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막장 인생, 택시의 비명
등록 : 2005-11-08 00:00 수정 :
내년 상반기 요금자율화 앞두고 기사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피말리는 경쟁 속에 법인-개인택시 서로 공격 “버스기사가 부럽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10월18일 오후 4시,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OK택시(주). 교대시간이 되자 택시들이 하나둘씩 차고지로 들어오고 있었다. 방금 들어온 택시기사 신아무개씨가 이날 벌어들인 꼬깃꼬깃 접힌 1만원짜리와 1천원짜리 몇 장을 천천히 폈다. “아침 6시에 손님을 태웠는데, 나원참, 아침부터 내 차에 오바이트를 하더라고. 술이 덜 깨가지고….” 그는 ‘운행기록일보’에 운행거리와 타코미터상 수익금, LPG 사용량 등을 적은 뒤 8만원을 운송수입금 입금 창구에 넣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택시요금이 사실상 자율화된다. 서울의 경우 현재 기본요금이 1900원으로 같지만 앞으로는 출퇴근 시간대와 손님이 적은 낮 시간대는 기본요금이 차등화되고 할인·할증을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개인택시와 법인택시의 요금도 각각 달라진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단일요금제 폐지 및 요금 자율화 방침에 대해 정작 택시기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자율화? 쓸데없는 연구!”
“자율화? 손님이 따블, 따따블 부르는 그거 자율화 아닙니까? 어쩌면 ‘말 없는 요금 자율화’를 이미 하고 있는 거죠. 질서만 문란해질 게 뻔해. 우리 택시는 아직 자율화가 어울리지 않아.” 대방동 삼거리의 LPG 주유소에서 만난 개인택시 운전자 조영만(46)씨가 잘라말했다. 조씨는 일반 기업에서 사장 차를 운전하다 2001년부터 개인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 6천만여 원을 주고 개인택시 면허를 샀다. “구멍가게 같은 일은 혼자서는 하기 힘들고 택시는 혼자 할 수 있다는 점이 좋긴 하지. 그런데 택시 운전하면서 눈물도 참 많이 흘렸어요.” 마땅히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택시 운전으로 흘러든다는 얘기가 틀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여러 번 들었다고 한다.
택시기사들은 자신들을 ‘도심 속 막장 인생’이라고 부른다. “승객들한테 여러 번 돈 뜯기기도 하고 택시 강도를 만나기도 했지. 요금 떼먹고 죽기 살기로 도망가는 승객을 차 놔두고 끝까지 쫓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경찰서에 가서 옥신각신하느니 아예 포기하고 그 시간에 일하는 편이 더 나아.” 조씨가 한숨처럼 말했다. OK택시에서 일하는 운전자 ㅈ씨는 “자고 나면 하도 운전기사들이 바뀌어서 지금은 경력 1년차가 벌써 중고참이야. 내 동기 37명 중 지금 7명만 남았어. 택시기사 50∼60%가 신용불량자들이고 다들 볼 장 다 본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다.
버스 노선 개편과 지하철 연장 운행의 여파로 택시업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OK택시 소속 기사인 박종오씨(왼쪽)와 주철수씨(오른쪽). (사진/ 박승화 기자)
“최근 요금 자율화 방침이 나온 뒤에 여러 동료 기사를 만나보니 다들 정부가 쓸데없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더라고. 낮에는 요금을 싸게 받고, 새 차는 요금이 비싸고 헌 차는 싸고, 그렇게 된다는 거 아냐? 자율화가 실현될 수 있겠어?” OK택시 운전자인 박종오(61)씨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박씨는 오랫동안 개인택시를 몰았는데 영업도 안 되고 힘에 부치자 얼마 전 법인택시로 다시 내려온 베테랑 운전자다. 하늘의 별따기였던 개인택시 면허는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일부 법인택시 차량이 통째로 개인택시로 전환되거나 군인 등 국가유공자들한테 면허가 남발되면서 공급 과잉을 빚고 있고, 이에 따라 면허를 스스로 반납하고 법인택시로 내려가는 택시기사도 많아졌다. 법인택시 기사들은 개인택시 면허를 받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개인택시 면허 발급마저 사실상 중단된 형편이다.
“지금 버스는 폼나게 넥타이 매고 운전하잖아. 버스야 좀 늦게 운전하면 어때? 준공영제로 서울시가 적자를 다 보전해주는데.” 박씨가 말했다. 박봉에 시달리고 사납금 채워넣기도 벅찬 택시기사들이 최근에는 개인택시 면허를 반납하고 버스 운전으로 바꾸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버스는 ‘운송수익금공동관리제’를 통해 서울시가 적자를 보전해주면서 임금도 인상되고 안정적인 월급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개인택시’가 꿈이던 시대는 갔다네
조영만씨는 요금 자율화가 되면 질서만 더 문란해질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택시업계는 손님이 줄어들면서 이미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격화됐고 그야말로 피 말리는 진흙탕 싸움이 날마다 빚어지고 있다. 출퇴근 러시아워만 되면 개인택시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와 손님 뺏기 경쟁이 벌어진다. “저 앞에 손님이 손 들고 기다리는 걸 보고 그쪽으로 가다 횡단보도에서 빨간 불에 걸려 잠깐 서 있으면, 반대편에 있던 모범택시가 노란 차선에서 차를 돌려 승객을 눈앞에서 채가버려요. 이 바닥에서 나이고 경력이고 다 필요 없어요. 먼저 채가고 돈 벌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조씨의 말이다. 조씨가 ‘먼저 승차하시고 행선지를 제시하세요’라고 자기 차에 써붙였더니 개인택시 동료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라고 비웃더란다.
법인 택시 기사들은 하루 8만원 안팎의 사납금을 채워넣기도 벅차다고 하소연한다. (사진/ 박승화 기자)
그런데 법인택시 쪽은 또 개인택시를 비난한다. “영업용 법인택시가 손님한테 다가서면 어느새 개인택시가 유턴해서 끼어들어와 손님을 가로채 가버려요. 야간에는 손님들한테 스트레스 받고, 주간에는 길이 밀려서 스트레스 받고, 동료들끼리의 경쟁으로 손님 안 놓치려고 또 스트레스 받고….” OK택시 운전자인 주철수(48)씨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택시에 타는 손님도 천차만별이고, 손님의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도 괜히 신경쓰이죠.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마음고생도 참 많이 하죠.” 조영만씨의 말이다. 예전에는 손님들이 급하면 택시를 탔으나 지금은 급하면 오히려 버스·지하철을 탄다. 택시는 편하다는 이점밖에 없다. 그러나 새벽 4시에 나와서 하루 12시간 열심히 뛰어도 한 달 150만원 벌기조차 빠듯한 상황에서 승객들한테 친절한 웃음이 나올 수 있을까?
물론 좋은 시절도 있었다. “전두환 정권 때만 해도 아내는 떡장사 하고 택시 운전으로 집 두 채 장만할 수도 있었지. 지금은 다 흘러간 옛날이지만….” 박종오씨가 아득한 추억처럼 말했다. 조영만씨도 “요즘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름값에다 차량 할부금을 빼고 나면 한 달 140만원 벌기도 어렵죠. 돈을 불릴 수가 없어요. 단지 생계만 유지하지. 개인택시 한 대로 먹고살고 집 사고 그러던 시대는 다 갔지, 뭘”이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70년대에 지입차를 하다 30대 초반에 개인택시를 받았지. 그때는 개인택시가 선망의 대상이었어. 노란 택시였는데 젊은 사람이 개인택시를 한다니까 다들 부러워했지. 당시에는 수입이 괜찮았어. 기능직으로 일하는 동창들 중에서 내가 제일 많이 벌었으니까.” 서울 금천구의 개인택시 기사 중 최고참이라는 오영환(62·금천구 시흥동)씨의 말이다. 개인택시 기사는 80년대 중반까지 손꼽을 정도로 숫자가 적었고 자부심도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택시만 28년째 몰고 있는 오씨는 지난 97년 모범택시로 전환했다. “2002년 월드컵 때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지. 흥청망청 접대비 쓰는 승객들이 간혹 요금보다 훨씬 많은 웃돈을 주고 내리기도 했어.”
오씨는 지난 9월 개인택시로 다시 내려왔다. 벌이도 예전 같지 않고 야간 운행도 힘들기 때문이다. “예전에 승객이 셋 타면 할증 요금을 적용하겠다는 말도 나왔는데 결국 안 됐잖아. 글쎄, 요금 자율화가 될까?”
모범택시에서 일반 개인택시로 전환한 오영환씨(왼족)와 개인택시 기사인 조영만씨(오른쪽). (사진/ 박승화 기자)
한달에 모범택시 수백 대가 개인택시로
서울에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손님이 택시를 기다렸으나 이제는 택시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그전에는 밤 12시면 버스, 지하철 다 끊겼는데 지금은 새벽 2시에도 버스가 다니잖아. 택시 영업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짧아졌어. 마을버스, 지하철도 이제는 여기저기 다 다니잖아.” 오씨의 말에 따르면, 10년 전에 택시 운전으로 하루 10만원을 벌었다면 지금도 여전히 하루 수입이 10만원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수입금 10만원 가운데 LPG값이 1만원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3만원이나 빠져나간다. LPG값은 외환위기 이전 ℓ당 170원에서 현재 700원대로 폭등했다. 게다가 예전에 하루 10만원 버는 데 10시간 일했다면 지금은 15시간을 운전해야 한다. “지난 6월에 서울시 모범택시 200대가 개인택시로 내려오고 9월에 또 500대가 내려왔어요. 많은 모범택시 기사들이 차를 팔거나 전업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서로 먼저 모범택시를 그만두고 개인택시로 전환하려고 하는 통에 서울시로부터 순번을 기다려야 할 정도다.
“우리 회사는 하루 8만5천원 입금하는 정액제야. 주간에 8만원도, 7만원도 하는데 야간영업 때 땜방해서 부족분을 채우지. 마을버스, 대리운전, 콜밴 같은 것에 손님을 다 빼앗겼어. 콜밴도 머리에 등을 달고 영업하는 세상이고 자가용 영업행위도 많고…. 요금 자율화고 뭐고 간에 택시요금 시세가 갈수록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OK택시 박종오씨가 진단한 택시업계 불황의 원인이다. 그러나 택시 기사들이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는 ‘자성’도 많았다. “합승과 승차 거부 같은 택시기사들의 횡포에다가 청바지, 슬리퍼 차림에 머리도 안 감은 기사들을 보고 도대체 무서워서 누가 택시를 잡아타겠나? 손님은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택시는 돈 되는 방향에만 서 있고, 미아리·수유리·상계동 방향은 빈 차로 나오니까 안 서고….”(조영만)
택시기사들과 손님들이 다 같이 망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손님들이 따블, 따따블 주겠다고 하니 기사들이 그런 손님을 찾아다니게 됐고, 결국 승객들이 택시를 버려놓았지. 그런데 지금은 택시기사가 손님을 버려놓고 있어. 시 경계를 넘어가면 할증을 끊어야 하는데 택시기사들이 먼저 손님 받겠다고 할증도 안 끊고 싼값에 그냥 달리고, 콜택시도 콜비용을 안 받고 태워주겠다고 서로 경쟁하고, 그러다 보니 손님들이 더 싼값을 부르는 택시만 골라 타려 하고….”(오영환)
일부 택시업체들은 운전기사 친절교육과 브랜드 차별화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더 싼 택시만 골라타는 세태
그런데 OK택시 기사 주철수씨는 뜻밖에도 “아직 벌이가 괜찮은 편”이라고 했다. 일반 기업에 다니다 지난 3월 처음으로 택시 운전대를 잡은 그는 OK택시 운전자 170여 명 중 수입이 톱10에 드는 편이다. “내가 속도를 별로 안 내고 안전운행하니까 도중에 내려서 다른 택시로 갈아타버리는 손님도 가끔 있다”고 말한 주씨는 야간에 하루 20만원, 주간에 16만원 정도 수입을 올린다. “비결요? 남들 쉴 때 나도 편하게 쉬면 돈 벌 수 있겠어요? 요일별로 어느 술집에서 몇 시에 사람들이 쏟아져나오는지 손님들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나도 따라서 이동하는 식이죠.” 주씨는 식사도 차 안에서 김밥 도시락으로 때우면서 하루 13시간씩 일한다. “딱지 안 끊는 게 돈 버는 지름길이에요. 며칠 전 처음으로 6만원짜리 하나 끊었는데 공친 날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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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27명이나 분신·자결완전월급제는 극소수, 변형된 사납금제도 여전한 택시업계의 불황
현재 서울에 굴러다니는 택시는 약 7만2천 대. 서울의 법인택시는 지난 8월 말 현재 256개 업체 소속 2만2953대다. 1998년 말(2만3천 대)과 거의 같다. 반면 개인택시는 1998년 말 4만6300대에서 현재 4만9100대로 늘었다. 개인택시의 경우 ‘가’ ‘나’ ‘다’ 3부제 운행을 하지만 하루 벌이가 적다 보니 운전자마다 더 많은 시간을 운행하고 자연히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게다가 법인택시도 예전에는 택시회사 차고에서 놀고 있는 ‘빈 택시’가 많았으나 외환위기 이후 많은 실직자들이 택시 운전에 가세하면서 차가 없어서 일을 못 나갈 정도로 바뀌었다. 1984년 택시노동자 박종만씨의 분신 이후 2004년 조경식씨가 다시 분신하는 등 20년간 택시노동자 27명이 분신·자결한 것만 봐도 택시업계의 고통과 불황을 짐작할 수 있다.
택시에는 1998년부터 ‘운송수입금전액관리제’(월급제)가 시행되고 있다. 전액관리제에 기초한 월급제는 평균운송수입금의 일정액을 기본급으로 보장받고, 운송수입금 전액을 입금하되 그 수익금을 일정 비율에 따라 성과급으로 분배받는 방식이다. 그러나 완전월급제 형태로 전액관리제를 지키고 있는 업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는 사업자가 운수종사자로부터 수입을 전부 납부받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배분 방법 등은 없다. 따라서 일정한 기준금액을 설정해 이를 회사에 납부하도록 하는 ‘변형된 사납금제’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데 대부분 월정액 급여가 50만∼8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기본급만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 이하인 업체도 상당수에 이른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쪽은 “노사 간에 하루에 납부할 기준 금액을 8만원으로 정했더라도, 매일같이 6만원만 입금시키는 기사가 있을 경우 타코미터기에 하루 수입 6만원이 정확히 찍혀 있는데 나머지 2만원을 집에서 가져와 채워넣으라고 하면 말이 안 되고 또 불법이 된다. 그래서 성실하게 일하는 기사와 놀고 쉬는 기사들 사이에 불만과 마찰이 생긴다. 일정한 노선을 달리는 버스와 달리 택시는 일단 배차되고 나면 근로감독이 불가능하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일정한 기준금액 미달 입금자에 대해서는 회사 내부적으로 어떤 불이익을 주는 방법도 쓰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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