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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지금 그들은 주총에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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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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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운동 핵심 타깃 기업들 노심초사… 허술한 사외이사제·변칙 증여 등 도마에 올라

사진/참여연대는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기업들과 일대 격돌을 벌일 예정이다. 지난해 삼성SDS 주총현장에서 변칙증여 문제를 제기하는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실장.(이종근 기자)
삼성전자, SK텔레콤, 현대중공업.

오는 2월 말부터 3월에 걸쳐 일제히 열릴 12월 결산법인 정기 주주총회에서 참여연대 소액주주운동의 핵심 타깃으로 설정돼 있는 기업들이다. 주총 시점까지는 아직 시일이 남아 있지만 참여연대가 광범위한 의결권 위임 운동을 벌이고 있고, 해당 기업들은 기업설명회(IR)를 여는 등 벌써부터 주총을 앞두고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올 들어 주가가 상당히 오르긴 했지만 지난해 초에 비해선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이번 정기 주총에선 특히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어느 해보다 클 전망이며 인터넷을 통한 소액주주 권리찾기 운동도 이번 주총을 통해 위상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주가 하락에 소액주주 불만 거셀 듯


소액주주운동의 상징인 참여연대에선 올해 주총의 핵심과제로 사외이사제의 견실화를 꼽고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많은 한계를 안고 있지만 이번 주총을 통해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하도록 국내 대표 기업들을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사외이사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사안이었음에도 일부 사외이사들의 무책임성과 일탈행위 탓에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감이 짙게 깔려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우리 현실에선 대주주를 견제하면서 소액주주의 권익을 옹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게 참여연대쪽의 시각이다. 사외이사제 자체에 대한 비난은 국내 기업들의 후진적인 경영관행을 고착화할 뿐이란 지적이다.

사외이사제는 지난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친 관련법 개정을 통해 그 내용이 크게 바뀌어 올해 주총 때부터 적용된다. 지난번 법개정을 통해 상장기업이면 무조건 총이사 수의 4분의 1 이상,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2분의 1 이상의 사외이사를 뽑도록 의무화됐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 90개사 가운데 현대자동차와 SK(주) 등 이미 지난해 사외이사 비율을 50% 이상으로 맞춘 업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추가로 뽑아야 한다. 업계에선 대략 300명 이상의 사외이사 신규 수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을 정도이다. 이는 참여연대가 올해 주총의 핵심 의제로 사외이사 문제를 꼽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참여연대 기업지배구조 개선 운동의 핵심 타깃으로 설정돼 있는 삼성전자의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의 등기 이사 20명 가운데 사외이사는 6명으로 30% 선에 머물고 있다. 사외이사 4명을 더 뽑고, 상근임원은 그만큼 줄여야 하는 셈이다.

기업들마다 형편은 조금씩 다르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문제에 맞닥뜨려 있다. 이번 정기주총에서 사외이사 선임 문제가 커다란 이슈로 작용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SK텔레콤의 경우 11명에 이르는 이사들 가운데 5명이 사외이사여서 추가 선임의 부담감은 크지 않지만 사외이사 3명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새로 사외이사를 뽑아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상근이사 4명, 사외이사 4명으로 새로운 규정에 맞춰져 있지만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뽑아야 한다는 주문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들 기업에 대해 독립적인 사외이사를 선임할 것을 주문하는 한편, 일부 기업에 대해선 자체적으로 선정한 후보를 추천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참여연대는 삼성전자에 대해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내용으로 주주제안을 할 계획 아래 사외이사 후보로 전성철 변호사(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장)를 후보로 확정해놓고 있다.

참여연대,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쟁점화

사진/“들어라 기업들아.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지난해 현대자동차 주주현장에서 발언권을 요구하는 소액주주들.(이종근 기자)
SK텔레콤에 대해선 지난 98년 선임된 남상구 사외이사(고려대 교수. 당시 참여연대 추천으로 선임)와 김대식 사외이사(한양대 교수)를 재선임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을 감시하고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는 본래 역할에 비교적 충실했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중도 퇴임한 박진원 사외이사(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후임을 뽑기 위해 회사쪽과 참여연대가 협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연대는 주주제안에 참여할 주주들을 모으기 위해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협조를 구하고 일반 소액주주들도 모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장하성 경제민주화위원장(고려대 교수)이 설 연휴 전 유럽지역 기관투자가들을 만나 논의를 했으며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장하성 교수는 “이번 유럽지역 기관투자가 방문에서 독립성을 갖춘 사외이사 후보 선임 요구가 강함을 느꼈으며 참여연대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대해 적극 협력할 뜻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유럽지역 방문에 이어 곧 동남아 및 미국지역에 기반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가들과도 만나 올해 주총 안건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쪽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해당 기업들은 크게 고심하고 있다. 표대결을 벌인다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일축할 수 있지만 그간의 활동으로 소액주주 운동의 저변이 넓어져 마냥 무시할 수 없게 된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총장에서 해당 기업의 현안을 물고늘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다음달 말 주총을 계획중인 삼성전자와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들은 최근 몇년간 단골메뉴가 된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에 대한 변칙증여 문제와 삼성생명 상장 지연에 따른 계열사의 삼성차 채무이행 문제가 올해 역시 현안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와 관련, 지난 1월19일 기업설명회를 여는 한편 윤종용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해외출장에 나서 기관 및 외국투자자들을 상대로 회사 경영방침을 설명하고 주총에서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삼성SDI도 올해 들어 총무·인사·재무·IR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주총 준비팀을 구성, 가동에 들어갔다.

뾰족수 없는 해당 기업들 골머리

사진/소액주주들이 인터넷을 통해 권리찾기 운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주총에 대비하고 있는 소액주주전문 사이트들.(이종근 기자)
지난 한해 유동성 문제로 홍역을 치렀던 현대 계열사들도 추락한 주가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주총 준비에 속을 끓이고 있다. 현대건설은 올 들어 주가가 다소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어 좀더 강화된 자구이행 및 부채절감 계획을 마련해 투자자들의 불만을 줄이는 데 주력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계열사 채무보증을 모두 해소하고 연말까지 계열 분리가 이뤄지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점을 강조할 방침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비교적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온 SK텔레콤은 참여연대의 요청에 따라 임기만료에 이른 사외이사 2명의 재선임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별다른 논란은 불거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옥을 이전한 데 이어 새 사옥 터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계열사에 부당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주주들의 추궁이 예상된다. 또 최태원 SK텔레콤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씨앤씨와 계열사간 정보통신(IT)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특혜 조처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사외이사 선임 문제와 더불어 올해 정기주총에선 인터넷을 통해 힘을 결집한 소액주주들의 자발적인 권리찾기 운동도 큰 흐름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결성된 주식동호회 차원의 소액주주 운동은 지난해 주총에서도 일부 있었지만 주식정보 사이트 업무의 한 분야에 머물렀을 뿐이다. 그러다 소액주주 권익보호를 깃발로 내거는 전문 사이트가 생겨나 동종 주식을 가진 주주들을 모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태세다. 올해 주총은 이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데뷔 무대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10일 정식으로 출범한 셰어홀더스(www.shareholders.co.kr)가 대표적인 예다. 셰어홀더스는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이 소액주주들의 인식전환에는 크게 이바지했지만 소액주주들이 실제로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셰어홀더스를 통해, 기업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식지분 1% 이상을 확보한 곳이 30개사 안팎에 이르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이렇게 모인 힘으로 개별 기업의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명문화하기 위한 운동 등을 펼칠 계획이다.

사이버 공간 이용한 집단 대응도 활발

셰어홀더스에 앞서 출범을 알린 앤트주주닷컴(antjuju.com)도 소액주주 운동 전문 사이트이다. 앤트주주닷컴은 인터넷을 통해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교환하고 힘을 하나로 모으고 있으며 금감위를 비롯한 각종 기관에 소액주주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다. 이 밖에 팍스넷(paxnet.co.kr), 씽크풀(thinkpool.com) 등 주식정보 사이트를 통해서도 소액주주들의 의견 및 지분 집결이 이뤄지고 있어 올해 주총에서 일정한 세력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 운동 및 사이버 공간을 통한 소액주주들의 단결이 국내 재벌기업의 경영행태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소액주주 운동단체들의 줄기찬 요청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기업들은 여전히 대주주와 친분있는 이들을 사외이사로 뽑는 관행을 되풀이하고 있다. 사외이사제의 기능에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장하성 교수는 “국회가 하루빨리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법안을 통과시켜 소액주주들의 의사를 반영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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