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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재를 맨땅에 헤딩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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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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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컨설턴트에서 경영자가 된 장윤석 마스타카드 인터내셔널 코리아 사장
‘진인사’ 뒤에 ‘대천명’한다는 독특한 철학으로 성공신화 만들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장윤석 사장을 만난 날은 마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5년8개월의 국외 도피 생활을 접고 귀국한 6월14일이었다. 인터뷰 장소인 마스타카드 인터내셔널 코리아 사무실(서울 태평로1가 파이낸스빌딩 11층)로 올라가는 동안 내내, 새벽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김 전 회장의 귀국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심경이 좀 복잡했다. ‘기업인으로 산다는 게 뭔지….’

머릿속이 좀 복잡했던 이유는 또 있었다. 장 사장의 이력을 미리 훑어봤더니 만 38살, 동갑내기다. 이미 2년 전에 사장직에 올랐으니 예외적으로 일찍 최고경영자가 된 경우이긴 하지만, ‘나도 이렇게 (비슷한 나이대에 사장직이 있을 정도로) 늙어가는 구나’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이력을 좀더 살펴 내려가자 복잡한 심경이 이젠 슬슬 질시와 반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맥킨지컨설팅 컨설턴트…. ‘아니, 왜! 잘난 사람들은 다 이렇게 외국 기업에 가 있는 거야?’

“대학 졸업 무렵에 저 또한 진로 문제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학계로 빠지거나 고시를 통해 행정부로 갔는데, 그런 길이 저한텐 가슴에 잘 와 닿지를 않더라고요. (기자를 슬쩍 보며 입에 침도 안 바른 채) 기자 시험은 힘들어 보였고…. 그러던 차에 <비즈니스 위크> <포춘> 같은 외국 잡지를 봤더니, 외국 학생들한테는 경영 컨설팅 회사, 투자 은행 이런 데가 인기라고 하더군요. 한창 떠오르는 직종이라는 것이었죠.”


마스타카드 코리아는 카드업계 전반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10%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소중한 ‘3대 교육철학’

그것이 맥킨지컨설팅에 들어간 계기였군요?

“(맥킨지에 들어간 건) 다 운이었죠.”

아니, 운이라뇨? 무슨 말씀이신지….

“대학 시절에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맥킨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거든요. 그때 일로 맥킨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게 1991년쯤이었죠. 당시 맥킨지는 조선호텔에 임시 사무실을 두고 있었고, 저는 거기서 데이터베이스에 재무제표 숫자를 집어넣는 단순 작업을 했습니다. 나중에 맥킨지에서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인터뷰 제안을 해오더군요. 그래서….”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떠돌며 초·중등학교 과정을 마친 그가 아르바이트하기에 제격인 곳은 외국 기업이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른바 ‘몰래바이트’)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고 한다. 단순 노동을 하기도 한 그에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아르바이트는 한 노르웨이 기자의 취재를 안내한 일이었다. “1990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노르웨이에 입양된 한국인의 사연을 취재하는 기자를 돕는 일이었습니다. 입양아가 생부모를 만나는 이야기를 취재하는 데 3일 동안 쫓아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 덕에 외국 생활 경험을 많이 한 게 훗날 자산으로 이어진 셈인데, 당시엔 “대단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전학하면 곧 나라를 옮겨다니는 식이었거든요.” 그런 중에도 그를 꽉 잡아줬던 것은 어머니의 ‘3대 교육철학’이었단다. “첫째는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잘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둘째는, (웃으며) 외국 여자는 (결혼 상대로)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고요. 셋째는 대학교는 서울대,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가운데 한 곳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헉!

그의 이력으로 보아 첫 번째, 세 번째는 지켜진 것으로 보이는데 두 번째 약속은 어찌 됐을까? “1995년에 결혼했는데, 어머니 말씀, 지켰습니다. 하하~.”

마스타카드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다 운이었죠, 뭐.” 이번에도 또 운? 그는 인터뷰에서 몇 차례나 ‘운’을 거론했다. ‘모든 게 다 운’이라는 말이 입에 밴 듯했다. 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어울리지 않는 미신적인 용어인 것 같다고 꼬집자, “농담이 아니고 살아갈수록, ‘진인사’(盡人事) 뒤에는 ‘대천명’(待天命)이라는 말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마스타카드 사장직에 오른 뒷얘기를 들어보니 그럴 것 같기도 했다.

“맥킨지 출신 선배로, 헤드헌팅 업체 ‘이건젠더’의 ‘사이먼 김’(한국 지사장)씨가 마스트카드와 연결해줬습니다. 2003년이었는데, 당시 마스타카드 코리아가 사장 자리 맡을 이를 찾고 있었거든요.” 대학 시절 우연히 맥킨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게 인연이 돼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거기서 맺은 인연이 다시 운 좋게 마스타카드 사장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하긴, 그것도 운이라면 운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글쎄….

장윤석 사장은 "인재를 키우는 제일 좋은 방법은 믿고 맡기는 것" 이라고 말한다. (사진/ 윤운식 기자)

마스타카드라는 세계 유수 기업의 한국 법인 사장직 제의를 받고 고민 끝에 받아들인 이유가 걸작이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단다.

훈수 두는 것보다 ‘대국’해보고 싶었다

재미라고요?

“바둑으로 치면, 컨설팅은 ‘훈수’고, 경영은 바둑을 직접 두는 것 아니겠습니까. 훈수 두는 것보다 직접 ‘대국’해보고 싶었습니다.”

직접 해보니 정말 재미있던가요?

“그럼요. 투자은행이나 컨설팅 회사에선 분석을 위주로 하고, ‘권고’ 뒤엔 뒤로 한발 물러서지 않습니까. 경영은 의사결정을 해야 하니 흥할 수도 망할 수도 있거든요. 기획하고 실행한 뒤 보완·관리 책임까지 져야 하니 컨설팅보다 훨씬 넓은 영역입니다. 일반적인 관리·기획 업무뿐 아니라 정보기술(IT)이나 세법까지 알아야 하고. 그래서 ‘종합예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새로운 일을 해나가면서 배우는 게 재미있습니다.”

장 사장의 경영 능력 덕인지, 전체 카드업계가 지난 2~3년간 30~40%의 마이너스(-) 성장세로 허덕이는 중에도 마스타카드 코리아는 연 10%의 착실한 성장세(매출 기준)를 이어가고 있다. 장 사장이 2년 이상 사장직을 유지하는 데서도 어느 정도 역량을 인정받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마스타카드 코리아의 사장직이 최근 4년 동안 평균 1년에 한번씩 바뀐 것과 대비된다.

그의 경영철학은, 인재를 육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맨땅에 헤딩하기’를 드는 데서 조금 엿볼 수 있다. “잘 모르는 분야라도 믿고 맡겨주면 스스로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고, 그런 과정에서 실력을 키우게 됩니다.” 맨땅에 머리를 부딪쳐가며 실력을 다진 ‘진인사’ 뒤에는 ‘대천명’하는 일만 남는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말한 ‘운’에는 ‘진인사’를 통해 쌓은 경험과 역량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210개국서 한해 결제액 1조달러

마스타카드 코리아, 국내 카드 발급 회원사들에 지급결제 솔류션 제공

마스타카드 인터내셔널은 전세계 2만5천여 마스타카드 회원사들의 신용카드, 직불카드, 전자화폐, 기업간(B2B) 거래와 관련된 지급결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업체다. 전세계 210개국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한해 결제액이 1조달러를 웃돌 정도로 막강한 네트워크를 자랑하고 있다.

1966년 설립돼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한국 현지 법인은 1991년에 꾸렸다. 마스타카드 코리아는 세계 곳곳에 있는 다른 나라 법인들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마스타카드를 발급하는 회원사들에 지급결제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마스타카드와 업무 제휴를 맺고 있는 국내 금융기관은 비씨카드, 국민카드, 삼성카드, LG카드, 외환카드, 현대카드, 조흥은행, 신한카드, 시티카드 등이다.

마스타카드 코리아는 한국 진출 4년 만인 1995년 카드 발급 수 1천만장을 돌파했으며, 2004년 9월 말 기준으로 1천5백만장에 이르고 있다. 마스타카드 인터내셔널의 브랜드로는 마스타카드 외에 시러스(ATM 현금 인출 및 관련 프로그램 제공), 마에스트로(온라인 직불카드 서비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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