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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순풍에 돛단 SK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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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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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빠른 위기 대처로 재계 판도변화 주도… 탄탄대로 경영에 드리운 먹구름은 없나

사진/외환위기 이후 잘나가는 SK그룹. 차세대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결과가 발표되자 SK텔레콤 임직원들이 환호하고 있다.(연합)
‘S·S·L·L.’

대우가 몰락하고 현대그룹이 건설의 유동성 위기와 자동차계열의 분리로 재계에선 ‘신4대 그룹’이란 말이 등장했다. 재계 선두에 서 있던 5대 그룹(현대, 삼성, 대우, LG, SK) 가운데 대우와 현대가 탈락하고 롯데의 부각으로 선두그룹의 판도가 S(삼성), S(SK), L(LG), L(롯데)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신4대 그룹 중에서도 SK의 약진이 특히 두드러진다. 삼성그룹의 경우 2000년에 사상 최대 흑자가 예상됨에도 삼성자동차 부채처리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의 변칙증여 의혹 등으로 그룹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 비교적 우량한 이미지를 지켜왔던 LG그룹도 2000년 들어 자금위기설에 휘말릴 정도로 어려움을 겪은데다 차세대이동통신(IMT-2000)과 위성방송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의 쓴잔을 마셔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현금장사 비중이 높고 재무구조가 우량한 롯데는 경제위기 와중에 크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긴 했지만 선두그룹에 비해 아직 기업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회장 형제간 치열한 재산다툼을 벌였다는 어두운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다.


차세대이통 사업자로 새로운 도약 준비

이에 비해 SK는 다른 그룹들이 보기엔 ‘얄미울 정도로’ 모든 면에서 순탄한 길을 걷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으며 다른 그룹들의 몰락에 따른 상대적 부각에다 차세대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됨에 따라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작고한 최종건·종현 선대회장의 2세들간 재산다툼이 있을 법했는데도 외부로 드러난 잡음이 전혀 없었다. 제2의 경제위기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어려운 지금 상황에서 ‘발뻗고 잘 수 있는’ 유일한 그룹이란 말을 듣고 있다.

물론 SK도 외환위기 이후 스타일을 구긴 면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SK증권이 해외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입은 것과 최근 불거진 (주)SKM의 고의부도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SK증권은 지난 1997년 역외펀드를 설립, JP모건의 파생금융상품(TRS)에 약 8천만달러를 투자했다가 타이 바트화가 폭락하는 와중에 무려 2억4800만달러의 손실을 입고 말았다. 이후 SK증권은 JP모건과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여야했으며 그룹 전체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비디오테이프 제조회사인 (주)SKM은 지난해 ‘11·3 2차 기업퇴출’ 때 회생가능 기업으로 분류됐으나 갑자기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SKM은 이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고의로 부도를 내고 채권단에 손실을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것이다. 급기야 금감원은 대주주이자 연대보증인인 최종욱(고 최종현 SK회장의 막내동생)씨의 배임여부를 조사해 혐의가 포착될 경우 검찰에 수사의뢰토록 채권단에 요구하는 지경으로 발전했다.

이런 물의에도 불구하고, SK증권 투자손실 문제는 JP모건과 벌여온 소송이 99년 9월 화해계약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SKM 고의부도 사안은 아직은 의혹단계이며 또 파급 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점에서 그룹 전체의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SK의 부각은 상장계열사의 시가총액 비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증시 침체기에서 SK계열사 주가도 크게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그룹에 비해선 하락폭이 훨씬 작았다. 10대 그룹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2000년 한해 동안 158조7740억원에서 76조7271억원으로 무려 51.7%나 줄어 반토막났지만 SK계열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37조8760억원에서 25조9686억원으로 31.4%가량 줄어드는 데 그쳐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6%에서 13.8%로 늘어났다. ‘잘 나가는’ 삼성의 상장사 시가총액이 71조8286억원에서 37조38709억원으로 47.9%나 줄어든 것과도 대비된다.

1인당 생산성 24억원으로 월등히 1위

SK그룹의 1인당 생산성은 단연 국내 1위로 손꼽힌다. 2000년 매출 규모는 전년 50조원보다 10% 늘어난 55조원 규모에 이른다. 직원(2만3천명) 1인당 약 24억원의 매출을 올린 셈인데, 이는 ‘104조원(추정치)-12만명’인 삼성그룹(1인당 약 8억7천만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SK의 두축인 정보통신(SK텔레콤)과 에너지·화학(SK(주)) 모두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고 있어 앞길도 비교적 순탄한 편이다. 여기에 IMT-2000 사업자 선정이 새로운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SK그룹이 거의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이처럼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배경은 뭘까. 또 이런 순탄한 길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SK그룹 이노종 전무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일찌감치 구조조정에 착수한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무의 설명대로, SK의 경우 외환위기 훨씬 이전인 95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을 벌였다. SK케미칼이 명예퇴직금을 듬뿍 주고 인원을 확 줄인 게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SK케미칼은 당시 60개월치라는 파격적인 명예퇴직금을 얹어주며 직원 수를 30%가량 줄여 덩치를 가볍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명퇴라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으며 대기업이 대량해고를 감행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SK케미칼외 다른 계열사들도 잇따라 명퇴를 단행하는 감량작업을 벌였으며 그룹 전체적으로는 10여개 계열사를 줄이는 구조조정작업을 벌였다. 막상 외환위기를 맞아서는 별로 할 게 없을 정도였다.

제일은행(SK 주채권은행) 기업금융3팀의 장도현 심사역은 “그룹의 힘을 주력분야에 집중하고 이곳저곳으로 벌이지 않은 덕분에 경제위기 때 상대적으로 이익을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 심사역은 “앞으로 경기가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대세이나 SK의 경우 현금 흐름이라든가, 회사채 만기 구조 등 모든 면에서 문제될 부분이 지금으로선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SK 앞에 놓인 장애물은 전혀 없는 것일까.

SK그룹과 관련해 가장 불가사의한 점은 2세들간 재산 다툼이 없었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SK그룹이야말로 분쟁의 소지가 오히려 많았을 법한데도 말이다. SK그룹의 오너 경영진은 고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태원(SK(주)회장)·재원(SK텔레콤 부사장)씨와 고 최종건 회장(최종현 회장 형)의 아들인 신원(SKC 회장)·창원(SK글로벌 부사장)씨다. 친형제간에도 재산을 둘러싸고 ‘진흙탕 개싸움’을 벌이는 게 재벌의 현실인데 하물며 사촌간끼리 잡음이 없다는 게 이상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98년 8월 최종현 회장 사후 우려했던 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속사정은 알 도리가 없으나 적어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경영권 다툼도 겉으론 드러나지 않아

사진/SK그룹은 차세대이동통신과 사업자에 선정되어 신규사업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사진은 사업자 선정 발표 모습.(이정용 기자)
그룹 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종현 회장 작고 뒤 2세들이 협의해 태원 회장에게 힘(지분)을 몰아주기로 교통정리를 함으로써 분쟁의 소지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아버지 세대에서 물려받은 지분율이 그다지 높지 않은 마당에 뿔뿔이 흩어지면 오너 일가 전체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했다는 풀이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재산을 둔 2세들간 다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렇지만 이와 전혀 다른 견해도 있으며 이게 바로 SK그룹 및 최태원 회장의 앞날에 최대 장애물로 떠오를 개연성도 있다.

SK계열사의 임원으로 일하다 얼마 전 독립한 한 관계자는 “사촌관계인 오너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은 잠재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종현 회장 사후 잡음이 없었던 것은 외부적인 면이고 내부적으로는 있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는 그럴듯한 근거도 제시되고 있다. 재산 욕심은 인지상정이란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SK 역사 및 지배체제의 독특한 구조에서 갈등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그룹의 출발은 1953년, 최종건 회장이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직기 15대로 직물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였다. 최종현 회장은 형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아 이동통신사업 진출, 정유회사 인수 등을 통해 SK그룹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고 지금의 터전을 닦았다. 말하자면 형 집안은 사업을 시작한 공로가 있고, 동생 집안은 물려받은 사업을 키운 공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양쪽 집안의 힘이 합쳐진 게 오늘의 SK인 셈인데 지금은 동생 집안인 최태원 회장이 그룹 경영을 사실상 주도하는 형국이며 이것이 갈등의 싹을 키우는 토양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현 회장이 세상을 뜬 직후 일단 최종건 회장의 맏아들인 최윤원(올해 작고)씨를 그룹 회장으로 옹립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던 사실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같은 갈등요인에도 불구하고 최종현 회장 사후 재산다툼이 일지 않았던 데는 최태원 회장의 경영능력이 상대적으로 부각돼 있던 반면, 최종건 회장 아들인 윤원·신원씨는 그룹경영권에 대해 그다지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배경이 깔려 있다. 그렇지만 최종건 회장의 3남인 창원씨는 형들과 달리 최태원 회장 못지 않은 경영수완 및 의욕을 갖고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분석이다.

최태원 회장으로선 이런 분쟁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경영능력을 검증받아야 할 필요성이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속된 말로 ‘아버지 잘 만난 덕’에 회장된 게 아니라 그만큼 경영능력이 있다는 걸 인정받으면 자연스럽게 갈등의 소지도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그룹 임직원들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명실상부한 그룹 회장으로 등극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대목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이는 마치 육사 출신 장교가 특무상사를 제압하기 위해 확실한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통과의례와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최 회장이 최근 들어 인터넷사업을 비롯한 신규사업에 대규모 투자비를 책정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최종현 회장의 음덕은 언제까지 통할까

SK그룹의 비약은 어떤 면에선 최종현 선대회장의 선견지명도 있었지만 사운도 많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형 위주의 확대지향을 버리고 조심스런 발걸음을 한 게 외환위기라는 시대상황과 맞아떨어진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시대상황에 따라 SK의 위상은 얼마든지 변할 수도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운’적인 요소를 차치하고라도 지금까지 SK의 상승세는 상당부분 최종현 회장의 음덕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현 회장의 선견지명(또는 사운)에 따른 ‘약발’이 떨어진 뒤에도 상승세를 이어가야하는 무거운 과제가 2세 경영진들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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