국 진출 10년 만에 끝내 사업을 접고 한국 시장을 떠나는 셈이다. 사실 까르푸는 2∼3년 전부터 “까르푸가 조만간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시장에 끊임없이 나돌았지만, 지난 1월에도 수원 병점점(32호점)을 개점하는 등 철수를 공식 부인해왔다. 국내 까르푸 매장 전부 매각과 관련해 인수제안서 제출 마감일인 4월4일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업체는 신세계(이마트)·롯데쇼핑(롯데마트)·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이랜드 등 4곳이다.


상품 진열 등 프랑스 본사와 ‘국화빵’

프랑스에 본사를 둔 까르푸는 가끔 “전세계 매장에서 ‘넘버2’ 안에 들지 못하면 철수하겠다”는 언급을 해왔다. 한국까르푸는 국내 할인점 업계 4위인데다 수익성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국 할인점 시장에서는 실패했어도 매각을 통해 수천억원의 차익을 남긴다? 수도권의 한 까르푸 매장.(사진/ 박승화 기자)

까르푸의 2005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액 1조6679억원, 영업이익 246억원(당기순이익은 68억원)으로 매출액영업이익률이 1.48%에 불과하다. 반면 이마트는 2005년에 매출액 6조6127억원, 영업이익 5308억원으로 영업이익률 8%를, 홈플러스는 2004년에 매출액 3조359억원, 영업이익 1133억원으로 영업이익률 3.7%를, 롯데마트는 2005년 매출액 2조9030억원, 영업이익 901억원으로 영업이익률 3.1%를 기록했다. 까르푸의 국내 32개 매장 중에서 서울 월드컵경기장 상암매장을 비롯한 한두 곳을 빼면 상당수가 별다른 이익을 못 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까르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화 원년(元年)’을 선언하면서 매각 소문을 부인해왔다. 그만큼 이번 매각은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 까르푸 쪽은 이번 매각 배경과 과정을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 왔다.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확인해주지 않다가 인수의향서 제출이 마감된 날 저녁에야 한국 시장 철수를 공식 인정했을 정도다. 한국까르푸노동조합 김경욱 위원장은 “유럽 시장에서 까르푸 본사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주가도 폭락하면서 글로벌 매장에서 한 곳을 팔아 자금 사정을 호전시켜보려고 한 것으로 안다”며 “수익성이 괜찮은 중국 쪽 매장은 철수할 수 없으니까 한국 매장 철수를 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까르푸가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수익성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까르푸는 지난해 일본 시장에서도 완전 철수한 바 있다. 전세계 30여 개국 1만3천 개의 매장에서 연간 100조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까르푸가 유독 한국과 일본에서 초라한 수익을 내다가 결국 철수 운명을 맞게 된 이유는 뭘까?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현지화 실패’를 꼽는다. 글로벌 경영 방식을 지나치게 고수해 현지 유통문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신세계 쪽은 “까르푸의 진열 상품 구성을 보면, 프랑스 본사에서 하는 것을 국화빵 찍듯이 그대로 한국에도 도입했다. 농산물은 가격도 중요하지만 품질이나 신선도가 더 중요한데, 까르푸는 할인점이라고 가격으로만 승부를 걸려고 했다”고 말했다.

유럽식 관행이 납품업체와의 마찰 불러

상품 진열대 높이의 경우 까르푸는 유럽 시장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한국에서도 2.2m 이상을 고집했다. 반면 이마트의 경우 유럽의 할인점들을 둘러보고 벤치마킹하기도 했지만, 2.2m는 너무 높아 한국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고 판단하고 1.6∼1.8m로 낮췄다. 매장 구성에서도 이마트는 신선식품부터 구매하고 가공식품과 공산품은 나중에 구매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에 따라 매장을 구성했다. 사실 우리나라 할인점은 공산품보다는 신선식품 의존도가 더 강하다. 신세계 관계자는 “까르푸는 유럽식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할인점은 농산물보다 값싼 공산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또 한국 소비자들이 할인점에 가더라도 백화점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는데, 까르푸는 ‘소비자들이 할인점에 와서 값싸게 사면 되지 왜 백화점 서비스를 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까르푸와 달리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영국 테스코의 싸구려 할인점 이미지에서 탈피해 매장을 할인점과 백화점을 합친 중간 성격으로 바꿨다. 롯데쇼핑 관계자도 “외국의 할인점은 가정용품 중심의 구조를 갖고 있지만 한국은 식품 위주다. 그래서 남자들은 까르푸에 가면 살 것이 상대적으로 많지만, 대다수 소비자를 차지하는 한국의 주부들은 식품 매장부터 찾는다”고 말했다.

까르푸의 한국시장 철수는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 2002년 한국까르푸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집회를 갖고 있다.(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까르푸의 가장 큰 취약점은 ‘신선식품 매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할인점 식품 매장은 신선하고 좋은 농산물을 공급하는 국내 바이어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까르푸는 이런 능력이 떨어졌고, 신선 농산물을 구입해 매장에 진열하는 안목도 낮았다는 평이다. 통조림 같은 가공식품은 한 푼이라도 쌀수록 소비자들이 선호하지만 농산물은 가격 이외에 신선도와 품질도 매우 중요하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까르푸는 신선식품을 구매해 진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물건을 납품하는 거래처에 비용 부담을 떠넘기는 일도 자주 발생하면서 협력업체와 좋은 관계를 맺는 데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까르푸는 매장 안에서 위치가 좋은 곳에 입점하는 협력업체에는 수수료를 더 물리고, 광고 전단지 비용도 협력업체에 떠넘기면서 납품업체와 자주 마찰을 빚어왔다. 유럽에서야 할인점이 광고 전단지를 낼 때 협력업체가 비용을 분담하지만, 우리나라의 관행은 전혀 다른데도 글로벌 기업이라는 강한 이미지를 버리지 않은 것이다. 까르푸노조 김경욱 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까르푸 간의 마찰에 대해서도 ‘프랑스 본사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 왔다”며 “까르푸는 ‘우리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하는데 한국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수 관련 루머만 난무한다

까르푸는 국내 할인점 중에서 가장 늦게 신용카드 결제를 도입했다. 손님들한테 욕을 먹다가 뒤늦게 신용카드 사용을 허용한 것이다. 김경욱 위원장은 “까르푸 자본은 이윤이 남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또 사업을 할 때 과감하지 못하고 아주 조심스럽게 추진한다. 그래서 나중에 하려고 하면 이미 시기를 놓쳐버릴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신용카드를 도입하지 않아도 장사가 잘되고 신용카드 수수료를 떼고 나면 이윤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가장 늦게 신용카드 결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당장의 마진만 생각할 뿐 신용카드 결제로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해 더 많은 수익을 낸다는 생각을 못한 것일까?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까르푸에서는 한국인 점장의 의사결정 권한이 매우 약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점포를 하나 새로 내려 해도 프랑스 본사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데 한두 달이 걸릴 정도로 굉장히 느렸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에서의 사업 실패를 만회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지난해 일본 시장에서 철수할 때 매장을 헐값에 매각했던 일이 악몽처럼 떠올랐던 것일까? 까르푸는 이번 매각에서 몸값을 최대한 올려,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돈을 챙겨 떠나려 하고 있다. 까르푸는 물밑으로는 매각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매각 사실까지 철저한 비밀에 붙여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까르푸(2005년 자산 장부가치 총 1조5천억원)를 인수하는 데 적정가격이 1조2천억원이다, 1조5천억원이다.

어느 업체가 인수가격 1조7천억원대를 제시했다”는 등 온갖 루머가 시장에 난무했고, 덕분에 까르푸의 몸값은 계속 치솟았다. 까르푸 쪽 홍보대행사는 입찰 제안서 마감일인 4월4일까지도 “매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 자체도 확인해줄 수 없다. 까르푸에서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발표할 것이다. 지금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입찰 제안서 마감이 끝난 이날 밤에야 까르푸는 입찰 매각과 한국 시장 철수를 공식 확인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이든 아니든 한국에서는 주요 기업의 경우 인수·합병 과정이 공개되지만, 까르푸는 “그건 한국 관행일 뿐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우리는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국까르푸는 자산총계 등 재무 상태가 기록된 2005년 감사보고서를 인수제안서 제출 마감일에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안진회계법인이 제출한 보고서는 “회사가 운영 중인 일부 매장 중 영업손실이 발생하고, 미래에도 (손실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매장에 대해 유형자산에 대한 감액 여부를 판단해야 하나 회사로부터 자료를 제시받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매각을 앞두고 불리한 자료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도록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 것일까?

국내 업체들이 모든 실탄 퍼붓는다?

까르푸의 전략이 먹혀든 것인지 까르푸 인수전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국내 할인점들로서는 좋은 자리에 신규 점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시점에서 신규 매장을 건설해 오픈하는 것보다는 까르푸 매장을 인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지역에서 매장이 중복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신세계 관계자는 “할인점 업계의 치열한 대형화 경쟁이 진흙탕 싸움을 불렀다”며 “다른 경쟁 업체가 인수하면 덩치가 커져 위협이 될 것이고, 자신이 떠맡아 인수하자니 낮은 수익성과 매장 중복 등 골칫거리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경쟁 업체에 넘어가느니 차라리 직접 인수해버리겠다는 것인데, 까르푸는 이 기회를 틈타 몸값을 최대한 부풀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까르푸 인수는 할인점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변수다. 그래서 홈플러스와 롯데마트가 1위 자리를 위협하거나 2위 자리를 굳히려고 모든 ‘실탄’을 퍼부으며 까르푸 인수전에 거액을 베팅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번 까르푸 매각에서 프리미엄만 1조원이 넘게 붙을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실패해 사업을 접고 떠나는 신세인 까르푸의 주머니만 두둑하게 불려놓은 셈이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일 때 국내에 투자한 까르푸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95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이미 30% 가까운 환차익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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