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값 흥정에 숨어 있는 경영학, 탐색비용을 둘러싼 게임
독과점이라면 정가 판매를, 경쟁이 치열하면 흥정을 권한다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선물을 사러 서울 인사동에 들렀다. 여러 작은 상점이 입주해 있는 널찍한 전통상품 쇼핑몰을 찾아갔다. 한 가게에 들러 전통 문양이 들어 있는 필통 가격을 챙겨보면서 서성거리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데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 순간 상점 주인이 나를 붙잡았다. “10% 할인해드릴게요.” 소비자마다 다른 ‘최대지불의사’
10%도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작았다. 상점을 나와서 아예 쇼핑몰 바깥에서 찾아보려 큰 문을 나서는데, 상점 주인이 쇼핑몰 입구까지 뛰어나와 다시 붙잡았다. 결국 나는 원래보다 30%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샀다. 그리고 나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미리부터 정가를 30% 싸게 책정해두고, 가격 흥정 없이 팔았다면 좀더 일찍 사고 약속시간도 지킬 수 있었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가격을 20%만 싸게 책정해두었어도 망설임 없이 샀을지 모른다. 그 상인은 왜 정가 판매 전략을 쓰지 않고 흥정 판매 전략을 채택했을까? 왜 어떤 장소에서는 물건들이 정가로 판매되는데, 어떤 장소에서는 흥정이 개입될까? 여기에도 어김없이 경영학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흥정 판매는 흥정에 능한 판매자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가격차별 정책으로 작동한다. 같은 상품에 대해서라도,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느끼는 가치는 모두 다르다. 다시 말하면 최대 지불 의사(reservation price)가 각기 다른 것이다. 상인은 각 소비자의 최대 지불 의사를 알아내 거기에 꼭 맞는 가격을 제시해 판매할 때 가장 큰 매출을 올리게 될 것이다. 원가보다 밑지고 팔지만 않는다면 이익도 이때 가장 크다.
흥정은 상인이 소비자의 최대 지불 의사를 알아내는 아주 좋은 수단이다. 과정은 이렇다. 소비자에게 일단 정가를 알려준다. 그게 비싸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불평을 하거나 발걸음을 돌린다. 영리한 상인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뛰어들어서 조금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 이 가격이 소비자 최대 지불 의사와 같거나 그보다 낮다면 소비자는 구매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다시 발걸음을 돌린다. 사람마다 다른 가격을 매겨 물건을 팔 수 있으니, 상인 입장에서야 정말이지 이상적인 가격 전략 아닌가.
그러나 흥정 판매에는 문제도 있다. 소비자의 탐색비용(search cost)을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탐색비용은 소비자가 상품 가격 이외에 지불하는 정보 수집, 협상, 물리적 이동 등을 총칭하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의 일종으로, 상품의 필요성이나 최저 가격 여부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상인들이 처음부터 정확한 가격을 알려주지 않으니,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이 생긴다. 소비자는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아야만 손해를 보지 않고 살 수 있다. 내가 부아가 치밀었던 바로 그 이유다. 흥정이 너무 심해져서 소비자가 부담하는 탐색비용이 지나치게 늘어나면, 어떤 소비자들은 아예 거래를 피하게 된다. 흥정이 귀찮아서 인사동에 오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소비자들이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줄 알면서도 여전히 백화점을 이용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백화점에서는 가격 흥정이라는 탐색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 대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 즉 비용을 들일 수 있다. 이게 정가 판매의 매력이다.
물론 정가 판매가 매력적이 되는 데는 조건이 필요하다. 경쟁이 아주 심한 환경이라면 정가 판매보다 흥정 판매가 더 매력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정가 판매가 더 매력적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영대학원의 버거 워너펠트(B. Wernerfelt) 교수가 1994년 발표한 논문에서 밝혀낸 내용이다.
경쟁이 심할 경우 한 상인이 정가 판매를 하더라도 경쟁자들이 흥정 판매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소비자가 정가 판매를 하는 상점에 와서 상인의 가격을 확인한 뒤, 흥정 판매를 하는 경쟁자에게 가서 확인한 가격을 토대로 협상에 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최대 지불 의사는 숨긴 채로 말이다. 상인 쪽이 오히려 정보 비대칭에 따른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미국차는 인사동, 한국차는 백화점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시장을 비교해보자. 한국은 엄격한 정가 판매 시장이다. 자동차 세일즈맨들이 이런저런 혜택을 주고 가격을 조금씩 깎아주기도 하지만, 전체 차 가격에 비하면 미미하다. 게다가 자동차 제조사가 똑 부러지게 정가를 공개한다.
그러나 미국은 거의 완전한 흥정 시장이다. 제조사들은 제조사 권장유통가격(MSRP)만 제시할 뿐, 실제 판매 가격은 제조사와 독립적인 판매사와 세일즈맨이 결정한다. 그래서 똑같은 차를 사람에 따라 몇천달러씩 달리 주고 사기도 한다. 심지어는 같은 판매사에서 같은 종류의 차를 전혀 다른 가격에 사는 소비자들이 생긴다.
역시 경쟁구도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특정 제조회사 소속 자동차 판매사들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수많은 딜러들이 지역별, 회사별로 나뉘어 무한경쟁을 벌인다. 한국이 경쟁이 덜한 공간인 백화점이라면, 미국은 여러 작은 상점이 입주해 있어 경쟁이 치열한 인사동 전통상품 쇼핑몰인 셈이다.
눈앞에 붙어 있는 가격표가 정가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면, 주위를 둘러보시라. 비슷한 업종이 다닥다닥 붙어 경쟁이 치열한 환경이라면, 십중팔구 흥정이 가능하리라. 그 상인이 경제학이 가정하는,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말이다.
이주의 용어
거래비용(transaction cost)
탐색비용(search cost)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독과점이라면 정가 판매를, 경쟁이 치열하면 흥정을 권한다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선물을 사러 서울 인사동에 들렀다. 여러 작은 상점이 입주해 있는 널찍한 전통상품 쇼핑몰을 찾아갔다. 한 가게에 들러 전통 문양이 들어 있는 필통 가격을 챙겨보면서 서성거리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데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 순간 상점 주인이 나를 붙잡았다. “10% 할인해드릴게요.” 소비자마다 다른 ‘최대지불의사’
10%도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작았다. 상점을 나와서 아예 쇼핑몰 바깥에서 찾아보려 큰 문을 나서는데, 상점 주인이 쇼핑몰 입구까지 뛰어나와 다시 붙잡았다. 결국 나는 원래보다 30%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샀다. 그리고 나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미리부터 정가를 30% 싸게 책정해두고, 가격 흥정 없이 팔았다면 좀더 일찍 사고 약속시간도 지킬 수 있었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 가격을 20%만 싸게 책정해두었어도 망설임 없이 샀을지 모른다. 그 상인은 왜 정가 판매 전략을 쓰지 않고 흥정 판매 전략을 채택했을까? 왜 어떤 장소에서는 물건들이 정가로 판매되는데, 어떤 장소에서는 흥정이 개입될까? 여기에도 어김없이 경영학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흥정은 경쟁이 아주 심한 환경에서 매력적이다. 재래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하고 있는 소비자와 상인들. (사진/ 한겨레 임종진 기자)
탐색비용(search cost)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