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은 갈수록 배고프다
등록 : 2005-08-11 00:00 수정 :
전기·전자 제품의 수출이 늘수록 부품의 수입의존도 커져
고용과 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속 빈 강정’인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8월1일 통계청에 따르면, 노동자 근로소득 증가율이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 2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의 근로소득은 3.5% 증가에 그쳤다. 1999년 2분기(증가율 1.6%)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수출업체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있는데 왜 근로소득 증가율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고용과 소득 증가도 매우 낮은 편
IT 품목 수출이 고용과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댈러스 공항 안에 설치된 삼성전자 휴대전화 광고물. (사진/ 한겨레)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2538억달러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4.7%)의 거의 대부분(93.3%)은 수출이 기여한 것이다. 수출이 한국 경제의 유일한 성장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수출의 외화가득률((수출액-수입 부품소재 투입액)×100/수출액)은 2000년 59.9에서 2004년 54.5로 낮아졌다. 외화가득률이 낮다는 건 그만큼 수출의 국내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떨어지고, 거꾸로 수입 유발효과가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수출이 느는데도 근로소득 증가율이 떨어지는 현상의 한복판에는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이 자리 잡고 있다. IT 산업이 주력 수출품목으로 떠오르면서 한국 경제를 먹여살리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IT 제조업 수출의 고용효과와 국내 산업연관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휴대전화·컴퓨터·자동차·선박 등 5대 수출품목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44.2%를 차지했다. 이는 1998년(32.4%)에 비해 대폭 급증한 것으로,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부문은 액정표시장치(LCD)·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이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 김윤명 팀장은 “디스플레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하지만, IT 품목 수출을 많이 할수록 국내 산업과 고용에 미치는 효과가 떨어지는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카메라폰·DMB폰 등 차세대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IT 완제품이 첨단화될수록 여기에 쓰이는 핵심 부품소재의 수입이 늘면서 IT 제조업의 외화가득률이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IT 수출(63억7천만달러)을 보면 반도체(26억4천만달러), LCD(5억4천만달러), 휴대전화(19억1천만달러) 등이 이끌고 있다. 그러나 통계청의 ‘전국사업체기초통계조사’에 따르면, 전자부품·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종사자는 1996년 32만8천명, 2000년 34만4천명, 2001년 30만6천명, 2002년 32만명, 2003년 36만5천명으로 나타났다. IT 품목 수출 비중이 갈수록 급증하는데도 이 분야에서 고용은 거의 늘지 않고 정체돼 있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IT 품목(전기전자·영상·음향·통신) 수출의 취업유발인원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수출이 늘어도 고용이 증가하지 않는 것인데, IT 제조업이 국내 산업과의 연관고리가 약화되면서 IT 수출의 취업유발인원은 1990∼1995년 -8만1천명, 1995∼2000년 -11만7천명이나 감소했다. 반면 자동차는 수출의 취업유발효과가 1990∼95년에 1만7천명 감소에서 1995∼2000년 1만6천명 증가세로 반전됐다. 산업연구원 최영섭 연구위원은 “새롭게 나타나는 미래산업에 소요되는 부품소재의 해외 의존이 재발하고 있고, 이에 따라 휴대전화 등 새로운 산업이 나타날 때마다 부품소재의 해외의존도가 높아져 IT 수출의 일자리 창출력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IT 품목의 외화가득률은 자동차, 조선보다 훨씬 낫다. 수원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 삼성전자)
낮은 외화가득률, 돈 벌어 남준다
고용 흡수력뿐 아니라 소득 증가 측면에서도 IT 제조업은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노동부의 ‘매월노동통계조사’를 보면, 전체 제조업에서 1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월평균 임금은 2002년 1월 167만원에서 2005년 4월 232만원으로 65만원 늘었다. 반면 전자부품·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업종은 2002년 1월 182만원에서 2005년 4월 229만원으로 47만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에 자동차 및 트레일러 업종의 월평균 임금은 180만원에서 299만원으로 119만원이나 크게 증가했다.
외화가득률을 보자. 외화가득률은 수출이 이뤄질 경우 외국에서 필요한 부품소재를 사느라 지급한 돈을 빼고 실제로 얼마만큼 외화를 벌어들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 반도체의 외화가득률은 49.7%, 휴대전화 등 통신·방송기기는 51.1%로 나타났다. 두 품목이 포함된 전기·전자 업종은 54.1%로 전체 수출평균 외화가득률(63.3%)에 크게 못 미친다. 전기·전자 업종의 외화가득률은 1995년(65.3%)에 비해 11.2%포인트나 대폭 떨어졌다. 100달러어치의 IT 제품을 수출했을 때 우리가 순수하게 손에 쥐어 경제 성장에 기여한 몫이 1995년에 65달러였으나 2000년에는 54달러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나머지 46달러는 수입을 통해 해외로 유출됐음을 뜻한다. 반면 자동차·조선 등 수송기계의 외화가득률은 70%가 넘는다.
2004년에는 IT 수출의 외화가득률이 더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전기·전자 업종의 2004년 수출액은 932억달러인데 부가가치 유발액은 372억달러로 외화가득률이 40.0으로 나타났다. 2003년의 전기·전자 업종 외화가득률(43.3)보다 더 낮아졌다. 수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입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인데, 이는 결국 한국 경제가 외줄타기식 수출액 숫자놀음에 매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기·전자 업종의 수출 100만달러당 취업유발인원도 2004년 16.7명으로 2003년(19.0명)보다 더 떨어졌다.
IT 품목 수출의 부가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건 우리나라 IT 제조업이 일본 등 해외에서 핵심 부품소재를 수입해서 가공 조립해 수출하는 패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휴대전화 등 ‘수출효자 품목’을 앞세운 사상 최대 수출실적 뒤편에는 부품소재 수입 급증이 숨어 있다. 핵심 부품 국산화율이 낮고 수입의존도가 심화되면서 IT 업종의 수입유발계수(제품 1개를 생산하는 데 들어간 수입 중간재 비율)는 2000년에 0.47~0.55로 일본(0.13)의 4배에 이르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전기·전자 업종 수입유발효과는 2004년에 60.0으로 2003년(56.7)보다 더 심화됐다. 결국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국내 생산과 고용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적을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의 경우 CDMA칩이나 이미지 센서 등 핵심 부품은 수입의존도가 50%를 넘고, 휴대전화·LCD·반도체 등 IT 제품의 국산화율은 40∼70%대로 자동차(95%)와 선박(80%)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휴대전화 등 고부가가치 첨단제품에 쓰이는 비메모리 반도체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IT 산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수입유발효과가 커서 심각한 부가가치 유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LCD·휴대전화 부품 등 전자기기 부분품의 수입중간재 비중은 1990년 37.1%에서 2000년 54.8%로 대폭 증가했고, 영상·음향·통신기기 수입중간재 비중도 같은 기간에 32.3%에서 48.1%로 크게 증가했다
국내 IT 제조업 협력업체들의 마진율은 낮은 편이다. 2005년 2월 '삼성전자 협력업체의 날' 행사. (사진/ 연합)
갈수록 수입 부품에 의존하는 휴대전화
특히 휴대전화의 경우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카메라폰으로 점차 진화하면서 핵심 부품의 해외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핵심 부품인 모뎀 칩·이미지 센서·벨소리 칩은 퀄컴, 야마하, 소니 등에서 거의 전량 수입하고 있고, 플래시 메모리· 배터리 등 나머지 부품들도 30∼4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박래정 연구위원은 “휴대전화에 디지털 카메라, MP3 플레이어 등 멀티미디어 기능이 대거 확충되면서 수입 의존 추세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반도체·휴대전화를 포함한 전기전자 수출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매우 낮고, 취업유발 효과도 자동차나 선박보다 하락 속도가 훨씬 크다. 우리나라 전기·전자 산업의 고용 및 부가가치 창출효과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매월 신기록을 깨면서 외형적으로 눈부신 실적을 기록하는 IT 수출이 고용 증대와 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않고, “수출해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속 빈 강정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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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협력업체들을 쥐어짜라?
수입부품 늘면서 삼성전자 협력업체 줄고 단가 인하 압력으로 마진도 낮아
국내 IT 간판기업인 삼성전자를 보자. 삼성전자의 2004년 영업이익은 12조원, 당기순이익은 10조786억원이다. 지난해 총매출액 57조5천억원 중 국내 매출액은 10조원, 수출액은 47조5천억원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낸 법인세는 2조3377억원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정보통신(주로 휴대폰) 사업부문의 매출액은 18조9359억원인데, 이 중에서 원재료 매입액은 11조1667억원이다. 퀄컴에서 CDMA 칩을 사는 데 4714억원, 샤프·인텔 등에서 단말기 구동에 쓰이는 반도체를 구입하는데 1조2397억원을 썼다. LCD 사업부문은 매출액 8조6887억원 중 원재료 매입액이 5조6366억원으로, 이 가운데 패널 제작에 쓰이는 원재료와 구동 회로에 쓰이는 원재료 1조6355억원어치를 일본 니토, 마쓰시타 기업 등에서 구매했다. 전자부품연구원 신찬훈 센터장은 “삼성전자처럼 휴대전화에서 CCD 이미지센서 등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고가 부품을 쓰는 수출업체일수록 부품의 수입의존도가 더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협력업체는 약 3천여개인데, 국내뿐 아니라 해외 부품업체들도 협력업체에 포함된다. 지난해 삼성전자 협력업체 중 520여개 업체가 외국 업체인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전자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로 분류되는 ‘협성회’(삼성전자 핵심 협력업체 모임) 업체는 한때 300개에 육박했으나 갈수록 줄어들어 지금은 167개로 줄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소싱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지난 2월 ‘2005 삼성전자 협력업체의 날’에 “삼성전자가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수레바퀴의 한 축을 맡고 있는 협력업체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며 “디지털 시대의 개척자로서 협력사와 함께 성장해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매출 비중이 높은 업체일수록 마진율은 낮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해 한국신용평가 이태훈 평가팀장은 “삼성전자는 사업부문별로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고, 납품업체를 비용절감 대상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매출처이기는 하지만 대신 마진은 낮은 편이다”고 말했다. 신찬훈 센터장은 “수익을 IT 대기업과 부품업체들이 서로 공유하면 좋을 텐데, IT 대기업들은 ‘우리가 안정적으로 너희 부품을 사주고 있지 않느냐. 대신 마진은 이 정도 이상 인정해줄 수 없다’면서 단가 인하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04년에 배당 및 중간 배당으로 주주들한테 1조5638억원을 지급하고, 주가 안정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에 3조7919억원을 썼다. 벌어들인 순이익의 50%를 주주들한테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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