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 선정 앞두고 재계 벌떼처럼 몰려… 치열한 신경전 속에 수요자 요구는 묵살 
   
  방송위원회의 새 TV홈쇼핑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재계가 또 진흙밭 싸움을 벌일 태세이다. 이 사업을 따내겠다고 덤벼드는 재벌, 대형유통업체, 각종 단체와 기관 등이 줄을 선 반면에 티겟은 고작 2장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아직 구체적인 사업자 선정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는데도 군침을 흘리고 있는 예비사업자들끼리 신경전과 로비전이 치열하다. 
  ‘사업권을 따내기만 하면 황금알 건지기는 시간문제’, ‘DJ 정부가 정치자금을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등 벌써 희한한 소문까지 파다하다. 정부가 아무리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더라도 분쟁과 의혹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방송위는 1월중에 신규 TV홈쇼핑사업자 신청공고를 내고 2월 말까지 접수를 받은 뒤 늦어도 4월 말까지는 심사 및 선정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2개 채널 놓고 20여곳 참여의사 밝혀 
   
 
 
  올해 1월부터 케이블TV의 프로그램공급업(PP)은 등록제로 바뀌어 진입제한이 완전히 풀렸으나 보도와 홈쇼핑 전문방송만은 여전히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업이다. 두 분야는 그만큼 공익성이 강하거나 방송수용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 승인을 받아 TV홈쇼핑사업을 하는 곳은 LG홈쇼핑과 CJ39쇼핑 두곳이다. 말하자면 LG와 제일제당은 정부보호 아래 TV홈쇼핑 시장에서 독과점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방송환경의 변화에 부응하고 다채널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이익을 증대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TV홈쇼핑사업자 수를 늘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시장난립에 따른 부작용만 없다면 희망업체들에 모두 개방할 듯하다가 논란 끝에 2개 이내에서 신규사업자 수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지난 1월18일 방송위가 TV홈쇼핑 신규사업자 선정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 추가 채널 수를 2개 이내, 3∼5개, 10개 이내로 허용하는 내용의 3가지안을 제시하며 각계 전문가 8명의 토론자들의 의견을 들은 결과, 6명이 ‘2개 이내 안’에 찬성을 했고 나머지 2명은 의견을 보류했다. 3개 이상 허용하자는 의견을 지지한 토론자는 한명도 없었다. 
  그런데 방송위의 방침과는 상관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TV홈쇼핑사업 참여를 준비하고 있는 사업자는 20곳을 넘는다. 지금까지 참여의사를 공식화했거나 검토중이라고 밝힌 재벌계열 대기업과 대형유통업체만도 10여 군데. 삼성, 현대, 롯데, 금호, 한솔, 코오롱, 동양그룹에다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등이다. 이 가운데 방송위가 채널 추가허용 방침을 확정하기 이전부터 TV홈쇼핑사업을 추진한 대기업도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해 9월 농협중앙회 자회사인 (주)농협유통과 손잡고 51 대 49의 지분율로 ‘하나로쇼핑넷’이란 합작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설립목적은 ‘홈쇼핑방송 및 각종 무점포 판매사업’이다. 방송위는 삼성이 이런 계획을 발표하고 두달 뒤인 지난해 11월 중순에 홈쇼핑채널 추가승인 기복계획을 확정했다. 삼성의 눈치빠름에 절로 감탄이 나올 대목이다. 삼성은 명분도 그럴듯하게 ‘공산품이나 일반 서비스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송매체의 활용기회가 적은 농수축산물의 판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이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신규 홈쇼핑사업의 ‘대기업 배제론’이 고개를 들자, 삼성물산의 하나로쇼핑넷의 지분을 30%로 낮추는 대신 농협이 추천하는 다른 파트너들한테 골고루 지분을 나누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다른 대기업들의 발걸음도 무척 빨라졌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1월11일 지방의 6개 백화점과 함께 가칭 ‘연합홈쇼핑’이란 이름의 컨소시엄을 발족시켰다. 신세계는 할인점 E마트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컨소시엄 구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롯데쇼핑은 계열사와 벤처협력업체, 방송 관련업체 등 30여개 컨소시엄 참여업체를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한솔CSN도 “홈쇼핑채널을 따내기만 하면 벤처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겠다”며 최근 국내 60여개 벤처기업들과 연합해 ‘한솔홈쇼핑TV’(가칭) 컨소시엄을 발족했다. 
   
  농수축산·중기제품 컨소시엄 유리할 듯 
   
  이렇게 대기업과 대형유통업체들이 너도 나도 뛰어들 채비에 나서자 기존 사업자인 LG홈쇼핑과 CJ39쇼핑은 “수년 동안 투자해서 홈쇼핑 시장의 기반을 다져놓으니까 뒤늦게 무임승차해 잇속을 챙기려 한다”며 크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논란의 핵심인 적정 추가채널 수는 예상 시장규모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큰 시각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데, 신규 희망업체와 기존 업체간에 서로 상반된 시장분석 자료를 토대로 공방이 뜨겁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8500억원대였던 TV홈쇼핑 시장규모가 2005년에는 6조9천억원대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반면에, LG경제연구원은 2005년 시장규모를 2조3천억원대로 추정하며 기존 업체를 포함해 3개 이상의 채널이 등장할 경우 모두 영업수지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홈쇼핑 신규채널 따내기 경쟁에서는 농수축산물이나 중소기업제품에 초점을 맞춘 컨소시엄이 명분상 유리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이 컨소시엄에 이 두 분야의 관련업체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당기려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2장의 티켓을 놓고 경쟁을 해야 한다면 하나는 농수축산분야, 또다른 하나는 중소기업제품 전문채널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런데 두 분야에서 대기업들끼리 경쟁도 치열하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농수축산 관련 단체나 중소기업 대표임을 자처하는 예비사업자들끼리도 경쟁이 붙어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 분야에서는, 정부 산하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이 100% 출자해 설립한 중소기업유통센터와 민간단체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TV홈쇼핑사업권에 대해 서로 ‘물러가라’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중소기업유통센터 관계자는 “애초 케이블 홈쇼핑채널의 추가허용 방안이 나오게 된 것은 16대 총선 때 정부가 중소기업 제품의 홍보 및 판매활성화 차원에서 비영리사업으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공략한 데서 비롯됐고 이에 따라 올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200억원의 예산까지 받아놨다”면서 “다른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도 TV홈쇼핑을 이권사업으로 접근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위성 홈쇼핑사업자인 씨엔텔과 손잡고 이미 지난해 5월 ‘KCS’(코리아 쇼핑채널)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한 중기협쪽에서는 “홈쇼핑채널 추가선정은 독과점 체제에서 시장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민간부문의 일에 정부가 나서서 제대로 될 턱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규제·감시없는 채널 확대는 피해 양산 
   
  이렇게 예비사업자들끼리 다툼이 치열한 사이에 정작 중요한 수요자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큰 문제이다.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의 박인례 사무총장은 “홈쇼핑채널 확대방침은 순전히 공급자의 이익만을 생각해 추진해왔고 방송위가 뒤늦게 소비자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앞뒤 순서가 잘못됐다”라며 “오인, 과장 상품안내에 따른 충동구매로 소비자피해 사례가 가장 심각한 분야가 TV홈쇼핑방송인 만큼 지금은 오히려 기존 홈쇼핑 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시체제를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아동학)도 “케이블TV 시청자를 상대로 소비자보호원이 실시한 여론조사나 방송위의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절대 다수가 홈쇼핑채널의 확대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나타냈는데도 짜맞추기식 명분을 대며 추가승인을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굳이 추가승인을 한다면 채널별로 상품을 전문화시켜 시청자들의 계획구매를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사진/“누가 홈쇼핑 시장에 끼어들려 하는가?” 현재 독과점을 누리고 있는 TV홈쇼핑 채널이 새로운 경쟁자를 맞이한다.

사진/홈쇼핑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홈쇼핑사업자 추가선정을 앞두고 열린 정책 방안 공청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