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채권단이 벌이는 ‘법과 도덕의 싸움’… 경영실패 책임 국민이 떠맡을 수밖에 없나  
    
 
 삼성자동차 파산으로 인한 손실을 삼성과 채권단 중 어느 쪽이 떠맡아야 하는가? 삼성생명의 상장이 결국 무산되면서 삼성과 채권단간의 다툼이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이 싸움은 흔히 ‘법과 도덕의 싸움’으로 비유되곤 한다. 
  법을 앞세우는 쪽은 삼성이다. 주식회사가 파산할 경우 주주는 회사재산으로만 책임을 질 뿐 자기 재산으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대로라면 삼성차 부채 2조4500억원은 담보를 제대로 확보하지 않은 채권단이 자체 손실로 처리해야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나 삼성차의 주주였던 삼성 계열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반면, 채권단은 ‘도덕’을 들이댄다. 왜 채권금융기관이 삼성차에 그 많은 돈을 빌려줬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삼성차는 삼성 이 회장의 ‘신용’을 담보로 돈을 빌려간 것 아니냐는 얘기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국내 5대 재벌 중 완전파산한 대우를 제외하고는 계열사의 부채를 금융기관에서 떠맡은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상장 무산… 1조4천억원 딜레마 
   
 
사실 삼성쪽은 한때 ‘도덕’에 승복하는 듯했다. 99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차 부채 처리를 위해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넘긴 것이다. 삼성쪽은 삼성생명 주식가치를 주당 70만원으로 계산해 그 정도면 모든 부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삼성 계열사들은 만약 삼성생명 주식으로 부채를 다 해결하지 못하면 계열사들이 이를 보전해주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하지만, 삼성쪽의 이런 약속에는 처음부터 여러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삼성생명이 상장되지 못하거나 상장이 되더라도 주가가 70만원에 이르지 못할 경우 해결책이 확실하지 못했다. 삼성 계열사들이 모자라는 부분을 보전해준다는 각서를 쓰기는 했지만, 이는 소액주주나 외국계 주주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려했던 문제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 생명보험사 상장방안 확정이 기약없이 연기된 것이다. 2000년 말까지 삼성생명 주식으로 부채를 다 처리하지 못할 경우 지연이자를 내기로 한 삼성쪽은 지연이자를 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가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차 부채에 대해 일부라도 떠맡는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가처분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삼성쪽도 다시 ‘법’을 들고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차 부채는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로 다 해결한 것이다. 나머지는 채권단이 알아서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삼성차 채권단은 지난 1월9일 채권단운영위원회를 열어 삼성차 부채에 대해 담보로 받은 삼성생명 주식을 임의매각하기로 했다. 임의매각까지는 주간사 선정, 주식가치 실사, 매수자 접촉 등 4개월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매각이 성사될 수 있을지부터가 확실하지 않다. 삼성생명의 상장이 확정되지 못한 것은 계약자 몫 배분 문제가 해결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식가치는 계약자 몫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계약자 몫에 대해 어떤 원칙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식가치를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계약자 몫이 없는 것으로 보고 주식가치를 산정한 뒤 계약자 몫에 대해서는 옵션을 걸어 매매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사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매각 대금이 2조4천억원의 부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빛은행쪽은 올해 결산에서 삼성생명 주식 1주의 가치를 29만1천원으로 산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이 예금보험공사의 의뢰를 받아 실사한 뒤 평가한 것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삼성생명 주식 1주가 29만원이라면, 이 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은 삼성차의 부채를 해결하기에는 1조4천억원이 모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채권단은 삼성쪽이 모든 책임을 지지 않으면 법적소송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 계열사들이 써준 각서를 바탕으로 지연이자와 부채충당에 부족한 부분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쪽은 느긋하다. 법대로 한다면 불리할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써준 각서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쪽에서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내세우며 계열사들의 부채부담에 반대하고 있는 참여연대가 오히려 원군이 되고 있다. 채권단이 섣불리 소송으로 나서지 않는 것도 소송이 장기화될 우려가 큰데다, 소송으로 대응했다 패소할 경우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가장 우려스런 것은 채권단이 이미 받은 삼성생명 주식만 받고 잔여 부채 회수를 포기할 경우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이미 삼성차 부채를 상당부분 손실처리했기 때문에 곧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삼성은 정녕 오욕을 선택할 것인가
  한빛은행의 경우 이미 삼성차 부채 중 일부를 손실로 처리했다. 삼성생명 주식가치를 70만원에서 29만1천원으로 바꿔 산정하고 그 차액을 손실처리한 것이다. 따라서 삼성쪽에서 추가자금을 받을 경우 이는 이익이 된다. 이제 추가로 돈을 받아내야할 절박한 사정은 없어진 것이다. 한빛은행이 삼성쪽에서 받은 삼성생명 주식은 54만5천주로 주당 70만원을 적용할 경우 378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주당 29만1천원으로 계산하면 확보한 금액은 1571억원에 불과하다. 2209억원의 손실은 이미 공적자금으로 지원받았다. 채권은행들이 삼성쪽에서 추가로 채권을 회수하지 않을 경우 삼성차 경영실패의 책임을 결국 국민이 상당부분 떠맡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삼성은 두고두고 ‘오욕’을 짊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한화와 두산 등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한 재벌기업들은 부실계열사의 부채를 대부분 그룹 자체에서 해결했다. 법대로라면 계열사를 파산시키고 부채는 책임 못지겠다고 하면 될 일이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국내 최대재벌 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삼성차 경영실패의 책임을 결국 채권단과 국민에게 떠넘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 그 속내가 궁금하다. 
   
 
 
  정남구 기자/ 한겨레 경제부jeje@hani.co.kr 
 
 
 
 
 
 
 
 
 

사진/삼성은 삼성차 부채에 대해 '법대로'를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96년 3월 삼성차 시승을 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사실 삼성쪽은 한때 ‘도덕’에 승복하는 듯했다. 99년 6월 이건희 회장이 삼성차 부채 처리를 위해 자신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넘긴 것이다. 삼성쪽은 삼성생명 주식가치를 주당 70만원으로 계산해 그 정도면 모든 부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삼성 계열사들은 만약 삼성생명 주식으로 부채를 다 해결하지 못하면 계열사들이 이를 보전해주겠다는 각서까지 썼다. 하지만, 삼성쪽의 이런 약속에는 처음부터 여러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삼성생명이 상장되지 못하거나 상장이 되더라도 주가가 70만원에 이르지 못할 경우 해결책이 확실하지 못했다. 삼성 계열사들이 모자라는 부분을 보전해준다는 각서를 쓰기는 했지만, 이는 소액주주나 외국계 주주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려했던 문제는 결국 터지고 말았다. 생명보험사 상장방안 확정이 기약없이 연기된 것이다. 2000년 말까지 삼성생명 주식으로 부채를 다 처리하지 못할 경우 지연이자를 내기로 한 삼성쪽은 지연이자를 내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가 삼성 계열사들이 삼성차 부채에 대해 일부라도 떠맡는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가처분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삼성쪽도 다시 ‘법’을 들고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차 부채는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로 다 해결한 것이다. 나머지는 채권단이 알아서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삼성차 채권단은 지난 1월9일 채권단운영위원회를 열어 삼성차 부채에 대해 담보로 받은 삼성생명 주식을 임의매각하기로 했다. 임의매각까지는 주간사 선정, 주식가치 실사, 매수자 접촉 등 4개월 이상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매각이 성사될 수 있을지부터가 확실하지 않다. 삼성생명의 상장이 확정되지 못한 것은 계약자 몫 배분 문제가 해결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식가치는 계약자 몫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계약자 몫에 대해 어떤 원칙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식가치를 산정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계약자 몫이 없는 것으로 보고 주식가치를 산정한 뒤 계약자 몫에 대해서는 옵션을 걸어 매매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이 성사되더라도 사태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매각 대금이 2조4천억원의 부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빛은행쪽은 올해 결산에서 삼성생명 주식 1주의 가치를 29만1천원으로 산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이 예금보험공사의 의뢰를 받아 실사한 뒤 평가한 것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삼성생명 주식 1주가 29만원이라면, 이 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은 삼성차의 부채를 해결하기에는 1조4천억원이 모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채권단은 삼성쪽이 모든 책임을 지지 않으면 법적소송도 불사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삼성 계열사들이 써준 각서를 바탕으로 지연이자와 부채충당에 부족한 부분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쪽은 느긋하다. 법대로 한다면 불리할 게 없다고 보는 것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써준 각서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쪽에서는 소액주주의 권리를 내세우며 계열사들의 부채부담에 반대하고 있는 참여연대가 오히려 원군이 되고 있다. 채권단이 섣불리 소송으로 나서지 않는 것도 소송이 장기화될 우려가 큰데다, 소송으로 대응했다 패소할 경우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처지에서 보면, 가장 우려스런 것은 채권단이 이미 받은 삼성생명 주식만 받고 잔여 부채 회수를 포기할 경우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한 관계자는 “채권단이 이미 삼성차 부채를 상당부분 손실처리했기 때문에 곧 타협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내기도 했다. 삼성은 정녕 오욕을 선택할 것인가

사진/삼성차 채권단은 삼성쪽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법적소송을 제기하려고 한다. 대책을 논의하는 삼성차채권단의 회의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