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가 집값 잡으러 온다
등록 : 2005-07-12 00:00 수정 :
참여 정부 부동산 정책에 영향 끼치는 ‘헨리조지연구회’ 사람들
100년 전 미국의 사상가에게 토지 불로소득 환수의 지혜를 빌려온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정부가 오는 8월 말까지 부동산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시점에서 눈길을 끄는 곳 중의 하나가 ‘헨리조지연구회’다. 대구 지역 경제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꾸려진 이 연구회는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과 함께 부동산 정책 관련 각종 논평·주장을 통해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는 ‘토지정의시민연대’의 핵심 축으로 꼽힌다.
이정우 위원장도 회원으로 참여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실인 서울 종로구 신교동 헨리조지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박창수 정책위원(맨 왼쪽) 등 토지정의 연대 실무자들. (사진/ 류우종 기자)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이 헨리조지연구회 회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는 점은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 위원장은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청사진을 그린 주역으로 꼽힐 뿐 아니라 지난해까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괄해왔다. 뿐만 아니라 지난 2002년 12월 대선 정국 와중에 헨리조지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헨리 조지의 생애, 토지 사상 등을 집대성한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라는 책을 냈다. 이 위원장이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서 지금도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감안할 때, 헨리 조지 사상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은연중 영향을 끼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헨리조지연구회는 대구 지역의 기독교인 경제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경제학연구회’(기경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경회의 출범 시점인 1993년 4월은 88올림픽을 앞뒤로 한 토지투기 광풍의 상처가 시퍼렇게 남아 있던 때였다. 당시엔 따로 모임 이름을 정한 건 아니었고, 다달이 모여서 토론을 벌이고 논문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기경회라고 부르게 됐다.
초창기 모임을 주도한 이는 대구가톨릭대의 조상국·전강수 교수였다. 전 교수는 현재 연구회 활동은 물론,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두 교수가 주도한 이 모임에 한동근(영남대)·이재율(계명대)·남병탁(경일대)·한도형(경북대) 교수 등이 잇따라 합류하면서 연구회의 참석 범위가 대구·경북 전역으로 넓어졌다. 조상국 교수의 제안에 따라 연구회에 참여했다는 한동근 교수는 “1994년 2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당시 경제학자로서 제 신앙과 학문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던 참이라 기독교 경제학이란 주제에 끌렸다”고 회고했다. 연구회는 초창기 때 기독교적 시각에서 현대 경제 문제에 대한 처방을 제시한 도널드 헤이(Donald Hay)의
를 <현대경제학과 청지기 윤리>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기경회가 헨리 조지 사상을 연구활동의 중심으로 삼은 것은 고 대천덕(Archer Torrey) 성공회 신부의 권유 때문이었다. 미국인인 대 신부는 강원도 태백에서 기도 공동체인 ‘예수원’을 창설한 이로 가톨릭계에선 널리 알려져 있다. 토지 정의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던 대 신부는 기독교적 토지 정의의 현대적 표현이 바로 헨리 조지 사상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따라서 예수원을 찾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헨리 조지의 이름과 사상을 접하게 됐다. 전강수 교수 등 기경회 회원들은 대천덕 신부의 제안으로 헨리 조지 사상과 해방 신학을 대비시킨 책 <새로운 해방의 경제학>을 읽기 시작했고, 1994년부터 헨리 조지를 모임의 주제로 설정했다.
기독교를 매개로 결집한 경제학자들
이때부터 기독교와 무관한 학자들도 연구회에 가세하게 됐다. 토지정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윤상 경북대 교수가 모임에 참여한 게 이즈음이었다. 김 교수는 이 모임이 결성되기 훨씬 이전인 1989년 조지 헨리의 대표적 저서인 <진보와 빈곤> 번역본을 낼 정도로 헨리 조지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김윤상 교수의 합류 뒤에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당시 경북대 교수)이 모임에 들어왔고 조순제 대구대, 엄창옥 상주대 교수가 잇따라 참여했다. 엄 교수는 현재 모임의 간사를 맡고 있다. 최근 참여자로는 박상우(상주대), 이시철·최희경(경북대) 교수가 있다. 이런 과정에서 비기독교 학자들이 다수 참여하게 됐고, 모임 이름으로 기경회와 함께 헨리조지연구회를 같이 쓰게 됐다.
헨리 조지 사상을 테마로 삼은 단체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토모다. 성토모는 헨리조지연구회 출범 훨씬 이전인 1984년 김세열, 고왕인씨 등 평신도 연합으로 결성됐다. 애초 ‘한국헨리조지협회’로 시작했다가 1996년부터 지금의 이름을 쓰고 있는데, 영문 명칭은 아직도 ‘Henry George Association of Korea’를 쓰고 있을 정도로 헨리 조지 사상을 중심에 두고 있다.
헨리조지연구회 등 17개 단체가 토지정의연대를 꾸려 부동산 해법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진수 기자)
신앙인 모임인 성토모와 학자 중심의 헨리조지연구회는 대천덕 신부를 고리로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된다. 전강수 교수를 비롯한 헨리조지연구회 학자들이 성토모의 토지학교 강사로 나서는 등 교류가 꾸준히 이뤄진 것이다. 이는 올 2월 정식 출범한 토지정의연대의 터전이 됐다. 토지정의연대는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억제’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판교 개발은 ‘건물 분양, 토지 임대’로 풀어야 한다는 대안 제시로 부동산 이슈에서 만만치 않은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다. 판교에서 불거진 부동산 투기 바람 뒤 공급확대론보다 수요억제론에 무게가 실리고 공영개발 논의가 일게 된 데도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토지정의연대의 구성을 처음 제안한 이는 안창도 하남YMCA 사무총장이었다. 기독교적 색채를 없앤 연대기구를 꾸림으로써 참여 폭을 넓히고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화를 이끌어내자는 취지였다. 성토모는 안 총장의 제안을 받아들여 토지정의연대의 산파로 나서게 된다. 첫 제안자인 안창도 총장은 토지정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토지정의연대 실무진의 두 축인 박창수 정책위원, 남기업 사무국장은 줄곧 성토모에서 활동해온 이들로 헨리 조지 연구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땄다. 박창수 위원은 “토지정의연대는 성명서와 시위 등을 통해 토지 정의를 전파하고 그 실현을 촉구해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성경에 바탕을 둔 토지 정의를 전파하고 빈곤의 구조적 해결을 위한 성토모의 노력은 이와 별도로 계속된다”고 덧붙였다.
토지를 공영개발해 임대하라
헨리조지연구회 등 토지정의연대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애증이 엇갈린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불로소득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고 투기 억제 의지도 강한 편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불로소득의 환수보다는 부동산 가격 안정에만 신경을 써왔다는 점에서다. 또 보유세를 높여왔지만 투기를 막기엔 너무 미약했고, 취득·등록세를 비롯한 다른 세금을 감면하는 조처를 병행하지 못해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점도 지적된다.
헨리조지연구회를 비롯한 토지정의연대 안에서도 견해가 조금씩 다르지만, 부동산 문제의 진단과 해법의 큰 틀에선 대체로 합의를 이루고 있다. 지금의 부동산 문제의 원인은 정상적 원인보다는 투기적 원인에서 비롯됐으며, 이를 풀기 위해선 토지 불로소득의 완전 환수를 위한 장치를 갖춰야 한다는 게 뼈대다.
김윤상 교수는 “투기 국면에서는 정상적인 수준·속도 이상으로 가격이 올라 너나없이 ‘사자-안팔자’ 쏠림 현상이 생겨 공급으로 수요를 채워 가격 안정을 이루는 일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반대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면 너나없이 ‘팔자-안사자’의 쏠림 현상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부동산 불로소득, 특히 토지 불로소득의 완전 환수를 정책 목표로 삼아 투기적 가격 상승을 차단함으로써 과도한 부동산 파동을 막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토지정의연대는 그 구체적인 해법으로 단기적으로는 토지를 공영개발해 임대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정부 또는 공사가 택지를 조성해 임대하고 민간 건설업체가 건물을 지어 분양하면 무리 없이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쓰면 건설업체로서는 용지를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고, 건물까지 임대하는 방식에 견줘 집이 깨끗하게 관리되는 효과를 아울러 거둘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윤상 교수는 판교 문제 등 현안에서 동원해야 할 이런 단기 처방에서 나아가 근본적으로는 토지에 지대이자차액세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지 소유자의 수입(지대+매각지가)에서 비용(매입지가+매입지가에 대한 이자)을 뺀 지대이자 차액(토지 불로소득)을 100% 세금으로 거둬들이자는 것이다. 토지 불로소득을 제로(0)로 만들자는 제안으로, 모든 지대를 조세로 징수해 사회복지 지출에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한 헨리 조지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매입지가의 원리금을 보장(값이 떨어지면 보전)하므로 토지 소유자에게 불리하지 않아서 일시에 전면 실시하더라도 사회에 충격을 주지 않는 안전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미국 보유세 높이는 데 이바지한 사상
전강수 교수는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의 역사를 돌아보면, 토지 보유자가 누리는 혜택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도록 하는 간단한 상식이 끊임없이 좌절돼왔다”며 “이런 간단한 상식을 실행하려는 시도의 사상적 배경에 헨리 조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100년 전 미국 사상가의 구상이 오늘 우리의 땅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묘책이 될 순 없을지 몰라도 불로소득을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를 넓히는 ‘동력’이 될 수는 있을 듯싶다. 헨리 조지의 시도가 당대에 곧바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훗날까지 두고두고 영향을 끼치면서 현재 미국의 보유세가 우리보다 10배 이상 높아지는 데 이바지한 것처럼.
 |
 | |
신자유주의와의 정면대결토지의 공공재적 특성 강조하는 ‘조지스트’들의 주장은 무엇인가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 사상가인 헨리 조지(1839~97)는 사회가 발전하는데도 불구하고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토지사유제로 불로소득이 지주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런 인식 아래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기존의 세제를 모두 없애고 토지 사용의 대가인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징수하는 토지단일세(Land only tax)를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모두 세금으로 거둬들여 공공의 몫으로 삼으면 토지 이용의 효율성도 높아진다는 주장이었다.
조지의 사상은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며 세계 곳곳에서 그를 따르는 ‘조지스트’들을 낳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토지 소유자들의 오만함을 그리면서 조지스트임을 밝힌 바 있다. 중국의 쑨원은 토지 소유를 평균화해야 한다는 ‘평균지권론’(平均地權論)을 폈다. 저절로 발생하는 지가 상승분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재 대만 토지 세제의 근간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초에 등장한 토지공개념, ‘세제 강화를 통한 투기 이익의 국민 공유’를 주장하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도 넓은 의미에서 헨리 조지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토지의 공공재적 특성을 강조하는 조지스트의 시각은 국내 경제학계의 주류를 이루는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적 해법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을 비롯해 조지스트들은 토지이용의 사회적 형평성과 불로소득의 환수를 강조한다. 투기적 수요 억제를 위한 보유세 강화 정책이 대표적인 예다. 이에 반해 신자유주의자들은 토지 또한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여겨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공급 확대를 통한 수급 안정을 주장해왔다. 물론,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전반을 조지스트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보유세 강화 등에서 철저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던데다 최근 들어선 공급확대론에 주춤거리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