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김우중·닉 핀척을 인생의 멘토로 꼽는 이혁병 캡스 사장
극심한 노사분규 겪던 회사를 ‘열정교육’등 의사소통으로 일으켜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혁병(52) 사장을 만나기 전 간단한 이력을 훑어보고선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얼굴이 맨 먼저 떠올랐다. 이 전 장관은 경제 관료로선 특이하게 1980년대 대우그룹으로 옮겼다가 한국신용평가를 설립했는데, 이 사장의 이력에서 ‘대우 → 한신평’의 시기가 겹치는 듯했다. 이 사장이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옮겨다니며 남긴 적잖은 흔적들 가운데 왜 유독 그 부분에 눈길이 갔는지는 나도 잘 모를 노릇이다.
이헌재 전 장관 따라 대우에서 한신평으로
서울 삼성동 캡스 본사에서 이 사장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꺼냈더니 역시 짐작대로였다. 이 전 장관과 이 사장의 인연은 미국 유학 시절에 맺어져 대우그룹에서 함께 일하면서 돈독해졌다고. 이 전 장관이 대우반도체 대표로 대우그룹의 반도체 사업을 추진할 당시, 이 사장은 마케팅 담당 과장으로 합류했고 나중에 이 전 장관의 주도로 한신평 설립 때도 같은 배를 타게 된다.
“대우의 반도체 사업 추진은 중도 포기로 결론났습니다. 1983~84년에 연구 작업을 벌이고 기술 도입을 위해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동분서주했는데,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김우중 회장의 판단에 따라 결국 접었습니다. 중공업 등은 눈에 보이는 무엇이 있는 반면에 반도체는 오리무중의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워낙 큰 사업이라 그룹의 사활을 걸어야 했으니…. 삼성의 반도체 사업 투자에 대해서도 다들 ‘미쳤다’고 하던 때였습니다.” 반도체 사업 포기로 그룹 본부로 복귀해야 할 처지가 된 이 사장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한신평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부동산 문제’에 얽혀 불미스럽게 공직을 떠난 이 전장관임에도 이 사장은 그를 “균형감각과 현실감각을 일깨워준 분”이라며 인생사를 통틀어 3명의 멘토(Mentor) 중 한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가 전쟁터로 떠나면서 자신의 아들을 보살펴달라고 부탁한 친구의 이름에서 비롯된 멘토는 ‘지혜와 신뢰로 이끌어주는 자’란 뜻. “한신평에 재직할 때 이슈가 생기면 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대안을 찾도록 하고,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시기를 놓치기보다 실행 가능한 차선책이 낫다는…, 그런 얘기들은 당시엔 제대로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경영자의 위치에 있으니 새롭게 느껴집니다.”
대우그룹에서 첫발을 뗀 특별한 배경이라도 있나요?(이 사장은 1975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78년 해군 중위 전역 뒤 곧바로 대우그룹에 입사했다.)
“고도성장기였고, 대우가 잘나갈 때였지요. 의욕 있는 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직장이었습니다. 자동차수출부에서 일한 3년 동안 해마다 1억달러씩 실적을 올렸습니다. 신입사원한테도 바이어와 네고하는 것부터 시작해 전체 수출 과정의 업무가 맡겨져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죠.” 당시 자동차수출부의 부장이 현재 대우인터내셔널(옛 (주)대우) 사장을 맡고 있는 이태용씨였다. 김욱 아가방 회장은 당시 과장이었다.
이 사장은 “삼성, LG에 들어간 이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갔다면, 대우맨들은 회사를 평생직장으로 여기기보다 일을 배워 창업하겠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차이는 그룹 회장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우린 ‘회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형님’ ‘우중이 형님’, 이렇게 부를 정도로 격의 없이 지냈습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머리가 덥수룩한 직원을 보면 용돈을 쥐어주며 ‘머리 좀 깎아라’는 식으로 대하니 거리감이 적었던 겁니다. 외국 바이어와 만나고 있으면, 누구냐고 묻고선 ‘있다가 내 방으로 좀 와봐’ 할 정도로 직원들을 가깝게 대하던 분이었습니다.” ‘대우 사태’로 실패한 경영인으로 추락한 김우중 회장 또한 이 사장에겐 멘토로 새겨져 있다. ‘가난한 고학생으로서 대기업 회장 자리에 오른 샐러리맨의 우상’이었던데다 초창기 진취적인 기업가의 모습에서 받은 영감 때문이었으리라.
김우중 전 회장에게서 ‘어울림’을 배우다
개인적인 인연을 떠나 김우중 회장에 대해선 총체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안타까운 일이죠. 1985년에 (대우를) 나왔으니 그 뒤 대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전엔 매우 일할 맛이 나는 조직이었습니다.”
그가 외국계 기업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대우를 떠나 한신평에 몸담은 지 4년 만인 1989년이었다. 동양증권 국제부 책임자로 와달라는 요청은 이헌재 당시 사장의 만류로 접은 터였는데, 미국계 다국적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과 캐리어(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스의 에어콘 부문)에서도 제의를 받게 된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경영학석사(MBA) 경력에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멤버라는 배경이 다국적 기업의 발탁 제의로 이어진 듯하다고 짐작할 뿐 인연의 실마리는 그도 정확히는 모른다고 했다. 두 다국적 기업 가운데 캐리어를 선택한 것은 아시아·태평양본부를 두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캐리어 생활은 아·태본부 사업담당 이사로 싱가포르에서 4년을 보낸 것을 비롯해 모두 13년에 이른다.
그는 캐리어로 옮긴 것에 대해 국내 기업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옮겼다는 것 외에 ‘주체적인 뜻에 따라 이직한 첫 사례’라는 의미를 덧붙인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전략기획팀에서 대우반도체로, 다시 한신평으로 옮아간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는 설명이다. 순전히 자의로 선택한 다국적 기업 캐리어에서 그는 3명의 멘토 중 나머지 1명을 만나게 된다. 캐리어 아·태본부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미국인 닉 핀척.
“일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도대체 잠을 안 자는 겁니다. 합숙하며 일할 때가 많았는데, 수면 시간이 서너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숲만 보는 게 아니라 나무까지 두루 살필 줄 아는 배경은 바로 그런 데서 비롯된 듯했습니다. 마케팅, 법률 등 각 분야별로 담당 임원보다 더 자세히 알 정도였지요.” 닉 핀척을 화제에 올린 이 사장은 들뜬 모습이었다. “13년 동안 미국 본사를 상대로 100회 이상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전날 밤을 새우지 않은 때가 한번도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1989년 11월엔가 미국 뉴욕주 시라큐스에 있는 캐리어 본사로 일주일 동안 출장갔을 때 잠잔 시간이 모두 합해 13시간뿐이었습니다.” 이 사장은 “워크홀릭(일 중독자)한테서 무한한 인내심을 배웠다”며 웃었다.
캐리어에 몸담은 지 13년 만인 2002년 그는 보안업계 세계 1위인 타이콘그룹으로부터 한국 법인인 캡스 사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음에도 이를 받아들인 건 ‘새로운 일을 해볼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사장이 만49살에 이른 때였다.
직원들의 바람 읽고 3교대 근무로 전환
캡스 사장으로 취임한 2002년 3월 직후 그는 예상치 못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영입 당시 “군대식 조직이고 통솔하기 쉬울 거다”고 한 미국 본사쪽의 언질과 달리 회사는 극심한 노사분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의 취임 직전 6개월 동안 사장이 세번씩이나 바뀔 정도로 회사는 혼돈 상태였다.
분규의 뿌리를 의사소통의 부재로 본 그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했다. 2천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50개 클래스로 뒤섞어 연극 등을 통해 서로 부대끼게 하는 ‘열정 교육’이 한 예다. 클래스별로 1박2일씩 8개월 동안 진행되는 열정교육에선 ‘우체부 프레드(Fred)’를 교과서 삼아 프레드의 고객감동 서비스를 익히고, 외부강사 교육·조별 연극·난타·수상스키를 통해 사내 소통을 꾀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직원들의 바람을 읽은 그는 2교대 근무제를 3교대제로 바꾸는 등 업무 시스템을 개선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건 최고경영자(CEO)인 그가 스노보드 같은 스포츠와 와인클래스(포도주 모임) 등을 통해 젊은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일이다. 이 사장은 이를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이라고 부른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젊은 직원들한테서 배워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태권도 3단, 유도 2단의 고수라니 천생 보안업체 CEO인데, 내가 개인적으로 샘나는 건 아마 3단의 바둑 실력이다.
극심한 노사분규 겪던 회사를 ‘열정교육’등 의사소통으로 일으켜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혁병(52) 사장을 만나기 전 간단한 이력을 훑어보고선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얼굴이 맨 먼저 떠올랐다. 이 전 장관은 경제 관료로선 특이하게 1980년대 대우그룹으로 옮겼다가 한국신용평가를 설립했는데, 이 사장의 이력에서 ‘대우 → 한신평’의 시기가 겹치는 듯했다. 이 사장이 국내 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옮겨다니며 남긴 적잖은 흔적들 가운데 왜 유독 그 부분에 눈길이 갔는지는 나도 잘 모를 노릇이다.
이헌재 전 장관 따라 대우에서 한신평으로

이혁병 사장은 젊은 직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스노보드 같은 역동적 스포츠를 즐긴다. (사진/ 박승화 기자)

서울 삼성동 캡스 본사의 제2상황실. 장안동의 제1상황과 함께 캡스의 두뇌조직을 이룬다. (사진/ 박승화 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