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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차별 있는 곳에 이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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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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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지불 의사’에 따라 각각 다른 값에 파는 가격 차별 전략
기업의 음모라 봐야 할까 모두의 ‘꿩먹고 알먹기’로 봐야 할까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영화값도 얼마 안 내는데 뭘 그렇게 친절하게들 구는지….”

오랜만에 영화관에 다녀오신 어머니 얼굴에는 화색이 만연했다. 영화 내용보다는 가격과 친절 덕이었다. 조조 할인에다 65살 이상 노인에 대한 에누리까지 덧붙여 반값도 되지 않는 4천원만 내셨다. 그런데 값싼 손님이라고 구박은커녕 친자식처럼 사근사근하게 구는 영화관 직원들에게 감동을 드신 모양이다.


물리적·시간적·심리적 차별

순간 머릿속에 스쳐가는 직업적 의문. “극장주의 마음속에 있는 노인 공경 사상이 그 이윤 동기에게 승리했나? 왜 건당 매출이 적은 소비자에게 똑같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이미 230년 전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설명해주지 않았던가.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업자, 양조업자, 제빵업자들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 이익 추구 때문이다.” 기업은 가장 자비로운 순간에도 자선가가 아니다. 모든 결정의 이면에는 가격과 비용과 이윤을 계산하는 냉혹한 엑셀 스프레드시트가 돌아가고 있다.

어머니를 감동시켰던 그 가격 할인과 친절은 똑같은 양과 질의 제품을 공급하면서 다른 가격을 매기는 가격 차별(price discrimination) 전략이다. 물론, 자선행위가 아니라 이윤 극대화 전략의 일환이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최대 지불 의사(reservation price), 즉 어떤 품질의 어느 물건에 대해서는 최대 얼마까지 지불하고 살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똑같은 ‘구치’ 가방에 대해서도 ‘브랜드의 가치를 아는’ 명품 애호가는 수천만원을 주고라도 사겠다고 마음먹고 있겠지만, 필자처럼 ‘가방은 단지 물건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도구’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은 1만원만 넘어가도 사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을 먹고 있다는 얘기다.

<해리포터>는 처음엔 하드커버로, 나중엔 보급판으로 시간적 가격 차별 전략을 구사한다. <해리포터> 신간 행사를 벌이는 영국의 한 서점. (사진/ AfP 연합)

기업은 고민을 시작한다. 이 가방의 가격을 500만원으로 책정하면 가방 한개당 이윤은 엄청나게 높아지지만, 가방 수요자는 마음속의 가격이 500만원 이상인 사람 몇명에 불과할 것이다. 가방 가격을 1만원으로 책정하자니 가방이야 많이 팔리겠지만 매출액이 적다. 500만원 내기로 마음먹었던 사람도 1만원을 주고 가방을 사게 될 테니 이 한 사람을 놓고 보면 손해도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가격 차별 전략은 이런 문제의 해결사다. 500만원까지 기꺼이 지불할 사람에게는 500만원에, 1만원만 주고 사겠다는 사람에게는 1만원에 팔면 매출이 극대화할 것이다. 소비자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지불 의사를 추정해 불완전하지만 몇개의 무리로 나누어 각각 다른 가격을 내도록 하는 전략이 자연스레 나온다.

소비자 무리를 나누는 전략은 여러 가지다. 때로는 한눈에 판별이 가능한 물리적 특성을 앞세워 소비자를 차별한다. 노인들은 수입이 적게 마련이니, 영화관이 노인 할인 제도를 만들면 젊은이들로부터 얻는 매출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지불 의사가 낮은 노인들의 주머니를 열 수 있다.

시간적 차별 전략도 사용된다. 서양에서 <해리 포터> 같은 책은 처음에 비싸고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양장본)로 나오고, 몇달 뒤 반값에 가까운 보급판 페이퍼백으로 나온다. 제작원가 차이는 고작 5~10%에 불과하다. 최대 지불 의사가 높은 마니아 독자들이 먼저 책을 사게 하는 가격 차별이다.

소비자의 허영심을 지렛대 삼은 심리적 차별 전략도 있다. 대한항공 뉴욕행 항공편의 이코노미석과 일등석의 가격 차이는 정가 기준으로 최고 다섯배 정도가 난다. 사람 한명을 같은 비행기로 서울에서 뉴욕까지 운반하는 데 원가 차이가 다섯배까지 날 리 없지만, 보통사람과 섞이기 싫은 사람들은 끝끝내 일등석 표를 사고야 만다.

빈약한 지갑으로 서비스 즐길 수 있다면…

소비자를 차별할수록 기업의 이익은 늘어난다. 물론 소비자 입장은 거꾸로다. 최대 지불 의사와 실제 지불하는 가격의 차이는 덤이다. 이 덤을 경제학에서는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라고 부른다. 가격은 이 소비자 잉여를 둘러싼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심리적 전투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가격 차별도 인종이나 성차별처럼 사악한 차별이거나, 좋게 봐줘도 소비자 주머니에서 한푼이라도 더 털어내 이윤을 극대화하겠다는 기업의 기분 나쁜 음모라고 봐야 할까?

앞서 인용한 애덤 스미스의 글 뒤에는 바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은 공익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또 얼마나 증진시킬 수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는 가운데서 사회나 국가 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킨다.” 애덤 스미스였다면 음모론에 이렇게 해명했으리라. 어머니는 아들이 드리는 모자란 용돈으로도 영화 감상이라는 ‘젊음의 특권’을 향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극장주는 파리 날리는 평일 아침에 아침잠 없는 노인의 주머니를 열어 금고를 채웠다. 그 음모로 손해 본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이주의 용어

가격 차별(price discrimination)
최대 지불 의사(reservation price)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

** 우리 생활에서 경영학의 문제를 재미있게 풀어낼 새 칼럼 ‘이원재의 5분 경영학’이 이번주부터 연재됩니다. ‘조계완의 노동시대’와 돌아가며 격주로 실릴 이 칼럼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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