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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눈물에 젖은 ‘노다지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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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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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 달군 보물선·금광 발견설의 진실… 작전세력 농간에 일반 투자자 휘말렸을 가능성 높아

사진/현대는 지난 97년부터 금광개발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대상사 금광개발 관계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박승화 기자)
요즘 주식시장이 동화나라에 빠져든 듯하다. ‘바다에서는 보물선, 땅에는 금광’을 발견했다는 소문들이 잇따라 주식투자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처음에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식으로 흘러나온 소문이 해당기업의 주식에 대한 ‘묻지마 투자’를 불러일으켰다.

새해 벽두 우리 증시의 핵심테마 가운데 하나는 ‘노다지’이다. 황당하지만 어쨌든 노다지 관련 소문은 주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냉철함과 과학성을 생명으로 삼는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조차 “요즘 주가를 분석하려면 점성술이나 주역을 공부하는 게 더 낫지 않나”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노다지 테마에 불을 당긴 것은 동아건설의 보물선 발견설이다. 지난해 12월 초 한 일간지에서 ‘러일전쟁 때 보물을 가득 실은 채 울릉도 근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전함을 발견했다’고 보도하면서 발굴사업자를 동아건설이라고 소개했다. 보물선 발견설은 곧바로 주식시장에 화제를 뿌리며 확대재생산되면서 동아건설 주가를 천정부지로 밀어올렸다. 360원에 머물던 동아건설 주가가 연일 가격 제한폭까지 올라 올해 1월4일에는 3265원까지 무려 10배 가까이 뛰었다. 연속 17일 상한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낳기도 했다. 그것도 동아건설은 지난해 11월3일 2차 퇴출대상기업에 포함돼 지금 법정관리 상태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경이롭다.

연속 17일 상한가 기록한 동아건설


새해 들어 동아건설의 보물선 소동이 한풀꺾일 즈음, 이번에는 서부아프리카의 말리로 주식투자자들의 관심이 옮겨졌다. 지난 1월4일 증시에서는 개장 이전부터, 현대종합상사가 말리의 ‘바라니’ 지역에서 30만t 규모의 금광을 발견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금이 30만t이면 지금 국제시가로 따져 3조달러(3600조원)이며, 지금까지 인류가 채취한 양보다 더 많다. 현대상선쪽도 화들짝 놀라 이날 곧바로 조회공시를 내 “말리에서 시추탐사를 하던 중 금맥의 부존가능성을 확인했으나 일부 유포되고 있는 30만t 금광발견설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으나 투자자들에게는 ‘봐라 맞다고 하지 않느냐’는 확인공시로 각인됐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현대상사 주식은 그 다음날인 5일에는 이 회사 총발행주식 수보다 많은 1억주의 상한가 매수 잔량이 쌓일 만큼 ‘귀족주’로 부상했다. 투자자들은 곧바로 또다른 ‘노다지 관련주’ 발굴에 들어갔다. 이런 투자자들의 심리에 부응해 영풍산업과 LG종합상사도 발빠르게 금광개발사업을 발표했다. 영풍산업은 99년 1월부터 파푸아뉴기니 마운트 쿠타에서 개발을 시작해 현재 채굴작업을 진행중이며, LG상사는 오는 6월부터 필리핀 루슨섬의 디디오피 금광채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사실 영풍이나 LG상사의 금광개발사업은 이제 경우 시추분석 단계에 머물러 있는 현대상사의 말리 금광보다 훨씬 앞서 있다. 따라서 영풍이나 LG쪽으로서는 현대상선이 금광개발의 주인공으로 대접받는 게 못마땅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주식시장이 온통 노다지 열기에 휩싸인 나머지, 현대상선이 현대상사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금광 재료주’에 오르는가 하면 유전이나 가스전 개발 소문이 나돈 기업들 주식에도 강한 매수세가 붙었다.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스스로 갚지 못해 채권단 지원을 받고 있는 현대건설까지 지난 1월8일 “아프리카 차드에서 금광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혀 ‘노다지 테마’의 확산을 거들었다.

주식시장에서 노다지가 화제를 뿌린 것은 사실 그다지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물론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 주식시장에서도 오래 전부터 노다지는 매력적인 재료였다. 그러나 대부분 관련 소문이 처음보다 훨씬 축소된 내용으로 귀결돼 혹했던 투자자들을 울리기 일쑤였다. 동아건설 주가가 기록적인 상한가 행진을 마치고 지난 1월5일 맥없이 하한가로 돌아선 데서도 ‘노다지 거품’의 위험성을 그대로 알 수 있다.

물론 예전의 노다지 소문이 흐지부지되었다고 해서 지금 나와 있는 노다지설을 일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기업이 본래의 사업에서는 죽쑤면서 다른 데서 ‘대박’을 꿈꾼다면 정상이 아니다. 그런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것 또한 큰 위험이 뒤따른다. 따라서 동아건설의 보물선이나 현대상사 금광발견에 대해서는 앞뒤 맥락을 차근차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현대종합상사의 금광개발건을 알아보자. 대한광업진흥공사에 따르면, 현대상사가 말리에서 금광탐사에 나선 건 지난 96년이다. 현대는 애초 자원개발 전문업체인 아프코코리아와 합작으로 이 사업을 추진해오다 중도에 아프코코리아의 지분을 모두 인수해 지금은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상사는 다시 지난 97년부터 호주의 RSG사에 탐사용역을 맡겨 개발사업을 진행해왔다. 현대의 금광개발설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경제성 의문투성이인 현대상선의 말리 금광

사진/“땅에는 금광, 바다에는 보물선?” 노다지 테마주로 연말연시 주식시장을 술렁이게한 현대와 동아그룹.(박승화·이용호 기자)

문제는 소문에 휩싸인 금광의 규모가 30만t에서 30t까지 들쑥날쑥한데다 경제성을 판단할 구체적인 자료가 전혀 없다는 데 있다. 현대상사쪽에서는 “시추자료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오는 6월 말 마무리될 예정이어서 경제성 판명 여부는 좀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말리 금광은 이미 지난 98년에 공개된 사업이다. 현대상사가 탐사중인 지역 바로 옆에서 영풍산업이 먼저 금맥을 발견하고 국내 증시에서 공시했다. 또 현대상사의 말리 현지법인(현대말리S·A)도 98년 6월 외교통산부에 “북바라니 지역 표면으로부터 지하로 50∼100m에 금맥을 부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보고서를 냈었다. 즉 새로운 이야기가 아닌 셈이다. 이후 좀더 진전된 사항이 있다면 이 금광의 경제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곧 내릴 수 있다는 것뿐이다. 또 현대상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말리 금광개발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현지법인의 실적이 나와 있는데, 99년 12월 말 현재 부채가 자산을 22억원가량 초과해 자본금을 다 까먹었고 매출은 전혀 없이 99년에 22억원가량의 손실을 기록했다.

광업진흥공사 관계자는 “일반인들이 순금과 순금을 함유하고 있는 ‘광물’을 혼동하는 바람에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는 것 같다”며 “품위가 비교적 높은 금광이라도 대략 30만t의 광물이면 30t 정도 순금이 추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순금값이 t당 100억원을 약간 웃도는 것을 감안할 때 30t이면 3천억원을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현대상사의 덩치가 크지만 이 정도 현금이 유입된다면 주가가 출렁일 만하다. 그렇지만 순금 30t의 부존 가능성마저 확실치 않은데다, 설사 사실로 판명된다 하더라도 개발비용과 수송비, 현지 정부와의 개발이익 분담약정 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경제성이 크게 달라진다.

동아건설의 보물선 발견설은 더욱 오리무중이고 황당하다. 지금까지 동아건설의 공시와 해양수산부의 발표, 탐사용역을 맡은 해양연구원의 의견 등을 종합해볼 때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 1905년 5월에 제정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6200t급 전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가 울릉도 근해에서 침몰한 것은 확실해보인다.

논란의 핵심은 이 돈스코이호에 보물이 실려 있느냐는 것. 특히 증시에서는 ‘돈스코이호에 시가 50조원∼150조원의 보물이 들어 있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되고 있다. 소문대로 이 배와 함께 침몰한 보물이 금괴라면 최고 1만4천t에 이른다. 6천t급 전함에 1만4천t의 금괴를 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지만, 어쨌든 이 소문이 확산되는 이유는 나름의 정황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채산성 없는 보물선 이용한 세력 있다

사진/노다지는 국내의 주식시장에서 매력적인 재료로 통한다. 금광을 탐사하고 있는 개발자들.(GAMMA)
울릉도에서 러시아 보물선 이야기는 오래전 부터 나돌았다. 보물선 찾기를 가장 먼저 추진했던 사람은 전 독도의용수비대장으로 활동했던 고 홍순칠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부가 돈스코이호 함장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청동주전자를 물려주며 보물선을 찾아보라고 했다”며 국내에서는 물론 러시아, 일본, 영국 등지를 찾아다니며 러일전쟁 당시의 대한해협 전사와 선체 인양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료들을 수집했다고 한다. 홍씨는 생전에 “내가 조사한 바로는 돈스코이호에 80조원 상당의 백금 주화가 실려 있다”면서 돈스코이호 발굴과 인양에 필요한 기술과 자금력 부족을 안타까워하다가 지난 86년에 타개했다. 지난 81년에는 스쿠버다이버 출신의 한 사업가가 “돈스코이호 인양작업을 추진하겠다”며 언론에 공개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해군제독 크로체스 도엔스키 장군의 증언기록을 토대로 “돈스코이호가 싣고 있었던 보물은 150조원의 규모”로 추정했다고 한다. 물론 그 추정의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동아건설은 이런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를 믿고 돈스코이호 탐사에 나섰을까? 동아건설은 99년 10월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낸 매장물발굴 신청서에서 “돈스코이호에 500㎏의 금괴 와 보물이 실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금괴 500㎏이면 약 50억원이다. 동아건설은 해양연구원과 돈스코이호의 실재여부를 조사하는 용역계약에만 10억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만약 돈스코이호를 발견하더라도 인양하는 데는 이보다 훨씬 많인 비용이 들 게 뻔하다. 사람들의 궁금증을 씻어줄 수는 있겠지만 동아건설로서는 별로 채산성이 없는 것이다.

동아건설 관계자는 “이 사업은 보물선을 건지겠다는 것보다 해양건설 기술을 개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현재 돈스코이호의 탐사작업 진행현황에 대해서는 회사 안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대외비여서 일체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동아건설쪽의 설명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보물선 탐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던 99년 10월이면 동아건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중이었다는 점이다. 즉 기업이 국민의 세금이나 다름없는 채권단의 자금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고유 사업에서 한참 벗어나고 수익성도 극히 불투명한 분야에 10억원가량의 돈을 투입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증시 일각에서는 동아건설의 보물선 소동이 이 회사 주식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특정세력이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조작하거나, 아니면 사소한 투자프로젝트를 일부러 부풀리지 않았느냐의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공고롭게도 동아건설이 지난 99년 9월에 발행한 6천만달러 규모의 해외전환사채가 지난해 12월10일부터 무더기 주식전환청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바꾸지 않을 경우 표면이율이 0%인 무보증회사채이고, 그나마 동아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다. 동아건설은 97년 6월에 발행된 1억달러어치의 해외전환사채도 아직까지 9천만달러 정도가 주식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로, 실체를 알 수 없는 특정세력(?)의 손에 잠겨 있다. 아마 이 전환사채를 들고 있는 세력들은 동아건설 보물선의 신빙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주식매수 세력이 강하게 붙은 때를 물량을 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할 것이다.

회사 이미지 추락, 누구를 위한 테마인가

불확실한 소문으로 주가가 급등락할 경우 일부 작전세력을 빼고는 나중에 모두 큰 손실을 보는 게임을 하게 된다. 보물선, 금광개발 소동에 휘말린 당사자 동아건설, 현대종합상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회사는 ‘뭔가 장난을 치지 않았느냐’는 식의 따가운 외부 눈총을 받고 있지만 사실 억울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주가가 급등했다고 해서 당장 이들 회사로 현금이 유입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오히려 회사 이미지 추락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빠져 있다. 소문에 현혹돼 뒤늦게 추격매수에 나섰던 일반투자자들의 손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주식시장의 속성이 본래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또 주가가 회사의 내재가치대로 움직이지 않는 불가해성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동아건설, 현대상사의 주가는 정상 궤도를 벗어났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소동 속에서 주식시장은 도박판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결국 기업의 건전한 자금줄 구실이란 뜻은 퇴색된다.


노다지 소문의 씁쓸한 종말

주식시장에 화제를 뿌린 노다지 소문은 역사가 제법 깊다. 가까운 예로는 영풍산업의 해외금광개발건. 지난 95년부터 아프리카 말리공화국 게웬소 지역의 금광 발굴사업에 나선 영풍산업은 98년 들어 실제 금광개발에 돌입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주가가 크게 올랐다. 당시 영풍산업은 이른바 ‘자원개발주’의 중심이었으며 동원, 고려아연 등 비슷한 업종에 속한 기업들의 주가까지 밀어올리는 구실을 했다.

영풍의 말리 금광프로젝트는 그뒤 결국 실패(회사쪽 설명으로는 ‘보류’)로 돌아갔다. 영풍산업은 다시 파푸아뉴기니의 포겔라 금광개발에도 나섰으며 이 사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현대종합상사의 말리금광개발 소식이 전해진 뒤 영풍산업의 주가가 덩달아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믿기 어려운 재료를 바탕으로 주가가 급등락한 외국의 사례로 18세기 프랑스의 ‘미시시피 사건’이 전해져 내려온다. 미시시피사(社)는 프랑스 루이15세 시절 왕실의 빚을 대납하는 조건으로 왕립은행 설립권을 받아낸 존 로(John Law)라는 사람이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회사. 로의 은행은 토지를 담보로 해서 지금의 주식과 채권을 혼합한 형태의 유가증서를 발행했는데, 당시 프랑스가 미국에 광대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던데다 이 증서를 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금이 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금광개발이란 재료 하나로 이 증서가 폭등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유가증서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왕실 채무를 갚는 데 쓰였을 뿐 금광개발에는 투자되지 않았고 결국 나중에 그 가치는 휴짓조각이나 다름없이 폭락했다.

회사마다 나라마다 노다지설의 양상은 다양했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과도한 기대로 부풀려진 거품이 꺼지는 씁쓸한 종말이었다

박순빈 기자park@hani.co.kr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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