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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등록, 우회로 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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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3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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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등록업체 인수하는 뒷문등록 성행… 테마군 형성해 주가 농락해도 속수무책

사진/코스닥 시장은 중소·벤처기업들엔 여전히 꿈의 무대이다. '뒷문등록'은 등록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업에 여러 실속을 챙겨준다.(이정용 기자)
‘뒷문등록(백도어 리스팅)’이 연초 코스닥 시장의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그다지 점잖지 않은 느낌을 주는 이 용어는, 코스닥 등록요건을 갖추지 못한 장외업체가 기존 등록업체를 사들여 대주주가 되거나 합병함으로써 사실상 코스닥 시장에 진출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일명 우회등록이라고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은 코스닥 진출이란 호재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하는 수가 많다. 심지어 우회등록을 추진할 것이란 소문만으로도 주가가 뛴다. 이 때문에 뒷문등록은 코스닥 시장에서 인수·합병(M&A) 수혜주와 비슷하게 하나의 테마로 거론되기도 한다.

정상적 등록 어려운 기업들의 머니 게임


정보통신용 부품제조업체인 P&K시스템이 지난해 12월 코스닥등록 기업인 지이티에 흡수합병되는 형태로 코스닥 시장에 진출한 게 뒷문등록의 좋은 예다. 겉보기엔 P&K와 지이티 사이의 합병은 통상적인 M&A로 보이지만 특이한 점이 있다. 피인수 회사인 P&K의 최대주주가 합병회사의 1대 주주로 떠올랐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P&K시스템 주식 18.67%를 갖고 있던 박종환 사장은 지이티 주식 91만주(5.48%)를 확보, 합병 전 지이티의 1대 주주였던 한아시스템을 제치고 최대주주가 됐다. 한아시스템은 지분율이 2.93%로 낮아져 P&K시스템의 2대 주주였던 아이베스트창투사(3.7%)에 이어 3대 주주로 밀려났다.

박종환 사장과 아이베스트창투로선 최대주주의 자리도 유지하고 코스닥 시장에 진출하는 효과를 아울러 거둔 셈이다. 전형적인 우회등록이다. 이 밖에 소프트랜드(비등록)-디에스피(등록), 와이앤케이(비등록)-써니상사(등록), 타운뉴스(비등록)-케이알(등록) 등 최근 들어 뒷문등록 사례가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이들 업체가 우회등록을 추진하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서는 등록이 어렵고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 때문으로 풀이된다. 머니 게임을 통해 등록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까다로워진 심사 과정과 보통 서너달씩 걸리는 코스닥등록 추진기간을 단숨에 뛰어넘으려는 전략인 것이다.물론 기본적으로 코스닥등록에 따라 혜택이 생길 것이란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지난해 증권거래소 시장과 함께 코스닥 시장도 죽을 쑤면서 코스닥등록의 메리트(장점)가 다소 희석되긴 했지만, 중소·벤처기업들엔 여전히 꿈의 시장이다. 코스닥등록을 통하면 보통 자기자본을 2∼3배씩 불릴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영역에 도전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외 이미지가 크게 좋아져 외자유치나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공모가격 산정 과정에서 각종 제동 장치가 생겨 코스닥등록에 따른 주가상승 기대감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액면가의 2∼3배, 높게는 10배씩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제3시장 등 장외 영역에 머물러 있는 기업들은 코스닥등록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다.

뒷문등록에 일부 편법적인 성격이 있긴 하나 이 과정을 통해 업무영역을 넓히고 수익구조를 건전화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면 사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권장할 만한 면도 있다. 문제는 뚜렷한 사업모델과 경영실적이 없는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장외기업이나 부실기업이 무리한 차입금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을 동원, 일시적인 자금난에 빠진 등록기업을 사들일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코스닥 시장의 질적 저하를 불러오고 돈놓고 돈먹기식의 투자를 부추길 것이란 걱정으로 이어진다.

대주주의 악용 가능성… 노름판식 투자 부추겨

사진/코스닥위원회는 '뒷문등록'을 제어하는 장치를 마련하지 못했다. 사진은 코스닥 등록기업들을 심사하는 모습.(이정용 기자)
코스닥등록 기업인 ㅅ사와 장외기업인 ㅇ사의 합병건을 놓고 편법증자 의혹이 일고 있는 등 뒷문등록과 관련한 각종 잡음이 일고 있는 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ㅇ사와 ㅅ사는 올해 들어 합병을 결의했다. ㅇ사는 이에 앞서 지난해 대규모 증자를 통해 자본금이 4억5천만원에서 27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합병발표 직전인 지난해 말 제3자 배정의 유상증자가 대규모로 이뤄졌다. 이처럼 합병논의가 무르익을 시기에 집중적으로 증자를 실시한 것은 특혜의혹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지난해 말 ㅇ사의 유상증자는 일본계 업체에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이를 통해 이 업체가 ㅇ사의 최대주주로 돼 있다. 당시 ㅇ사의 유상증자 발행가는 액면대비 3배 할증된 1만5천원으로, 1 대 1 합병을 감안할 때 지난해 말 ㅅ사의 주가 3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최근 ㅅ사의 주가 6만원대와 비교하면 4배가량 싼값이다. 말하자면, ㅇ사 주식이 ㅅ사와 동등하게 교환되는 합병 사실을 미리 알고 헐값 발행을 했다는 의혹을 살 만하다는 것이다.

합병비율에서도 의문점이 제기됐다. 지난 98년 말 설립된 ㅇ사는 지난해 13억7천만원의 매출과 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올해 추정 매출과 당기순익이 이보다 훨씬 높은 240억, 38억원으로 제시돼 ㅅ사보다 오히려 높게 산정됐다. ㅅ사와 ㅇ사의 정확한 합병비율은 1 대 1.0459였다. ㅅ사가 지난해 485억원의 매출과 12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한 것으로 비춰볼 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여기에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복잡한 속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이 덧붙는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 관계자는 “코스닥등록 기업의 대주주들이 등록 뒤 6개월 동안 지분을 팔지 못하도록 한 규정을 피하는 방법의 하나로 뒷문등록이 악용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비등록 업체의 대주주는 코스닥등록이란 과실을 따먹고, 코스닥 기업 대주주로선 합병과 동시에 최대주주 자격을 잃는 대신 지분을 팔 수 있게 돼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 투자자들이 우회등록에 따라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는 것을 보고 뛰어들었다가 적지 않은 손해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증권사는 시가총액이 적고,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높은 코스닥 증목을 중심으로 뒷문등록 테마군을 선정, 은근히 투자를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증시전문가들은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뒷문등록 테마에 대해 지난해 코스닥 시장을 휩쓸었던 인수 뒤 개발(A&D)의 사생아라고 혹평한다. 또 일각에선 편법적인 뒷문상장을 제어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행 코스닥 시장 운영 규정상 뒷문상장을 막을 방법은 없다. 비등록기업과 등록기업간의 합병에서 등록기업의 덩치(자산, 자본금, 매출액 중 두 가지 이상)가 크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비등록기업 쪽의 덩치가 클 경우 신규등록과 똑같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제한이 있을 뿐이다.

금감원 기업등록국 관계자는 “덩치 큰 비등록기업이 등록기업을 인수해 코스닥 시장에 편법으로 진출하는 길은 현행 규정으로도 막혀 있기 때문에 별도 장치를 마련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합병비율 산정이 적정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심사는 엄정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장 활성화시켜도 시너지 효과는 의문

코스닥 시장 운영 규정을 마련하고 등록을 심사하는 코스닥위원회에서도 뒷문상장을 제어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코스닥위원회는 현재 시장등록 및 퇴출 규정의 개정에 주력하고 있을 뿐이다. 코스닥 시장의 진입·퇴출 규정이 바로 서면 편법적인 등록에 따른 부작용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규제장치를 자꾸 만드는 게 능사는 물론 아닐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 A&D열풍에 따른 부작용이 뒷문등록 테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리타워텍을 비롯 A&D테마군으로 꼽혔던 주식들이 결국 폭락세를 면치 못했으며 뒷문등록도 그 성격상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금융당국이나 코스닥위원회의 자세로 보아 뒷문등록에 대한 억제장치는 당분간 마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뒷문등록 사례는 앞으로도 잇따를 것으로 보여 투자자들의 조심스런 태도가 필요하다.

LG투자증권 전형범 연구원은 “뒷문등록이 코스닥 시장에 단기적으로 재료를 제공,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시너지 효과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연구원은 “등록요건을 갖추지도 못한 기업이 등록효과를 누리면 코스닥 시장 전체의 질적 저하가 우려된다”며 “결국 투자에 앞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경영윤리적으로 합당한 합병이었는지를 따지는 조심스런 태도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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