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말부터 수입쌀이 할인점이나 동네 소매점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밥쌀용으로 팔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산 ‘칼로스’와 ‘그린’쌀이나 중국 동북3성의 ‘칠하원’쌀, 오스트레일리아의 ‘선라이스’ 같은 수입쌀이 국산쌀과 나란히 매장에 오른다. 지난 2004년 우리 정부가 미국·중국·오스트레일리아·타이 등 9개국과 벌인 쌀 재협상에서 2005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쌀 의무수입물량(MMA)의 10∼30%를 밥쌀용으로 시판하기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수입쌀은 떡·과자 등 가공용으로만 사용돼왔으나 이제 밥상에까지 오르게 됐다. 밥쌀용 수입쌀은 3월20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지역에서 생산된 칼로스 1등급 쌀 1376t을 시작으로 줄줄이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다.
값싼 수입쌀이 한국 식탁을 뒤흔들것인가. 전국농민회 홍연맹이 견본품으로 갖고 있는 칼로스 등 수입쌀 (사진/ 윤운식 기자)
수입쌀은 반드시 팔아야 한다
시판용 수입쌀의 원산지는 중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타이로, 시장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1등급과 3등급이 50%씩 도입된다. 올 상반기에 유통될 예정인 2005년도분 시판용 수입쌀은 총 2만2557t으로, 이 중 미국산 1등급 2752t과 3등급 2752t은 이미 입찰이 끝났고, 중국산 1만2764t, 타이산 3293t, 오스트레일리아산 993t은 국가별로 1, 3등급 절반씩 입찰이 진행 중이다. 3등급은 쇄립(부서진 쌀)이 많으냐 적으냐의 차이일 뿐 1등급과 품질에서 큰 차이는 없다.
올해 시중에 판매될 밥쌀용 수입쌀은 2005년도분 2만2557t과 올해분 3만4429t을 합쳐 총 5만6986t(80kg짜리 80만 가마)이다. 국내 전체 쌀 소비량의 1.4%에 달한다. 의무수입물량은 미국·중국·오스트레일리아·타이 등 4개국별로 정해진 쿼터가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주식으로 먹는 자포니카 중·단립종을 생산하는 미국과 중국산이 수입쌀의 주종을 이루게 된다. 2005년도분의 경우 전체 수입쌀의 81%를 중국(56.5%)과 미국(24.4%)이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양곡 도매상들에 따르면, 고품질 쌀로 알려진 캘리포니아 칼로스 쌀은 중산층 이상 가구에서, 값싼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오스트레일리아쌀은 일반 식당이나 서민층에서 구입할 것으로 보인다. 수입량의 15%를 배정받은 타이산 안남미는 인디카 장립종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지만 동남아 요리전문점 등에서 구입하고, 국내에 들어와 있는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도 사먹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한 이행계획서는 ‘시판용 쌀은 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공개 경매를 거쳐 도매업자, 유통업자, 최종 소비자에게 팔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들이 다 같이 담합해 수입쌀을 사먹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정부는 수입쌀을 반드시 팔아야 한다. 밥쌀용 수입쌀을 국내에 유통시키는 과정은 간단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국내에 들여온 수입쌀은 공개매각(공매)을 거쳐 판매된다. 농림부는 온라인으로 1주에 한 번씩 공매를 진행해 2천∼3천t씩 유통되도록 할 계획이다. 정부는 공매 참가업체 자격을 2005년 연간 매출 300억원 이상의 농산물 도소매 업체나, 양곡도매시장 내 거래 실적이 10억원 이상인 중도매인으로 제한했다. 이 기준을 만족해 입찰에 참가할 만한 곳은 할인점 18곳, 백화점 23곳, 양곡도매상 20여 곳, 급식업체나 슈퍼마켓 30여 곳 등 모두 90여 개 정도다. 이 정도 숫자면 가격담합을 막고 완전경쟁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비공개 공매가는 농림부가 정해
쌀 이행계획서는 특히 ‘밥쌀용 쌀이 적절한 기간 내에 시판되어, 재고 기간이 길어 밥쌀용으로서의 품질이 저하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각 연도 안에 시판용 수입쌀 물량이 공매와 판매까지 완료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부러 시간을 끌어 시판용 수입쌀을 다른 용도로 처분하는 것을 막고, 수입쌀이 신선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결국 우리 정부는 쌀 재고관리에서 국산쌀보다 수입쌀을 우선 시중에 방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밥쌀용 수입쌀의 가격 수준이다.
수입쌀의 국제가격은 국산 쌀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가 국제 경쟁입찰을 통해 미국 쌀을 얼마에 샀는지, 또 구입한 수입쌀을 국내에서 유통업체에 공매할 때 예정가를 얼마로 정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이런 내용은 입찰 관행에 따라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 농림부는 “공매 입찰 예정가를 내부적으로 적절하게 정해 수입쌀 가격이 같은 품질의 국산쌀과 비슷한 수준에서 형성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공매할 때 낙찰업체에 국제 쌀값 차이만큼을 수입이익금으로 부과해 비슷한 품질의 국산 쌀값 수준에서 유통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농림부는 국산쌀 가격의 90% 선에서 수입쌀 공매 낙찰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비공개 공매 예정가는 농림부가 정한다. 농림부 관계자는 “공매 가격 결정에서 두 가지 서로 충돌하는 정책 목표가 있다. 시판용 수입쌀을 완전경쟁 상태에서 적절한 가격대에 팔려면 되도록 많은 도매상과 유통업체들이 공매에 참가해야 하고, 반면에 너무 많은 업체가 수입쌀을 낙찰받아 팔게 되면 유통 과정이 복잡해지고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공매를 주관하는 농수산물유통공사 쪽은 “공매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견본 테스트를 해볼 것이다. 아직 정해진 공매 예정가는 없고, 어느 정도 가격대여야 낙찰될 수 있을지 타진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매 참가업체들이 다 같이, 정부가 책정한 예정가보다 낮은 가격을 써낼 경우 유찰이 되풀이되고, 정부는 결국 예정가를 더 낮춰 팔 수밖에 없다. 물론 수입쌀이 국산쌀에 비해 훨씬 낮은 가격에 낙찰되면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할 게 뻔하다. 농민단체와 소비자단체의 수입쌀 불매운동에다 농민들의 반발까지 농림부로서는 이래저래 골칫거리다.
밥쌀용 수입쌀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얼마나 될까? 현재 1등급 기준으로 국산쌀의 평균 도매가격은 20kg짜리가 3만6천∼3만8천원 선이다. 박용상 양곡중도매업협회 회장은 “수입쌀 가격이 국산보다 최소한 10∼15% 정도는 싸야 우리가 낙찰받아 소매상에 팔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농민단체와 수입쌀 판매에 대해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눴고, 이익을 남기기보다 일단 구색을 갖추는 차원에서 수입쌀을 도매시장에 갖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입쌀은 시판 초기에는 유통업체가 농민단체나 여론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 매장보다는 도매상을 통해 식당용으로 주로 팔릴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은 “우리 도매상인들도 견본으로 10kg을 받아서 시식해보고 과연 팔릴 수 있는지, 가격은 얼마나 나갈 수 있는지를 따져볼 생각”이라며 “품질만 괜찮을 경우 한 가마에 1만원이라도 싸면 식당 같은 데로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004년 10월 열린 농민들의 수입쌀 반대 시위(왼쪽). 2004년9월14일 수입쌀 관세화 관련 협상 4차 회의에 앞서 한국과 중국 대표단이 약수를 나누고 있다.(사진/ 한겨레 임종진)
북한 제공은 사실상 불가능
수입쌀이 시중에 팔리면 국내 쌀 가격은 얼마나 영향을 받을까? 지난해 수확기 산지 쌀값이 16만원에서 13만원대로 떨어진 것은 추곡수매 폐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입쌀이 올해부터 식탁에 오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농림부는 “올해 시장에 풀릴 시판용 수입쌀은 국내 쌀 소비량의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므로 국산쌀 가격을 크게 뒤흔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밥쌀용 수입쌀이 팔리면 1만t이 풀릴 때마다 국산쌀 가격을 1kg당 10원씩 떨어뜨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만t이 풀릴 때 80kg짜리 한 가마의 쌀값을 800원 떨어뜨린다면, 올해 5만7천t이 풀리므로 4500원 정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쌀 재고량이 넘쳐나고 마땅히 팔 곳도 없는데다 추곡수매도 없어진 만큼 품질이 엇비슷하다면 시장 논리에 따라 국산쌀도 수입쌀 가격과 비슷한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입쌀이 국내 쌀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밥쌀용 쌀 재고량을 북한에 무상 제공하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입쌀 대북 지원과 관련해 민족 내부 간 거래를 이미 인정받지 못했고, 쌀 수출국들이 2014년 국내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기 전에 한국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밥쌀용 수입쌀을 시판하는 것인 만큼 수입쌀 북한 제공을 미국 등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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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집요한 ‘밥쌀 작전’재협상에서 한국 시장 점유율 확보 위해 시중 판매 요구
미국 쌀은 중국 쌀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 우르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1995∼2000년까지 단 한 톨도 의무수입물량으로 수입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1년 우리 정부가 국제 입찰 규격을 중·단립종에서 중립종과 단립종으로 각각 구분한 뒤 ‘중립종’은 미국 쌀만이 입찰에 응했고, 그때부터 미국 쌀이 국내 시장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난 2004년 쌀 재협상에서 미국은 자국 쌀의 한국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고 밥쌀용 수입쌀 시중 판매를 집요하게 요구해 관철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중국·오스트레일리아·타이 쌀 외에도 이집트 단립종쌀(2만t)과 인도 쌀(9만여t)도 구입해야 한다. 또 특수미로 이탈리아산 리조토용 쌀, 인도산 향미, 파키스탄산 향미의 수입 기회를 보장해줘야 한다. 따라서 이런 나라들의 쌀도 우리 밥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밥쌀용 수입쌀은 민간업체가 직접 수입할 수는 없고, 농수산물유통공사가 국영무역으로 일괄 수입한다. 우리 정부가 입찰 때마다 수입할 쌀의 품종과 등급 등 입찰 규격을 정해 제시하고 국내 신문과 농수산물유통공사 홈페이지에 입찰 공고를 내면 각국에서 입찰이 이뤄진다. 국내에 들어온 수입쌀은 유통공사가 양곡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유통업체와 양곡 도매상한테 공개 매각하게 된다.
향후 10년간 밥쌀용 수입쌀 규모를 보면, 2005년은 의무수입물량 22만5575t의 10%(2만2558t), 2006년은 의무수입물량 24만5922t의 14%(3만4429t), 2008년은 의무수입물량 28만6617t의 22%(6만3055t), 2010년은 의무수입물량 32만7311t의 30%(9만8193t)가 된다. 마지막 해인 2014년에는 의무수입물량 40만8700t의 30%((12만2610t·80kg짜리 153만 가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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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쌀 둔갑, 어떻게 막나 도정 끝낸 백미 상태로 들여오고 가공 업체들 공매 자격 박탈
그동안 가공용으로만 사용되던 수입쌀이 밥쌀용으로 시판되면 국산쌀로 둔갑해 파는 등의 불법 유통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시판용 수입쌀의 포장을 뜯은 뒤 국산쌀 포장재에 담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파는 행위 △시판용 수입쌀 포장재를 가짜로 만든 뒤 여기에 기존의 가공용 수입쌀을 담아 시판용 수입쌀이라고 속여 파는 행위 △시판용 수입쌀이나 가공용 수입쌀을 대형 포장재에 담아 원산지 표시 없이 국산으로 위장 판매하는 행위 등이다. 공매로 수입쌀을 낙찰받은 양곡도매상이 소매상에 팔거나, 소매상이 소비자한테 파는 과정에서 국산쌀로 둔갑하거나 섞어 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사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샘플로 갖고 있는 ‘중립종. US. No.1’이라고 적힌 1등급 캘리포니아쌀 견본품은 국산과 별 차이가 없어 육안으로는 구분이 어렵다.
정부는 이런 부정 유통을 막기 위해 시판용 수입쌀은 도정을 덜 거친 현미가 아니라 완전히 도정을 끝낸 ‘백미’ 상태로 들여온다. 또 10kg과 20kg짜리 두 가지 형태로 완전 포장 상태로 수입하고 있다. 그리고 가격이 국산의 약 30% 수준에 불과한 가공용 쌀이 시판용으로 둔갑해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가공용 수입쌀로 누룽지·튀밥 등을 생산해온 업체들은 시판용 쌀 공매 자격에서 뺐다. 정부는 공매에서 낙찰된 시판용 수입쌀은 업체별로 판매처와 소매상까지 집중 추적 조사해 불법 유통을 막기로 했다.
한편, 공매로 낙찰받은 밥쌀용 수입쌀의 브랜드 이름과 몇kg짜리로 포장해서 팔 것인지는 낙찰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따라서 10kg, 20kg짜리로 들어온 수입쌀 포장재를 뜯은 뒤 5kg, 3kg짜리 등으로 재포장해 팔 수도 있고, ‘수입쌀’이라는 말 대신 ‘맛있는 쌀’ 등으로 이름을 붙여 팔 수도 있다. 또 국산쌀과 혼합해 팔 수도 있다. 다만 포장지에 원산지와 혼합 비율을 정확히 표시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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