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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멋대로 날씨, 고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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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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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민감한 업체 대상 날씨파생상품… 서늘한 여름·포근한 겨울의 경제적 손실 줄여

사진/최근 날씨파생상품은 해외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파생상품으로 꼽힌다. 국내에서 날씨파생상품 출시를 준비하는 케이웨더.
한국전력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뭘까?

‘서늘한 여름’, ‘포근한 겨울’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여름이 여름답지 않으면 전기 판매가 뚝 떨어져 자칫 경영위기를 맞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겨울도 마찬가지다. 한전의 경우 지금까지는 독점체제의 우산 아래 있었지만 미래좌표가 분할민영화로 설정돼 있어 기후변화에 따라 생사가 엇갈린다는게 기우가 아니라 곧 맞닥뜨릴 현실이다.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나 난로회사 등에도 서늘한 여름이나 포근한 겨울은 생존의 문제일 것아다. 매출이 뚝 떨어져 시장에서 버텨내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변화 위험 회피할 수 있도록 설계


한전, 아이스크림 제조업체, 난로회사의 이런 공포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게 날씨파생금융 상품이다. 올 하반기에 국내에서도 선보일 것으로 보이는 날씨파생상품은 이들 회사의 고민을 상당부분 덜어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날씨파생상품이 뭐기에, 날씨 변덕에 따른 손실을 덜어준다는 것일까. 날씨정보 제공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 케이웨더(주)의 류성 신규사업팀장으로부터 설명을 들어보자.

“날씨파생상품은 특정지역의 기온이나 폭우, 풍속, 적설량, 일사시간 등과 같이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기후요소를 바탕으로 날씨변화 위험을 헤지(회피)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일종의 금융상품입니다.”

“현재 날씨파생상품은 대부분 단일지역의 기후 지수를 기반으로 해 만들어진 옵션과 스왑의 형태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97년 첫선을 보인 미국에선 2000년도 시장규모가 8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가장 급성장하는 파생상품 분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상품이 일반화하면 원유가격이 크게 오르더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미리 사둘 수 있어 고유가에 시달리는 우리 경제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 같은데 여전히 알쏭달쏭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날씨파생상품 시장이 개설돼 있다고 가정하고 한전과 삼성화재가 여기에 참여하는 경우.

무더운 여름이 포함된 6∼9월의 서울지역 평균온도 기준을 25도(실제 파생상품 시장에선 과거 기록 및 미래 예측으로 복잡하게 산출한 지수로 제시됨)로 상정한다. 다양한 조합의 상품 중 한전은 25도 아래로 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여기서 0.5도(계약단위)씩 떨어질 때마다 10억원을 받기로 하는 쪽에 내기를 건다(해당 지수값에서 매도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풋옵션계약을 체결한다). 거꾸로 삼성화재는 평균온도가 25도 이상으로 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아래로 떨어질 경우 0.5도당 10억원을 주기로 하는 쪽에 내기를 걸고 대신 계약체결 때 프리미엄(계약이행 보증금)으로 30억원을 받는다.

그해 9월을 지내고 10월1일이 돼 6∼9월의 평균기온을 산출한 결과 21.5도가 됐다고 하면 한전은 삼성화재로부터 70억원(=10억원X7계약단위(=25도-21.5도))을 받게 돼 프리미엄 30억원을 빼고 40억원의 이익을 챙기게 된다. 반대로 평균기온이 25도 이상 됐다면 한전은 권리(풋옵션 매도) 행사를 포기하면 그만이다. 물론 보증금 30억원도 허공으로 날아가 삼성화재의 이익으로 돌아간다.

한전 처지에선 서늘한 여름으로 인한 매출감소를 날씨파생상품으로 커버하는(상쇄시키는) 셈이다. 다행히(?) 뜨거운 여름이었다면 매출증대로 인해 날씨파생상품에 가입하며 들인 보증금은 쉽게 건져 리스크(위험)를 줄이게 된다. 이와 정반대로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를 상정한 날씨파생상품도 설계돼 거래대상으로 오를 것이다.

케이웨더 출시 앞두고 다국적 업체도 참여

날씨파생상품과 비슷한 것으로 국내에서 이미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날씨보험이 있다. 특정시점, 특정지역에 눈이 얼마 오면 얼마를 보상해준다는 게 대표적인 예다. 날씨보험은 그러나 날씨변동(재해)에 따른 손실을 산출해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때로는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와 달리 날씨파생상품에선 해당 시점에서 지수에 따라 분명한 판가름이 이뤄져 이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태풍과 홍수와 같이 위험의 정도가 높고 발생 확률이 낮은 경우엔 날씨보험이, 온화한 날씨처럼 위험 수위가 낮고 발생 가능성은 높은 경우는 날씨파생상품이 적합하다.

국내에는 아직 날씨파생상품이 없지만 케이웨더(주) 등이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잡고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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