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사태로 가동중단된 용광로들이 다시 불을 뿜어내는 현대INI스틸 당진공장…“1단계 정상화 마무리” 떠난 노동자들 돌아오고 당진 지역경제도 활성화된다
▣ 당진=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 소리가 공장을 뒤흔들었다. 시퍼런 불꽃이 직경 50㎝, 길이 10m 정도 되는 기다란 흑연탄소봉을 타고 치솟아올랐다. 공장을 찢을 듯한 천둥번개는, 곧 폭풍이 몰아칠 것처럼 20여 분간 계속 이어졌다. 170t에 달하는 잡다한 고철 덩어리는 펄펄 끓는 전기로(電氣爐)에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했다. 고철 녹이는 거대한 전기로
지난 12월22일 오후 충남 당진군에 있는 현대INI스틸 당진공장. A지구 열연공장 1번 전기로에서 고철 덩어리를 녹여 쇳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경 10m 정도의 거대한 밥솥처럼 생긴 전기로에 고철 덩어리를 넣은 뒤 흑연탄소봉을 고철 덩어리 한복판에 넣어 쑤시고 지지면서 고압 전기를 흘려주자, 연속적으로 천둥번개 불꽃이 일어났다. 고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바깥에서는 긴 창을 전기로 안쪽에 집어넣어 연거푸 산소를 불어넣었다. 전기로 위쪽에서는 둥그런 집진기가 거대한 불꽃을 삼키면서 먼지를 계속 빨아들였다. 전기로 내부 온도계는 1616℃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철이 전기로에 들어간 지 50분쯤 지났을까? 통제실에서 버튼을 누르자 닫혀 있던 전기로 문이 살짝 열렸다. 문이 빼꼼히 열리자 그 틈새로 시뻘건 쇳물이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쇳물의 찌꺼기인 슬래그(slag)다. 문을 조금 더 열자 홍수가 난 듯 쇳물 불덩이가 밀려 쏟아져나왔다. 이글이글 타는 쇳물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작업자들이 긴 국자를 전기로 안에 집어넣어 쇳물 한 바가지를 채취했다. 쇳물의 성분 테스트다.
직경 10m, 깊이 5m 정도 되는 거대한 쇳물그릇을 전기로 밑에 받친 뒤 전기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자, 안에 있던 쇳물이 마치 물을 따르듯 그릇에 채워졌다. 전기로에 고철 170t을 넣으면 약 150t 정도의 쇳물이 생산된다. 레일을 타고 다음 제련 과정으로 이동하는 쇳물단지가 출렁출렁거리자 쇳물끼리 부딪쳐 다시 불꽃이 일었다. 한겨울에도 공장 안은 쇳물의 뜨거운 온기 때문에 멀리서도 후끈거렸다.
이 열연공장은 밤도 없이 24시간 작업하는데, 이번 쇳물 생산은 아침 6시 이후 7번째 작업이었다. 전기로 옆 한쪽에는 8번째 쇳물 생산에 쓰일 고철 덩어리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대INI스틸 당진공장의 전기로는 국내에서 가동 중인 전기로 중 가장 큰 규모다. 철강을 생산하는 방식은 크게 고로(高爐·용광로)와 전기로 두 가지인데, 우뚝 솟은 고로는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코크스에 태워 쇳물을 만드는 것이고 전기로는 철광석 대신 고철을 이용한다. 전기로는 전류를 흘려보내 고철을 녹이는 방식으로 막대한 전력이 소요된다. 현대INI스틸 당진공장의 하루 전기요금이 3억원에 이르고, 한국전력에 현대INI스틸 전력사용 장부가 따로 있을 정도다.
“임금이 많이 올랐어”
원래 이 열연공장은 한보철강 당진제철소(115만 평·여의도 1.3배)에 있는 5개 공장(A지구 철근공장·열연공장, B지구 열연공장·냉연공장·코렉스공장) 가운데 하나였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1997년 부도 이후 2000년부터 서너 차례 매각이 시도됐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마침내 2004년 10월 현대INI스틸-현대하이스코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서해바다를 매립해 건설된 당진제철소는 한복판에 수로가 흐르는데, 오른쪽 A지구는 철근공장과 열연공장이 있고 왼쪽 B지구에는 열연공장과 냉연공장이 있다. 한보철강 인수 이후 현대INI스틸은 A지구 두 공장과 B지구 열연공장(300만t)을, 현대하이스코는 B지구 냉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보철강 시절 A지구 철근공장(연산 120만t)은 1995년 1월에, A지구 열연공장(연산 180만t)은 1995년 6월에 완공됐다. 철근공장은 당진공장의 명맥을 이어온 공장으로, 건설경기 호조에 힘입어 한보철강 부도 이후에도 계속 풀가동돼왔다. 이 철근공장은 단일 철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로 국내 철근 생산량의 13% 정도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반면 B지구 열연공장·냉연공장·코렉스공장 등 3개 공장은 공사가 70% 정도 진척된 도중에 부도를 맞아 건설이 중단됐다.
이날 쇳물이 만들어지고 있던 A지구 열연공장은 한보가 완공해서 한때 가동됐으나 경제성이 떨어져 생산할수록 적자만 쌓이자 1998년 7월부터 가동이 중단됐다. 이 공장에서 일하던 400여 명도 뿔뿔이 공장을 떠나야 했다. 그러다가 2004년 10월 현대INI스틸이 인수한 뒤 공장 설비를 일부 바꿔 2005년 5월부터 재가동되고 있다. 현대INI스틸 당진공장 신승주 팀장은 “1단계 정상화라고 할 수 있는 A지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2단계 정상화라고 할 수 있는 B지구는 설비 진단을 끝내고 공사를 재개하고 있다”며 “파이프와 전장설비 등의 교체가 진행되고 있는데 2006년 10월부터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지구의 현대하이스코 냉연공장은 일부 생산라인만 가동되고 있다.
“현대INI가 들어오고 나서 임금이 많이 올랐어. 이제 일자리도 안정되고, 희망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은데….” A지구 열연공장 노동자인 이아무개(43)씨의 말이다. 이씨는 뜨거운 쇳물을 정해진 틀 속에 흘려보내 주조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이씨는 90년대 중반 한보철강에 입사해 철근공장에서 줄곧 일해왔다. 철근공장은 부도 이후에도 풀가동됐기 때문에 이 공장을 떠난 적이 없다. 현대INI스틸이 인수한 뒤 열연공장이 재가동되자 이쪽으로 재배치됐다. “2006년? 글쎄, 경제가 살아나서 철강 수요가 늘어야 공장이 잘될 텐데. 아무튼 좋아지지 않겠어.” 작업모를 살짝 들어올린 이씨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철강제품은 크게 열연강판과 냉연강판으로 나뉜다. 열연강판(핫코일)은 쇳물을 정련해 두꺼운 선철로 만든 뒤 압연을 거쳐 얇은 판으로 감아놓은 일종의 중간재다. 냉연강판은 냉연업체(현대INI스틸·현대하이스코·동부제강·동국제강 등)가 국내 유일한 고로업체인 포스코에서 원재료인 핫코일을 사다가 강도를 높이고 더 얇게 표면 처리해 만든 제품으로, 자동차용 강판과 가전제품용 강판 등이 여기에 속한다. 현대INI스틸 쪽은 “그동안 열연강판 생산을 포스코가 독점하고 있었는데, 당진공장을 INI스틸이 인수해 지난 5월부터 핫코일을 생산하고 있다”며 “여기서 핫코일이 생산됨에 따라 열연강판을 공급받는 이 지역의 휴스틸이나 동부제강도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옛 기술자 수소문해서 데려와
당진공장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고대공단·부곡공단에는 동부제강과 휴스틸 공장이 있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환영철강이 있다. 또 2007년에는 동국제강이 당진에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한보철강 부도 이후 텅텅 비어 있던 부곡공단도 현대INI스틸이 들어온 뒤부터 분양이 잘되는 등 활력을 되찾고 있다. 이날, 호남지역 폭설로 흰 눈이 쌓인 부곡공단 부지 곳곳에서 말뚝 박고 공장을 짓는 모습이 한창이었다. 또 여러 공장 굴뚝이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현대INI스틸을 따라 새로 들어온 협력업체도 16개사에 이른다. 연간 4천만t에 이르는 국내 철강수요 가운데 1천만t이 당진에서 공급되고 있다. 특히 2005년에 현대INI스틸은 열연강판에서 냉연강판까지 모두 생산하는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해 당진공장 바로 옆 96만 평을 고로(용광로) 제철소 건설을 위한 지방산업단지로 지정해달라고 충청남도에 요청했다. 한보 정태수 전 회장이 건설하다가 중단한 B지구 코렉스 공장은 인도에 팔고, 대신 고로 제철소를 짓기로 한 것이다. 코렉스 공장은 매각을 위해 현재 철거작업이 진행 중이다.
열연공장 앞뜰에는 ‘다시금 새로운 활력을 찾아, 당진벌 힘찬 맥박이 뛴다’고 적은 기념비가 눈길을 끈다. 기념비 위에는 2005년 2월에 첫 시험 생산한 핫코일 제품이 올려져 있다. 공장 정문에는 핫코일을 전국 곳곳으로 수송하는 트레일러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고 있었다. 직경 1∼2m 정도의 핫코일은 하나만 해도 무게가 무려 25t에 이른다. 현대INI스틸 쪽은 “A지구에서 하루 400대의 철근과 핫코일 수송차량이 드나드는데, 2006년 10월에 B지구까지 완전 가동되면 하루 800대의 차량이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보 부도 이후 작년에 현대INI스틸이 들어오면서 이상할 정도로 당진 지역경제가 확 올라가고 있어요. 공장 근처의 밥집도 늘어나고 아파트도 여기저기 들어서고….” 열연공장에서 일하는 김진현(38)씨의 말이다. 김씨는 한보철강 열연공장이 가동되기 시작한 1995년 8월 당진공장에 입사했다. 그러나 한보 부도 이후 2000년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하다 2004년 12월 현대INI스틸에 다시 들어왔다. 일하는 공장은 똑같고 회사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한보철강 매각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다른 회사가 인수해서 정상화되면 공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어요. 임금도 예전보다 50% 이상 올랐고.” 김씨의 2006년 소망은 내 집을 사는 것이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겼으므로 꿈을 이룰 희망도 커진 것일까.
현대INI스틸이 인수하기 전인 지난해 10월 당진공장 직원은 550명이었다. 그 뒤 공장이 재가동되면서 지금은 1천 명으로 늘었고, 냉연공장 현대하이스코 직원도 300명에 이른다. 신 팀장은 “열연공장은 과거 한보철강 시절에 기술자로 일했던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다시 데려왔다. 해외에 나가 있던 사람도 불러모았는데, 지난해 10월 재가동 이후 되돌아온 옛 한보철강 종업원은 생산직 85명, 관리직 10명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산의 저가 공략 위협적
핫코일을 만드는 공정의 최종 단계는 압연이다. 슬래브(약 25㎝ 두께의 선철)를 여러 대의 압연기 사이로 통과시키면서 1200℃의 고열을 가해 눌러주면 2.6mm 정도의 얇은 핫코일이 만들어진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밀듯, 43m짜리 슬래브를 빙빙 도는 두 개의 롤(Roll) 사이에 끼우고 롤의 간격을 점차 좁히면서 압력을 가하면 책 모양처럼 870m짜리 얇은 슬래브가 만들어진다. 압연공정에서 일하는 손일만(48)씨는 학교를 졸업한 뒤 한보철강에 입사해 1994년 당진제철소로 왔다. 열연공장을 건설하던 초기부터 일했는데 1997년 부도 이후에는 철근공장으로 옮겼다. “97년 부도 직전부터 상여금도 반납하고 임금도 삭감됐어요. 2003년까지 임금이 동결되고, 당시 가계에 타격이 컸죠.” 회사가 부도나자 사람들은 철근공장마저 가동이 중단되지 않을까, 퇴직금조차 못 받고 떠나게 될까 불안해했고, 일부는 퇴직금을 챙겨 떠나기도 했다. 그래도 손씨는 철근공장을 떠나지 않았고, 현대INI스틸로 바뀐 뒤 다시 열연공장으로 와서 일하고 있다.
당진공장 저쪽 멀리 서해바다 건너편으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이 보였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자동차, 조선(선박용 후판철강), 전자산업 등이 침체되면 철강산업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국내 철강업체들한테 2005년은 그다지 좋은 시절이었다고 할 수 없다. 전체 철강제품 가운데 40% 정도가 건축용으로 쓰이는데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철강업체들도 별 재미를 못 봤고,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의 국내시장 공략도 위협적이다. 이날 현대INI스틸 당진 열연공장도 전기로 1, 2기 중에서 2기는 열연강판 시장 수요가 좋지 않은 탓에 쉬고 있었다.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이 국내 시장에 마구 들어오고 있는데, 아무튼 경쟁력을 키워야죠.” 손씨가 짧게 말했다.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 소리가 공장을 뒤흔들었다. 시퍼런 불꽃이 직경 50㎝, 길이 10m 정도 되는 기다란 흑연탄소봉을 타고 치솟아올랐다. 공장을 찢을 듯한 천둥번개는, 곧 폭풍이 몰아칠 것처럼 20여 분간 계속 이어졌다. 170t에 달하는 잡다한 고철 덩어리는 펄펄 끓는 전기로(電氣爐)에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했다. 고철 녹이는 거대한 전기로
지난 12월22일 오후 충남 당진군에 있는 현대INI스틸 당진공장. A지구 열연공장 1번 전기로에서 고철 덩어리를 녹여 쇳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직경 10m 정도의 거대한 밥솥처럼 생긴 전기로에 고철 덩어리를 넣은 뒤 흑연탄소봉을 고철 덩어리 한복판에 넣어 쑤시고 지지면서 고압 전기를 흘려주자, 연속적으로 천둥번개 불꽃이 일어났다. 고철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바깥에서는 긴 창을 전기로 안쪽에 집어넣어 연거푸 산소를 불어넣었다. 전기로 위쪽에서는 둥그런 집진기가 거대한 불꽃을 삼키면서 먼지를 계속 빨아들였다. 전기로 내부 온도계는 1616℃를 가리키고 있었다. 고철이 전기로에 들어간 지 50분쯤 지났을까? 통제실에서 버튼을 누르자 닫혀 있던 전기로 문이 살짝 열렸다. 문이 빼꼼히 열리자 그 틈새로 시뻘건 쇳물이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쇳물의 찌꺼기인 슬래그(slag)다. 문을 조금 더 열자 홍수가 난 듯 쇳물 불덩이가 밀려 쏟아져나왔다. 이글이글 타는 쇳물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작업자들이 긴 국자를 전기로 안에 집어넣어 쇳물 한 바가지를 채취했다. 쇳물의 성분 테스트다.

철강 생산 방식 중 하나인 전기로는 고철을 이용해 쇳물을 만든다. 현대INI스틸 당진공장의 전기로 안으로 쇳물이 보인다.

1997년 한보철강 부도 이후 8년 만에 당진 제철소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 당진 공장에 세워진 공장 재가동 기념비.

쇳물 생산의 원료인 고철 덩어리.

공장에서 생산된 열연강판(핫코일) 재고품이 공장 한쪽에 가득 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