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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용카드가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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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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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도난 등에 따른 카드사와의 분쟁 급증… 철저히 관리하고 비밀번호 확인 도입해야

사진/신용카드 사용자들이 카드를 잃어버리면 즉시 카드회사에 분실신고를 해야 한다. 한 카드회사의 고객서비스센터 모습.
이아무개(서울시 중구 광희동)씨는 신용카드 생각만 하면 울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다. 이씨는 지난해 9월 ㅅ카드사의 일반카드를 다기능카드로 교체발급받았는데, 11월 어느 날 강도를 당해 흉기로 위협을 받은 상태에서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도난 직후 이씨는 즉시 카드사에 분실신고를 했지만 다음날, 신고가 돼 있지 않았으며 자신의 카드를 통해 현금 100만원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했다. 이게 어찌된 노릇일까.

의문은 금융감독원 조사 과정에서 풀렸다. 이씨로부터 분쟁조정 신청을 받은 금감원이 조사를 벌인 결과 이씨는 일반카드에 대해서만 분실신고를 하고 다기능카드는 미처 분실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이 빠져나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씨는 일반카드는 교체발급과 동시에 당연히 해지됐고 다기능카드만 남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금감원은 카드 회원의 착오 및 비밀번호 유출에 따라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민원해소 차원에서 사고금액의 20%(20만원)를 보상토록 했다.

카드 사용 폭발적으로 늘어 다툼도 많아


소비자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금융감독 당국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신용카드를 잘못 관리함으로써 생기는 손실 및 이로 인한 다툼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분쟁은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신용카드가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 것 또한 분쟁을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에 살고 있는 회사원 임아무개(28)씨도 신용카드 때문에 속쓰린 일을 당했다. 임씨는 지난해 6월 서울에 다녀오던 중 카드를 잃어버렸으며 분실 당일 380만원이 부정사용된 사실을 알았다. 그는 카드사에 전화로는 보상기간(15일) 안에 분실사실을 통지했지만, 서면신고는 17일이 지나 했다.

이 때문에 임씨와 카드사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으며 금감원의 조정결과 임씨도 1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용카드와 관련, 고객과 카드회사간의 다툼이 생겨 분쟁조정을 거친 건수가 지난 한해만 무려 725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 622건보다 30.6%나 늘어난 수준이다. 신용카드 분쟁건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에 전년대비 22.0% 줄어든 269건에 머물다가 99년 622건으로 크게 늘어난 뒤 지난해에도 30%를 웃도는 증가율을 보였다.

외환위기를 겪고 난 뒤 소비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신용카드 사용도 증가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카드 분쟁도 확대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는 앞으로도 신용카드 분쟁이 크게 증가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판매신용,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신용카드 이용잔액은 24조2천억원으로 전년 말에 비해 무려 11조2천억원이나 늘었다. 이같은 증가 규모는 99년 한해 전체 늘어난 5조4천억원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신용카드 이용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 전자상거래 확산 등 주변환경 변화로 카드 사용은 더욱 늘어나고 이에 따른 분쟁도 빈발할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신용카드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평소 카드관리를 잘하는 게 최선이다. 신용카드를 받는 즉시 뒷면에 서명을 한 뒤 사용하고 분실하지 않도록 유의하는 건 기본이다. 서명을 않고 쓰다가 잃어버린 뒤 문제가 생겼을 때는 보상폭이 크게 줄어들거나 심지어 아예 보상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꼭 새겨둬야 한다. 여러 장의 카드를 발급받았더라도 꼭 필요한 1개만 갖고 다니는 것은 분실 가능성을 줄이는 지혜가 될 것이다.

조심을 한다고 해도 뜻하지 않게 카드를 분실하는 일은 늘 일어날 수 있다. 이때는 즉시 카드회사에 분실신고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평소 거래 카드회사의 분실신고 전화를 챙겨둬야함은 물론이다. 지난해 8월1일부터 ‘신용카드 개인회원 약관’이 바뀌어 잃어버린 지 25일(기존 15일) 안에만 신고하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됐지만 신고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분실 뒤 제3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카드를 사용한 것을 나중에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칫 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분실 즉시 신고해 기록 남겨야 피해 줄여

사진/신용카드가 부정하게 발급돼 선의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고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강창광 기자)
카드분실 신고 때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 신용카드를 분실한 경우 대부분 분실 사실을 전화로 모든 절차가 끝난 것으로 아는데 이는 잘못이다. 전화로 알렸더라도 즉시 서면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화통지를 하는 경우에도 신고를 받은 카드사 직원의 인적사항, 사건번호, 통지시간 등을 메모해둬야 훗날 있을지도 모를 분쟁 때 입증자료로 삼을 수 있다. 물론 카드사 직원도 신고를 받을 때 서면신고를 해야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내해줘야 할 것이다.

또 카드를 새로 발급받았을 때는 예전의 카드를 가위로 잘라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즘 교통카드, 전철표 등 새로운 기능을 갖춘 다기능카드가 잇따라 발급되고 있는데 이때도 기존 카드를 없애든지 관리를 잘해야 한다. 기존 카드와 새로 발급받은 다기능카드를 같이 쓰다가 잃어버린 뒤 이 중 한개만 분실신고를 했다가 낭패를 보는 수가 잦다고 한다.

고객쪽에서 조심하는 것으로는 피할 수 없는 분쟁도 있다. 카드발급 자체가 제3자에 의해 부정하게 이뤄져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수가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금감원에 접수된 카드 관련 민원 중에는 해외에 한번도 나간 적이 없는 카드 고객이 해외 카드사용 대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았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는 형사적인 문제여서 금감원 차원에선 조사도, 해결도 할 수 없는 사안인데, 엉뚱하게 피해를 입은 고객쪽에선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3자에 의한 카드 부정 발급 및 사용과 관련해선, 길거리 영업을 통한 경쟁적인 카드발급이 토양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신용카드회사들은 카드업 호황기를 맞아 시장선점을 위한 거리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가입고객들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의도백화점 근방을 지나가는데, OO카드사가 길거리에서 가입신청을 받고 있더라구요. 가입신청서만 쓰면 수건을 준다기에 주민등록번호 등 몇 가지를 써넣었더니 별다른 확인절차도 없이 받아주데요.” 한 금감원 직원의 경험담이다.

길거리 카드영업에 나서고 있는 이들은 카드회사의 정식 직원이 아니다. 보험설계사와 같은 신분이다. 가입신청서를 많이 받을수록 수수료를 더 받으므로 꼼꼼하게 심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는 제3자에 의한 명의도용 카드발급이 이뤄질 개연성이 높다는 걱정을 낳는 대목이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가입신청서를 받아온다고 해서 모두 발급해주는 것은 아니며 본사 심사부에서 한번씩 걸러내기 때문에 부정발급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부정발급에 따라 생긴 문제는 형사적인 문제로 피해가 생기면 회사쪽이 부담하도록 돼 있어 고객들한테는 별다른 피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카드회사로선 부정발급에 따른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발급단계에서 꼼꼼하게 따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부정발급 없애고 신원확인 절차 까다롭게

금감원 신용철 여신전문감독팀장은 이에 대해 “가입신청과 별도로 심사를 한다고는 하나 전화 확인에 불과해 부정발급을 받으려고 맘먹은 이들을 골라내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신 팀장은 “길거리 판매를 무작정 규제할 수는 없는 일이며 카드회사쪽에서 자제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카드 사용 때 비밀번호를 입력토록 하는 과정을 두는 방안도 중장기적으로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 분쟁조정국의 강성범 팀장은 “지금도 백화점 카드를 사용할 때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절차를 두고 있지만 신용카드의 경우 현금서비스를 받을 때만 비밀번호를 넣도록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강 팀장은 거래 때마다 비밀번호를 입력토록 하려면 가맹점의 단말기를 교체해야 하는 부담이 있어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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