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국면의 경기가 투기세력에 공격 빌미 제공… 당분간 안정적 하향세 기대하기 힘들어 
   
  연초부터 환율이 요동을 치면서 외환시장을 바라보는 눈길들이 예사롭지 않다. 97년 외환위기의 징후를 가장 먼저 알려준 게 바로 환율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미국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의 급락은 평소 환율에 관심조차 없던 보통사람들에게도 막연한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다. 미국달러에 대한 원화의 환율은 지난해 11월 중순 1130원 수준에서 지난 1월3일 1293원까지 올랐다. 불과 50여일 만에 1달러를 사는 데 160원 이상 더 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해지자 각 신문이나 TV뉴스의 첫머리를 환율기사가 차지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요즘 은행들의 외환딜링룸에는 “환율이 얼마나 더 오르겠느냐”, “지금이라도 달러를 사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 이런 현상은 전국에 퍼져 있는 각 은행 지점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달러를 사려는 고객들이 평소보다 늘어나고 달러를 사거나 팔 시점을 묻는 일도 많아졌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환율이 뭔지도 모를 만한 사람들이 달러를 사둬야겠다고 전화를 해오는 걸 보면서 ‘이제 오를 만큼 오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식에 대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던 촌부가 빚내서 주식투자하기 시작하면 ‘꼭지’라는 증시쪽 얘기를 빗댄 말이다. 
   
  한국경제의 미래 전망은 여전히 어두워 
 
환율이 오르는 이유는 뭘까? 최근 환율이 폭등하는 이유를 따져들어 보면 의외로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경제의 환경변화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모두 녹아 있는 게 바로 환율이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환율이 폭등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표면적인 현상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해 말부터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내릴 때마다 문제아로 지목받은 게 바로 ‘역외선물환시장’(NDF:Non Deliverable Forwards)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이다. 정부는 늘 이들을 환투기세력으로 몰며 경계해야할 대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역외선물환시장이란 쉽게 말해 우리 원화를 거래하는 외국의 시장이다. 지금도 홍콩, 싱가포르, 런던, 뉴욕 등지에서 열리고 있다. 97년 10월쯤 역외시장에서는 800원대에 머물던 국내환율보다 100∼200원 이상 높은 환율이 유지된 곳이 바로 역외선물환시장이다. 험난한 외환위기의 파도가 바로 코앞에 닥쳤음을 알려준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환율은 역외시장이 좌지우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2일 국내시장 종가가 1276원이었을 때 그날밤 역외시장 환율은 1287원으로 치솟았고 이는 곧바로 3일 국내환율로 이어져 1293원까지 폭등을 불러왔다. 반대로 지난 3일 국내 종가가 1270원이었는데 그날밤 역외시장에서 1241원까지 환율이 급락했고 곧이어 4일 국내개장가는 1238원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마디로 국내시장에 이어 열리는 역외시장이 다음날 국내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 이게 바로 경제전문가들이 ‘해외 투기세력의 원화 공격’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그러면 최근 외환시장이 불안해지고 환율이 급등하는 원인을 모두 이런 외국인들의 투기놀음 탓으로 돌려야 할까. 그건 전혀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가 속으로 골병이 들었던 게 외국투기세력에 원화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듯 지금도 외국 투기세력이 아무 이유없이 무작정 원화를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 이유는 바로 현재 우리 경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미국경제의 어려움이나 일본경제의 침체, 국제유가의 동향 등 다양한 해외변수들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렇게 보면 환율, 즉 원화가치의 변화는 국내외 경제의 축소판이다. 원화가치의 변화는 국내외 경제의 축소판
  우선 국내경제부터 보자. 우리 경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악의 침체국면에 접어들었다. 제2의 경제위기를 절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비와 투자는 위축됐고 퇴출돼야할 기업들은 온갖 편법으로 살려놓으며 금융부실만 키우고 있다. 주가는 지난 한해 반토막이 났다.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이 그렇게 많은 달러를 갖고 들어왔지만 주가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한창 오르던 환율이 잠시 떨어질 때마다 떠오르는 게 ‘그래서 우리 경제가 달라진 게 뭐냐’는 물음”이라고 말했다. 외환당국이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일시적으로 나타나 잠깐 환율이 떨어져도 이내 튀어오르는 것은 우리 경제의 허약한 기초체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을 제기하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시각도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특히 지난해 말 산업은행이 25조원 규모의 회사채를 인수하도록 한 조처에 대해선 국내외 금융계의 비난이 거세다. 쟈딘플레밍 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산업은행이 회사채 차환발행을 지원하는 것은 기업의 연쇄부도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시장원리에는 위배되는 것이며 성공여부도 확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크레디리요네(CLSA)는 “한국 정부가 산업은행을 통해 회사채 차환발행을 지원토록 한 것은 한국의 구조조정 전망을 악화시키는 신호”라며 “중장기적으로 파산 위험을 내포한 조처”라고 우려했다. 이런 시각은 결국 한국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이어지며 원화를 팔아치우는 결과를 초래해 환율상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미국경제의 경착륙이나 일본경제의 침체, 국제유가 상승 등 다양한 해외변수도 환율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 마침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1월3일 연방기금금리를 0.5%포인트 전격 인하, 미국증시를 기사회생시켰다. 그 영향은 곧바로 한국증시와 외환시장을 뒤흔들었다. 주가는 큰 폭으로 올랐고 환율은 급락했다. 이와 관련해 ING베어링은 아시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미국 금리인하는 아시아를 위험에서 구해냈다”며 “한국 등 아시아 국가는 환율 부담없이 통화정책을 쓸 수 있게 됐으며 하반기 들어서는 수출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기대는 아직 충족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환율은 미국증시의 훈풍을 즐기기도 전에 엔화폭락이란 일격을 맞으며 한때 20원 이상 급반등했다. 엔화가치 하락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통화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수출경쟁국인 대만은 정치불안으로 경제마저 위태로워지자 최근 외환보유고를 동원하며 환율방어에 나서는 형편이다.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환율상승의 원인은 이렇다지만 그 득실을 따지다보면 원화가치의 하락, 즉 환율상승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수출기업들에 환율상승은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최선의 무기다. 실제로 동아시아 통화가 일제히 하락하는 과정에서 원화가치만 고고하게 제자리를 지킨다면 우리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 경쟁국의 수출상품 가격이 우리 제품보다 낮은 가격에 팔린다면 시장을 잠식당할 게 뻔하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회복하는 데 무역수지 흑자규모를 늘리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부 내에서 ‘수출경쟁국들의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만큼 원화가 떨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급등하는 환율은 국민들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더해주게 마련이다. 또 환율상승이 원자재 등 수입제품가격의 상승을 초래하고 결국 물가안정기조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외환당국도 이런 부작용을 늘 걱정한다. 
   
  국내외 경제여건의 획기적 개선이 해결책 
   
  최근 환율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내놓는 다음과 같은 구두개입은 바로 환율상승 자체가 아니라 상승속도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 있다. 
  “정부에는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있고, 외국인투자가들의 투기성 거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대규모 외자유치건이 이달중에도 상당수 가시화될 것이며, 우리의 구조조정 성과도 상대적으로 우량하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나친 불안심리로 환율이 지나치게 상승할 경우 결국은 일부 환투기세력게 이익실현의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다행히 올 들어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대거 사들이면서 예상치 못한 달러공급요인이 더해지고 있다. 올 들어 5일까지 외국인들이 1조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사들였으니 당장 이번주에 9억달러 이상이 외환시장에 새로 풀리게 됐다. 환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계기가 생기는 듯하다. 
  그러나 국내외 경제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런 달러공급에도 환율이 안정적인 하향세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아직 우세하다. 경제가 살아야 환율이 안정된다는 평범한 진리가 새삼스럽게 부각되는 요즘이다. 
    손동영/ 이데일리(edaily.co.kr) 채권외환팀장 
   
   
   
 
 
 
 
 

사진/환율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외환딜러들이 원화의 환율이 1290원대로 치솟아 불안한 눈길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김봉규 기자)
환율이 오르는 이유는 뭘까? 최근 환율이 폭등하는 이유를 따져들어 보면 의외로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경제의 환경변화와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모두 녹아 있는 게 바로 환율이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환율이 폭등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표면적인 현상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해 말부터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내릴 때마다 문제아로 지목받은 게 바로 ‘역외선물환시장’(NDF:Non Deliverable Forwards)에서 활동하는 외국인들이다. 정부는 늘 이들을 환투기세력으로 몰며 경계해야할 대상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역외선물환시장이란 쉽게 말해 우리 원화를 거래하는 외국의 시장이다. 지금도 홍콩, 싱가포르, 런던, 뉴욕 등지에서 열리고 있다. 97년 10월쯤 역외시장에서는 800원대에 머물던 국내환율보다 100∼200원 이상 높은 환율이 유지된 곳이 바로 역외선물환시장이다. 험난한 외환위기의 파도가 바로 코앞에 닥쳤음을 알려준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부터 환율은 역외시장이 좌지우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2일 국내시장 종가가 1276원이었을 때 그날밤 역외시장 환율은 1287원으로 치솟았고 이는 곧바로 3일 국내환율로 이어져 1293원까지 폭등을 불러왔다. 반대로 지난 3일 국내 종가가 1270원이었는데 그날밤 역외시장에서 1241원까지 환율이 급락했고 곧이어 4일 국내개장가는 1238원으로 곤두박질쳤다. 한마디로 국내시장에 이어 열리는 역외시장이 다음날 국내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 이게 바로 경제전문가들이 ‘해외 투기세력의 원화 공격’이라 부르는 현상이다. 그러면 최근 외환시장이 불안해지고 환율이 급등하는 원인을 모두 이런 외국인들의 투기놀음 탓으로 돌려야 할까. 그건 전혀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가 속으로 골병이 들었던 게 외국투기세력에 원화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듯 지금도 외국 투기세력이 아무 이유없이 무작정 원화를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 이유는 바로 현재 우리 경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미국경제의 어려움이나 일본경제의 침체, 국제유가의 동향 등 다양한 해외변수들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렇게 보면 환율, 즉 원화가치의 변화는 국내외 경제의 축소판이다. 원화가치의 변화는 국내외 경제의 축소판

사진/시중은행의 외환창구에 달러를 사려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환율이 급등락을 보이는 가운데 달러화를 세는 환전창구 직원.(이정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