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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BMW의 철학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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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7-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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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시민적 책임 강조하는 김효준 BMW그룹코리아 사장
연평균 매출 신장률 70%를 달성한 그만의 비법은 무엇일까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연재 횟수가 거듭되다 보니, 전체적인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감에 빠지곤 한다. 예컨대 미국계 기업이 몇번 나왔으니 이번엔 유럽계를 물색해야 할 것 같다는….

출신 대학의 사전 정보 없이 인터뷰 대상을 골랐음에도 국내외 명문대학 출신들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 일도 고민스런 대목이다. 이 점은 독자편집위원회의 지적을 받은 바도 있다. ‘재미있게 읽을 때도 있지만, 서민들과 너무 먼 사람들의 얘기여서 <한겨레21>의 기사로는 어색하게 느껴진다.’


‘장남 기질’로 부하 직원들 챙기다

외국계 기업들의 사정에 밝은 지인이 이런 고민을 전해듣고선 1순위로 김효준(48) BMW그룹코리아 사장을 추천했다. 김 사장 앞에 따라붙는 ‘상고 출신’이란 말을 떠올렸음직하다. 그런데 이번엔 기업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 컸다. BMW라면 벤츠와 함께 세계 최고급 명차의 대명사격 아닌가. 고가 외제차에서 느끼는 위화감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곤 해도 서민들과는 너무 먼 얘기를 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장맛비가 추적거리던 7월11일 서울 논현동 BMW그룹코리아 사장실에서 만난 김 사장의 풍모 또한 서민형은 아니었다. BMW와 인연을 맺은 사정이나, 상고 졸업으로 학업을 일단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집안 형편을 들을 때까지 걱정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사진/ 박승화 기자)

그가 BMW에 입사한 것은 꼭 10년 전인 1995년. 직전까지 미국계 제약회사인 한국신텍스 부사장으로 일했는데, 이 회사가 스위스계 한국로슈에 합병돼 문을 닫는 사태에 맞닥뜨렸다. 이렇게 되자 가장 골치 아픈 사안이 불거졌다. 오랫동안 동고동락해온 부하 직원들의 재취업 문제였다. 40~50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이력서를 들고 헤드헌터들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 한 헤드헌터로부터 BMW코리아에서 최고재무전문가(CFO) 채용 면접에 응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처음엔 ‘들러리’였습니다. BMW쪽에서 3명의 후보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미 2명의 유력한 후보가 올라 있었거든요. 저는 후보진의 숫자를 채워주는 역할이었습니다. 들러리인 줄 알았지만, 부하 직원들의 재취업 부탁 대신 ‘바터’(교환) 형식으로 헤드헌터의 요청을 받아들였던 겁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BMW는 그를 선택했다.

“훗날 고등학교 선배한테서 뒷얘기를 들었는데, 한국신텍스 창립 멤버로 쌓은 현장의 실무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더군요. 현지 법인 설립을 앞둔 BMW로선 셋업(기반 구축)할 사람이 필요하던 때였습니다.” 여기에 데리고 있던 직원들의 재취업을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대부분 일자리를 찾도록 도운 그의 ‘의리’도 좋은 점수를 받은 요인이었다고 한다. 사람 중심으로 움직이는 독일계 기업 문화에선 기본적인 신의와 책임감을 보여준 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동료 직원들의 취직을 부탁하러 다니다가 뜻밖에 자신의 기회까지 잡은 셈이다.

회사 폐업으로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할 처지에서 다른 이들의 취업 부탁에 더 열성적이었던 이유와 사연을 자세히 따져묻지는 않았다. 임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책임감의 발휘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장남 기질’이 드러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좀 엉뚱한 느낌도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 넷의 뒷바라지에 노심초사해야 했던 그의 팍팍한 이력을 듣고 나서였다.

인문계로 가라는 주위의 권유를 뿌리치고 덕수상고에 입학한 그는 졸업도 하기 전에 대우증권의 전신인 삼보증권에 입사한다. 국내에 증권사들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이었다. 증권맨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가 외국계 회사로 방향을 튼 것은 고교 은사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 충고 따라 외국 회사로

“군인 시절에 휴가 나왔다가 고교 때 담임 선생님을 뵈었는데 외국 회사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저 또한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쌓고 더 배우려면 외국계 회사로 가는 게 적합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력의 부족보다 무지에 대한 두려움, 배울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데가 한국신텍스였고, 그 뒤 지금까지 20년 동안 줄곧 외국계 회사에 몸담고 있다. 한국신텍스는 훗날 문을 닫게 되지만, 그에겐 선진 회사의 경영기법을 익힌 좋은 터전이었다.김 사장은 1995년 BMW코리아 설립 때 상무로 합류한 뒤 탄탄대로를 내달렸다. 1998년 부사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2년 뒤에는 사장 자리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2003년엔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BMW 본사 임원으로 선임되는 영예까지 안았다.

고속 승진을 거듭한 셈이군요.

“운이 좋았던 거죠, 뭐.”

다른 외국계 회사 CEO들한테서도 비슷한 얘기를 참 많이 들었는데, 어떤 뜻인가요? 운이 좋았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닙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절감합니다. 국내 회사에 있는 분들 중에도 세계적인 회사의 리더(지도자)로서 손색없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회적인 시스템·관습에 얽매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고. 그런데도 제가 이런 자리에 있으니… 운이 좋다고 할 수밖에요.”

BMW는 최고급 브랜드에 집중하는 경영전략을 편다. BMW 신차 발표회.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그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오른 뒤 BMW코리아는 연평균 매출 신장률이 70%에 이른다. 지난해 한국에서 팔린 BMW는 모두 5509대로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단연 1위(23.6%)다. BMW가 미국계, 일본계보다 고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시장점유율은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1995년 714대였던 것에 견줄 때 괄목할 신장세다. 이 또한 운이었을까.

“거창한 경영이론 같은 건 없고, 시장에 따라 움직이고 고객을 향해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수시로 고객들을 만나 불편한 점을 점검하고 새로운 욕구를 사업적 아이디어로 바꾸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제 그런 사례가 있나요?

“고객의 아이디어를 사업적 아이템으로 바꾼 대표적인 예가 ‘정비 서비스의 365일 24시간 운영’입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한 서비스로 고객들이 밤 10시나 11시에 차를 맡기고 다음날 아침에 곧바로 찾아갈 수 있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입니다.

1년 내내 직원 교육 프로그램 상설

그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직원 양성이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BMW의 철학과 가치를 전달하는 데 손색이 없을 만한 직원을 양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한 예로, 매년 2~3명씩 독일로 2~3년 기간으로 파견 교육을 합니다. 또 1년 내내 영업사원과 기술직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상설돼 있습니다.”

김 사장은 BMW그룹코리아의 비전으로 ‘기업 시민’(Corporation Citizenship)을 든다. 기업은 새 제품·서비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데 머무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사회에 제공하고, 사회와 교감함으로써 시민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모토다. 추상적으로 들린다는 지적에 김 사장은 몇 가지 예를 들었다. 학술 연구 지원을 위한 연세대 ‘BMW 유럽경영센터’ 설립, 자동차 산업 발전을 위한 연구용 자동차 기증, 1만권 과학도서 보내기, BMW 학술상 제정….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받으려면 사회에 공헌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최고급 승용차의 외길간다

다양한 제품보다 고급차 시장에 주력하는 BMW

바이에른 자동차 공장(Bayerische Motoren Werke AG)이란 뜻을 지닌 BMW는 1916년 독일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 회사로 출발해 지금은 최고급 승용차와 오토바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최고급 브랜드에 집중함에 따라 연간 자동차 생산 규모는 100만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BMW와 함께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두 축을 이루는 다임러크라이슬러(벤츠+다임러+크라이슬러)가 메르세데스벤츠에서 버스, 트럭, 소형 승용차, 디젤 승용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BMW는 1994년 로버 그룹을 인수해 다양한 제품을 보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실패를 자인하고 2000년 4월 그 분야를 매각했다. BMW의 차종은 3, 5, 7 시리즈가 있는데, 숫자가 커질수록 차체가 크고 고가품이다.

BMW는 1995년 한국에 현지 법인을 설립함으로써 국내 수입차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외국 자동차 회사들 가운데 가장 빠른 진입이었다. BMW는 1981년 일본 현지 법인을 만들 때도 다른 자동차 업체들을 앞지르는 적극성을 보였다. 한국에 법인을 설립할 당시 BMW 국내 판매량은 한해 700대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5천대를 웃돈다. BMW코리아는 지난해 ‘롤스로이스’ 브랜드에 이어 올초부터는 소형차인 ‘미니’까지 들여오게 됨에 따라 법인 형태를 그룹 체제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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