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조지스트로 꼽히는 니콜라우스 티드먼 교수 인터뷰
헨리 조지의 사상은 인식의 혁명,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토지세(보유세)는 효율적이면서도 정의롭다.”
미국의 대표적인 조지스트(헨리 조지 사상의 계승자)로 꼽히는 니콜라우스 티드먼(63) 버지니아텍 교수(경제학)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토지세(taxes on land)는 도덕적으로 옳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국적 상황에 빗대 얘기하자면,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한 보유세 강화는 윤리적으로 정당할 뿐 아니라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세금을 매겨도 초과부담 안 생겨
티드먼 교수는 지난 1월16일 토지정의연대·헨리조지연구회 주최 토론회 참석을 위해 방한했으며, 이번 인터뷰는 토론회 직후 서울 무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이뤄졌다. 미국 리드칼리지에서 경제학·수학을 전공하고, 1969년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티드먼 교수는 하버드대 조교수를 거쳐 지금은 버지니아텍에서 경제정의, 공공재정, 공공선택이론을 통해 대학(원)생들에게 헨리 조지 사상을 전수하고 있다. 조지스트 운동의 중심인 ‘로버트 샬켄바흐 재단’ 회장을 역임했으며, 하버드대 시절엔 공공선택이론의 대가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과 두 편의 논문을 공저했다.
토지세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이유는?
티드먼 교수는 토지세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다른 세금과 달리 초과부담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박승화 기자)
“초과부담을 발생시키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성격 때문이다. 근로소득이나 저축, 소비에 부과하는 세금은 모두 초과부담을 지운다. 세금이 없었을 경우에 비교해 투자는 축소되고 자본량은 줄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임금은 하락한다. 그렇지만 토지 보유에 대한 세금은 다르다. 토지는 공급량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어 여기에 세금을 매겨도 초과부담이 생기지 않는다.”
토지세의 가치중립성은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이미 확립돼 있는 이론인데, 티드먼 교수는 여기에 자신만의 이론을 덧붙인다. “토지세가 자본시장의 불완전성을 상쇄하기 때문에 중립을 넘어 ‘초중립적’이다. 토지를 이용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자산이 없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아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 토지가 돌아간다면 토지의 이용도는 높아지고 경제 전체의 산출은 증가한다.” 토지세를 증가시키면, 투기 목적으로 땅을 갖고 있는 이들보다 사용 목적으로 땅을 보유하려는 이들이 (이자율 작용을 통해) 자금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해지기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토지세가) 도덕적·윤리적으로 정의롭다는 뜻은?
“토지 소유권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다 폭력에 의해서였다. 개인이든, 국가든 마찬가지로 토지 소유에는 폭력이 개재돼 있다. 따라서 윤리적이지 못하다. 설사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점에 따른 소유권이라 해도 도덕적이지 않다. 한 사람 또는 한 세대가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세대보다 늦게 (세상에) 도착했다고 해서 태어날 때부터 땅을 덜 받아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땅은 인간 노동의 산물과 달리 자연적으로 주어진 기회이기 때문에 배타적 권리를 취득한 기원은 결코 정의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적 기회(땅)의 가치를 동등하게 분배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배타적 접근을 인정받은 이들한테서 자연적 기회의 임대 가치를 거둬 그 수입금을 모든 사람의 소득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수입금을 환수해 필수적인 공공사업에 사용하는 방법도 있다.”
(미국 학계에선 비주류로 분류되는) 헨리 조지 사상을 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태어나기 전부터 배웠다. 증조 할아버지가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분이었다. 누구의 소개로 영어 공부를 헨리 조지의 책 <진보와 빈곤>으로 했다고 한다. 그 뒤 집안 대대로 조지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1879)에서 땅에 대한 사용권은 모든 이들에게 동등하다는 윤리적 전제 아래 모든 지대를 조세로 징수해 사회복지 지출에 충당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따른 세수는 전체 재정 지출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조세는 모두 철폐하자는 이른바 ‘단일토지세’ 주장이었다.
헨리 조지의 영향 때문인가. 토지정의연대 토론회에선 여야 정치권, 학계 인사 모두 부동산 보유세 강화에 동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 박승화 기자)
여행광이었던 티드먼의 할아버지는 시카고시 전기국장을 지냈고, 헨리 조지 사상을 가르치는 시카고헨리조지스쿨 설립자였다고 한다. 아버지 또한 조지스트였으며, 샌프란시스코 헨리조지스쿨 운영을 주도했다고 한다. “여섯 살 되던 해 아버지가 ‘사람들이 왜 각각 땅을 소유해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하나의 조그만 계기가 돼 땅의 개인적 소유에 대한 의문을 줄곧 품었고, 나중에 헨리 조지 사상에 빠지게 됐던 것 같다. 학교에서 조지 사상을 배운 건 아니다. 제대로 가르쳐주는 데도 없었고….”
헨리 조지 사상이 미국 부동산 정책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보는가?
“재산세가 낮아지는 걸 늦춘 효과는 있었다. 건물에 대한 세금은 낮게, 토지세는 높게 매기는 이중 과세 체제를 갖춘 데도 영향을 줬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조지스트였다”
헨리 조지 사상을 현실 정책에 반영하기엔 많은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노예혁명처럼 인식의 혁명을 건드리는 문제다. 사람의 몸과 정신에 대한 권리는 각자 자신에게 있다는 건 노예혁명으로 이뤄졌다. 그렇지만 자연의 기회(땅)에 대한 동등한 권리는 아직 널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지 사상은 사람들의 의식을 건드려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인식이 바뀌는 데는)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조지 사상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은 어떤가?
“경제학을 가르칠 때 조지 사상에 대한 내 아이디어를 얘기하며 설득한다. 이해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도 거품이 끼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요새는 잠잠한가?
“미국도 부동산 문제를 안고 있고, 어느 정도 거품이 있다. 한국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에서도 토지 문제가 있으며 보통 사람들의 토지에 대한 접근성이 줄어들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을 것으로 본다. 서울에 와서 큰 빌딩을 많이 봤는데, 도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까지 개발이 이뤄져 있는 걸 봤다. 토지가치세(보유세)를 무겁게 매기면 무분별한 개발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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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스트와 시장주의자부동산 가격에 대한 수요제한과 공급확대의 두 입장은 결합될 수 있어
헨리 조지(1839~97) 사상을 따르는 ‘조지스트’는 토지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시장주의자’의 대척점으로 자리매김되는 수가 많다. 참여정부 초반 경제정책을 설계한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경북대 교수)을 비롯한 국내 조지스트 그룹은 자칭 시장주의자 그룹한테서 내내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양쪽은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에서 극도로 다른 태도를 보인다. 시장주의자들은 땅값의 폭등은 공급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개발규제 완화, 재개발 완화, 신도시 건설을 처방으로 제시한다. 반면 조지스트들은 토지 투기를 땅값 급등의 근본 원인으로 여겨 투기적 가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토지 보유세 강화가 조지스트의 핵심 처방이다.
이 때문에 조지스트와 시장주의자는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로 묘사되는데, 실상 이론적으로는 배타적이지 않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의 상대적 힘에 좌우되기 때문에 공급 측면을 강조하는 시장주의자와 수요 측면을 주장하는 조지스트의 주장 둘 다 유효한 정책 수단이며 이 둘을 결합하면 강력한 대책이 될 수 있다.”(한동근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한 교수는 “그렇지만 주의해야 할 점은 투기적 수요를 막을 강력한 보유세 도입 없이 규제 완화 같은 공급 확대책을 쓰는 것은 투기심리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정책의 우선순위는 투기적 수요를 막는 보유세 강화”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자칭 시장주의자들 스스로 비시장적 정책을 옹호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고 꼬집는다. “시장주의자라는 말이 함축하는 바는 시장의 자원 배분 기능을 신뢰하고 노력에 대한 대가를 보호하는 것이다. 투기적 목적으로 퇴장된(놀리고 있는) 토지를 시장으로 끌어내고 불로소득을 환수하자는 게 토지보유세다. 시장주의자라면 마땅히 옹호해야 할 보유세 강화를 반대한다면 그건 사이비 시장주의자다.”
한 교수는 모든 종류의 독점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헨리 조지가 도리어 더 시장주의적이라고 진단한다. 경제학설사적으로 열렬한 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로 꼽히는 ‘오스트리아학파’와 헨리 조지가 철학적으로 비슷한 면이 많다는 논문이 자주 발표되는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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