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에서 월급쟁이로 변신한 심상돈 스타키코리아 사장
군대에서 영어를 배우고 훗날 벌일 보청기 사업의 터전을 닦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학교 다닐 때부터 그는 자꾸 사업하는 데로 관심이 끌렸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곧바로 사회생활에 뛰어들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입에 올렸다. 엘리트 직장인 한국은행의 과장이었던 아버지는 질겁을 하며 극구 말렸다. ‘그래도 대학 진학은 꼭 해야 한다’며…. 그러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가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다. 그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라도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동생 셋을 둔 장남으로서 집안을 돌봐야 했던 것이다. 고교 졸업 뒤 들어간 첫 직장은 ‘스메드상사’라는 의료장비 수입 업체였다. 친척 소개를 통해 맺은 의료업 인연은 훗날 사업으로까지 이어지고, 미국계 보청기 회사 스타키코리아의 사장으로 오르게 되는 실마리였다. 옛일을 돌이키는 심상돈(48) 사장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배어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업을 꿈꾸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업에 관심을 뒀다는데… 좀 낯설게(솔직히 말하면 좀 징그럽게?) 느껴집니다.
“아버님 직장생활 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직장이고, 안정된 생활이긴 한데 활동적이지 않아서요. 저로선 또 공부해서는 성공을 못하겠더라고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미를 살려서 일찌감치 취직하고 사업을 벌여보자고 마음먹었던 겁니다.”
군대라면 이를 갈며 적개심을 드러낼 이들이 많을 텐데, 심 사장에게 군 입대는 결과적으로(!)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다. 훈련소 시절을 거친 뒤 카투사(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 군인)로 차출되면서 보청기 사업에 눈을 떴다고 한다. 영어 구사 능력을 키운 시절이기도 했다.
“우연찮게 카투사로 가게 됐는데, 병원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동두천에 있던 미 2사단 소속 부대였습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의료 장비를 관리하는 일을 주로 했고, 간단한 치료도 직접 했죠. 일종의 위생병 노릇도 한 셈입니다.” 이 대목에 이르자 군대 시절 누구나 귀따갑게 들었음직한 말이 생각나 속으로 웃었다. ‘하여간 군대에선 줄을 잘 서야 한다니까!’
당시 그가 근무하던 부대 병원에선 정기적으로 군인들의 청력 검사를 했다. 사격 훈련을 많이 하다 보니 자칫 귀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으리라. “부대 병원에선 인근 고아원, 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보청기를 처음 봤고, 잘하면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군대에서 영어를 배우고 훗날 벌일 사업의 터전을 닦은 셈이다.
그래도 역시 군대는 군대일 뿐, 호시절일 수만은 없었다. 더욱이 그가 복무한 기간은 1979~81년.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펼쳐진 한복판이었다. 한국군에 배속된 이들에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1979년 10·26 사태, 12·12 쿠데타 때는 비상 발동으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은 금방 전해들었는데, 12·12 사태는 한참 뒤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습니다. 전쟁 난 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때 이상했던 건 전방 부대 탱크가 남쪽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어찌됐건 비상이 걸리니까, 우리 부대에서도 군복을 입고 자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곧 미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돼 있던 미군 애들은 울고불고 한 일도 있었습니다, 하하.”
군 제대 뒤 다시 스메드상사에 잠시 몸담았던 그는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든다. 서울 청량리 근방에서 사업하는 친구의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려 의료기 수입을 하는 1인 회사 ‘동산실업’을 차린 것. 이때까지도 보청기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군 입대 전 근무한 회사에서 쌓은 경험을 살리는 정도였다. 운이 좋았는지 난생처음 벌인 사업은 뜻밖에 잘 풀려나갔다. 타고난 근면함에 군 시절 앞뒤로 비슷한 업종에서 일해본 덕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던 때문이다.
하이테크 산업, 보청기에 집중하다
그럭저럭 잘돼가던 사업은 엉뚱한 데서 암초를 만났다. 사무실 공간을 배려해준 친구가 사업 실패로 이민길에 오르는 바람에 그는 덩달아 사업 터전을 잃게 됐다. 사업 초기여서 그는 번듯한 사무실의 임대료를 부담할 여유가 없었다. 체념할 새도 없이 옛 사무실의 전화기와 전화번호만 인수한 채 쫓기듯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물탱크를 개조한 사무 공간은 2평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옥탑방에서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있었나요?
“두세달 만에 원래 사무실로 옮겼고, 1년 뒤엔 20평짜리 사무실을 새로 얻었습니다.” 그게 사업을 시작한 직후인 1984~85년이었고, 보청기 회사 스타키와 인연을 맺은 게 그즈음이었다.
사업 초기엔 독일 지멘스의 의료기를 주로 수입하다가 거래 업체와 품목을 넓히면서 스타키 보청기를 수입 판매하게 된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지멘스, 스타키, 필립스 등 회사와 거래했는데, 1980년대 후반까지 해마다 10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탄력을 받은 회사는 1991년부터 보청기를 직접 제조하기에 이른다.
스타키와 거래관계를 맺은 1985년, 그는 미네소타주에 있는 스타키 공장을 견학하고선 보청기 사업쪽으로 집중할 마음을 굳혔다. 하이테크 산업으로 사업성이 높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1983년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스타키 보청기를 낀다고 해서 화제가 된데다 귓속형 보청기 개발로 이래저래 스타키가 화제를 몰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국내 대리점을 통해 한국에서 보청기를 판매하던 스타키는 1996년에 한국 법인을 설립한다. 이때 영입된 초대 사장이 그였다. 스타키 대리점(동산실업)을 맡을 때 미국 본사와 연락하기 위해 때때로 새벽 1~2시까지 일하는 열정이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동산실업 오너(주인)에서 스타키코리아의 전문경영인으로 말을 갈아탄 그해 심 사장은 만 40살을 한해 앞두고 있었다.
외국계 법인의 사장 자리도 좋지만, 그래도 오너에서 월급쟁이로 바뀐 것 아닌가요?
“좀 여유를 갖고 싶었습니다. 오너로서 회사를 꾸려가다 보면 토요일, 일요일에도 쉴 수가 없습니다. 때마침 스타키에서 제의를 해와 받아들였던 겁니다. 동산실업의 제조·도매 부문은 스타키로 합쳤고, 소매 부문은 동생에게 넘겨져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여유라면 오너에게 더 있는 것 아닌가요?
“전문 경영인도 힘들긴 하죠. 그래도 여긴 네트워크가 갖춰져 있는데다 맨파워(인력 구성)가 좋거든요. 다만, 전문경영인은 오너와 달리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기계발을 통해 리더십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청각재단’ 설립을 꿈꾸며
심 사장의 스타키코리아는 국내 진출 뒤 금강보청기, 소리샘보청기, 에디슨보청기, 에바다보청기 등을 인수해 현재 국내 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1999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인공 와우(달팽이관) 전문그룹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코클리어와 독점 계약을 맺어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스타키코리아는 한해 150억원에 이르는 매출의 1~1.5%를 떼어 사회에 공헌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청각재단’ 설립을 꿈꾸는 심 사장은 훗날 받을 퇴직금과 지금까지 쌓아온 재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군대에서 영어를 배우고 훗날 벌일 보청기 사업의 터전을 닦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무슨 바람이 들었던지 학교 다닐 때부터 그는 자꾸 사업하는 데로 관심이 끌렸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곧바로 사회생활에 뛰어들겠다는 말을 심심찮게 입에 올렸다. 엘리트 직장인 한국은행의 과장이었던 아버지는 질겁을 하며 극구 말렸다. ‘그래도 대학 진학은 꼭 해야 한다’며…. 그러던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가 고교 3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다. 그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라도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동생 셋을 둔 장남으로서 집안을 돌봐야 했던 것이다. 고교 졸업 뒤 들어간 첫 직장은 ‘스메드상사’라는 의료장비 수입 업체였다. 친척 소개를 통해 맺은 의료업 인연은 훗날 사업으로까지 이어지고, 미국계 보청기 회사 스타키코리아의 사장으로 오르게 되는 실마리였다. 옛일을 돌이키는 심상돈(48) 사장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배어났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업을 꿈꾸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업에 관심을 뒀다는데… 좀 낯설게(솔직히 말하면 좀 징그럽게?) 느껴집니다.

심상돈 사장은 "전문경영인의 리더십은 자기 계발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사진/ 류우종 기자)

스타키코리아는 매출의 1~1.5%를 사회 공헌으로 돌리고 있다. 청력 테스트 장면. (사진/ 류우종 기자)

스타키코리아가 판매하는 보청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